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66)
267화 지구의 수도
장순필이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고생물학자들의 주장에서였다.
‘던전에서 등장하는 몇몇 몬스터는 과거 지구의 생물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상상력이 만들어냈다고 하는 신화 속 몬스터도 등장하는 와중에, 공룡과 닮은 거대괴수가 출현했다.
음모론 비슷하던 가설을 뒷받침하는 몇몇 증거들이 나왔으나 증명할 수는 없었다.
과거의 공룡을 실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주군께서 계시던 그 행성은…….’
장순필의 상상은 계속되었다.
던전이 과거 시공간의 일부라면, 주군께서 계시던 그 행성은 아주 먼 옛날의 지구가 아니었을까?
그가 남긴 낙서와 벽화들이 던전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지구에서 그 기록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증거가 되겠건만…….
장순필이 갑자기 열중하자, 점심식사를 알리러 왔던 연구원이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자네, 이리 와 보게.”
“네, 소장님.”
“던전이 과거의 지구의 어느 한 공간이라는 가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
“나가 보게.”
“네, 식사는?”
“후, 알아서 가지. 먼저 가보게나.”
“네, 소장님.”
연구원이 나가고 장순필이 한숨을 쉬었다.
“하긴.”
포탈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타임 포탈이라면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크흠.”
다시 생각해 보니 허술한 가설에 장순필이 헛기침했다.
포탈이 공간의 충돌이 아닌 시간의 비틀림이라 말하면, 누구나 아까 나간 연구원처럼 반응할 것이다.
대격변 이후 10년.
포탈에 대한 연구는 꽤 많이 이뤄졌으니까.
“하긴.”
당장 아루카 행성과 구천 행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욱이 아직 연결이 드문 미드얼 행성은 또 어떻고…….
엘프들이 과거인, 혹은 미래인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했다.
현재와 미래 과거가 공존하여 뒤죽박죽이 된 세상이라는 소리인데…….
“후우, 바람이나 쐐야겠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으나 입맛이 없다. 장순필은 괜히 복잡한 마음에 무턱대고 걸었다.
마음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숲이었다.
*사냥은 순조로웠다.
몬스터들이 부락을 이룰 정도로 사회를 구성한 지역에는 당진철이 잠입해 몰래 독을 풀었다.
홍세희를 위시한 용병 일행은 차근차근 사냥했고, 착실하게 성장했다.
몬스터의 밀도가 높은 던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폭 낮아진 리스크를 생각하면 충분히 알찬 사냥터였다.
이들이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건 일대의 군주몬스터를 수호가 죄다 쓸어버렸기에 가능한 일.
한바탕 사냥을 끝낸 용병들이 정비를 하고 있었다.
서민수와 박준호가 익숙하게 몬스터 사체에서 혈석을 캐냈고, 최수영은 언제나와 같이 조용히 집중해 주변을 살폈다.
‘음?’
방금 일대의 몬스터를 해치웠다.
오우거 일곱 마리.
꽤 큰 소란이었고, 주변의 고블린 무리가 몇 있었지만 모두 달아난 후다.
“모여 봐요.”
최수영의 말에 일행이 전리품 수거를 멈추고 모였다.
“도망쳤던 고블린들이 다시 오고 있어요.”
“조용해지니까 다시 오는 거겠지.”
“움직임이 이상해요. 마치 포위하듯이…….”
최수영의 몬스터 감지 능력은 레이더와 다를 바 없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럴 것이다.
홍세희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확실해?”
“네.”
“군주네.”
새롭게 던전이 터졌을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의 군주가 비어버린 땅을 노리고 왔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군주가 나타났고, 주변 몬스터들이 그의 카리스마에 따라 전략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홍세희는 팀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할래?”
“일단 복귀하죠?”
“더 늦기 전에 잡는 게 어때요?”
“잡죠. 괜히 부하 늘려봐야 더 괴로워요.”
이곳은 갇힌 공간인 던전이 아니라 지구다.
주변의 군주 몬스터들이 죄다 수호에게 암살당하듯이 골라서 사냥당하며, 그 부하들로 있었던 몬스터들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
군주 하나가 나타나 그 모든 몬스터들을 휘하로 부리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사냥할 사람 손들어 봐.”
진세연을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결정 났네.”
홍세희는 팀원들을 보았다.
그전에도 8성 던전 보스를 사냥하고 돌아온 그녀다.
지금 나타난 군주가 8성 던전을 깨고 나타난 9성급 군주 몬스터만 아니면, 충분히 지금 전력으로도 사냥할 수 있었다.
“일단 탐색부터 해보자.”
일행이 군주 사냥을 시작했다.
*동수는 또 한번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바리바리 채집한 씨앗을 늘어놓았다.
지구의 식물은 아니고, 외계 식물 같아서 일단 열매는 보이는 족족 따왔다.
“아 그런데 이거 보낼 방법이 없네.”
수호가 있어야 백구 택배를 보낼 텐데, 그가 없으니 길드에 전달할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아공간 아티팩트에 보관해뒀다가 나중에나 보내줘야 할 것 같았다.
“으음.”
영상기억 스킬을 이용해 오늘 보고 들은 모든 걸 저장석에 옮겼다.
스킬 사용으로 인한 잠깐의 탈력감에 의자에 앉아 태블릿을 들었다.
“후우.”
엄청나게 느린 속도였지만 아프리카에서도 인터넷을 하는 호사를 누리며 포털에 ‘한동수’를 검색했다.
“아, 요즘 별로 기사가 없네.”
요즘 별로 활동을 안 하다 보니 별다른 기사가 없었다.
이러다 또 수호 길드 채널에 동영상 하나 업로드하면 관련 기사들이 쭉 늘어날 것이다.
동수는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게 좋았다. 애초에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한동수로 검색해 봤자 별다를 게 없자 수호 길드로 바꿔 찾아보았다.
핫한 뉴스 몇 개가 있어 읽어본 동수가 감탄했다.
“오! 역시 추진력 빨라.”
수호가 나서서 군주들을 쓸어버리며 차원석을 보내주고 있었다.
김미소는 그걸 이동 포탈 생성기로 만든 뒤, 주요 국가의 대도시들과 협상하며 이동 포탈을 설치하고 있었다.
기사 내용을 보니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모양.
한국엔 이미 대구와 서귀포, 익산으로 향하는 이동 포탈이 설치되었다.
거기에 더해 평양, 런던, 베이징, LA가 수호 길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곧 이동 포탈 설치를 완료한다는 내용이다.
“이야, 진짜 앞마당에서 세계여행하겠네.”
김미소가 그리는 큰 그림이 동수에게도 보였다.
세계가 수호시티로 통한다.
도시, 더 크게는 나라, 보다 크게는 각 대륙이 한반도 수호시티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는 거다.
“으오오오!”
한참 흐뭇하게 기사를 훑어보던 동수는, 밖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화들짝 놀라 나섰다.
“아니, 이모. 왜 그래요?”
괴성의 정체는 이숙자.
“히, 힘이 넘치는구마잉.”
이숙자의 피부가 광택이 나는 기분이다. 컨디션이 유달리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동수는 직감했다.
‘등급 오르셨구나.’
지금도 당진철은 부지런히 이숙자가 만든 독약을 살포하러 다니고 있었다.
“이모, 등급 측정 한번 해 드릴게요.”
동수가 가져온 측정기로 재 보니 그녀는 막 U등급. 80레벨에 오른 참이다.
제대로 사냥하지도 않고, 독극물 제작으로만 레벨을 올려버린 그녀다.
‘진철이 형님 말고 다른 사람이 풀면 어떻게 되지?’
당진철은 몬스터를 죽여도 차원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한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인들이 가능한 각성이 구천 행성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독약을 뿌려도 몬스터들이 죽고 남긴 그 차원에너지는 모조리 이숙자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와! 이모. 제가 아는 할머니 중에선 제일 셀 것 같아요.”
“아이구, 이거 날이 갈수록 회춘하는 기분이네.”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젊어지고 있다.
“음, 근데 누나 형들이 오늘따라 늦네요.”
“올 때 되면 오것지. 동수야, 저녁 뭐 묵고 잡냐?”
“저야 아무거나 잘 먹죠.”
“요 귀여운 것.”
이숙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주변을 보았다.
“참 무서븐 세상이여.”
한때 사람이 북적댔을 도시는 버려진 지 한참 되어 여기저기 자라난 나무와 풀들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넓은 숲과 아름다운 석양, 파란 하늘이 보인다.
적어도 요즘 시대엔 미세먼지에 고통받지는 않지만, 언제 그칠지 모를 포탈의 생성과 몬스터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우리 수호시는 이래 안 되것제?”
“안 되죠.”
동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수호시가 이렇게 폐허가 될 정도면 지구가 멸망한 이후가 아닐까?
“젊은이들이 고생이다. 고생이여.”
용병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이숙자는 간이 주방이 설치된 천막으로 들어가 손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서부미국 대통령 하워드는 비밀회담을 가지고 있었다.
하워드, 리처드 박사, 그리고 이성우.
“제가 너무 예민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저들은 다른 주요 대도시들에도 똑같이 제안하고 있습니다.”
수호 길드에서는 세계 도시들을 모두 잇는 이동 포탈을 설치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워드는 처음엔 그들이 대륙간 이동 포탈 설치를 무료로 제의하며 뭔가 다른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득과 관련된 게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점이 있는 이성우였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보니 LA에만 제의한 게 아니었다.
세계를 잇는 허브가 되려 하고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 얻는 이점은 엄청나다.
‘통행료만 걷어도…….’
일차원적으로 생각해 도로망을 깔아놓고 통행료만 걷어도 엄청난 이문이 남을 터.
그것 외에도 얻는 이점은 무궁무진하다.
“제가 그들의 야망을 너무 얕잡아 봤습니다.”
세계로 통하는 연결망을 구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세계가 수호시티로 통한다.
물류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하워드는 짙은 권력의 냄새를 맡았다. 쪼개지고 분열된 세계의 권력들이 한곳으로 흐르려 하고 있었다.
하워드는 조금 안달이 난 상태다.
대척할 것이 아니라면 냉큼 올라타는 게 상책.
하지만 서부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데 막대한 도움을 준 이성우가 수호 길드와 그리 좋은 인연이 아니다.
외려 악연이라 불릴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으니…….
‘이제와 버릴 수도 없다.’
당장 이성우가 마음먹고 암살하려 들면 막을 재간이 없으니, 하워드는 모든 정보를 오픈하고 이성우를 설득하는 것이다.
챔피언 자리를 놓고 다툰 박수호와 이성우가 화해하는 것이 베스트.
“미스터 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무슨 생각이요?”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입니다.”
“얼마 안 가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받긴 해야죠.”
공짜로 이동 포탈을 뚫어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쓸모가 없어진다고요?”
“두꺼비 군주.”
항상 이성우를 좌절케 한 벽.
“아시아 대륙은 답이 없습니다.”
놈은 깨어나자마자 따뜻한 기후를 찾아 남하한다.
공교롭게도 그 루트가 한반도로 향한다. 그 길목에 놓인 도시는 모조리 파괴당한다.
‘못 막지.’
지난 회귀를 할 때마다 별짓을 다 해봤다.
한번은 핵을 여러 차례 쏜 적도 있었지만, 방사능 오염만 불러왔을 뿐 두꺼비 군주를 죽이지는 못했다.
“으음. 미스터 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심각한 상황이군요.”
이성우가 회귀자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제가 아는 미래에 박수호는 없었습니다.”
“그럼 그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죠.”
하워드는 어째서인지 그리 말하는 이성우의 표정이 심드렁하다고 느꼈다.
‘막으면 그 비법을 알아서 회귀한다.’
입을 꾹 다문 이성우지만 그 나름대로 계획은 다 있었다.
“받으세요. 관계 개선에 조금 노력을 기울여 보죠.”
설마 다짜고짜 죽이려 들기야 하겠는가?
회귀자라는, 누가 봐도 탐나는 정보의 보고를 두고 말이다.
수호 길드에서도 결국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