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 * *
쿵! 탕! 쿠당!
“지하 3층을 개방해! 선조님의 마법 무구를 모조리 꺼내 와라!”
도착한 로이안 가문의 저택은 스무 명 남짓 한 사람들이 바쁘게 오다니는 풍경이 오갔다.
저택 앞에선 칼 좀 휘둘렀음이 분명한, 일백 명이 넘는 건장한 청년들이 차례차례 먼지가 묻은 마법 무구를 받고, 로이안 가문의 마법사들이 그들에게 마법 무구의 작동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로샤 양?”
쟈기가 저게 무슨 풍경인지 로이안 그로샤에게 물었다. 로이안 그로샤가 저택에서 꺼내지는 마법 무구를 바라보며 답했다.
“지금과 같은 때를 대비해서 선조 로이안 님을 비롯한 가문의 최고 마법사, 역대 가주님들이 꾸준히 만들어놓으신 마법 무구입니다.”
“아하. 그것들로 자치대원과 3대 가문 병력을 무장시키는 거군.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사람들의 수가 적은데?”
“알보이오 가문도 저희와 똑같이, 대에 걸쳐 마법 무구를 제작했죠. 그리고 그들의 마법 무구 제작 능력은 로이안 가문보다 뛰어난지라… 아마 그쪽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렸을 겁니다.”
금속이 귀한 섬 특성상, 대부분의 마법 무구는 몬스터의 뼈로 만들어졌다. 그 탓에 내구성이 그다지… 툭 까놓고 말해서 일회용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긴급 상황이 아닌 이상 창고에 고이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쟈기는 섬사람들의 자원 현황과 마법 무구의 수준을 파악하며 로이안 성을 향해 걸어갔다.
뮤온 보트라가 물었다.
“나쁘지 않은 수준이군. 두 가문을 합치면 몇 명 정도가 무장할 수 있지?”
“아마 3~400정도가 아닐지…….”
‘삼사백. 섬이라는 환경을 고려하면 훌륭하지만, 시기가 고약하군. 한참은 부족해.’
뮤온 보트라는 암담한 미래가 떠올랐지만, 표정만큼은 듬직한 절세검사의 그것을 내비쳤다.
괜히 이들에게 절망을 줄 필요가 없고, 무구의 작동법을 설명하던 로이안 가문의 마법사들이 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 쟈기 자작님! 뮤온 보트라 님! 잘 오셨습니다! 가주님은 실험실에서 마법진을 파악하는 중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가문의 마법사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간다.
로이안 가문의 가주, 로이안 바티누스는 실험실에서 넓은 가죽을 바닥에 펼쳐놓고 마법진의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가로세로 10미터가 넘는, 일체형 상어 가죽. 대륙에서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고급진 색감을 자랑하는 그것에는 눈이 어지러울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대륙에서도 보기 힘든 커다란 마력석이 박혀 있었다.
로이안 바티누스가 가죽이 상한 곳이 없는지, 마법진의 기동엔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다가 들이닥친 일행을 보고는 얼굴을 환히 빛냈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이제는 대놓고 쟈기를 스승이라 부르는 양심도 없는 중년 노인네였다. 쟈기는 그의 스승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널찍한 상어 가죽에 그려진 마법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7결 수준이군. 로이안… 그러니까 그 선조님이라는 분이 제작한 마법진인가?”
“그렇습니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놀라워. 1시부터 12시까지. 총 12개의 마법이 이 하나의 마법진에 담겼어. 도망칠 곳이 없는 섬 특성을 알곤 도주보단 방어와 공격, 회피까지 아주 충실하게 다 때려 박았어. 마나석이 아니라 마력석인 것만 아쉽군.”
“그것도 보자마자!? 선조님은 이것을 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대결계 생성으로 돌아가신지라 저희도 몇 개만 분석할 수 있었는데… 역시 스승님! 이것은 스승님께 맡기겠습니다!”
쟈기가 한 반말도 개의치 않고 넘기는 로이안 바티누스였다. 마법사는 경지와 지식이 전부. 나이 따위는 장식이라는 말을 충실히 따르는 딸랑이였다.
뮤온 보트라는 이대로 가면 마법사 특유의,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담이 펼쳐질 것을 알기에 둘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로이안 바티누스, 태도를 보아하니 싸울 거로 보이는데 비전투원의 대피는 어떻게 할 건가.”
“산 동굴에 피난처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석재나 흙 등의 자원을 얻기 위해 파 놓았던 동굴. 현재는 지금처럼 몬스터의 대규모 침략을 대비해서 피난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곳으로 사람들을 몰아넣고 입구를 거대한 돌덩어리로 막은 채, 몬스터가 난리를 치는 이번 하룻밤만 시간을 보내면 되는 일이다.
뮤온 보트라가 로이안 바티누스가 준비한 가문의 결전병기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굳이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전부 그곳에 숨어서 하룻밤만 버티면…….”
“아뇨.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섬사람들의 인구수는 십만을 넘는다. 과거라면 몰라도 인구수가 급격히 폭증한 현재, 동굴은 십만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이가 되지 못한다.
뭐, 천년만년 거기서 살 것도 아니고 하루만 참으면 되는 일. 옷장에 옷 구겨 넣듯이 차곡차곡 겹쳐서 넣으면 십만 명이 다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산소부족으로 죽습니다.”
동굴 최심부에는 지에조 가문의 선조, 지에조가 최초로 방향을 틀은 지하수가 있었다. 그 지하수가 흐르는 통로를 통해 공기가 공급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십만 명 초과는 오바다.
“물론, 지금 사람들도 아슬아슬합니다. 해서, 동굴 곳곳에 く 자로 구멍을 파고 마법사들을 몇 명 파견하여 공기를 집어넣을 계획입니다만, 그래도 십만 명은 불가능합니다.”
뮤온 보트라가 쟈기를 바라보았다. 쟈기는 과거, 남쪽 대륙에서 화산폭발에 휘말려 절벽 틈새로 숨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바티누스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지 계산했다.
짧은 계산을 마친 그가 고개를 저었다.
“힘듭니다. 마법사의 경지가 뛰어나고 말고가 아니라 산소 공급원 자체가 중요한 일이에요. 억지로 사람들을 넣으면 공기구멍으로 출입하는 공기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질 겁니다. 그러면 몬스터한테 들켜서… 결국 끝이죠.”
“알겠다. 남은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되고, 그들은 어디로 보낼 건가.”
“2만 5천 정도를 산 정상으로 보내… 고지전을 치를 계획입니다!”
다수의 비전투원은 동굴로. 소수의 전투원과 돌팔매질이라도 할 수 있는 성인들은 산 정상으로 가서 고지전을 치루는 것이 3대 가문의 결정이었다.
일주일, 한 달 단위로 극한 상황에 처하라는 게 아니라 하룻밤만 막으면 되는 일이다. 충분히 가능성은 보인다. 라며, 로이안 바티누스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도 말은 자신만만했지만,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뮤온 보트라가 자기를 믿으라는 듯이 칼을 뽑았다. 그가 바티누스를 안심시키며 마지막 불안요소를 물었다.
“다 좋은데, 2만 5천 명이 있을 자리가 산 정상에 있나?”
“챠르 섬 400년 역사를 얕보지 마십시오.”
첫날에는 엉뚱한 일 때문에 산 중턱만 가고 내려왔지만, 산 정상은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지어져 있었다.
400년 이상 되는 챠르 섬의 역사.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몬스터를 막아 내기 위한 대처는 섬 이곳저곳을 마법으로 개량하기에 이르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두 포인트가 대피처인 동굴과 산 정상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길이 없을 때를 위한 최후의 전투기지가 산 정상이었다. 400여 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능선을 높이 4미터가 넘는 목재 외벽으로 두르고, 지하도 3층까지 팠다.
지하는 숙소와 치료실, 장기보관이 가능한 음식과 식수가 저장되어 있다. 침대나 여러 가구를 모조리 치우고 꾸역꾸역 욱여넣으면 2만 5천명 정도는 충분히 다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공간이 부족해서 서 있어야 하지만 어차피 하룻밤만 참고 버티면 된다. 외부에서 싸우는 이들 중에 부상자가 발생하면 펄펄한 젊은이를 꺼내 바로 교체할 수도 있으니 나쁜 일은 아니다.
탄탄한 대비를 들은 쟈기가 안심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말을 했다.
“이럴 거면 그놈들을 괜히 보냈군요.”
“누구를 말이십니까?” 로이안 바티누스가 물었다.
“선원들. 어차피 저희 따라서 산 정상으로 올 게 뻔한데, 괜히 두 번 일 시킨 것 같네.”
선장을 비롯한 특사에 포함된 선원들은 이종족 연합지대의 이종족이거나 게리소님에 소속된 이들. 무력으로 치면 섬사람 중 상위권에 드는 이들이니 산 정상에 갈 것이 뻔하리라.
사정을 들은 바티누스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 열외자가 있을까 소수의 실력자가 마을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선원들을 안내해줄 겁니다.”
“음. 르데앙하고 험클리는?”
“그분들은 둘로 나뉘어서 한 분은 동굴로, 한 분은 산 정상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다 도착하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겠군요.”
와아아!
바티누스의 말이 막 끝났을 무렵, 성 밖에서 전투원의 함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지 창가로 다가가 확인하자, 마법 무구의 분배를 끝내고, 소리를 지르며 마음을 다잡는 것 같았다.
이제 거의 주황빛으로 물든 태양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들을 비춰주었다. 쟈기가 슬쩍 웃으며 밑에 깔린, 마법진이 새겨진 상어 가죽을 들어 올렸다.
“대강 해석이 끝났어. 여기도 준비가 다 된 것 같으니 올라가자고.”
* * *
산 정상에 지어진, 목재로 이루어진 요새.
끼이익-! 쾅!
동굴로 사람들을 안내했던 르데앙이 몇몇 낙오자를 데려오는 걸 마지막으로 나무문이 굳게 닫혔다. 2만 5천여 명은 지하 3층 건물에 꽉꽉 들어찼고, 소수의 전투원이 기지를 활보하며 전투를 준비한다.
경비대원, 3대 가문의 병력, 전문 전투원까지 약 500여 명. 그리고 칼밥 먹은 선원들이나 무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 500명.
마지막으로 돌팔매질이라도 할 건장한 청년, 여인들과 물자를 나를 사람까지 더해서 총 2,000명을 조금 넘는 수의 이들.
그들이 긴장된 눈으로 목책 위로 올라서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한쪽은 짙은 푸름이 내려앉았고, 반대쪽은 꼬랑지만 겨우 남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집어삼켜 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게 완전히 사라지면 몬스터가 몰려온다. 그리고 그들은 섬으로 밀려온 몬스터와 밤새도록 싸울 것이다.
‘그래도 생각만큼 나쁘지 않아. 정말로, 나쁘지 않아.’
쟈기는 섬사람들의 평균 무력을 계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수가 적다는 단점만 빼면, 챠르 섬은 아주 훌륭한 전투민족이었다. 첫날, 그에게 혼났던 호테가 겨우 스물세 살에 마나 유저 중급인 것만 보아도 그랬다.
마나 유저 중급이면 남쪽 대륙에선 정예병이나 다름없는 수준. 그 경지를 평범한 선원이 달성한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즉, 챠르 섬은 기초적인 마나 운용술과 검술의 보급이 굉장히 잘 되어있다. 알테어만큼은 아니지만, 남쪽 대륙보다는 훨씬 개방적이었다.
심지어 돌팔매질이나 하는 남자·여자들 중에서도 몇 년만 꾸준히 수련하면 마나 유저 하급에 다다를 실력자들이 있었다.
이거면 가능하다. 버티는 건 확정된 일이고, 피해를 얼마나 줄이는지가 중요하다.
“온다.”
망원경으로 섬을 감시하던 알보이오 골곤이 작게 뇌까렸다. 그가 보았던 방향의 해변으로, 여덟 개의 다리와 다리마다 세 개의 개구리 손가락 같은 것이 달린 몬스터가 기어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개구리를 시작으로 몬스터가 하나둘 해변가로 올라온다. 목표는 파도에 떠밀려 온 몬스터 살점! 녀석이 혀를 뻗어 살점 하나를 잡곤,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꿀꺽…! 하고 삼키기 전, 길이 3미터가 넘는 해저 지네가 턱으로 괴물 개구리의 목덜미를 콱! 물어뜯는다. 그러곤 아가리 중앙에 있는 뾰족한 바늘로 숨골을 정확하게 관통!
덥썩!
지네가 개구리를 뜯어먹기 전, 뒷다리가 있는 거대 메기가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지네의 몸 절반을 집어삼킨다.
악어가 걸어와서 난동을 부리는 지네와 개구리 몬스터의 머리통을 으적! 씹고는 회전하여 뜯어낸다. 두 발로 걷는 개구리 형 몬스터가 뾰족한 손톱을 찔러 악어의 뱃가죽을 가른다.
크아아아아!
겹쳐진 비명을 시작으로, 수를 세기 힘든 몬스터가 해변가에서 자기들끼리 싸움을 시작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몬스터의 괴성이 섬 곳곳에서 들려오자 정상에 있는 이들이 손이 새햐얘질 정도로 무기를 꽉 붙잡았다.
이대로 가면 싸우기도 전부터 진다고 걱정했던 걸까.
탓!
뮤온 보트라가 달음박질하여 산책하듯이 목책 앞을 걸었다.
“침착해라.”
뮤온 보트라의 마법과도 같은 말이 울려 퍼졌다.
침착해라. 침착해라. 침착해라. 그는 어떠한 부연설명도 없이 그 말만 반복했다.
스르렁!
말과 함께 발검. 새하얀 궤적을 그리는 검광이 어두운 하늘을 가른다. 그리곤 납검. 납검 후에 다시 발검.
스르렁!
또 다시 날카로운 음색과 함께 칼날이 어둠을 가른다. 새하얗고 날카로운 기세가 정상에서 침을 꿀떡꿀떡 삼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발검과 납검의 반복. 최면처럼 울려 퍼지는 침착하라는 단어. 뮤온 보트라는 본인의 능력과 기파를 능숙하게 조절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켜쥐었다.
그의 마법같은 솜씨에 잔뜩 긴장한 섬사람들의 기세가 회복되었다. 그들이 한결 편해진 눈으로 해변에서 벌어지는 몬스터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쟈기 등의 실력자의 눈은 어둠을 뚫고 해변과 곶 부근을 뒤덮은 몬스터를 정확히 보았다. 만은 우습게 넘는 몬스터의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챠르 섬. 몇 놈이 이러면 힘들다고 여겼는지 서서히 발을 뒤로 뺐다.
키에엑!
싸움에서 탈락당한 몬스터가 섬 안쪽으로 도망친다. 그 녀석을 시작으로, 해변에도 도망친 녀석들이 섬을 향해, 도시를 향해, 산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10 분도 지나지 않아 도시가 몬스터에게 점령당하고, 한 놈, 두 놈씩 이유 모를 산행을 시작한다. 몬스터의 본능이 산 정상에 수만 단위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준 걸까? 보면 볼수록 신비한 몬스터의 정신세계였다.
바스락!
한 녀석이 중턱을 걷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8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숨어 있는, 동굴 입구를 틀어막은 거대한 돌덩어리 근처였다.
나름 나무와 흙 등을 덮어서 숨긴다고 숨겼는데, 생명체를 찾는 몬스터의 본능은 숨기기 힘든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 근처에는 く 자로 꺾인 숨구멍이 있었다.
숨구멍의 방향은 밑으로 틀어져 있었지만, 저렇게 의심하기 시작하면 얼마 가지 않아 들통 난다.
끄덕!
로이안 바티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신호에 따라 쟈기가 진지 중앙으로 걸어갔다.
팔락!
가로세로 10미터가 넘는 상어 가죽 마법진을 진지 중앙에 펼친다. 그 위에 투명한 방어막을 놓고, 방어막 위로 캠프파이어만큼이나 높게 솟은 나무 장작 무더기를 쌓는다.
높이만 해도 15미터가 넘는 나무 장작. 그 위로 특수제작된 기름을 듬뿍 뿌리고… 점화!
화르륵!
나무 장작이 화려하게 불타오르며 거대한 불꽃을 만들어낸다. 원래 이런 짓을 하면 몬스터의 주의가 끌리기에 절대 해선 안 될,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있으면 동굴에 피신한, 8만 명이 넘는 비전투원이 들킨다. 미친 짓을 해서라도 몬스터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려야 했다.
두두두두!
섬으로 들어온 몬스터가 불을 발견하자마자 정상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온다.
“와우.”
쟈기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 뻔했다. 불 피운 거로 이만큼 소란이 날 거라곤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일이 넘는 초대형 해양 몬스터의 전투와 녀석들의 살점을 먹은 것이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낸 듯했다.
노린 것 이상의 효과! 정석대로 미친 짓의 극한을 달리는 시선끌기였다.
그러나 쟈기는, 로이안 바티누스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단지 관심 돌리기 하나만을 위해서 15미터가 넘는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게 아니다.
“12시의 현혹하는 불길.”
로이안 바티누스가 말년에 만든 최후의 마법진. 12시 방향을 따라서 총 12개의 고위 마법이 저장되어있는 상어 가죽. 쟈기가 그중 첫 번째 마법을 발동했다.
가죽 중앙에 박힌 커다란 마력석이 빛을 내고, 불타오르는 모닥불이 기이한 환상을 목격자에게 때려 박는다. 이걸로 끝내면 섭하다. 쟈기가 천국의 계단식으로 변환을 끝낸 렉시놈의 비전 마법을 연이어 발동했다.
“이지러지는 빛, 광란의 파동, 눈이 먼 자의 어리석음, 갈망하고 분노해라.”
네 개의 현혹 계통의 마법이 발동. 모닥불 위로 지름 1미터가 넘는 광구(光球)가 형성! 모닥불과 광구를 보고 미친 듯이 뛰어오는 몬스터는 모조리 현혹하는 불길과 이지러지는 빛의 제물이 되었다.
끄륵? 비틀!
몬스터의 걸음이 흔들린다. 두 개의 현혹 마법이 더해지자 시야가 흔들리고, 균형이 맞지 않는다. 산길을 올라올 때 균형이 맞지 않으면 남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
데굴데굴!
전열의 몬스터가 산비탈을 굴러떨어지고, 후열의 녀석들을 덮친다. 몬스터가 당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와직!
분명히 인간을 목표로 돌진하는데 옆에 있는 몬스터의 옆구리를 뜯어먹는, 뒷다리 달린 메기! 광란의 파동과 갈망하고 분노하는 효과에 의해 주변의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먹잇감으로 보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뜯고, 싸우고, 굴러떨어지는 몬스터들. 숨이라도 돌리고 싶지만, 눈이 먼 자의 어리석음이 그들에게 휴식을 앗아갔다.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싸우고, 먹고, 죽이는 것을 체력이 다 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뿐이었다.
십여분 후.
크르르… 크, 크흐르르……!
결국, 선두에서 뛰어온, 백이 넘는 몬스터 중에서 겨우 십수 마리만 정상에 발을 디뎠다. 로이안 바티누스가 담당한 쪽이다. 바티누스가 병사에게 고갯짓했다.
“흡!”
장창을 든 병사가 창을 밑으로 훅! 내리 찔렀다. 비틀거리며 걸어온 몬스터의 뒷목에 날카로운 창날에 찍히고, 절명했다.
숨이 멎고, 내리막길을 따라 굴러가는 몬스터의 시체. 손쉽게 십여 마리의 몬스터를 제거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직 안도보다는 정련된 긴장이 역력했다. 그야 그럴 것이…….
두두두……!
섬에 발을 디딘 수만이 넘는 몬스터가 산 정상에 놓인 두 개의 광원(光源), 모닥불과 광란하는 빛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으니까! 이 수라면 10분의 1이라도 방심할 수 없었다.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아직 새벽은커녕 자정도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