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9)
10화 레벨업
퍼억!
“이걸로 100이다.”
수호는 고블린 시체를 뒤져 혈석까지 채집하고는 자리를 깔고 앉았다.
“어떤 놈으로 사줄까?”
최구식이 구사하던 속박 같은 것도 있으리라.
“업적상점.”
– 소모품
– 장비
– 스킬
스킬란을 찾아 들어가 100포인트로 살 수 있는 스킬들을 쭉 살폈다.
“포인트만 있다고 다 살 수 있는 건 아니네.”
100포인트로는 최하의 아주 기본이 되는 스킬만 살 수 있는데, 스킬마다 요구 스탯이 달랐다.
근력이나 민첩, 체력 따위를 요구하는 질주, 강인함, 추적, 탐색 따위의 스킬들은 배움에 제약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문제는 친화, 지배, 신앙, 야성 따위의 특수스탯이다.
직업이 정해지며 특수스탯도 정해지는 모양인데, 수호의 직업은 어떤 영문인지 드루이드로 정해졌다.
레벨 : 1
이름 : 박수호
클래스 : 드루이드
업적 : 102
근력 120 민첩 110 체력 135지능 90 회복 89 치유 75
조화 8 야성 21
상태창에 나타나는 특수 스탯은 야성, 조화.
현재 배울 수 있는 100p짜리 클래스 스킬은 두 가지.
– 100p
드루이드(야성), 조련사(친밀) 10이상
– 100p
드루이드(조화), 정령사(친화) 10이상조화 스탯은 아직 10이 되지 않으니, 배울 수 있는 건 야수 길들이기뿐이다.
파팟.
구입과 동시에 100포인트가 사라지고 야수 길들이기 방법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강한 힘을 보여 야수들을 따르게 하십시오.
야수마다 필요 야성 수치가 다릅니다. 총 야성 수치를 넘어서면 종종 야수들이 통제력을 잃습니다.
마치 읽지 않은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강제로 들어오는 느낌.
신기하긴 한데,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막상 시험해볼 덴 없네.”
길들이는 방법을 알았는데 대상이 없다. 이 던전의 몬스터라곤 고블린과 고블린 전사, 주술사가 전부다.
업적상점(Lv 1)
야수 길들이기(Lv 1)
하나가 더 추가된 스킬을 보며 수호가 씩 웃었다.
“이러면 나도 초능력이 두 개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숲을 봤다. 아직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많다. 그리고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리는 진득한 살기.
“저놈이 포식자겠군.”
작은 숲으로 이루어진 던전.
이곳의 왕이 내뿜는 살기이리라.
수호가 놈을 향해 가려는데, 몬스터와는 조금 이질적인 기운이 접근하고 있었다.
“헉, 헉.”
“도움 필요 없다는데 왜 따라와?”
“허윽, 헉. 정말 대단하십니다.”
잔뜩 숨이 찬 재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숨 돌릴 시간을 주었다.
상점에서 남은 포인트로 물을 한 병 구매했다.
파팟.
손짓 몇 번에 허공에서 생겨난 물병을 움켜쥐는 수호를 보며 장재식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물의 정령사?
아니다, 물병이 설명이 안 된다.
“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 어떻게 해. 스킬이지.”
수호가 건네주는 물병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한 물이다.
“설마 이게 각성 스킬입니까?”
“어, 맞아. 구현계라던데.”
“허…….”
물을 만들어내는 각성자라니.
각성스킬은 본래 그 사람의 삶이나 특질과 굉장히 큰 연관이 있었다.
운전을 좋아하고 직업으로 삼던 사람이 라이더스킬을 각성하고, 양궁선수가 궁술 같은 스킬을 각성하는 식이다.
각성 전에 생수 판매라도 했던 사람인가?
“저…….”
“뭐?”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각성초능력이 생수 구현인데, 대체 이 강함은 뭐지?
각성자는 몸 안에 누적된 차원에너지의 양이 전투력을 비교하는 중요 표본이 된다.
개인의 전투감각과 스킬의 상성 유무로 막상 대인 결투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강함의 척도는 역시 각성등급이다.
수호의 모습은 분명 비정상적이었다. 각성등급을 초월한 강함.
마치 홀로 무공이라도 배운 듯하다.
“열심히 단련하면 돼.”
“역시…….”
장재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앞의 남자는 분명 무술고수임이 분명하다. 대격변 이전엔 어디 지리산에서 수련하던 무술인 같은 거였을까?
“아 맞다. 던전 클리어는 어떻게 하지?”
“으음.”
장재식이 볼을 긁적였다.
대단해 보이다가도 또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걸 보면 허술해 보이기도 하고.
정말 어디 산에 박혀서 막 하산한 사람처럼 제반 지식이 부족한 사람 같았다.
“던전 보스를 죽이면 포탈이 생깁니다.”
“그럼 마지막에 잡아야겠네. 이따 보자.”
아직 잔챙이들이 많다.
이게 다 업적 포인트인데 포기할 수 없다.
수호가 다시 엄청난 스피드로 숲 너머로 사라졌고, 홀로 남은 재식은 머리를 긁적였다.
레벨 1 던전이라도 자신과 같은 E급 용병에게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던전이건만, 수호는 소풍이라도 나온 듯 여유롭다.
꾸에엑!
고블린들의 괴성이 숲을 메아리 쳤다.
*
“어?”
업적포인트 모으는 재미에 차근차근 사냥하고 있는데 이런 게 떠버렸다.
“거참.”
낙오 시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게임 속 세상에 접속해버린 건 아닌가 하는 망상.
지금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면 그건 진짜 망상이었나 보다. 지구로 돌아오니 더 게임 같다.
“레벨 업이라.”
변화를 알아보는 방법은 쉽다.
“상태창.”
레벨 : 2
이름 : 박수호
클래스 : 드루이드
업적 : 127
근력 135 민첩 127 체력 151지능 99 회복 90 치유 88
조화 17 야성 44
업적상점(Lv 1)
야수 길들이기(Lv 1)
“스탯이 늘었네.”
어떤 것은 많이 오르고, 또 어떤 것은 적게 올랐는데 회복 스탯은 겨우 1만 상승했다.
상태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 생각하던 수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설 하나를 떠올렸다.
데이터의 충돌, 지구로 돌아오고 난뒤 지나치게 약해져 버린 몸.
분명 부조화스러웠다.
‘레벨 업 하다 보면 본래의 단련된 몸을 되찾지 않을까?’
숲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강인한 몸으로 말이다.
“언젠간 알겠지.”
업적상점을 열어 전에 사지 못한 나무정령 소환을 구입했다.
나무정령을 소환합니다.
스킬레벨이 높을수록 더 많은 나무정령을 소환합니다. 조화력은 소환시간에 영향을 미칩니다.
“나무정령 소환.”
팟!
수호의 손끝에 초록색 빛무리가 모였다. 반딧불처럼 작은 빛이었다.
“너구나.”
저쪽 차원에서 꽤 흔하게 봤던 녀석이다. 초자연적인 반딧불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걸 나무정령으로 부르는구나.
신기하긴 한데 그다지 쓸모있어 보이진 않았다.
“가능한 게 하나 있긴 하네.”
스킬을 구입하면 머릿속에 그에 대한 정보가 화인처럼 찍힌다.
수호는 나무정령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고블린을 찾아봐.”
나무정령이 풀씨처럼 둥실 떠올라 주변을 유영하다가 나무와 풀들의 기억을 읽는다.
발걸음, 이동방향, 소리……. 단편적 정보들이 수호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잘했어.”
수호의 칭찬에 나무정령이 기분 좋은지 불빛을 깜빡였다.
다시 사냥을 재개한 수호는, 업적 포인트가 100이 될 때마다 스킬을 하나씩 구매했다.
사물이나 지형을 살핍니다.
숨겨진 기척을 발견할 확률이 높습니다.
아주 작은 흔적에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두 스킬은 던전 탐사에 유용하면서도 스킬북 가격도 그나마 싼 편이라, 용병이라면 거의 필수적으로 배운다고 했다.
스킬북이 3천만 원 정도 한다고 했으니, 업적포인트 200으로 6천만 원가량을 아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하나 남았네.”
아쉽지만 더 이상 몬스터가 없었다.
던전보스를 의도적으로 피해 다니며 사냥했기에 녀석은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진득한 살기와 존재감을 풍기는 녀석을 향해 접근했다.
“응?”
수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던전보스는 고블린 족장이었는데, 키가 거의 사람만 했고 무기도 제법 잘 벼려진 단검과 방패를 사용하고 있었다.
수호는 그것과 싸우고 있는 재식을 향해 물었다.
“너 뭐하냐?”
“크윽, 오셨습니까?”
채앵, 챙!
재식은 고블린 족장의 공격을 피해내기 급급했다.
“사냥감 안 건드린다고 했잖아.”
수호의 말투가 절로 삐딱해졌다.
“큭, 사냥이 아니라 사냥당하고 있는 겁니다. 얼른 좀 도와주십시오.”
재식의 음성은 다급함이 가득했다.
번개같이 숲을 누비며 사냥하는 수호를 쫓아가기엔 무리고, 그냥 주변을 배회하며 기다리는데 고블린 족장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이놈은 E급 용병 둘 정도는 합공해야 쉽게 처치할 수준이다. 애초에 재식 혼자서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 그런 거였어?”
오해가 풀린 수호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고블린 족장과 대치했다.
“크으!”
고블린 족장도 수호가 풍기는 존재감을 느꼈는지, 재식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잔뜩 경계심을 품고 대비했다.
부하들을 해치운 수호를 노려보며 살기를 집중했다.
“새끼. 노려보기는.”
“키에에!”
수호의 도발에 고블린 족장이 포효하며 용기를 북돋웠다.
“뭐 임마.”
“크오!”
녀석이 뾰족한 단검을 찔러왔으나, 손목을 낚아챈 수호가 녀석의 신형을 그대로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쾅!
“크으으”
나름 던전보스라고 한 번에 죽진 않았지만, 머리의 충격이 상당한지 눈자위가 까뒤집어져 있었다.
녀석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은 수호가 손목 스냅을 까딱하자 목이 돌아가며 숨을 거뒀다.
이건 뭐. 보물 고블린 급이구나.
어느새 다시 쌓인 업적 포인트를 보고 흡족하게 웃으며, 죽는 순간까지 꼭 쥐고 있는 녀석의 단검을 빼앗았다.
아낌없이 주는 녀석이구나.
수호가 혹시 몰라 물었다.
“이거 포탈 통과 되는 거지?”
“…….”
대답이 없어 돌아보니 입을 쩍 벌린 재식과 눈이 마주쳤다.
“안 들리냐?”
“네? 네, 넵! 통과됩니다.”
수호가 단검을 몇 번 휘둘러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블린 족장의 시체를 보고 탐색스킬을 시전하자 심장께에 붉게 빛나는 점이 보인다.
푸욱.
심장을 갈라 혈석을 끄집어내는 수호를 보며 재식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
파팟.
포탈이 다시 활성화되며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수호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가 가득했고, 재식은 충격적인 걸 본 듯 얼이 나간 얼굴이다.
“고맙다. 덕분에 던전도 구경하고.”
“아, 아닙니다.”
본래 용병면허 없이 입장 자체가 불가능한 던전이지만, 재식 덕분에 편법으로 던전의 맛을 봤다.
필드에서 이만한 업적 포인트를 모으려면 며칠을 고생했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근데 내 옷은?”
수호가 포탈 주변을 살폈으나, 본래 입고 있던 청바지는 없었다.
“물품 보관실에 있을 겁니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물품 보관실에 들어가 맡겨놓은 휴대폰과 통과하지 못한 청바지와 셔츠를 찾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연락처 받을 수 있겠습니까?”
“보답은 이제 충분해. 더 마음 쓰지 마.”
“아닙니다. 그저 친하게 지내고 싶을 뿐입니다. 저녁에 서울로 돌아가면 제가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런 거라면 좋지. 근데 오늘은 선약이 있어.”
“편하실 때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각성 등급을 초월한 수호의 무력을 직접 두 눈으로 봤기에, 어떻게든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다행히 이 말도 안 되는 무력의 소유자는 인간관계에 그리 까탈스럽지 않은 모양.
둘은 연락처를 교환하고 후일을 기약했다.
재식의 동료들은 위급한 건 넘겼다지만 조금 더 안정을 가진 뒤 클랜에서 차를 보내오면 서울로 복귀할 거라고 했다.
“그래, 다음에 보자.”
“네, 형님. 살펴 가십시오.”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수호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된 재식의 태도는 더욱 깍듯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