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65)
266화 시공간
“제가 잡은 겁니다.”
“어, 잘했어.”
그 말이 아니잖습니까!
강석호는 소리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항변했을 뿐이다.
“제가 먹으려고 잡은 겁니다.”
“다른 거 먹어.”
“…….”
탄수화물도 먹긴 한다.
하지만 격렬한 신체 사용 후에 먹을 단백질이 필요할 뿐이다.
“고기 많이 먹어야 합니다.”
“고기 좋아해?”
“안 먹으면 근손실 옵니다.”
“…….”
수호는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게 비결이었나.”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참 고기를 많이도 먹었다.
과일을 채집해 먹기도 했지만, 가장 빠르고 손십게 구할 수 있는 식량 수급 방법은 사냥이었으니까.
물고기, 육고기, 조류 가리지 않고 참 많이도 잡아먹었다.
이 근육 바보가 고기에 집착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내가 많이 먹어 봐서 아는데, 골고루 먹는 게 중요해.”
“단백질 보충이 중요합니다.”
직장 상사라도 할 말은 한다.
강석호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이놈 봐라.”
수호는 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보다 고기도 더 많이 먹어보고 해서 알아.”
“사장님이 강한 건 알겠지만, 근력 강화에 있어서는 제가 더 전문입니다.”
“근력 강화?”
수호는 피식 웃었다.
강석호의 근력 스탯은 얼마를 찍었을까? 그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인간 중에 수호보다 더 근력 스탯이 높은 이는 없으리라 여겼다.
“근력 강화라면 내 말만 들어도 돼.”
“저는 트레이너였습니다.”
수호의 이마에 골이 하나 파였다.
“좋아. 내가 널 강화시켜 주지.”
“…….”
“무료다.”
1:1 PT를 해 주마.
“하지만 제가 몸이 더…….”
수호는 강석호의 말을 끊었다.
“네가 원하는 게 덩치가 커지는 거야? 아니면 강해지는 거야?”
“나는…….”
자신있게 대답하려던 강석호는 머뭇거렸다.
‘궁극의 피지컬을 원해 왔다. 나는…….’
최근 크기에 집착하지 않았는가?
크기가 근력에 비례한다면 가장 강한 사람은 가장 거대한 사람이리라.
강석호의 시선이 사장님에게 닿았다.
근육질이긴 하지만 약돼지들처럼 크지는 않다. 하지만 그 힘은…….
콰직!
“너 이런 거 해?”
수호가 바위 하나를 부숴 보여주었다.
“저도 합니다.”
하압!
대한민국 구랭커의 자존심이 있지.
쾅!
더 위협적인 소리, 비슷한 결과물.
수호는 돌멩이 하나를 쥐어 그대로 힘줬다.
빠직.
손을 펴 보니 돌무더기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이것도 돼?”
“그건…….”
강석호가 조금 자신감을 상실한 얼굴로 돌멩이를 주웠다.
“흐읍!”
뿌득.
“흐아아압!”
뿌드득.
조금씩 갈려나가는 돌멩이 소리에 더 힘을 줘봤으나 완전히 바스라뜨리지는 못했다.
얼굴이 시뻘건 강석호를 보며 수호가 혀를 찼다.
“똥 싸겠다. 그만하고 따라와.”
“…….”
“넌 근력 강화가 목표니까, 이왕 레벨업 시키는 거 제대로 강화시켜 줄게.”
수호는 그에 앞서 목이 부러질랑 말랑 하는 기린을 야수 쉼터로 보냈다.
“곧 친구들도 보내줄게.”
이왕이면 암수 사이좋게 사는 게 좋지. 외롭게 지내면 일곰이 꼴이 난다.
그러고 보니 일곰이 짝도 얼른 길들여서 보내줘야 하는데.
‘토순이도 혼자인데.’
일곰이보다 더 길들이기 힘든 게 토끼다.
곰이야 본래 포식자에 속하는 맹수이니 길들일 수 있다지만, 몬스터를 사냥하는 토끼는 잘 마주치기 힘들다.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진화를 이룬 초식동물을 찾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니까.
굳이 육식을 하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몬스터나 차원에너지를 가진 다른 존재와 싸워 이겼느냐, 이기지 못했느냐로 갈리는 경계.
수호에게 있어 야수는 싸워 이긴 존재들을 칭함이다.
파팟.
기린이 털색과 같은 노란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따라와.”
파팟.
수호와 강석호가 다시 던전 앞에 섰다.
“브레이크는 23일. 횟수는 17번이다.”
“…….”
사장님은 측정 장비도 없이 어떻게 저리 던전 정보를 알 수 있을까?
의문을 해소할 시간은 없었다.
“따라와.”
80레벨 각성자 하나를 90레벨로 만드는 데는 8성 던전 하나, 조금 모자라면 둘이면 충분하다.
독식한다면 말이다.
수호는 이 던전을 17번 모두 공략할 작정이다.
강석호도 키우고, 겸사겸사 아직 90레벨에 도달하지 못한 야수들도 레벨업 시키고 말이다.
그리고 이번 던전에서 못해도 8개 정도의 차원석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파팟.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 수호를 보며 강석호는 이를 악물었다.
“후, 시발.”
8성 던전에 도전했다가 고립되어 죽을 뻔한 강석호다.
오래된 기억도 아니고 불과 며칠 전.
“간다.”
의지를 다지며 던전에 몸을 던졌다.
사나이 강석호,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웅비 길드에서 언제나 대장 대접을 받았는데, 여기서 조무래기 취급만 받을 수는 없지 않겠나?
L급 U급이 우글거리는 이 길드에서 제대로 대우받으려면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파팟.
이를 악물고 입장한 던전은 꽤 아름다운 풍경의 숲이었다.
듬성듬성한 나무들과 그 사이로 무성한 잡풀들을 보며 수호가 두 팔을 뻗고 심호흡하고 있었다.
충만한 나무정령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더없이 좋은 던전이다.
드넓은 8성 던전 전체가 숲.
조화마법을 난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의 던전이 있을까?
빙글 몸을 돌린 수호가 강석호를 보며 웃었다.
“운이 좋군.”
헬린이도 근육 떡대로 만들어줄 수 있을 듯한 환경이다.
“시작하자.”
시차 7배의 던전이다.
브레이크 전에 17번의 공략을 모두 끝내기 위해, 여유있게 한 번에 딱 7일을 잡았다.
강석호에게 최대한 양보할 테지만, 대부분의 경험치들은 아마 야수들이 가져갈 터.
“넌 이제 무기 없이 몸만 쓴다.”
사냥 속도는 느려도 착실히 키워 주마.
지구 시간으로 17일.
던전 시간으로는 119일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용병들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었다.
“동수 너는 사냥 안 가냐?”
“저야 천천히 해도 돼요.”
동수의 현재 레벨은 88.
곧 L등급이다.
며칠 머무를 걸 생각하면 조급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여기 있는 인원 모두가 L등급은 찍어야 귀환할 테니까.
“형님들 사냥은 어때요?”
홍세희, 최수영, 박준호, 서민수, 명진, 진세연 여섯 명이 팀을 이뤄 사냥을 진행 중이다.
“형님이 군주를 다 쓸어버리셔서 사냥이야 수월하지.”
각개로 모인 몬스터 무리야, 일행의 전투력으로 충분히 사냥 가능한 수준이다.
가끔 큰 부족 단위로 뭉친 몬스터 무리가 있지만, 그런 무리는 사냥하지 않으면 된다.
몬스터는 많고, 이들의 목표는 사냥 그 자체이지 아프리카 탈환이 아니니까.
“큰 부족. 내가 처리한다.”
이숙자를 도와 옆에서 설거지하고 있던 당진철이 말했다.
박준호가 궁금하여 물었다.
“당 대협은 몬스터를 사냥해도 지구인들처럼 각성 능력도 얻지 못하는데, 어찌 그리 사냥에 열심입니까?”
“어허, 아우는 나를 호형해도 괜찮네.”
“…….”
준호가 침묵하자 당진철이 달래듯 말했다.
“내 의형님의 친동생이니 내게 동생이나 다름없네.”
“…….”
무림고수가 호형호제 하자는데 싫을 리가 없다. 다만…….
“나이는 내가 더 많은 것 같은데.”
“하하하, 내가 자네보다 한 해 더 살았다네.”
“내 나이가 몇인 줄 알고요?”
“그건 모르지만 일단 한 해 더 살았네.”
“…….”
당진철의 말에 박준호가 애매한 얼굴을 했다.
“누가 형이고 동생인 게 중요하겠소? 우리가 형제가 되었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당진철의 말에 박준호의 표정이 더 애매해졌다.
그에겐 딱히 안 중요한 문제다.
“굳이 형제라 안 불려도…….”
박준호의 말에 당진철이 빠르게 수세미질을 하며 말했다.
“어허, 이거 왜 이러시오? 좋소. 내 나이가 그대보다 하나 많지만, 기꺼이 막내를 자처하겠소.”
“허어.”
“하하하, 우리 삼형제가 똘똘 뭉쳐 한번 잘 이겨내 봅시다.”
뭘 이겨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박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자리에 없지만 당진철은 여전히 수호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 동생인 자신에게까지 저러니.
“아참. 형제의 물음에 답하자면, 내 어머니의 성취를 위해서요.”
이숙자가 만들어내는 독의 양은 한계가 있었고, 가장 적은 양의 독으로 많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별게 없었다.
길거리이 아무렇게나 뿌려 낭비하느니, 큰 몬스터 부족에 몰래 잠입해 그들의 식량이나 식수에 독을 살포하는 게 가장 좋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당진철이 독을 살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울 때 한동수가 이숙자를 지켜줘야 한다.
“민수 형, 영상 변환 다했어요?”
“어, 했어.”
영상기억을 가진 서민수와 한동수.
서민수가 다양한 몬스터와 싸우면서 데이터를 축적중이니, 한동수는 탐험 위주로 변화된 아프리카의 생태계를 연구할 수 있었다.
물론 관찰만 하고 분석은 영상을 본 연구원들이 하겠지만 말이다.
*수호 길드 연구소.
수호 길드에서 보안이 최고 수준인 연구소의 소장실 한쪽엔 차원석이 쌓여 있었다.
구하기 힘든 차원석을 10개나 실험용으로 나눠준 김미소의 배포는 지금도 백구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차원석 덕분에 가능했다.
하루에 너댓 개씩 차원석을 공수해주니 연구에 쓰일 물량도 배정되는 것이다.
“어디 보자.”
장순필이 그간 연구해 온 것은 단 하나.
차원석으로 제작 가능한 두 아이템의 차이에 관해서다.
하나는 귀환석.
‘타 차원인 던전에서 지구로 귀환이 가능한 일시적인 포탈 생성기.’
또 하나는 이동 포탈.
‘지구의 두 공간을 이어주는 영구적인 포탈 생성기.’
둘 다 영구적이라기엔 아직 실험 데이터가 적지만, 어쨌든 이동 포탈은 이동시마다 에너지원으로 혈석만 주입하면 되었다.
여태 파괴된 이동 포탈도 없으니, 아직까지는 내구성에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왜 둘은 다른가.’
포탈은 차원간 균열에 의해 발생한다.
그리고 그 틈에 에너지원이 뭉쳐 포탈이 생성된다.
‘도어 포탈과 브릿지 포탈과 닮았다.’
던전과 지구를 이어주는 일시적인 문. 도어 포탈.
행성과 행성을 이어주는 영구적인 게이트. 브릿지 포탈.
“하나는 일시적이고, 하나는 영구적이고…….”
이걸 합쳐 행성과 행성을 연결하는 게이트를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지금처럼 제주도까지 내려가 아루카 행성으로 통하지 않아도, 수호시티에서 곧장 갈 수 있는 게이트가 생긴다는 것이니까.
“으음.”
장순필은 한 손에 귀환석, 한 손에 이동 포탈 생성기를 들고 한참을 살폈다.
둘의 차이점은…….
“하나가 더 있군.”
이동 포탈은 지구의 물건이 이동 가능하다.
모든 포탈을 통틀어 비각성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지구의 공간끼리 연결된 이동 포탈뿐.
“왜 가능하지?”
장순필은 어쩌면 포탈의 문제보다 포탈로 연결된 두 공간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생각을 마구잡이로 적고 적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난 뒤에 하나씩 실험하면서 증명하고 지워 나가면 된다.
똑똑.
“들어오시게.”
“소장님. 식사하러 가시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네, 하하.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가세…….”
장순필은 한순간 자리에서 멈췄다.
“어, 어쩌면!”
지구와 던전.
각성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던전의 물건은 지구로 오지만, 지구의 물건은 던전으로 갈 수 없다.
“어쩌면.”
가설일 뿐이다.
당진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포탈은 차원 이동이 아니라 시공간 이동이 아닐까?
장순필의 눈에 귀환석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은 귀환 포탈 생성기가 아니라 시간여행 장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