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벌써 일주일 째. 흑마법사는 마치 어린아이가 개미에게 장난을 치듯이 몬스터 부대를 보내고 있다.
개미집에 물 한 바가지를 부어도 멀쩡하다면, 다음에는 두 바가지를 붓는다. 그래도 개미무리가 남아있으면 물 세 바가지를 붓는다. 흑마법사가 하는 꼴이 딱 그 짝이었다.
흑마법사는 이틀에 한 번씩 몬스터 부대를 수만씩 보냈다. 부대는 적게는 다섯 무리, 많게는 열 무리로 쪼개져서 2차 몬스터 전선 곳곳을 타격한다. 보내는 숫자는 매번 수천씩 늘어난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다섯 번째 몬스터 무리는 덴트로스 해안가를 침략한 그것보다 두 배는 늘어난 어마어마한 수를 자랑했다.
다행히 2차 몬스터 전선의 길이가 길어서 다섯 번의 습격 중 세 번 이상 몬스터와 싸운 곳은 없다. 하지만 웨일 등의 고수진은 사정이 달랐다.
익스퍼트 한 명이 빠지면 사상자 수가 단위가 달라지니,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그들은 매일같이 비행선을 타고 각 지역을 순회하며 몬스터와 싸우느라 체력 소모, 흑마법사의 등장을 경계하느라 정신력 소모를 만만치 않게 했다.
파김치에 파가 아니라 인간을 절이면 이렇게 될까. 서른도 안 되는 익스퍼트는 하루 걸러서 수만의 몬스터 무리와 싸우는 탓에 다크 서클이 얼굴에 짖게 내려앉았다.
그나마 발라리안 티핑의 성력 덕에 내상을 입지 않았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익스퍼트의 절반 정도가 반병신이 되어 전투에 이탈했을 터이다.
르암인보다 강건한 이종족이라도 전투 지옥은 버틸 수가 없다! 소드 마스터도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곯아 떨어지는 미친 피로 속에서 쌩쌩하게 움직이는 단 한 명, 웨일의 명성은 매일같이 높아져만 갔다.
오늘의 싸움도 그렇다. 웨일은 그 누구보다도 멀리 나가서 다섯 번째 몬스터 무리를 맞이했고, 흑마법사 경계와 외곽 지역에서의 전투를 동시에 이루며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후욱!”
아이시컬 크림이 냉기를 내뱉었다. 싸늘한 북쪽의 추위에도 적응한 몬스터가 그녀의 냉기를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 몸을 움찔 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웨일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크악!”
짐승 같은 괴성과 함께 검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오러, 마하결! 한계치를 넘어서서 압축된 오러가 분출구로 쏘아지자 백색의 선이 세상을 가로로 그었다.
반경 수십 미터 내의, 선에 걸린 몬스터의 육체가 날카로운 실에 잘린 것처럼 쩍! 갈라지곤 그대로 힘을 잃고 쓰러졌다. 웨일은 쓰러진 몬스터 사이로 뛰어들어 성난 춤꾼처럼 검무를 추었다.
슈왁!
검무와 함께 희끄무리한 안개가 그의 검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온다.
마하결과 풍검술의 합일! 초승달 형태의 오러 운(雲)이 제비처럼 낮게 날아 몬스터를 스치고 지나간다. 오러 운에 닿은 몬스터는 팔다리, 몸통, 머리 할 것 없이 전신이 뻥뻥! 터져나갔다.
“지금!”
풍검술이 만들어내는 빈 공간을 노즈컬과 풀 니브로, 알코리제가 들어갔다. 각양각색의 오러가 백색 땅을 색칠하고 나면 몬스터의 사지가 잘려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기가 막힌 연계에, 단 한 수에 일백이 넘는 몬스터가 바닥에 몸을 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 중형 몬스터만은 살려놓는다. 그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중형 몬스터에게 뛰어가 무릎, 뱃살, 어깨, 이마를 차례대로 밟으며 위로 뛰어올랐다.
우득!
중형 몬스터는 그가 발을 디딘 부분이 함몰되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팔을 휘두르긴 휘둘렀는데 저항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형 몬스터는 자신의 양팔이 깔끔하게 잘려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머리통이 함몰되어 즉사했다.
웨일은 중형 몬스터의 머리통을 밟고 높게 뛰었다. 상공 수십 미터까지 치솟은 그가 먼 거리를 감시해 흑마법사가 안 보이고, 흑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도 없다! 이 미친놈들이 대체 뭘 노리는 거야?’
이를 부득부득 갈며 2차 몬스터 전선의 상황을 확인한다. 그가 막 성벽으로 시선을 돌린 그 순간.
쿠아앙!
백색의 무언가가 눈밭에 나타나 성벽에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얼음 성벽이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금이 쩍쩍! 갈라진다.
병사들의 공격이 집중되고 용감한 기사가 성벽 밖으로까지 몸을 디밀며 칼을 휘둘렀지만, 대형 몬스터는 거침없이 다음번 돌진을 시도했다.
“뿌오오!”
꽈앙!
얼음 성벽이 두터워도 코끼리도 한방에 치어 죽일 대형 몬스터의 돌진을 버티긴 힘들다. 결국,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몬스터의 돌진이 무너진 성벽으로 집중되었다.
“노즈컬! 나 먼저 성벽으로 돌아간다! 너희는 뒤로 빠져서 천천히 돌아와!”
“알겠습니다!”
한창 밖에서 싸우던 웨일이 투덜거리며 무너진 성벽으로 급하게 돌아왔다. 그가 성벽을 무너뜨린 몬스터를 보다가 기가 찼는지 침을 뱉었다.
“퉷! 저건 또 뭐야? 이젠 살다살다가 마시멜로가 걸어 다니는 걸 다 보네!”
마시멜로 같다는 웨일의 감상은 아주 적절했다.
부드러운 떡과도 같은 티 하나 없는 흰색 살점, 짜리몽땅한 원통형 몸체를 자랑하는 거대 몬스터. 그 기이한 몸통에 코끼리 과의 그것처럼 우람한 네 다리가 달려있다.
괴상한 몬스터는 흰색의 몸뚱어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녀석은 난전이 벌어지는 틈을 타 눈 속에 숨어 있다가, 성벽이 가까워지자 득달같이 일어나 돌진하여 성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저 새끼는 또 뭐야?”
“쿠용 고대…종입니다! 아마도!”
성벽에 다가가서 묻자 70살이 넘는 이종족 기사가 답했다. 웨일은 쿠용을 모르고, 당연히 쿠용 고대종도 모른다. 하지만 기사의 표정을 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잘 알았다.
‘심각하고 뭐고 간에 우선 쿠용 고대종이라는 사지 달린 마시멜로부터!’
웨일이 무너진 성벽 끄트머리에 섰다. 바로 정면에서 쿠용 고대종이라는 녀석이 흰색 정수리를 들이밀며 박치기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웨일은 검을 곧추세우곤 마나를 날카롭게 벼렸다. 검극을 타고 올라온 마나가 쾌(快), 중(重), 환(幻) 세 개의 요결을 일으키더니 날 끝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으지직!
신랄하게 날아드는 묵직한 오러가 공간의 틈을 파고들어서 쿠용 고대종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관자놀이를 지나쳐 뇌 속 깊숙이 도달한 오러가 작게 뻥! 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쿠용 고대종의 백색 안면에서 샛노랗고, 시뻘건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웨일은 착지하여 쿠용 고대종의 몸을 끌고 와 무너진 성벽을 대신해서 막게 했다.
처치를 끝낸 그가 기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얼굴이 장난 아닌데, 쿠용 고대종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야? 그리고 아마도라니.”
“아……!”
기사는 웨일의 질문보다 일격에 쓰러진 쿠용 고대종을 보며 혼이 쏙 빠졌다. 그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도 피부도 베지 못한 단단한 육체를 자랑하던 녀석이었는데, 일검에 피부는 물론이고 근육과 뼈까지 뚫어버리다니!
“정신 차려!”
빡!
웨일이 주먹을 휘둘러 기사의 안면을 때렸다.
“헛?!”
바닥에 나뒹군 기사가 혼란, 공포, 당황을 빠르게 수습하고는 벌떡 일어섰다. 그가 웨일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쿠용 고대종은 중앙 정기사 필기시험에 나오는 고대종 중 하나입니다. 저도 책으로만 봤고, 실제로도 천 년도 전에 멸종했다고 책에 저술되어 있습니다.”
“천년 전? 그럼 이놈은 뭐야.”
“그래서 저도 잘…. 호, 혹시 쿠용 고대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웨일은 다른 정기사를 불러 그들의 증언을 들었다. 다들 긴가민가 하지만, 이와 비슷한 형태, 털색을 지닌 몬스터는 쿠용 고대종 말고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허…! 쿠용 고대종이 맞네. 내 실험실에 박제본이 있으니 확인시켜줄 수도 있네.”
나중에는 회의에 함께한 7결 마법사, 이디티 에이까지 와서 마시멜로가 쿠용 고대종이 맞다고 확인까지 해주었다.
이디티 에이의 발언을 들은 웨일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
이건 말이 안 된다. 설하의 땅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흑마법사가 저리도 많은 양의 몬스터를 빵 찍어내는 것보다도 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벽에 돌아온 노즈컬이 쿠용 고대종을 보고는 경악했다.
“웨일 님? 이건……?”
“따라와. 노즈컬. 조사를 해야겠어. 제반스 페이만에게 가자.”
* * *
설하의 땅은 현시점의 이종족 연합지역도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지역이다. 일단 행정구역상으로는 이종족 연합지역의 것이라고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아니다.
중앙이 괜히 흑마법사 토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2차 몬스터 전선을 유지하는 게 아니다. 딱 2차 몬스터 전선까지가 ‘돈과 마법의 힘으로 대량의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점’ 이었다.
그 이상 북으로 올라가면 영하 50도 이하의 추위, 비행선도 함부로 운용할 수 없는 강한 바람, 그리고 년중 300일 이상이 눈이 펑펑 내리는 극한의 환경이 방문자를 반긴다.
그곳에선 몬스터도 살 수 없다. 있는 것이라곤 극소수의 마수과 짐승, 냉기의 정령 뿐.
때문에 중앙은 몇 개월 버티다 보면 흑마법사도 알아서 말라죽을 것으로 예측했다. 굳이 무모하게 토벌을 나가 봤자 수만의 병력을 눈밭에 버리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소수의 익스퍼트를 보낸다면? 그것도 답이 아니다. 아무리 익스퍼트가 뛰어나도 수천, 수만의 몬스터에게 포위되면 남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즉, 굳이 북상하는 것보다 버티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일주일에 걸친 대규모 몬스터의 습격과 쿠용 고대종을 비롯하여 천년 전의, 책에서만 보면 멸종된 개체가 마구 튀어나오는 현 상황은 중앙도 결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까지 밀어붙였다.
북부, 설하의 땅 너머에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전설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사령부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자료가 워낙 적습니다.”
설하의 땅은 워낙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이라서 역사서에도 적혀있지 않은 내용이 많다. 승천자와 관련된 전설이 없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있기는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흑마법사의 기이한 몬스터 생산 능력이 말이 되지 않았다.
“1,000년 전의, 3시대 이야기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파견해 현지인에게도 정보를 찾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을 한 지 나흘 째.
제반스 페이만이 사령부로 한 명의 비쩍 마른 노인네를 데려왔다. 700살이 넘은 은퇴한 사냥꾼, 로슈갈이었다.
북방의 끊어진 혈통을 이은 로슈갈은 어렸을 적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알테어의 비기가 풀리지 않은 힘든 세상에서 몬스터와 싸웠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은 얼마 안 되는 인물이었다.
로슈갈은 엄중한 보호를 받고, 따뜻한 차와 푹신한 이불에 감싸여서 제반스 페이만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늙은 사냥꾼, 로슈갈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힘들게 말했다.
“그때는… 영혼 보내기라는 게 있었어.”
“영혼 보내기요? 그게 뭡니까?”
“으음……. 나도 할아버지한테 들은 건데, 매년 봄, 가을마다 몬스터가 대량발생하는 시기가 있었다 하드라고. 지금도 그런가?”
“아, 예. 비슷합니다.”
“그래서 영혼 보내기가…….”
“예. 어르신.”
“아, 맞다. 그 전에 알테어가아아…….”
“예. 말씀하시죠.”
“알테어가… 뭐였지?”
“…….”
밖에서 지켜보던 트라칸이 티안에게 속삭였다.
“저 노인네 노망든 것 같은데?”
“설원족의 평균 수명은 500살이니, 노망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긴 하지.”
“…정말로 괜찮겠어?”
“북방에서 로슈갈 어르신보다 오래 산 이는 아무도 없다. 저분에게서 듣지 못하면 아무에게도 듣지 못하는 거야. 참고 기다려라.”
티안의 말에 모두가 팔짱을 낀 채, 창 너머로 이루어지는 로슈갈과 제반스 페이만의 대화를 들었다.
잠시 후 로슈갈이 의외의 단어를 언급했다.
“아힝! 알았다. 알았다알았다알았어. 알테어가 마나 호흡법을 전해줬잖아.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마나 유저 상급에 들어섰잖아?”
로슈갈이 빼빼 마른 팔을 들어 이두박근을 자랑했다. 제반스 페이만은 대충 맞장구를 쳐준 뒤, 능숙하게 다음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로슈갈이 입을 오물거리며 이어 말했다.
“아버지도 젊은 시절엔 그 혜택을 봤지. 근데 할아버지 대에는 그런 게 없었어. 맨몸으로 몬스터를 감당해야 했는데… 이게 여간 빡센 게 아니더라고.”
“힘들었겠습니다. 헌데 그것과 영혼 보내기가…….”
“그 탓에 영혼 보내기라는 관습이 생긴 거래. 매년 한두 번씩 몬스터가 대량발생할 시기가 오면… 발 빠른 젊은이가 수백의 몬스터를 이끌고… 헥헥! 북으로… 북으로 간다네.”
“부, 북으로요?”
“으음. 정면에서 싸우면… 수십 명이 뒈지니까. 한 명만 죽고 끝내자 이거지.”
“그, 그러면 북으로… 북쪽으로 몬스터를 끌고 가서 뭘 하자는…….”
“뭐긴 뭐겠어? 같이 얼어 뒈지자는 거지. 목숨 하나로 끝나니 싼값에 막는 거 아니겠어?”
“아…….”
제반스 페이만이 영혼을 토해내는 것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리고 밖에서 듣고 있던 이들은 드디어 끝없는 몬스터 무리의 정체를 알아내었다.
북방 민족이 수 대에 걸쳐, 북으로 끌고 가서 얼어 죽은 몬스터 무리! 그것이 바로 흑마법사가 다종다양한 몬스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비밀이었다.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오르며 따스한 열기를 실내에 전달했지만, 로슈갈을 제외한 모두의 마음은 만년한설과도 같이 차갑게 식었다.
“…….”
나세르 2세가 창문을 통해 제반스 페이만에게 신호를 보냈다. 입을 가리키며 하는 손짓을 읽은 제반스 페이만이 급하게 잠에 빠지려 하는 로슈갈을 깨웠다.
“어, 어르신! 혹시 언제부터 그 영혼 보내기라는 풍습이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나도 몰라. 내 대에는 이미 끝나서 얘기로만 들었거든.”
“그, 그래도 대강이라도요. 부탁드립니다!”
“어, 어디 보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어…….”
“…….”
“내가 무슨 얘기를 했지?”
제반스 페이만이 급히 손짓하자 치료사와 의료 마법사가 로슈갈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정신을 또렷하게 해주는 마법을 걸어주었다.
로슈갈의 눈에 잠시 총기가 깃들고, 그가 더듬더듬 이어 말했다.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요?”
“………………….”
“어, 어르신?”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진지 헷갈려.”
최소 수백 년이 넘는다. 피스트 마스터 카보머가 안면을 감싸 쥐었다. 제반스 페이만은 영혼 보내기라는 풍습을 따른 민족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 위해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어, 어르… 신? 북방… 민족 대부분이 그 시절 설하의 땅으로 영혼 보내기란 걸 했습니까?”
“뭐라? 설하? 그게 뭐여?”
“저기 저, 북쪽의… 그 차가운…….”
“아하! 거길 설하의 땅이라 부르는 겨? 미안미안. 내가 잘 못 알아들어. 요새 젊은 놈들은 유행이 워낙 빨리 바뀌어서 지명도 지네 맘대로 막 바꾼다니까.”
“…….”
“우리 때는 말이여. 거길 원혼이 잠든 대지라고 불렀어.”
“원혼이 잠든 대지요? 어째서……?”
“들어봐. 이 사람이. 들어 보라니까. 아! 흠흠! 천신이 사라지고~ 인간의 힘으로 사악한 마물과 맞서 싸우네! 설령 힘이 부족해 전사가 스러져도, 어머니가 쓰러져도, 아이가 사라져도~”
침묵 속에서, 로슈갈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퍼졌다.
“우리는 영혼만이 남아도 마물을 죽일 거라네~ 북방의 품에 그들을 안길 거라네~ 원혼만이 남아도 마물을 죽일 거라네~ 북방의 원혼이 천신을 대신하여 마물을 얼려 죽이네~”
노래를 듣자마자 제반스 페이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로슈갈의 입에서 천신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에 주목했다. 그가 벌벌 떨며 일어서서, 작게 말을 내뱉었다.
“사, 3,000년이야. 3,000년 전부터 영혼 보내기라는 것을 했어…….”
3,000년 전부터 1,000년 전까지. 무려 20세기에 걸쳐! 북방 민족은 매년 수백,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북으로 끌고 가서 함께 동사했다.
“겨울이 오고, 전사는 죽고죽고죽고죽고, 아이는 태어나고태어나고태어나고태어나고. 우리는 그 순환을 함께하며… 음냐… 쿨…….”
로슈갈이 잠들고 노래가 멎었다. 숨소리도 멎었다.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