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68)
269화 개박살 (2)
거대 거북이 군주는 멀리서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지만, 가까이서 본 모습은 생각보다 더 컸다.
“맙소사.”
“이건 그냥 산이네.”
다리 하나가 아파트 한 동보다 더 굵다.
등껍질은 얼마나 광활한지, 그 위에 쌓인 흙과 자란 나무들로 인해 마치 숲속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올라타 볼까?”
홍세희 일행이 이렇게 접근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거북이 군주의 습성이 이상할 정도로 비공격적이라서다.
슈우우우우, 쿠우우우웅.
거대한 다리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지면에 착지하자, 사방으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지면이 진동했다.
거대하고 느리지만 파괴적이다.
“얘 우리 못 보는 것 아닐까요?”
“모르지. 신경 안 쓰는 걸 수도.”
“어쨌든 타 보죠.”
“가자.”
홍세희의 최종 결정에 용병들이 거북이 발을 타고 올랐다.
수직으로 깎인 절벽을 등반하는 것 같은 느낌.
파파팟.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버린 용병들에게 이 정도 등반은 어렵지 않았다.
“진짜 숲이네.”
“흔들흔들 숲 같네요.”
등껍질 위는 작은 생태계가 마련되어 있었다.
땅, 나무, 풀, 그리고 그 위를 활보하는 몬스터까지.
“크와아아!”
리저드맨 다섯이 달려들었으나 용병들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럼 슬슬 공략법을 찾아볼까요?”
“하아압.”
까앙.
성격 급한 진세연이 냅다 후려친 도끼가 땅을 파헤치며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등껍질 엄청 단단해요.”
“내가 해보겠소.”
명진이 누나를 대신해 창을 쥐곤 기를 집중했다.
“하아압!”
바닥을 차고 뛰어올라 공중에서 몸을 돌린 명진이 창을 수직으로 내리 꽂았다.
콰앙!
충격음과 함께 등껍질에 정확히 박혔다.
창두가 그대로 박혔고, 깨진 껍질이 주변으로 튀었다.
“이거 꼭 돌 같네.”
매끈한 광석 표면처럼 깨진 등껍질은 굉장히 딱딱하고 날카로웠다.
겹겹이 쌓이고 퇴적되어 형성된 광석 같은 구조.
창을 흔들어 뽑은 명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 번 더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소.”
“차라리 곡괭이로 채굴하듯이 하면 어때요?”
“그래 봐야 생채기 내는 정도일 것 같은데.”
“으음.”
사람들의 시선에 최수영에게로 몰렸다.
“왜, 왜요?”
“약점 같은 건 못 찾아?”
“그런 걸 어떻게……. 아니, 될 것 같기도 해요.”
몬스터 감지능력이 뛰어난 그녀다.
그 감지라는 게 다름 아닌 차원에너지를 감지하는 거다.
균열감지팀에서 활약했던 것도 모두 그 능력과 뛰어난 기감 스탯 때문.
그녀가 감지하는 건 몬스터가 아니라 차원에너지다.
균열도 차원에너지를 풍기고, 혈석을 가진 몬스터도 차원에너지를 풍긴다.
‘이 정도 덩치라면…….’
특정 부위에 차원에너지가 몰린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곳이 꼭 약점일 이유는 없지만, 약점일 확률 또한 많다고 봐야 한다.
한참 기다린 끝에 그녀가 눈을 떴다. 하지만 표정이 그리 좋진 못했다.
“어디야?”
홍세희의 물음에 최수영이 바닥을 발로 두드렸다.
“밑이에요. 아마 몸 중앙 같아요.”
“젠장.”
결국 등껍질을 해결해야 하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여러 공략법이 튀어나왔다.
“껍질 깨고 거기에 폭약 심어서 터트리면 어때요?”
“차라리 배 밑으로 들어가서 공격하는 게 낫지 않을까? 덜 딱딱할 것 아냐.”
“그러다 이놈이 깔고 누워버리면 그대로 죽을 텐데요.”
“그르네.”
여러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박준호가 조용히 말했다.
“머리.”
“네?”
“머리를 노리자.”
박준호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각성 스킬은 참수.
“모가지 따버리면 제 놈이라고 별수 있겠어?”
“음, 덩치가 이러면 목도 엄청 두꺼울 것 같긴 한데.”
몇 개의 아이디어가 더 나오고 홍세희가 정리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야. 다 해보자.”
“네.”
기우뚱 움직이는 거대한 거북의 등껍질 위에서 저마다 공략법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호시티 외성.
남문과 인접한 곳에 새로운 구역이 추가되었다.
기존에 이동 포탈이 있던 지역의 바닥에 거대한 세계지도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 지도 위의 도시마다 재단이 세워졌다.
한반도 남쪽에는 무려 3개.
대구, 익산, 서귀포.
대구 포탈을 통해 분리독립해버린 영남연합으로 갈 수도 있고, 익산을 통해 구천 행성 게이트로 바로 갈 수도 있다.
서귀포는 아루카 행성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쓰고 말이다.
드넓은 세계지도 위 재단이 세워진 곳은 모두 이동 포탈이 뚫릴 지역이다.
올리버는 그중 북미대륙의 서부 미국 LA라고 적힌 재단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와우, 이건 실용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낮은 단 위에 영롱하게 빛나게 될 포탈의 모습을 상상하자 짜릿한 전율마저 감돈다.
축구장 정도 크기의 세계지도.
각 주요 도시마다 포탈이 설치되고 나면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리라.
“수호 길드가 그리는 청사진이 이 지도 위에 다 나오는군요.”
물론 야망이 가득담긴 청사진이다.
세계를 수호시티에, 그리고 수호 길드가 세계를 움직이고 싶어 함이 드러난다.
‘누구 생각일까?’
김미소의 계획인지, 아니면 뒤에 있을 박수호의 내심일지 모른다.
아니,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이성우의 눈망울은 야망으로 이글거렸다.
‘이건 마치…….’
이건 그야말로 세계를 손안에 두겠다는 것 아닌가?
‘거대 육상군주들만 막을 수 있다면…….’
물론 이 지도 위에 단이 만들어진 도시들이 안전하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이성우는 불현듯 생각나 뒷골이 쭉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제일 먼저 육상군주가 출현한다. 공교롭게도 박수호의 현재 위치도 아프리카.
“흥, 회귀자가 아니긴 개뿔.”
녀석도 회귀자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 시기에 아프리카에 가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육상군주의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지 알고 사전제거하기 위해 간 것이 틀림없다.
‘거대 육상군주가 항공모함이면 군주 몬스터는 전투기.’
몬스터도 등급을 따질 수 있다.
군주가 8성 보스라면 거대 육상군주는 9성 보스.
8성급 몬스터가 9성급 지배를 받으면…….
‘몬스터 왕국.’
끔직한 결과가 나온다.
9성 군주 휘하에 예속된 8성 군주들의 세력화.
박수호는 모든 걸 알고 거대 육상 군주의 손과 발이 될 군주 몬스터를 사전에 제거하러 간 것이 틀림없다.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이성우는 정말 박수호를 대면해보고 싶었다. 그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회귀를 했는지…….
이성우는 자신과 올리버의 안내를 맡은 직원을 보았다.
말이 안내지, 감시역이다.
눈이 마주치자 직원이 물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박수호 사장은 언제 돌아오죠?”
“모릅니다.”
“…….”
무성의한 답변에 이성우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나 같은 놈은 그냥 기다리라 이거지?’
그래, 기다려주마.
다음 생을 위해.
*“이모, 자리 옮겨야겠는데요.”
“잉? 어디로?”
“방금 김 부사장님 연락 왔는데, 회귀자가 찾아왔대요.”
“그기 뭐시기여?”
“아, 전에 형님한테 맞고 도망친 애 있어요.”
“그런디?”
“모르죠. 일단 형님 어디 가셨는지 좀 찾아야겠는데…….”
던전 사냥을 떠난 박수호다.
던전을 찾으면 박수호도 찾는 것이지만, 한동수로서는 던전을 찾을 길이 없다.
“일단 수영 누나네 쪽으로 합류해야겠어요.”
군주 사냥에 나섰기에 벌써 이틀째 베이스캠프로 복귀하지 않고 있는 그들이다.
“어딨는 줄 알고 간디야?”
“누나들 어딨는 줄은 알죠. GPS 잡혀요.”
던전 안에 들어가버린 박수호하고야 연락할 길이 없지만 다른 용병들은 다르다.
위성 GPS 신호에 따라 쫓아가면 만나게 될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 점점 북상하고 있는 그들이다.
“뭐, 가야 한다면 내야 따라가야제.”
“네, 그럼 캠프 정리하죠.”
한동수와 이숙자, 당진철이 베이스캠프 장비들을 하나씩 아공간에 넣기 시작했다.
*“크롸아아!”
아프리카 중남부 일대를 장악한 오우거 군주.
보통의 오우거보다 두 배는 더 큰 녀석의 이름은 투루소.
“그어어어.”
포효로 부하들을 모았다.
이 포효가 닫는 그 땅까지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응답한 몬스터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세를 이룰 것이다.
‘다시 찾은 이 땅에 거인족의 번영을 이루리!’
몰려드는 부하몬스터 중에 동족들도 보인다.
커다란 덩치의 오우거.
마찬가지로 큰 덩치의 외눈박이 사이클롭스.
두 개의 뿔이 돋아난 켄타우로스.
다시 한번 번영을 누리던 그때의 고향을 이루리.
*고블린 주술사 매닝스
“퀴이.”
뼈로 쌓아올린 재단에 올랐다.
수많은 고블린들이 포효하며 그들의 족장을 맞이했다.
“쿠어어어!”
“퀴이이이!”
재단에 오른 매닝스가 주변을 휘어 둘러보았다.
가장 허약하지만 가장 많은 종족.
이 땅을 밟은 시작의 종족이자, 가장 오래된 종.
다시 한번 이 땅에 난쟁이 종이 군림하리라.
인간의 두개골 일곱 개가 장식된 스태프를 들어올렸다.
파지지지직.
번개가 치며 하늘로 뻗었다.
“퀴어어!”
고블린들이 포효했다.
*아프리카 어느 늪지.
진흙이 요동치며 여기저기서 리저드맨들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취직.”
“취직!”
그들의 군주가 부른다.
리저드맨들이 향한 곳.
황금색으로 빛나는 몸을 가진 리저드맨이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가장 척박한 환경과 시기를 버틴 종.
척박의 시간을 번영기로 누린 도마뱀 부족들이 황금 리저드맨을 중심으로 뭉쳤다.
“취직!”
다시 얻을 것이다.
“취직!”
일자리…… 아니, 번영의 땅을.
*아프리카 서부 해안.
일대를 평정하고 영역으로 둔 뱀파이어 귀족 루쇼는 짐승들의 시체로 탑을 쌓았다.
가장 좋은 재물만이 ‘그’를 깨울 수 있지만, 지금은 구할 길이 없다.
부족한 대로, 자살한 인간 대신 짐승들로 재물의 탑을 쌓고 소환의식을 진행할 수밖에.
‘그’가 아닌, ‘그것’이 소환되겠지만.
즈으으으앙.
시체의 탑 사이 중앙에 생겨난 검은 포탈을 앞에 두고 뱀파이어 루쇼는 무릎 꿇고 엎드렸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파멸로 존재의 이유를 찾으소서,”
뱀파이어 루쇼는 무릎 꿇은 채로 오른손을 치켜 들었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검은 손톱이 요사스런 빛을 내뿜었다.
파팟!
그 손이 향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목.
콰직!
단숨에 본인의 목을 꿰뚫은 루쇼는 히죽 웃었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는 다 했다.
일족은 그의 아들 군트가 이을 것이다.
털썩.
쓰러진 그의 몸에서 차원에너지가 흘러 나왔다.
갈 곳 없는 차원에너지가 검은 포탈을 향해 이끌려갔다.
파파팟.
검은 포탈이 뭉글거리더니 짐승의 심장처럼 박동했다.
찰흙처럼 움직이던 검은 포탈이 사라지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곧 검은 형체의 몸을 얻었다.
그것은 두 발로 선 짐승과 닮아 있었다.
“쿠로!”
한껏 포효한 검은 짐승은 이내 아프리카 대륙을 내달렸다.
“…….”
피의 속박을 넘어 고귀한 피를 계승한 군트가 이성을 찾았다.
뱀파이어에서 뱀파이어 귀족으로…….
군트는 고삐가 풀려 내달리는 검은 짐승을 일별했다.
“오직 파멸뿐이다.”
배신뿐인 이 세상에 내려질 단죄는 파멸뿐이다.
좋은 재물을 찾아 ‘그’를 깨우리.
그때 심장을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구우우우우우!
그것은 소리라기보다는 본능을 자극하는 ‘명령’이었다.
구우우우우우!
구슬픈 거북이 울음에 일대의 ‘군주’들이 부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