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52)
453화 색 (3)
파팟.
일렁이던 시야가 밝아지며 약간의 어지럼증이 머물다 사라졌다.
“으음.”
게이트 포탈은 통과한 김미소는 예상과 다른 소란스러움에 인상을 찡그렸다.
“크와아아아!”
괴성과 함께 거대한 괴물 하나가 김미소를 향해 달려왔다.
슈슈슈슉.
괴수의 발아래 돋아난 잎사귀가 괴물의 몸을 타고 오르며 자랐다.
대수롭게 않게 여기던 괴물도 그 넝쿨이 전신을 휘감자 몸을 비틀었다.
쿠드드드득!
그즈음 굵어지기 시작한 넝쿨이 더욱 그 몸을 옥죄었고.
꽈드득.
“크아아아!”
괴수의 아가리가 김미소에게 닿기 전 전신이 포박당하고 말았다.
꾸드득.
녀석이 움직일수록 그 틈을 더욱 파고들며 조여들었다.
“어이쿠야. 놀래라.”
김미소의 뒤를 이어 포탈을 통과한 고상운 박사가 깜짝 놀라 움찔했다.
“허, 참.”
브릿지 포탈은 행성 간을 이어주는 상시포탈이다. 언제든 양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한 지역이기에 보안이 중요했다.
범죄자들의 도피나 무단입국을 막기 위해 검문을 위한 인원도 항시 상주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난리네요.”
“그러게요.”
김미소는 여상스럽게 대화를 흘리며 주변을 빠르게 정리했다.
“쿠워어어!”
수호를 만나기 전에도 A급 각성자였던 그녀지만, 그때와 지금의 무력차이는 바다와 접싯물 수준으로 크다.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비틀린 신음만 흘리는 이 괴수만 해도 신급 군주 정도는 되어 보였으니까.
그 외에 자잘한 몬스터들이 죄다 나무덩쿨에 얽혀버렸다.
죽지는 않았으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
꾸드드득.
“퀴익.”
김미소가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옭아매버리니, 일정 반경을 두고 마치 살아있는 괴물들을 전시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으음? 무슨 일이지?”
“허, 이게 무슨!”
뒤따라온 일행들도 기대하던 자카르타 게이트 주변 모습이 아닌지라 깜짝 놀랐다.
눈앞에 전시된 괴물들 너머로 시야를 넓혀 보면 여기저기 치솟는 불길이 보였고, 하늘은 이미 매캐한 연기가 뒤덮고 있었다.
“오우.”
“뭐야!”
줄줄이 포탈을 넘어 마차가 튀어나왔고, 알리어드와 로매드가 주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흡.”
가즈라는 깜짝 놀라 얼른 비행마법을 전개해 위로 솟구쳤다.
긴 세월을 사는 엘프다.
하지만 그만큼 따분하고 반복적 일상과 정적인 삶을 사는 그들이다.
고작 10년이지만 지구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게 있어 인생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정도의 사건이 있어 온 곳.
그가 자리잡았던 자카르타는 이미 그의 터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자카르타가 불타고 있었다.
괴수들이 잔치를 벌이듯 여기저기를 파괴하고 있었다.
“흐어어업!”
가즈라가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하며 괴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하죠.”
“네, 부사장님.”
김미소는 간단하게 명하고는 본인도 움직여 주변 괴물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고작 며칠 사이…….”
나름 빡빡하지만 수호 없이도 지구를 잘 지켜낸 수호 길드다.
그녀가 빠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길드에는 반신이 되어버린 G등급 전력들이 많다.
그들이라면 1:1로 신수 사냥이 가능할 정도.
자카르타는 세계적인 대도시인데 이 정도의 피해를 입을 정도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자카르타 도시정부가 또 수호 길드의 지원을 거부했거나…….
‘공세가 더 강력해졌다?’
신수를 발생시키는 8성 던전의 등장이 더 과격해졌다는 소리다.
자신을 대리해 수호 길드의 전체를 조율하게 된 박준호 부사장의 실책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구축해 놓은 길드의 시스템은 자질 없는 리더가 앉는다 해도 무너질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으니까.
생각해 볼 것은 하나.
적의 등장이 더욱 빈번해졌다.
트리거라고 하면 역시 하나뿐이다.
‘야누스가 뭔가를 했어.’
일단 지구의 상황 파악을 우선하려면 수호 길드로 빠르게 복귀해야 한다.
‘저기도 있네.’
김미소는 신수와 대치 중인 가즈라를 보며 날아갔다.
엘프족 대마법사인 그도 신수와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숨을 걸고 정령왕을 소환해도 해볼까 말까 한데, 이제는 그 정령왕마저 계약이 깨져버렸지 않은가.
엘프 대마법사이건만, 지구에서는 흔한 각성자 취급이다.
적어도 신의 힘을 나눠 받은 G급 각성자 정도는 되어야 한다.
독수리를 닮은 거대한 비행체 신수.
후아아앙!
김미소의 조화마법에 따라 바람이 세차게 들이치며 녀석의 비행을 방해해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콰자작!
그때 땅 아래에서 비집고 올라온 뾰족한 나무의 창이 그대로 독수리의 몸을 꿰뚫었다.
“고, 고맙소.”
“지구인처럼 말씀하시네요.”
“…….”
위급한 상황에도 가즈라는 적잖이 당황했다.
맞는 말이다.
이 지구는 인간들의 행성이다. 김미소가 자신을 도운 게 아니라, 엘프인 자신이 지구인들을 돕고 있는 게 아닌가?
“크륵!”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축 처진 신수를 제쳐두고, 김미소는 빠르게 군주급 몬스터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보다 한발 더 앞서 움직이는 이도 있었다.
콰드드득!
“여긴 제가 맡을게요. 이모.”
“…….”
박건우가 해맑은 표정으로 리치 하나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훌쩍 뛰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나이만 어릴 뿐, 그 가진바 무력은 이미 길드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박건우다.
김미소는 조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이모…….”
전장을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
수호 길드로 복귀한 김미소에게는 꽤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아직 안 오셔다고요?”
“후,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형님은 대체 어디 가신 겁니까?”
“먼저 지구로 가셨죠.”
“왜 같이 안 오셨습니까?”
“그야 공간 이동으로…….”
김미소가 말을 하다 말고 미간을 찌푸리자 박준호가 물었다.
“포탈 말고 행성 간 이동할 방법이 있습니까?”
김미소의 표정이 굳었다.
언젠가부터 박수호가 하는 말은 토를 달지 않고 그냥 곧이곧대로 믿은 것 같았다.
의문 자체를 품지 않았다.
신이었으니까.
“……사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지만, 상대가 속이려 했다면 함정에 빠진 걸 수도 있겠네요.”
“허, 형님은 대체 어딜 가서…….”
박준호의 얼굴은 그간 10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다.
수호 길드의 부길드장이라는 직함은 과중한 업무보다는 정신적인 압박이 더 큰 자리다.
세계의 운명이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으니 그럴 수밖에.
신급 군주가 문젠데, 그들은 오직 G등급 각성자만이 처리할 수 있다.
가용한 자원은 한계가 있는데 그보다 더 많은 도시에서 지원 요청을 하면 어찌할 것인가?
지원 나가지 못한 도시는 말 그대로 멸망이고, 시기적절하게 도착하지 못해도 이미 많은 피해를 입을 터였다.
수백, 아니 수천 수만이 자신의 판단하에 죽는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니, 비범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종류의 압박감이다.
“우선.”
김미소는 지금 박수호가 어디로 갔는지를 찾을 때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제가 조율하죠.”
“그래 주시겠습니까?”
박준호의 얼굴이 확 펴졌다.
실제 그가 웃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담감 그 하나의 감정이 지워진 것만으로도 그는 압박감에서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현장 나가는 게 낫지, 진짜 못할 짓입니다.”
김미소는 아예 울먹일 기세의 그를 보내버렸다. 괜한 잡생각에 스스로의 선택을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것보다는 몸을 무리하게 굴리는 게 낫다.
“영국으로 가세요. 웨일스에 두 마리 처리 가능하죠?”
“물론이죠!”
박준호가 긴급히 떠났고, 곧 그녀가 자신의 가슴어림에 오는 소년을 보았다.
“건우야.”
건우는 이름만 불려도 김미소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저 다 컸어요.”
수호 길드의 삼촌 이모들은 자신을 너무 어리게 본다.
박건우는 당진철의 수제자이자, 수호로부터 신의 힘을 나눠 받은 G등급 각성자다.
전투력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다. 아니, 무공이 더해져 외려 앞서는 부분도 있다.
“그래. 마닐라로 가줄래? 준비팀 대기 중이니까 같이 가면 될 거야.”
“네, 이모.”
“…….”
빠르게 사라지는 소년을 보며 김미소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벽면 한쪽을 전부 차지하는 커다란 화면엔 세계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각지에서 발생한 8성 던전과 브레이크가 임박한 8성 던전, 그리고 이미 브레이크로 인해 날뛰고 있는 신수의 위치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적색 가득한 그 경보 중에 그나마 점점이 초록색과 함께 간략한 프로필이 띄워져 있는 것은 수호 길드에서 파견 나간 G등급 각성자들.
이렇게 지도로 보니 세계 곧곧이 전쟁터다.
이제 몇 남지도 않은 도시다.
김미소는 지도에 무수히 많은 노란색 표시의 도시들을 보았다.
긴급한 지원 요청을 표한 도시들.
“길드는 신수 처리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신수 사냥 후, 나머지 전장 정리는 각 도시에 일임합니다.”
애초에 각각 도시정부가 있는 자치도시다. 수호 길드가 이렇게 나서서 신수만 정리해 줘도 숨통이 트인다.
도시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그 이상의 지원을 바라는 건 그들의 욕심이다.
김미소가 벌떡 일어섰다.
“자, 주목.”
컨트롤타워의 백여 명의 직원들이 전부 고개를 돌렸다.
“불가피한 희생은 눈감습니다.”
“…….”
뚜루루루루.
여기저기 느껴지는 전화 소리만 요란하지,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길드는 최대한 빠른 신수 사냥 후, 곧장 다음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최적의 동선을 짜세요.”
김미소는 대꾸 없는 직원들을 보며 한곳에 시선을 맞췄다.
“운용팀장?”
“네, 넵! 알겠습니다.”
“직속도시 담당 누가 있죠?”
“전영수 차장과 박순필 소장님이 남아있습니다.”
“둘 모두 파견 갑니다. 한반도연맹 직속도시는 저와 길드 내 신수들이 지킵니다.”
두 명의 G급 각성자가 더 나가면 그만큼 더 많은 도시를 구할 수 있다.
“넵!”
“우린 구원자가 아닙니다.”
“…….”
“저길 보세요.”
김미소가 여전히 붉은 점들이 무수히 많은 지도를 가리켰다. 지금 이 순간에도 8성 던전이 3개가 더 생겨났다.
인류가 발견하고, 보고하지 못한 곳을 생각하면 그보다 열 배는 더 많아졌으리라.
“누가 누굴 구할 때가 아닙니다.”
“…….”
“누굴 구할지 말지 결정할 정도로 오만한 힘이 없습니다.”
“…….”
“지금 길드는 비상 전시상황입니다.”
김미소는 간절히 바랐다.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무사히 살아남읍시다.”
이대로는 그들이, 인류가 지쳐 멸망의 길을 걸을 터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어서 돌아오세요.
어디 계세요.
*
“기운 빠지네.”
수호는 용을 써 봤지만,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색을 빨아들이듯 무채색뿐인 이 정지된 세상에서 홀로 움직이는 수호다.
그가 힘써봐야 할 수 있는 건 고작 돌멩이를 옮기거나 나무를 쓰러트리거나, 잠깐 그의 신체에 닿은 물이 움직이는 정도다.
정지된 공간에 물건이 움직인다.
그 변화가 시간의 흐름을 증명한다.
수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다.
이 정지된 공간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정도.
휘리리릭.
“변신은 되고.”
수호의 신형이 갈색의 매로 변해 하늘로 솟구쳤다.
“조화마법도 쓸 수야 있다만…….”
이 무채색의 행성엔 조화력이 없다.
달리 말하면 생명의 힘과 같은 그것이 없는 이 행성은 죽어있다.
주변에 끌어다 쓸 조화력이 없으니, 수호가 쓸 수 있는 건 그의 몸 안에 충실히 차 있는 조화력뿐이다.
아무리 많은 조화력을 가지고 있다곤하지만 한정된 힘이다. 다시 보충하는 게 어려우니 막 꺼내 쓸 수가 없다.
“지구랑 대륙 모양도 다르고.”
수호는 하늘로 올라온 김에 높이, 더 높이 솟구쳐 행성을 보았다.
가까이서 봐도 암울하지만 멀리서 조망한 행성은 죽음 그 자체였다.
아무런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이 행성은 꺼림칙하기 그지없다.
“어?”
그런 수호의 눈에 작은 점이 보였다.
그것은 적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 작은 색이지만 이 무채색 공간에 더없이 밝게 빛나는 곳이었다.
쐐애애액.
수호가 내리꽂히듯 하강했다.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광경에 수호의 눈에 희망이 차올랐다.
휘릭.
바닥에 닿기 전 매가 사람으로 변하고.
타닥.
초록색의 풀들이 자란 황토색 땅에 착지했다.
“허어.”
반경 서너 걸음 정도.
하지만, 처음 마주한 허무의 행성에서의 생동감 넘치는 색에 수호는 저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