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85
485화
* * *
콰아아아!
악신의 정수리 위, 모순적인 막에서 어둠이 분출된다. 하늘 높이 솟구친 어둠, 레이스는 하나도 빠짐없이 쉘리 반데스가 친 암흑의 휘광에 감싸였다.
‘통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곤 검은 장막에 갇히는 레이스 무리를 바라보았다.
암흑의 휘광. 검은 우주에서 쉘리 반데스와 옥시아, 아이가 밤새 연구를 거듭하여 만든 마법이다.
마법의 효과는 그리 극적이지 않다. 기껏해야 마(魔)에 기반한 존재를 가두는 정도? 그것을 시전자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넓은 범위로 펼치는 수수한 마법이 암흑의 휘광이다.
하지만 이 수수한 마법이야말로 레이스의 돌발행동을 막는데 반드시 필요한 마법이다.
‘저번처럼 레이스가 세상으로 풀려나면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임시로나마 레이스를 가두어야 하지.’
일종의 레이스 전용 그물망이다. 암흑의 휘광이 막에서 뛰쳐나온 레이스를 잡고, 조금씩 풀어서 대륙으로 퍼지지 않게 막는 용도.
이번에 처음 써본 마법이지만, 레이스는 단 한 개체도 빠짐없이 암흑의 휘광에 포집되었다. 아이의 계산은 완벽했다.
콰과과과!
레이스가 쏟아지지만, 여전히 암흑의 휘광에 갇힌다. 후후, 네깟 녀석들이 발버둥쳐 봤자 지…….
콰아아아아아!!
또 쏟아지지만 변함이 없다. 어디 한 번 네 마음대로 해 봐라. 암흑의 휘광이 다 잡아주마.
아아아아아아아!!
그래 그렇게 또 쏟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 어… 라? 기세가 그대로야?
아가가가갸갸갸갹!!
“어, 저, 저……. 야, 잠깐 멈춰 봐.”
아니, 잠깐만. 폼 나게 다짐한 지 1분은커녕 30초도 안 지났지만,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더듬거리며 레이스를 쏟아내는 악신을 말렸다.
그러니까… 양이 너무 많다. 우리의 짐작보다. 아이가 계산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의 레이스가 막에서 튀어나온다.
“야, 야… 잠만. 좀 진정하라고.”
야, 이거 정말로 4번이나 걸러진 거 확실해? 백사장의 모래알 하나 맞아? 바다의 물방울 하나 맞냐고.
“우오오오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포효하는 악신을 살폈다. 저만한 레이스가 쏟아지면 악신에게도 주입되는 힘이…….
치이익!
뜨겁게 달군 펜 위에 놓인 물방울이 증발하는 듯한 소리가 악신의 피부에서 들려왔다.
녀석의 몸을 패셔너블하게 푸른색 세로줄 무늬로 칠해준 성륜의 철창. 그것이 무진장하게 공급되는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벗겨지고 있었다.
– 으악! 다두 이 녀석아! 이거 터진다!
쉘리 반데스가 뜨악하며 내게 우는소리를 한다. 즉각 그를 도와줘야 하지만, 나는 그럴 여유를 내지 못했다.
‘아이의 계산이… 틀렸어?’
아이가 누구인가. 지구의 지혜를 한데 모은 초인공지능이다. 그런 그녀의 답, 레이스의 분출량이 예상보다 몇 배나 많다는 것은 계산이 초장부터 어긋났다는 뜻이다.
그녀의 계산이 어긋났다는 거는……. 어, 그렇다면…….
“비상소집부대! 개진(開陣)!”
당황이 극에 달해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점. 나보다 먼저 나서서 외친 이가 있었다. 뮤온 보트라였다. 그가 방어막을 치는 걸 도와준 부하들에게 다가가서 신호기를 뺏은 뒤, 위의 말을 외쳤다.
비상소집부대는 이 일을 위해 대기, 정확히는 숨어있는 부대를 일컫는 말. 그리고 개진은 그들이 준비한 것을 풀라는 뜻이다.
비상소집부대가 준비한 것. 레이스의 난동을 대비해서 준비한 일만의 몬스터!
화악!
삼안일체법을 위해 높이 떠 있는 내 눈에 저 멀리, 숲이 벗겨지는 장면이 들어왔다. 북동쪽, 1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해안가 근처다.
그곳을 덮는 나무와 수풀이 천처럼 확! 뒤집히더니 수십 대의 비행정이 드러났다. 푸쉭-! 하곤 비행정 뚜껑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윗 천장이 분리된다.
열린 천장 틈으로 비행정에 탑승한 고객들, 약물을 먹여 잠들어있는 소형 몬스터 수백 마리가 보인다. 비행정 한 대에 수백 마리, 모인 비행정이 수십 대니까… 어, 1만 이상?
뮤온 보트라가 연이어 외쳤다.
“암흑유인망(暗黑誘引網) 가동!”
소수 요원들이 비행정을 돌아다니며 몬스터 관리를 하다가 뮤온 보트라의 명령을 받곤 꼬리에 불난 망아지처럼 뛰어다닌다.
비행정에 걸린 마법진이 가동.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솟구치고, 인체에 해로운 기운이 모인다. 인간은 받아들여선 안 되는, 수련하는 기색이라도 느껴지면 인류의 적이 되는 그 기운.
바로 흑마력. 수십 년 동안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던 흑마력이 검은 연기가 되어 잠든 소형 몬스터의 코, 땀구멍 등으로 스며든다!
일반 흑마력이 아닌, 흑마법 3대 지파의 연구 서적을 분석하여 레이스를 유인하는데 특화된, 변형 흑마력!
흑마력의 분출 및 몬스터에게 흡수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뮤온 보트라가 하늘 위에 떠 있는 쉘리 반데스에게 외쳤다.
“쉘리 반데스! 유인해라!”
준비가 끝나자마자 끙끙대며 레이스를 모으던 쉘리 반데스가 암흑의 휘광에 구멍을 뚫었다. 구멍이 뚫린 방향은, 정확하게 소형 몬스터 무리가 숨어있는 방향!
푸화악! 하고, 자그마한 구멍을 빠져나온 검은 물줄기가 하늘을 수놓는다. 휘광을 탈출한 레이스 무리가 그들에게 익숙한 기운, 흑마력이 넘실거리는 소형 몬스터 무리에게 이동 방향을 틀었다.
휘우웅~!
검은 물결이 요동치며 소형 몬스터 무리에게 향한다. 하늘을 도도하게 흐르는 검은 강물, 수만이 훌쩍 넘는 레이스가 한달음에 15킬로미터를 날았다.
레이스의 접근을 확인하자마자 요원들 수백 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물론, 프로답게 도망치는 와중에도 마나석을 곱게 포개져 누운 몬스터 사이로 던지는 건 잊지 않는다.
마나석에도 응축된 흑마력이 담겨있다. 순식간에 북서쪽 일대가 흑마력으로 넘실거렸다.
“흑마력? 뮤온 보트라! 대체 무슨 짓을……!”
언제나 흑마력에 조마조마한 이스마일 반데스. 그가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흑마력을 느끼곤 뮤온 보트라를 노려본다.
쉘리 반데스가 당장에라도 칼을 거꾸로 들려는 이스마일 반데스를 말렸다.
“아서라. 이놈아. 그 나이 먹고 언제까지 사소한 걸로 끙끙댈게야?”
“아버님! 하지만 이건 사소한……!”
“쉿! 이거나 받아.”
여유가 생긴 쉘리 반데스가 메시지 마법으로 압축된 정보를 이스마일 반데스에게 보냈다. 정보를 받은 이스마일이 ‘하!’ 하곤 어이없다는 듯 헛숨을 쉬었다.
사고를 쳐도 적당히 쳐야지, 아무리 개조했다고 해도 살의 렉시놈 비전 마법을 알려준 건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었다.
쉘리 반데스는 위의 뜻이 듬뿍 묻어나오는 이스마일의 눈빛을 유하게 넘겼다. 그가 손가락으로 악신과 레이스를 번갈아 가리켰다.
“아들아. 할 말이 많지만, 지금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절치 않구나. 일단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자.”
“……끄응!”
“나는 레이스를 붙잡을 테니 너는 악신을 잡아라.”
한석봉이야? 내가 헛웃음을 지었지만, 쉘리 반데스의 눈은 진지 그 자체였다. 그가 이스마일을 바라보며,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이어 말했다.
“악신, 잡을 수 있지?”
꾸욱-!
이스마일이 스태프를 으스러져라 붙잡았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웅얼웅얼 주문까지 외우는데,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됐다. 왜 저런지 모르지만, 이스마일도 제대로 설득이 되었군. 설득을 끝내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엄지를 척! 드는 쉘리 반데스를 보자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그래. 아이의 말이 틀렸을 수도 있지.’
아이의 말이 100% 정답이면 애초에 검은 우주에 탐사대가 고립되었겠냐? 틀리면 틀리는 대로 최선을 다하면 되는 일이다.
짝! 나는 양뺨을 때려 정신을 되찾았다. 눈을 부릅뜨곤, 악신에게 정신을 집중한다.
“크르…!”
레이스 분출을 끝낸 악신. 녀석이 이를 갈며 인간을 노려보았다. 이런, 두 부자의 대화를 듣느라 조금 늦었잖아?
내가 얼을 탄 시점, 악신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리고 자잘한 공격으로 발을 물어뜯은 작은 것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후왕!
“으학?!”
상상하지 못한 이변(異變)에 발밑 부대, 익스퍼트의 대응이 늦었다. 급히 발을 놀리지만, 한 타이밍 늦은 회피 동작으로 100미터 이상을 휩쓰는 공격을 피할 수 있으면 익스퍼트가 아니라 마스터다.
그리고 그들은 익스퍼트. 반응이 늦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100미터가 넘는 검은 쇳덩이가, 쇳덩이에 어린 이글거리는 불꽃이 익스퍼트 수십 명의 목숨을 허망하게 앗아가기 직전!
까앙!
번쩍이는 백색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백색의 궤적이 대검을 든 손목부터 엄지손가락 관절까지. 관절을 넘어 엄지와 검지 쪽 갈퀴살까지 한 번에 베었다.
꽈앙!
손아귀 힘이 약해지고, 파지법이 망가지자 대검이 목표물을 엇나간 곳을 때린다. 빗겨 맞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익스퍼트 네 명이 비명도 못 내지르고 피떡이 되어 죽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 사망에서 네 명 사망으로 피해를 줄인 검광의 주인공, 뮤온 보트라. 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악신에게 달려들었다.
“차핫!”
신장 2미터도 되지 않는 인간이 든 백색의 오러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200미터가 넘는 악신의 피부에 죽죽-! 상흔이 새겨졌다.
“진정해라!”
팍! 음속으로 창이 찔러온다. 뮤온 보트라는 공중에서 몸을 연이어 뒤집고, 공기의 결을 베어 창을 피했다. 나선으로 검을 휘둘러 팔뚝까지 한 번에 벤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악신을 죽인다!”
파앙! 채찍이 휘둘러진다. 산을 으스러뜨리는 검은색 구렁이가 하늘을 뒤덮지만, 뮤온 보트라의 손에서 백색 빛이 번뜩이자 뱀은 지렁이가 되었고, 이빨은 엉망진창으로 부서졌다.
“그리고 일백 하고도 수십 년 전, 투쟁의 시대의 원인이 되었던 레이스를 한곳에 몰아넣어 소형 몬스터에게 집어넣은 뒤, 녀석들을 죽여 제2의 투쟁의 시대가 오는 걸 미연에 방지한다! 이것이 전부다!”
손가락, 팔뚝, 어깨, 목까지. 수십 번의 연환검결에 악신의 팔이 너덜너덜해진다.
“당황할 것도, 혼란에 빠질 일도 없다! 지옥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진 다들 알고 있지 않나! 우리는 계획을 세웠고, 아무 문제 없이 사건에 대처하고 있다!”
아니다. 문제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선, 저만한 수의 레이스를 담을 몬스터가 준비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의 신화적인 싸움을 보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를 들으면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야말로 황제의 카리스마였다.
“다두! 음성 확장을!”
예입. 나는 뮤온 보트라의 목소리가 저 멀리, 구석구석까지 퍼지도록 ‘또렷한 귓가의 속삭임’ 주술을 걸었다. 그가 이리저리 손짓하며 해야 할 일을 알렸다.
“쉘리 반데스! 모은 레이스틑 우선적으로 소형 몬스터에게 집어넣어라! 그러고도 남는 것은 쥐, 여우같은 소형동물부터 나무 등의 식물까지! 있는 대로 집어넣어! 무조건 이 안에서 끝내야 해!”
“알겠네!”
“일반 병사들! 포격과 마법총을 비롯한 원거리 화력 부대는 목표를 악신이 아닌 레이스에 오염된 생명체로 잡는다! 마법사는 둘로 나뉜다! 중위 마법사 일부와 고위 마법사는 악신에게! 나머지는 몬스터에게 집중!”
이래서 짬밥을 무시할 수가 없다. 수백 년 동안 비밀조직의 수장으로 활약한 괴물은 돌발 상황이 펼쳐져도 언제나 냉정했다.
“어, 아… 어……. 으?”
하지만 내가 냉정하다고 다른 사람들도 냉정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일반 병사들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서 주춤거린다. 뮤온 보트라가 답답하듯이 재차 외쳤다.
“카보머! 해피 국왕! 병력을 나누어라! 어서!!”
뮤온 보트라의 말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해피였다. 그가 유백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장검을 들곤 공중에 뜬 내게 시선을 던졌다.
해피가 입술을 달싹였다. 오러를 통한 음성 전이로 내게 말을 건넨다.
“다두. 내게도 보조 주술을 부탁한다.”
뮤온 보트라가 새처럼 날아서 싸우는 게 혼자만의 힘이 아닌 걸 눈치 챘군. 뭐, 어차피 한 명이나 두 명이나 그게 그거다.
나는 해피에게도 자유로(自由路)와 하늘을 가르는 제비의 주술을 걸어주었다. 해피가 제자리에서 몇 번 뛰는 걸로 두 주술에 익숙해지더니, 꽝! 하고 강하게 발을 굴러 높이 떴다.
“알테어! 전 병력! 통일 제국 황제의 말에 따라라! 본왕은 악신과 싸우겠다! 나머지는 레이스가 들어간 생명체를 처치해라! 두 번 다시 투쟁의 시대가 반복되지 않게! 철저하게!”
이제 악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빛은 하나가 아닌 두 개다. 백색과 유백색 빛이 200미터가 넘는 검은 거인의 몸에 끊임없이 흔적을 남겼고, 기세등등했던 악신의 눈동자에 당혹이 깃들었다.
“소드 마스터! 뭐 하나! 내가 만든 상처를 더욱 크게 벌려! 익스퍼트 부대는 계속 악신을 귀찮게 해! 마법사는 상처 회복에 저주 계열의 마법을 끊임없이 퍼부어라! 그리고 녀석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
찌익!
뮤온 보트라의 닦달을 듣자마자 카보머가 바람길을 걷는 망토를 찢었다. 그가 션이 유행시킨 지구식 인사말, 중지를 세워 나를 가리켰다.
“다두! 이 새끼야! 무기징역 당하기 싫으면 나한테도 주술 걸어라! 아니, 그냥 여기 전부한테 다 걸어!”
뻥 치고 있네.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무기징역이면서. 저런 협박 따위 전혀 무섭지도 않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저었다.
훙! 하고, 내 손짓에 날아간 주술력이 카보머를 포함한 열댓 명의 소드 마스터에게 스며들었다. 그들에게 해피에게 건 것과 같은 주술이 걸리고, 마법 무구가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자유로운 비행을 하며 악신의 몸에 상처를 만들었다.
협박이 무서워서 말을 들어준 건 결단코 아니다. 진짜로.
‘보자. 악신 측은 뮤온 보트라 덕분에 진정. 레이스는 어떻게 됐냐…….’
대강 할 일을 끝낸 나는 높이 떠올랐다. 상공 수백 미터 위, 악신의 정수리도 한눈에 내려다보일 높이까지 올라가서 전황을 살폈다.
캬아악!
우선 몬스터. 레이스가 들어간 소형 몬스터는 그 즉시 극적인 변화를 이루었다. 허리춤까지밖에 안 오던 작은 고블린은 나보다 두 배는 커지고, 비쩍 마른 렛맨은 근육질 고릴라만큼이나 덩치가 부풀었다.
팔 두 짝, 다리 두 짝이 네 개, 여섯 개, 여덟 개로… 마구잡이로 늘어난다. 피부가 죽죽! 찢어져서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진물이 터져 나온다.
‘잠깐. 아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역시 1만이 훌쩍 넘잖아?’
눈대중으로 세니 변화를 겪는 몬스터의 수는 거진 3만에 달한다. 뮤온 보트라가 불안해서 몬스터의 수를 더 늘린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노인네가 괜한 짓 했다고 속으로 핀잔을 주었을 테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노인네의 연륜, 얕볼 수 없도다. 나는 뮤온 보트라를 칭찬하며 레이스 흡수 몬스터를 관찰했다.
“끄에에에엑!”
레이스를 흡수하며 변화하는 도중, 어떤 녀석이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높은 괴성을 내질렀다.
“에에엑!”
“아이에에에에!”
“끼이이익!”
하울링 하듯이, 한 놈이 울자 수만 마리가 연달아 운다. 극적인 변화가 가져다준 고통에, 힘에, 쾌감과 파괴본능에 취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다.
그 울음과 함께, 아직 채 변이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몬스터 대부분이 이동을 시작했다. 어색하게 달린 네 개의 다리를, 여섯 개의 팔을, 진물과 핏물이 흐르는 피투성이 몸을 이끌고,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뛴다.
“온다! 준비해!”
그 방향은, 인간 측 부대 수만 명이 모인 장소. 마법사가 몬스터가 있는 방향으로 환각, 혼란, 전투자극 등의 정신계 마법을 걸어서 그들에게 유인하는 것이다.
몬스터와 인간 사이의 거리는 앞서 말했듯이 약 15킬로미터. 하늘을 나는 녀석이 아닌 한, 인간 부대에게 도착할 때까진 아무리 빨라도 20분은 걸린다.
그리고 인간 부대는 그 20분을 넋 놓고 기다려줄 의향이 전혀 없었다.
투다다다다!
비행정, 천공기가 불을 뿜는다. 백 대가 넘는 항공기에서 초당 수십 발이 넘는 섬광탄이 쏟아졌다. 정신없이 산을 달리던 수만의 레이스 흡수 몬스터가 피곤죽이 되어 땅을 나뒹굴었다.
삽시간에 수천을 죽이는 현대 병기의 위력! 그러나 상황은 인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뿌드득! 우직!
암흑의 휘광에 뚫린 구멍을 통해 추가되는 레이스가 문제였다. 억압에서 풀려난 레이스는 암흑유인망 인근의 나무, 식물, 동물 따위로 스며들어 생명체의 몸과 영혼을 오염시켰다.
레이스와 하나가 된 여우가 입에서 불을 내뿜고, 꽃이 두 발로 걸어가며 면도날보다 날카로운 잎사귀를 날린다. 나무는 덩치가 두 배쯤 커져서 씨앗을 총알처럼 마구 쏘았다.
초당 엄청난 수가 줄어들지만, 그만큼 적 측 병력이 보충된다. 항공기와 천공기가 계속해서 수를 줄여가며 몬스터의 접근을 늦추었고, 인간 부대는 그 틈을 타서 전열을 정비했다.
‘아, 이런. 여기에 너무 시간을 빼앗겼어. 악신은 어떻지?’
다시 악신과 소수 정예의 전투를 본다. 지원가라서 할 일도 많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서 아주 정신이 없네.
“크와아아악!!”
악신은 살판이 났다. 녀석이 온몸에서 피를 흘려가면서도 광소인지 비명인지 구별이 안 되는 괴성을 토해내며 여섯 개의 팔로 다섯 정의 무기를 휘둘렀다.
꾸과과광!
무기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돌기둥이 부서진다. 대검은 땅을 가르고, 채찍은 절벽을 무너뜨렸다. 검은 화염이 하나둘 몸과 무기에서 피어올라 사방으로 죽음의 법칙을 퍼뜨렸다.
성륜의 철창에서 풀려나고, 마법사의 지원이 줄었지. 초당 수만 발씩 쏟아지는 섬광탄 소나기도 없다. 악신은 현재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순식간에 악신과 인간 측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악신은 가면 갈수록 강해졌고, 인간은 불리함을 딛고 싸워야 했다.
“합!”
“내려친다!”
그러나. 그럼에도 기사는 기사였고, 검사는 검사였다.
검사는, 무인이란 무엇인가. 싸우는 자다.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이들이었다. 싸우기 위해선 죽이는 법을 배우고, 막는 법과 피하는 법을 배운다.
꽈앙!
“피했어!”
“흥! 이따위 무식한 공격도 못 피하면 검사 자격이 없지!”
즉, 악신의 공격은 스케일이 크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들이 여태까지 배워왔던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적이었다.
검이 오면? 피한다. 채찍이 날아오고 창이 대지를 휩쓸면? 또 피한다. 그리고 배운 대로 안으로 파고들고, 배운 대로 빈틈을 향해 검을 내지른다.
“끄하악!”
“뒈져!”
까앙! 깡!
무기가 안 통하면? 그것도 배운 대로 하면 된다.
하나. 여러 번 팬다!
까가가가강!
“죽어죽어죽어죽어!!”
둘. 같이 팬다!
“으하핫! 이놈아! 알테어의 신흥천재 콘러드의 검을 받아라!”
“피하라고! 이 병신아!”
셋. 통할 때까지 팬다!
“끼야아압!!”
파악!
발등에 상처가 터진다. 소드 마스터 없이, 익스퍼트만으로 이룬 쾌거! 그러한 상처가 하나둘 악신의 발등에 생겼다. 순식간에 발등이 엉망이 되고, 검은 피와 화염이 밑으로 줄줄 흘렀다.
‘기적인가?’
나는 눈을 비볐다. 마법사와 수만 병력의 지원이 없음에도 적은 피해로 악신에게 상처를 누적시키는 인류의 무력이 의심이 가서였다.
하지만 그 의심은 곧 씻은 듯이 사라졌다. 더 강해진 악신에게 인간이 맞설 수 있는 이유. 그것은 그저… 인간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대단하구나.’
악신은 강했지만, 지난 백년 동안 인간의 무력은 강해진 악신과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들은 결코 사냥감이 아니었고, 천족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기도해야 하는 무력한 희생양 또한 더더욱 아니었다.
뮤온 보트라와 해피라는 절대 고수가 참전한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분위기 깨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자.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이거였다. 인간은 둘로 나뉘었음에도 악신과 레이스를 흡수한 몬스터를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그리고 …….
뚝! 뚜욱~!
“아이고……. 또 이런다.”
슥~ 하고 코피를 닦는다.
나는 계속해서 죽어간다. 내가 일선에서 물러나 주술로 보조하는 게 이 때문이다. 몸이 너무 약해져서 악신하고 투닥거릴 힘이 없거든.
안 그래도 힘이 없어 죽겠는데, 쉰둘의 죽음마저 내게 달라붙자 정말로 죽을 것 같다. 1초라도 더 오래 살려면 육체노동은 금물이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낀 힘. 하지만 소드 마스터들에게 보조 주술을, 100명이 넘는 익스퍼트에게 삼안일체법까지 걸어주니 죽음이 ‘지금이다!’라고 외치는 듯이 거세게 불타올라 내 몸을 망가뜨린다.
‘길지 않겠군.’
다두는 이미 선을 넘었다. 버티고 버텨봤자 일주일. 이 싸움에서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 붓느냐에 따라서 더 줄어들 수도 있었다.
“나오려무나. 어차피 죽을 거. 마지막에 시원하게 날뛰어보자.”
그리고 아마… 내게 남은 시간은 분명히 일주일 이하일 것이다. 나는 세포가 사멸해가는 끔찍한 통증을 느끼며, 비은다각형-무한소를 사용했다.
“내 친구, 쇼콜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