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 * *
(어디까지나) 버마 후작이 알고 있는 정보로는 오대 강국에 소드 마스터는 다섯 명이 있다. 그중 두 명을 알테어로, 세 명을 이종족 연합지역에 보냈다고 한다.
주요 전력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에 보낸 것이다. 게리소님은 안중에도 없었다. 중앙 대륙이 게리소님을 보는 시각은, 저급한 표현을 빌리자면 짬 처리 쯤 될 것이다.
굳이 게리소님 정복에 1군을 보내서 아까운 정예병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다. 2군 까지는 아니고, 1.5군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중앙 대륙이 생각하는 게리소님 정벌의 의의였다.
심지어 1.5군을 다 보낸 것도 아니다. 기사 68명과 그들을 보조하는 마법사, 1만 명의 정예병이면 1.5군을 이루는 주요 사단 중 몇 개의 연대만 온 것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징집병으로만 꽉 채웠고.
사람 얕보는 것도 유분수지.
‘근데 열받는 건 그게 말이 된다는 거야.’
그게 가장 열받는다. 중앙 대륙은 게리소님을 결코 얕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의 정보를 바탕으로 딱 적절한 수준의 주요 능력자와 게리소님을 관리할 보병들을 알맞게 조직해서 파병을 보냈다.
천운으로 화염의 크리스털과 성게의 마나석을 얻고, 적군의 계략을 역이용해 일망타진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슈라드가 세 조건 중 단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했으면 1.5군도 막지 못하고 뚫렸을 것이다.
“소름 돋네.” 나는 슈라드가 뚫리는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다가 몸을 떨었다.
슈라드가 뚫리면 위성도시가 나온다. 위성도시 코앞은 게리소님의 수도, 반데스 영지였다.
적군이 반데스 영지를 건드리다가 잠자는 흑마법사의 코털을 뽑는다면? 70년 넘게 세운 공든 탑이 무너지고, 중앙 대륙 발호와 흑마법 국가 탄생이라는 커다란 떡밥에 인류사는 더더욱 막장을 달렸겠지.
하지만 역사에 만일은 없는 법. 슈라드는 침략을 훌륭하게 막아내었고, 북으로 방어선을 확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끝일까? 이걸로 중앙 대륙에게 ‘이겼다!’고 으스댈 수 있는 걸까?
우리에겐 불행한 말이지만, 전혀 아니었다. 중앙 대륙은 참으로 꼼꼼하게도 그들이 질 것도 예상했고, 그것에 대비하여 악랄한 전략을 마련했다.
중앙 대륙은 자신의 강점과 게리소님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은 그들의 강점으로 게리소님의 약점을 공략했다. 쉽게 말하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몰아치는 거다.
슈라드, 펜로스, 큰 산. 다음은 또 슈라드 다음은 펜로스 그다음은 큰 산으로 갈까 슈라드로 갈까. 에이 귀찮으니까 둘 다 보내자.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끊임없이 피해가 누적되고. 게리소님은 부족한 인력으로 세 군데를 막느라 피가 살살 마른다.
내가 라드랑쥬를 도와 중앙 대륙을 박살 낼 때, 펜로스와 큰 산에 적군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쉴 새도 없이 바쁘다고 혼잣말한 것은, 본의 아니게 본질을 꿰뚫은 발언이 되었다.
그 탓에 나는 정말, 그야말로 쉴 새도 없이 넓은 게리소님 땅을 종횡무진이 아닌 횡횡무진하며 전생을 통틀어서 유례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 * *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그 어느 때보다도 게리소님이 바쁜 시기였다. 하지만 가장 바쁜 사람을 꼽으라 하면, 단연코 나라고 할 수 있었다.
라그랑쥬와 함께 신나게 중앙 대륙을 때리던 나는 큰 산과 펜로스 공격 통신을 받자마자 반나절을 날아서 큰 산으로 향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반데스 영지에서 대기하던 익스퍼트, 중위 마법사들, 전쟁 물자를 한계치까지 들고는 큰 산의 진지(陣地)에 도착한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어, 그… 고, 공작!”
내가 도착하자마자 큰 산 방위를 담당하는 가벨라 사령관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를 보좌하던 빛의 수호자 난민출신인 익스퍼트 하급의 기사, 나이브가 정신을 못 차리는 가벨라를 대신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것이…….”
나이브에게 최근 며칠 간의 교전 기록, 적군의 배치 등의 정보를 얻은 나는 몇 시간 휴식하여 체력을 회복한 뒤, 다음날 새벽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익스퍼트 몇 명. 기습에 특화된 기사, 나에게 암살술을 제대로 배운 탁센까지. 별동대를 조직하여 대수림을 C자로 빙 돌아가는 침투로를 통해서 적군의 옆을 습격!
대수림과 가까이 살아가는 게리소님은 밀림에서 싸운 경험이 그 누구보다 많다. 우리는 밀림을, 찬 공기가 내려앉은 적진영을 돌아다니며 군수물자 보관소를 털고, 중요 요인을 암살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겨울을 대비해 지방 비축에 혈안이던 몬스터까지 몰래 정신 계열의 마법을 써서 바리바리 싸들고 데려왔다.
우드득!
“크와악!”
“캬르륵! 캬악!”
십만이 넘는 무장병력에 숨죽이던 몬스터가 내 정신 마법에 눈이 뒤집혀서 적 진영을 헤집는다. 몬스터하고 적이 사이좋게 죽는 걸 보니 이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작년 봄, 셀타론드 공국, 텅-후안 연합국, 에이스헨 3개국의 기습 탓에 대수림의 몬스터를 처치하지 못해서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는데 이번 기회에 좀 써먹자.
적군이 몬스터와 싸우는 틈을 타서 별동대는 안전하게 탈출!
“저, 그… 괜찮겠습니까? 공작님?”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서 적군이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니 나이브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전쟁에 몬스터를 끌어들여도 괜찮느냐고 묻는 것이다.
본디 몬스터를 이끌어서 같은 르암인을 때리는 건 전쟁 중에도 해선 안 되는, 일종의 전범 행위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그렇게까지 악랄한 건 아니고 약탈, 방화, 강간 정도의 취급?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저쪽이 먼저 기습을 하고 화공에 독까지 썼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게 뭐가 있나? 더군다나 이건 평범한 전쟁이 아닌 섬멸전이다.
보통 이러한 섬멸전에서 역사는 승자의 편을 들어준다. 아무리 몬스터를 끌고 와서 적군을 죽였어도, 우리가 이기기만 하면 욕은 얻어먹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라는 것의 비열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이브의 불안감을 한 귀로 흘려 넘기곤, 며칠 동안 몬스터를 끌고 오고 별동대를 이용해서 큰 산으로 몰려온 적을 처치했다.
큰 산이 한 시름을 놓았으면 다음은 펜로스 차례다. 데리고 온 능력자와 가지고 온 전쟁 물자 절반을 펜로스로 옮긴다.
오자마자 신속하게 전투에 돌입!
할리와 지원을 온 5결 마법사 둘이 빛의 수호자 소속 마법사의 대응 마법을 막고, 나와 익스퍼트 여덟, 돌격 기사단 120기가 출동하여 적진을 헤집어 놓는다.
암살은 쓰지 않는다. 암살도 너무 자주하면 효과가 줄어든다. 나는 정면돌격으로 적을 A자로 헤집고, 그 와중에 사령관과 마법사 몇 명, 익스퍼트 네 명과 기사단 두 부대를 뭉갰다.
“또 간다!”
다음날도 똑같이 돌격한다. 적은 잘 걸렸다는 듯이 대비를 탄탄히 해서 나를 맞이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오러 블레이드의 존재다.
꽈아앙!
소드 마스터임을 만천하에 밝히는 오러 블레이드의 발현! 정면에서 쏜살같이 달려 마법검과 오러 블레이드로 전열을 허물고 그 뒤를 익스퍼트가, 그 뒤를 돌격 기사단이 더욱 크게 넓혔다.
소드 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실력자는 아무도 없다. 마법의 지원을 받지 않고 소드 마스터를 정면에서 막으려면 같은 소드 마스터를 데리고 오거나 익스퍼트를 소대 단위로 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적의 마법은 할리와 두 명의 5결 마법사에게 막혔고, 익스퍼트는 첫날에 방심해서 내게 절반 가까이 죽었다. 즉, 나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나는 적을 수직으로 한 번, 대각선으로 한 번 관통한 뒤 유유히 성안으로 복귀했다.
다음날도 막아보라고 시위하듯이 완전히 똑같은 돌진 공격! 마법사가 지면을 뭉개고, 돌벽을 올리는 등 발악을 했지만, 소드 마스터를 그따위 잔재주로 막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면 안 된다.
“오늘도 왔어!”
“으악! 도, 도망……!”
꽈광!
“나 오늘 또 왔어!”
“살려줘! 백색의 악마가 온다!”
꽈드득!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렇게 나는 큰 산에서 5일, 펜로스에서 12일을 보내며 적군의 침략을 막아냈다.
* * *
휘이잉-!
본격적인 겨울이 온다. 잠 잘못 자면 입 돌아가는 추위가 게리소님을 밀고 들어오려는 적군을 괴롭힌다.
하지만 적들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전쟁 발발 2개월 째. 슈라드, 펜로스, 큰 산 각각 두 번 이상 십만 이상의 적군을 물리쳤음에도 여전히 넘쳐나는 병력이 게리소님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와… 와……. 이게… 이게 말이 돼?”
나는 적군이 끊이지 않고 오는 이유를 찾다가 그 원인을 알고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중앙 대륙의 선동이… 선동이 너무나도 잘 먹혔다! 이것이 이번 전쟁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종족 연합지역이 르암인을 쪽쪽 물고 빨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 거지 같은 선동. 그것에 넘어간 국가가 한둘이 아니다.
선동에 넘어간 또는 넘어간 척을 하고 이득을 보려하는 대부분의 르암인 국가가 중앙 대륙 오대 강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과거 우리가 한 최악의 예상, 온 국가가 적이나 다름없다는 불안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온 세상이 우리의 적이야.’
멋진가? 폼 나나? 직접 겪어본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미친 새끼들이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매달 새로운 적군이 게리소님으로 쳐들어오는 걸 막느라 쎄가 빠진다.
저번 달은 어디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국가에서 십만, 이번 달은 웬 놈의 산골짜기 국가에서 오만, 그리고 초장거리 비행 마법으로 멀리까지 조사를 나갔을 땐, 어중이떠중이를 모은 오만이 오는 게 게 관측됐다.
이놈들을 막느라 게리소님의 온 힘이 세 곳에 쏠렸다. 그래도 슈라드는 다른 두 곳보다 사정이 낫다. 국가의 중심, 위성도시가 가까이 있어서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마음껏 빼다 쓸 수 있었다.
그런 슈라드와 별개로 북서쪽의 펜로스와 중앙의 큰 산은 문제가 컸다.
“진지를 구축해!”
“부상자는 뒤로 빠져! 마법사… 회, 회복……. 둘 다 부족해? 중상이 아니면 붕대만 감고 기다리도록!”
물자 부족! 마나석 부족! 마법사 부족! 스칼러 부족! 익스퍼트 부족!
남는 것은 몇 년 동안 열심히 꿍쳐놓은 식량밖에 없다. 그나마 식량이라도 여유분이 남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것마저 없었으면 포로 관리에 문제가 생겨서 사달이 일어났을 거다.
참고로 포로도 너무 많이 쌓여서 밑의 영지로 나눠보내야 했다.
슈라드와 펜로스에 모인 포로는 그 밑의 영지 몇 개로, 큰 산에 모인 포로는 새로 건설된 좌(左)의 성과 우(右)의 성으로 보내, 일종의 포로 전문 수용소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국경에 있다가는 적들이 한도 끝도 없이 쳐들어오는 걸 보고 포로들이 딴마음을 품을 수가 있어서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게 분쟁 지역과 멀리 떨어뜨려서 눈과 귀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게리소님으로 영입? 그런 짓을 했다가는 게리소님 전체 병력보다 포로 출신의 노예병이 ‘몇 배’나 많아진다. 내부에 폭탄을 심고 싶지 않기에 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충성심이 확인된 이들만 조심스럽게 받는 중이다.
심지어 노예병으로 쓰면 불만이 생길까 봐 일반병과 같은 대우까지 해준다. 누가 보면 전(前) 적군이 아니라 상전이라고 오해할 만한 대우다. 그만큼 게리소님의 인력 사정은 절박했다.
‘이대로 가면 질 수도 있어. 약해서 지는 게 아니라 수에 밀려서 지는 거야.’
우리는 물자와 인력이 부족한데 세 곳으로 밀려오는 적군의 수는 게리소님 총 인구수와 맞먹는다. 이대로 가다간 아군의 피로가 누적되어 ‘이겨도 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겨도 진다니. 차라리 그냥 지는 게 낫지 이기는데 지는 건 잠자다가 깨어날 정도로 억울한 일이다. 때문에 이스마일 반데스는 이 개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긴급 동원령을 선포한다. 전 영지 내 전투원은 최소한만 남기고 기사, 마법사, 병사들을 징발하여 국경으로 지원을 보내도록!”
본디 게리소님은 침투에 대비해서 각 영지로 병력과 능력자를 분배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리되자 영지로 분배한 병력, 마법사, 기사 등을 최소한의 치안유지를 위한 이들만 남기고 박박 긁어모아 세 전투 지점으로 보냈다.
(렉시놈인 걸 모르는) 반세기 넘게 천국의 계단 학파로 새로 받아들인 수많은 하위 마법사들, 영지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기사, 병사들. 꽁꽁 숨겨왔던 렉시놈 소속 신체 개조자들까지.
그들을 모조리 슈라드, 펜로스, 큰 산으로 보내서 부족한 병력을 충당한다. 내부에서 박박 끌어모은 병력, 하나둘 전향을 선택하는 충성심 높은 포로들의 지원으로 게리소님은 대륙의 침략을 막아내고 있었다.
* * *
한겨울. 새해가 지나 눈이 펑펑 내리는 1월.
본디 남쪽 대륙의 겨울은 혹독하지 않다. 눈이 많이 내리면 허리까지 쌓이지만,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는 특이한 기후를 자랑한다.
그렇다 해도 눈은 눈. 허리까지 쌓이는 눈에 고통받는 것은 방어자가 아닌 습격자이다. 때문에 우리도 겨울만큼은, 적어도 눈이 펑펑 내리는 며칠은 편히 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예상이 한참이나 어긋났다.
“와아아!”
“아, 추! 추워! 춥다고! 가! 죽어도 가!”
“이런 썅…….”
추위에 벌벌 떨며 성벽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보니 욕설이 절로 흘러나온다.
이렇듯이 적들은 눈이 와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살얼음이 끼는 추위에도 지지 않고 죽자사자 게리소님으로 밀고 들어왔다.
왜냐고? 아니, 어떻게? 바로 마법 때문이다.
중앙 대륙이, 빛의 수호자가 쌓아온 마법 무구와 마나석은 그야말로 산을 이루고도 남을 수준! 그들은 그 수많은 마법 무구와 마나석을 이용해서 겨울에도 전쟁 수행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적군을 지원해주었다.
과거, 내가 난민들을 돌봐줄 때 사용했던 방법과 유사하다. 얇은 공기층을 만들어 보온막을 형성하고, 광범위 회복 마법장을 깔아 병사들의 회복력과 질병 저항능력, 향상성 등을 지원해주는 거다.
마법 만세가 아니다. 마법이 개새끼다.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놈들을 고르라면 마법을 사역하는 마법사라는 존재다. 이 새끼들 때문에 겨울에도 쉬지 못하고 죽어라 싸워야 하잖아.
물론 그래도 얼어 죽는 놈들은 매일 꾸준히 나온다.
또옥!
“으흑! 내, 내 발가락이!”
“어버버버! 버버!”
동상에 걸려 손발가락을 자르는 이들도 속출했다. 그렇게 추위에 피해가 발생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밀려오는 적들 덕분에 나만 죽어난다. 아니, 다들 힘들지만 내가 제일 힘들었다.
왜 나만 죽어나냐고? 겨울이라서 물자 이동이 제한되기에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해서 초장거리 이동 마법을 써야 하는데, 이 빌어먹을 초장거리 이동 마법을 매일 쓸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넘쳐나는 고위 마법사가 나밖에 없으니까!
초장거리 이동 마법은 마법진의 도움을 빌려도 쓰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그런 편한 마법이 아니라고! 4결 이상의 중~고위 마법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초장거리 이동 마법진에 힘을 낭비할까!
그러다보니 몸도 튼튼하고 체력도 남아도는 내가 전투 물자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할 수밖에 없게 돼버렸다. 하루 비행거리만 일천 킬로미터를 가뿐히 넘는 강행군이 겨우내 나를 괴롭혔다.
(펜로스! 공작님! 펜로스요!)
슈왁!
“끄아악!”
(슈라드! 쟈기 공작, 전쟁 물자와 전투 지원 바랍니다!)
슈웅
“아아악!”
(큰 산 방어 사령관 가벨라 백작님의 전언입니다! 쟈기 군 어서……!)
슈우웅-!
“시벌!”
(쟈기! 펜로스로 와 주게!)
(무슨 소리! 할리 자작님, 큰 산이 더 급합니다! 화살하고 창하고 회복약, 붕대… 아, 됐고 있는 대로 다 가지고 오세요!)
(야! 쟈기! 슈라드 뚫린다! 얼른얼른 와라!)
슈슈슝!
“으아! 으아아! 으아아아!”
(쟈기! 어제보다 느려졌네! 빨리빨리 못하겠나!)
(본 사령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제때에 물자만 지원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십니까!)
(다리 움직이는 거 보인다! 슈라드로 빨리 안 오냐!)
“제발 다 닥쳐! 존댓말은 어디다 갔다 버렸냐!!”
미쳐버리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