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22)
423화 오류 (2)
“음?”
“으음.”
수호와 김미소의 시선이 동시에 가즈라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 여상스러워 가즈라는 혼란을 느꼈다.
‘나만 심각한가?’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참상을 보면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드래곤은 벌써 시야의 한쪽 부분을 가릴 정도로 가까이 근접해 있었고, 그보다 더 먼저 진군했던 몬스터들은 바로 장벽 아래까지 당도했다.
장벽 위 시민군들은 드래곤피어 한번이 준 충격이 컸는지 여전히 우왕좌왕했고, 순조롭게 군주 몬스터를 레이드하던 용병들도 후퇴를 거듭했다.
장벽 안으로 후퇴하지 못한 몇몇은 벌써 몬스터들의 먹이로 전락했고, 사상자 수가 벌써 수십을 넘었다.
“크아아아!”
눈이 시뻘개진 몬스터들의 행동을 보면, 드래곤 피어가 적아를 가려 몬스터들에겐 버프로 작용했는지 움직임이 전보다 더 빠르고 포악해졌다.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빛의 몬스터들은 여기저기서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을 이어나갔다.
장벽의 길이 만큼이나 전선은 길어졌고, 지금도 차츰 더 길어지는 중이다.
자카르타 동쪽 장벽 대부분이 몬스터들의 진군에 닿아있다는 이야기다.
이 상황이 심각하지 않으면 무엇이 심각하겠는가?
쿠우우우웅!
거대한 사이클롭스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장벽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방어막도 소용없다.’
자카르타도 엘프들이 거주하는 구역답게 서귀포와 같은 종류의 방어막이 생성되어있었으나, 신급 군주와 함께하는 몬스터 군단 앞에서는 종이와 다를 바 없었다.
신의 힘을 빌린 마법이 어찌 신의 힘 앞에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가즈라는 이를 악물고, 자신을 멀뚱히 보고만 있는 신과 인간을 보며 재촉했다.
“드래곤만 처치해주신다면 나머지는 이곳의 병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나이다.”
가즈라의 음성은 이제 거의 애걸에 가까웠다.
드래곤이 가만히 움츠리고 있을 때는 그래도 정령왕을 소환하면 해볼 만하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니 느낌이 달랐다.
‘실패할지도 모른다.’
정령왕이 드래곤을 상대로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그 싸움을 이겨낼 때까지 가즈라 본인이 버틸 자신이 없었다.
드래곤을 해치우는 방법은 둘뿐이다.
하나는 목숨을 걸고 정령왕을 소환해 정령왕이 드래곤을 죽일 때까지 버티는 것이고, 두 번째는 눈앞의 인간신이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이다.
“너 괜찮냐?”
“예?”
“왜 이렇게 많이 떨어?”
“아!”
하이엘프라고 하여 그 종이 다를까.
엘프들이 모두 그러하듯, 선조로부터 내려온 드래곤에 대한 공포는 대단한 것이다.
무려 정령왕의 계약자라 하더라도 이리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동요할 정도로 말이다.
“일단 치워야겠네.”
수호는 가즈라를 보고 있기 안쓰러워서라도 빠르게 전장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그냥 지켜보며 정 위험할 때만 나서서 자카르타 시민군과 용병들의 훈련을 도와줘도 되겠지만, 이번 한 번 그렇게 뒤를 봐준다 해도 딱히 대단한 레벨업을 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벌써 장벽 일부는 무너져 몬스터들이 대가리를 내미는 곳도 있었다.
두꺼운 철문은 미친 듯이 대가리를 박아 넣는 몬스터들로 인해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울퉁불퉁해진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청룡은 안 되겠고……. 구미야.”
청룡은 아직 오사카 상공에 머무르며 미적지근하게 후퇴하는 오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구미는 백두산에 나타난 골드드래곤을 처치하며 신수로 올라섰다.
본디 그가 가진 환술에 더해 골드드래곤으로부터 흡수한 뇌력을 지닌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라면 저 갈색의 드래곤을 상대하는 데 문제가 없다.
휘리릭릭.
“묘호호호.”
수호는 소환된 구미를 보며 씩 웃었다.
“혼자서 제압은 힘들지?”
야수가 신수가 되며 강력해진 것이 힘만은 아니다.
영물 단계를 벗어나 신격을 얻은 그들은 백사와 같이 의지를 전해 소통하는 법을 깨우쳤다.
구미 혼자 제압하라면 하긴 하겠지만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불리한 전장 상황을 생각하면 그 시간은 자카르타시티 쪽이 아니라 몬스터들의 편이다.
“짭쿠로.”
수호의 부름에, 그의 옆에 황색과 검은색 연기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크허어어엉!”
신수가 둘이라면 드래곤 하나 손쉽게 제압하는 데 문제가 없으리라.
“그럼 제물은 누굴 주나.”
수호가 없는 동안 많은 야수들이 신급 군주를 하나씩 잡으며 신수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L등급에 올랐지만 사냥할 신급 군주가 없어 야수 레벨에 머무르고 있는 사역마들이 한가득이다.
그들 중 누구를 먼저 키워줘야 할까?
휘익.
수호는 훌쩍 뛰어 망루에서 내려섰다.
장벽 밖, 몬스터들이 바글거리는 적진 한가운데 떨어져 내린 수호의 주변으로 돌개바람이 일었다.
후이이이이익!
소리를 찢어발기며 흉포하게 날아간 돌개바람이 공간을 만들어냈고, 수호의 주변에 일시적인 공백이 만들어졌다.
“왕의 대지.”
수호의 손바닥이 땅에 닿았고, 그곳을 시작으로 수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수풀이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가 싶더니 금세 나무가 몇 돋아났고, 울창해지며 정글을 만들어냈다.
생태계를 수백 년쯤 빠르게 돌리면 이런 광경이 펼쳐질까?
쯔어어어억!
가파르게 자라난 나무들이 토해내는 비명성과 같은 소음을 끝으로 숲이 완성되었다.
끝에서 끝까지 해봐야 고작 30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지만, 높게 자란 나무들과 빽빽한 수풀이 숲속의 공간을 가렸다.
푸스스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숲이 들썩였다.
어느새 돌개바람은 잦아들었고, 잔뜩 경계한 몬스터들이 숲으로 모여들었다.
몬스터들의 이목이 모두 모였을 때, 들썩이던 숲이 한층 더 요동쳤다.
푸드드드.
나무가 흔들리고 수풀이 춤췄다.
“무오오오!”
숲을 헤치며 달려나온 것은 다름 아닌 삼각뿔소!
소 떼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의 군집을 이룬 삼각뿔소 수십 마리가 몬스터들을 짓이기며 진영을 무너트렸다.
“끼기기기기!”
소 떼만 출현한 것이 아니다.
숲에서 나온 원숭이 떼가 혼란에 빠진 몬스터들을 습격했다.
“크롸아아!”
근처에 있던 군주 몬스터 하나가 소리치며 혼란을 수습하려 했지만,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곰 하나가 군주 몬스터와 붙어 대거리했다.
“뿌우우우!”
거대한 덩치의 남만코끼리가 튀어나와 오우거를 상대하기 시작하더니, 곧 호수악어 떼도 나와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했다.
“아우우우우!”
늑대 무리 수십은 나타나자마자 저 멀리 떨어진 군주 몬스터를 표적으로 삼고 집단사냥에 들어갔다.
“사격중지!”
자카르타 시민군을 이끌고있는 사령관 조나단은 홀린 듯 그렇게 외쳤다.
“사격 중지!”
장교들이 여기저기 장벽 위를 오가며 명령을 전파하며 혼란을 수습했다.
아직 드래곤 피어에 당한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시민군들이 여럿이고, 아예 혼절한 이들도 있었다.
인접해있던 기관총 포대가 멈췄다.
“크와아아!”
시민군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작은 숲이 생겨나더니 야수들이 떼거리로 나와 주변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에 신급 군주의 군단장급인 군주 몬스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나를 맡아 잘 버틴다 싶으면 다른 야수들이 두엇이 달라붙으면서 순식간에 사냥당했다.
숲에서 나오는 야수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것에 맞추기라도 한 듯 망루에 위치한 기관총들이 차츰 멈추기 시작했다.
총알 따위로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는 가죽이 약한 놈들뿐이다.
기관총이 살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잘 쳐줘 봐야 오크 정도까지.
괜히 오크나 고블린 따위를 잡자고 사격했다가 자칫 오발탄이 원군을 향할 수도 있었다.
더욱이 지원군으로 등장한 야수들이 얼핏 보기엔 몬스터들과 구분하기도 어려웠으니, 시민군들의 최선의 선택은 그저 구경이 되어버렸다.
사령관 조나단의 판단은 정확했고, 장벽 아래의 참상은 일방적인 도륙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크아아!”
장벽을 넘기 위해 몰려들었던 몬스터들은 그 벽이 퇴로를 막아 도망치지도 못하고 하나둘 쓰러졌다.
후우우우웅!
갑작스레 튀어나온 야수들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상공에 다다른 드래곤이 잠깐 경계하며 활공만 하고 있을 정도였다.
후우우웅, 후우웅!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던 건 아닌지 드래곤의 숨소리가 조금씩 더 거칠어졌고, 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저 숲이 문제다.
아직도 야수들이 쏟아지고 있는 저 숲을 파괴해야 한다.
드래곤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푸아아아아!
드래곤의 아가리가 아래를 향해 벌어졌고, 참았던 숨이 토해지며 불이 내렸다.
거대한 불기둥이 뿜어져 내려오는 것과 발맞춰, 망루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짭쿠로가 훌쩍 뛰어내렸다.
불기둥을 향해.
화르륵.
거대한 불기둥에 휩싸여 남만호랑이가 검게 타버릴 것이란 상식과는 반대로 호랑이는 불을 흡수했다.
화르르르륵.
레드드래곤을 제물로 불을 다루는 힘을 얻으며 신수가 된 짭쿠로는 드래곤의 브레스를 먹어치우듯 모조리 빨아들였다.
후우우웅.
드래곤의 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꺼지며 브레스가 잦아들었을 땐, 타오르는 불꽃을 털처럼 두른 남만호랑이 하나가 숲 위에 떨어졌다.
푸스스.
곧 수풀을 헤치며 불꽃 호랑이가 나타났다.
털처럼 타오르는 불길은 주변에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않고 완벽히 통제되고 있었다.
“묘호호!”
어느새 망루 위에서 홀연히 사라진 구미가 나타난 것은 브레스를 뿜느라 무방비가 된 드래곤의 목 뒤.
구미는 기회를 기다렸고, 녀석의 브레스가 끝나는 타이밍을 노려 모든 기를 폭발하듯 내뿜었다.
파지지지직!
구미의 몸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뇌력은 드래곤을 감전시키기 충분한 공격이었다.
휘이이이, 쿠우우우웅!
거대한 동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충격음을 냈고, 몬스터들은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카르타 동쪽 장벽 주변에 몰려든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의 구심점이자 대군주인 드래곤이 죽었으니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푸스스.
야수들을 토해내던 숲의 가장 큰 나무가 흔들린다 싶더니 뭔가가 쑥 튀어나왔는데, 박수호였다.
그는 최초로 뛰어내렸던 망루 위에 착지하곤 가즈라를 보았다.
“이제 됐지?”
“……!”
가즈라는 그저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이것이 신의 힘인가?
너무 대단하여 대단하단 소리도 나지 않는다.
본디 몬스터들은 동족끼리 모이는 습성이 있고, 그들 무리도 특색에 따라 부족이 나뉜다.
지금처럼 오우거와 오크, 고블린이 먹이사슬이 아닌 한 팀이 되어 명령을 따르는 것도 군주 몬스터의 카리스마와 권능이 있어서다.
신급 군주가 제압당하고, 그 휘하로 모여든 군주 몬스터들이 지금 하나둘 사냥당하며, 혼란에 빠진 몬스터들이 그저 본능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전장을 이탈하는 그들의 행렬과, 위협하듯 쫓아내는 야수들의 움직임에 그저 전율했다.
하이엘프 가즈라는 본인이 선택받은 자라 생각했다.
무려 정령왕의 계약자인데 그런 우월감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
그럼에도 드래곤을 마주하곤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다졌다.
신수의 파괴력이나 전투력은 정령왕의 계약자에게 동급, 그 이상의 전력이었다.
하지만 진짜 신은 차원이 달랐다.
목숨을 걸고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신수를 사역마처럼 여럿 거느리고 있으니…….
수호를 보는 가즈라의 시선에 경외를 넘어선 미지의 두려움이 맺혔다.
수십, 수백 종의 각양각색의 동물들의 숭배를 받고 있으니…….
인간들의 신인가, 세상만물의 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