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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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言]
꿈을 꾸었다. 그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꿈이었다.
그것은 등편이 산에서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향이 배어 나오는 산딸기 몇 움큼을 집에 가지고 가 가족과 함께 먹는 꿈이었다.
등편이 그토록 원하던 동생은 모포에 싸여 엄마 젖을 물고 있고, 아버지는 등편이 가져온 산딸기를 먹으며 함께 웃음 짓고 있었다.
평온한 하룻날의 꿈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이리도 편안하고 행복할 수 없었다.
낡아서 잘 닫히지 않는 문과 벽 한쪽에 습기가 들어차 퍼렇게 물들어있는 것까지 전부 생생하게 나타난 아주 정교한 꿈이었다.
꿈에서 깨자 봄의 따스한 연분홍빛이던 세상이 산산이 흩어지며 공허함만이 가슴속 깊숙이 자리 잡았다.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 맺히고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똑 하고 떨어졌다. 그리움이 잔뜩 배인 눈물은 계속해서 방울지며 떨어져 내렸다.
“아…….”
등편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눈을 뜨니 행복한 꿈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옥색 벽지가 가지런히 발라진 천장이 눈에 띄었다.
눈을 뜬 지 한참이 지나도 그리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한껏 커져 등편의 마음에 아스라이 잔영을 남겼다.
하지만 등편은 오래 실망하지 않았다. 꿈은 꿈일 뿐, 아무리 행복하고 기쁜 것이어도 꿈이란 것은 한낱 허상일 뿐이었다. 표정을 한껏 일그러트리며 상심한 것을 마지막으로 등편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긴… 어디지?”
머리를 들어 자신이 누워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문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도 근래 들어 정신을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깨어나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니. 스스로가 좀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은 비단 이불을 덮고 침상에 뉘어져 있었다. 이불은 가운데가 파란색으로 염색되어 노란 금실로 학이 수놓아져 있었다. 척 보아도 귀한 이불이었다.
침상은 엄청나게 컸고 이불도 등편의 몸을 두세 번은 더 덮을 정도로 넓었다.
침상 밖을 내다보니 흑색 원목 탁자와 단단해 보이는 나무 의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초 몇 개가 환히 빛나고 있었는데, 창에서는 빛이 안 들어오는 것을 보니 밤중임을 알 수 있었다. 촛불이 하늘거리면서 타며 빛을 내었고, 그 빛이 닿는 곳에는 병풍과 대나무가 있었다.
왜 이런 곳에서 깨어났는지 의문이 든 등편은 자신의 기억이 끊어진 곳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자신은 도망 중에 호인에게 잡혔고, 검정 호인이 잡힌 아이들을 무참히 죽이자 분이 일어 호인의 언어로 그만두라고 말했다. 맞게 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때는 정말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꽁꽁 묶여 저항도 못하는 아이들을 그 검정 호인은 무분별하게 살육했다. 나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여간해서 꿈쩍도 않는 등편조차도 그 광경을 보자 눈살이 찌푸려지고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등편은 인간의 말로 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녀석일 테니 홧김에 자습한 호인의 언어로 소리쳐 본 것인데, 어쨌든 뜻은 통한 듯했다. 호인이 뭐라 외치면서 말한 녀석을 찾는 듯했으니까.
등편은 자신 있게 일어났고 또 외쳤다. 왜 우리를 죽이는 것이냐고, 그 말 한마디로 녀석에게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남자답게 죽으리라 마음먹은 것은 훈제된 인간 고기를 봤을 때부터 다짐하던 일이었다.
검은 호인은 등편에게 다가와 그를 죽이려 했다. 그것은 분위기상으로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흉흉한 눈빛과 가소롭다는 듯한 비웃음, 그리고 성큼 다가오는 녀석의 걸음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등편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실패했다. 두 팔을 세차게 휘둘렀지만 등편의 눈앞에서 멈추고야 말았다. 등편이 저번에 봤던 흰 수염의 호인이 그 팔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호인이 와서 자신을 기절시켰다. 사실 그때만 해도 기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은 죽었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꿈이 천국같이 행복하고 즐겁게 비춰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 내가 살아날 수 있었지?’
등편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자문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이 묻는 의문에 자기가 명확한 답변을 내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답을 알고 있었다면 애초에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등편은 쓴웃음을 지었다. 기절하고 깨어났는데 요전번과 다르게 머리가 찌뿌듯하지 않은 것을 보니 침상 위에서 비단 이불을 덮고 편히 잠들어서 그런 듯했다.
이불 아래 몸을 보니 입혀진 옷도 자신이 입던 옷이 아니었다. 명주로 짠 흰 옷이 입혀져 있었는데, 역시나 등편의 몸보다는 컸다.
등편은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만져보며 어디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아픈 곳은 없었다. 오히려 편히 잔 것이 피로 회복까지 됐는지 감옥에 갇혀있을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이곳에 계속 누워있어야 할까, 아니면 이불에서 나와 여기가 어딘지 살펴보아야 할까?’
등편은 고민에 휩싸였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찌할 줄 모르던 그때, 문지방이 좌우로 드르륵거리며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자와 등편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등편과 두 눈을 마주친 자는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늙은 하얀 호인이었다. 그는 깨어난 등편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방문이 닫히고 순간 방 안은 조용해졌다.
신경 쓰지 않았던 여름 쓰르라미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는 듯했다.
늙은 호인은 잠시 서서 등편을 보다 초를 태우고 있는 탁자 앞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우람한 그의 거체가 촛불의 빛에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 침상의 등편에게 손짓했다.
호인의 얼굴은 표정 변화가 많지 않아 감정 표현을 읽기가 어려웠지만, 등편은 늙은 호인이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것으로 생각했다.
호인의 손짓은 탁자 맞은편의 의자로 가있었다.
등편은 그 손짓에 동공을 맞추어 움직이다가 그것이 의자에 앉으라는 뜻임을 깨닫고 짧은 시간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누워 있는다고 뭔가 변하는 것은 없을 테니.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이불을 걷어낸 후 침상 아래로 내려가 의자에 앉았다.
등편은 심심치 않게 늙은 호인을 경계했지만 이 호인에게서 자신에 대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호감과 의문에 가득 찬 것이었다.
앉은 후에도 둘 사이에선 정적만이 일었다.
등편은 이걸 기 싸움이라 생각했는지 호인을 계속 노려보았다.
늙은 호인은 존재감만으로 상대를 위압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등편은 이를 악물고 그 힘에 지지 않기 위해 호인을 노려보았던 것이다.
호인 또한 그렇게 노려보는 등편을 촛불 사이에 두고 바라보았다. 노범의 옥색 눈동자가 알랑거리는 빛에 의해 깊게 빛났다.
등편은 깊고 푸른 눈동자가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으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호인의 안광은 정말 빨려들어갈 듯 강렬했다.
한참이 지나도 정적만이 있자 등편은 아무래도 자신이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호인의 말로 말이다.
“크르렁.”
목을 아래로 깊숙이 눌러 성대를 압박하여 소리를 울렸다. 아는 단어가 없으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왜?’라는 단어였지만 호인에게는 그게 ‘어찌하여?’라는 뜻인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호인을 살짝 반응하게 만들었다. 흠칫하며 등편의 목소리를 들은 늙은 호인은 눈동자를 더 동그랗게 뜨고 등편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내 입술을 크게 벌리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참으로 우렁찬 웃음이었다.
“크핫핫핫핫!”
웃음소리만은 사람과 별 다름이 없었다. 다만 좀 소리가 크고 과장되게 들릴 뿐이었다.
웃을 때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지만 등편은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그래, 범어를 사용할 줄 안단 말이렷다?”
호인이 웃음을 멈추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 말은 호인의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등편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말이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두꺼운 음색을 지녔지만 그것은 분명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 작품 후기 ============================
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