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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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祭]
“한데 엊그제부터 좋지 않은 풍문이 흘러나오던데 말입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인 워을칸은 이소호칸이 뭐라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기 이 장원에 인간이 침입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워을칸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소호칸은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평온한 얼굴 뒤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토록 조심을 했는데 워을칸의 귀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소호칸은 겉으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말을 건넸다.
“장원에 인간이 드나드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침입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장원 안쪽에 여자 인간들의 숙소가 있었기에 이소호칸은 그 일을 덮고자 너스레를 떨었다. 축제 준비로 인해 인간이 장원을 넘나드는 것은 부지기수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말입니까?”
워을칸이 한쪽 눈을 찌푸리며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이소호칸은 워을칸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잘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일단 남자아이가 장원을 넘어 침입했던 사실을 알고 있는 건 확실한 듯했다.
이소호칸은 이 일의 진위를 가리기 전에 이러한 일을 왜 지금 축제의 한가운데 공식석상에서 물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벽에 인간이 장원을 넘든 말든 워을칸 대족장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않소.”
이소호칸이 대화를 중단하려 하자 워을칸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아니오, 그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소호칸 대족장이 초대하여 온 손님. 그렇기에 장원 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말이죠.”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워을칸 대족장의 위신과 안위에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외다.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오. 인간이 장원을 드나드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오.”
이소호칸이 단호하게 알려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자 순간 워을칸과 이소호칸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싸늘한 공기가 둘 사이에 감돌자 슴베가 서둘러 도포를 정리하며 일어나 말했다.
“축제가 이제 시작할 터인데 왜 갑자기 이리 분위기가 가라앉았는가. 워을칸 대족장, 백모의 아버지인 이소호칸이 큰일이 아니라 하지 않는가. 손님에게 알 권리가 있다 해도 주인이 별일 아니라는 것을 계속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실례지 않은가. 기회가 된다면 축제가 끝나고 나서 물어도 되지 않는가. 지금은 모두 축제의 장을 시작하는 데 열중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나.”
본디 슴베가 대족장에게 말을 놓아가며 편히 할 수 있는 직위는 되지 못했으나 범족에서 그가 보여준 업적 그리고 나이에 비해 높은 무예, 그다음으로 현 강제의 장인어른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그에게 귄위를 계속 가질 수 있게 했다.
‘지금도 이리 말을 아끼는데 따로 만나도 말을 해주겠소?’
라는 표정으로 슴베를 아니꼽게 쳐다본 워을칸이었지만 이내 고착되어 버린 상황에 어쩔 수 없는지 입을 쩝 쩝 거리며 말했다.
“알았소. 입을 열지 않겠다면 이만 물러나겠소.”
예상외로 끈질길 거 같던 워을칸이 슴베의 말로 물러나자 이소호칸은 슴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워을칸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소호칸 대족장, 주의하시오. 내가 볼 때 당신은 인간에게 너무 무른 듯하오. 인간이 쓸모 많은 동물임은 인정하겠소. 하지만 우리 범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 수는 없소. 당신은 범어를 할 줄 아는 신기한 인간을 가르친다고 하지? 내가 볼 때에는 정말 쓸모없는 일이오. 만약 어제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인간의 반을 죽여 내 뱃속에 넣었을 거요.”
워을칸은 그리 말하고 제멋대로 자리에 앉아 대화를 끝냈다.
이소호칸은 저 워을칸의 속내를 읽기 힘들었다. 겉으로는 주의의 말을 해주었지만 입으로는 비릿한 미소를 품고 능구렁이 같은 속내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같은 대족장이지만 뭔가 기존에 알고 지내던 대족장의 성격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무엇이 되었든 워을칸 대족장이 신경 쓸 일이 아니오. 하나 그것이 축사라면 내 달게 마시리라. 감사하오, 워을칸 대족장.”
이소호칸은 오히려 속내를 알 수 없는 워을칸에게 여유롭게 대처했다.
워을칸은 입에서 미소를 지우지는 않았으나 짐짓 심적으로 짜증을 냈으리라,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짧은 논쟁이 끝나고 이소호칸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다시 징 소리와 불협화음의 악기 소리들이 어우러지면서 떨어진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렸다.
차례로 음식들이 나오고 술이 날라졌다. 범인들은 술을 보고 입술에 침을 바르며 기뻐했다. 워낙에 술을 좋아하는 그들이었지만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게다가 마신다고 해도 고작 한두 병이지 취하면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진실로 손에 꼽았기 때문이었다.
이소호칸이 주고(酒庫)의 반 이상을 이번 축제에서 풀어도 된다고 허락했기에 술은 진실로 가득히 넘쳐났다.
다행히 이번 년도 농작이 잘되었기에 새로 술을 담글 여건이 충족되어서 이소호칸이 크게 손을 쓴 것이었다.
모두 군침을 다시며 음식이 날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 한쪽에서 짧고 얇은 칼을 든 여자 호인이 수레를 끌고 장원 중앙으로 나왔다.
수레에는 공진희가 형틀에 묶인 채로 누워있었다. 그녀의 등장에 슴베는 오오, 하며 탄성을 지를 정도로 기뻐했다.
경비를 하는 수에르의 손에도 술을 담은 접시가 들려졌다. 본디 경비를 보는 자들에게는 취식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이번 축제만큼은 워낙에 규모가 큰 까닭에 경비를 보는 자들에게도 술과 음식이 제공되었다.
술은 단 한 잔만이 허용되었는데 모든 호인이 잔을 올리는 첫 잔의 순간에만 마실 수 있었다. 수에르의 손에도 잔이 올라간 이유가 바로 그 첫 잔의 순간이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첫 잔의 순간. 그 처음을 장식할 음식이 나오고 있었다.
수에르는 공진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계속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차라리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수에르는 생각했다. 앞으로 그녀에게 일어날 일은 생애의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일 테니 말이었다.
이소호칸의 술잔이 들리자 모두 자신의 앞에 담긴 술잔과 접시들을 손을 뻗어 하늘로 올렸다. 이는 기쁨을 서이피나에게 감사히 올린다는 그들만의 의식이었다.
수에르 또한 주변의 열광에 마지못해 잔을 들었다. 그렇게 모두의 손이 올라가자 장원 가운데의 칼이 놀려졌다.
둥글게 나온 여자의 배가 시퍼런 칼날이 길게 떨어지자 빨간 실선을 그으며 핏방울이 흘러 아래로 떨어졌다.
공진희가 순간 움찔거리는 것을 보고 수에르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움찔거리긴 했으나 그녀는 이미 정신이 떠난 듯 그 외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칼은 그녀의 생명이 담긴 배를 조심스럽게 다시 베어냈다. 노란색의 지방들이 떨어지고 분홍색 근육들을 베어내자 그 속의 작은 생명이 보였다. 그것은 어머니의 배에서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범인들은 웃으며 즐거워했다. 인간에게는 가혹하고 천륜을 벗어난 짓이었지만 범인들에겐 최고의 볼거리고 축제였다.
빨갛게 물든 어미의 뱃속에서 아이는 범인의 손에 들려 탯줄이 잘려졌다.
어미와의 연결된 줄이 잘려지는 그 순간 범인들은 모두 높이 든 술을 입으로 가져다 대어 단숨에 들이켰다.
한 박자가 늦었으나 수에르 또한 술을 들이켰다. 평소 같으면 좋아하는 술이 달콤하게 목 뒤로 넘어갈 텐데 오늘만큼은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맛이 쓰고 더러웠다.
모두가 술을 마시자 공진희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 호인이 아이가 채 울기도 전에 칼로 네 등분을 하여 슴베와 그름타, 워을칸, 이소호칸에게 주었다.
그러곤 공진희를 잘라 각 족장들에게 나누었다. 이것은 축제를 시작하기 위한 범족의 첫 식사였다.
입술 한쪽으로만 비릿하게 웃던 워을칸마저도 두 입가로 흡족하게 웃으며 대족장에게 음식 배분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이소호칸이 그 작디작은 아이의 몸을 통째로 입에 넣자 대족장들이 따라 아이를 먹음으로써 축제가 시작되었다.
인간의 고기로 시작한 축제는 그들에게 매우 흡족한 듯했다. 족장들이 따라 고기를 취하고 휘하들이 축제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수에르는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수에르의 앞에 축제의 음식들이 속속 날라져 왔다.
수에르는 음식들을 무미건조하게 입안에서 씹고 넘겼다. 그러곤 잠시 자리를 비운 후 화장실로 가 먹었던 음식 모두를 게워냈다. 손가락을 목 뒤로 깊숙이 넣어 하나도 남김없이 토해 냈다.
수에르는 축제에 나온 음식과 물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이번 축제는 즐길 수 없는 축제였다.
친우의 죽음과 친구의 애인, 그리고 그 자식이 죽은 제사였다. 그러므로 축제의 음식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서 수에르를 제외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는 자는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행한 행동이었다.
축제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의심을 살 만했다. 수에르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자신에게 오는 음식을 먹고 토해 내었다.
매우 곤혹스럽고 배가 주려오며 역류한 위액이 목을 태우는 듯했으나 수에르는 결국 축제가 계속되는 사흘간 의지력 하나로 그 행위를 계속 반복했다.
* * *
워을칸이 축제 둘째 날에 서신을 남기고 돌아간 것을 제외하고는 축제는 매우 성황리에 끝이 났다.
장원에 있는 자들뿐만이 아니라 장원 밖 외각에 거주하는 백모 지파의 범인들까지도 모두 먹고 마셨다. 백모 지파 곳곳에 술이 전달되었기에 범족에겐 오랜만에 술을 마음껏 들이켤 수 있는 즐거움이 넘쳐나는 축제였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저 쓸쓸한, 아니 종전의 날보다 더 암울한 기간이었다. 본래 축제 때 인간들에게도 음식이 내려질 예정이었다.
범족들이 먹고 마시는 것에 비해서 초라하고 미약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것은 평소에 먹기 힘든 고기와 다양한 음식들이었다. 모두가 그것을 기대하고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었다.
하지만 일약 이마진의 사태 때문에 인간들에게 내려진 것은 엄숙한 고요뿐이었다. 투덜거리고 욕을 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것도 이내 잦아들어 침묵만이 감돌았다.
기대한 것이 오기는커녕 ‘축제에 거슬리지 않게 집 안에서 조용히 닥치고 있어라’, 가 인간들에게 내려진 것의 전부였다.
심지어 인간에게는 사흘간 내려지는 모든 곡기를 끊었다. 모두 장원 쪽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음식 냄새만을 맡으며 주린 배를 움켜잡을 수밖에 없었다.
무명 또한 유기이의 집에서 곡기를 끊고 근신하고 있었다. 유기이에게는 축제의 음식과 술이 날라져 왔지만 유기이 또한 축제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상 먹던 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유기이 역시 곡기를 끊으려 했으나 온주로에게 젖을 먹이기 위한 영양이 필요했기에 오로지 밥을 굶는 것은 무명뿐이었다.
무명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는 동시에 이마진과 공진희를 기리기 위해 곡기를 끊었다.
유기이가 몇 번 음식을 가져왔지만 무명의 결단은 확고했다. 무명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인간들도 현재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는데 제가 댈 순 없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그 이후 무명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물조차 입에 대지 않은 채 방구석에 정좌하여 묵언을 계속했다.
유기이 또한 무명에게 더 이상 말을 걸거나 음식을 권하지 않았다.
무명이 입술을 연 것은 축제가 끝난 후 갑자기 찾아온 낯선 방문자 때문이었다. 그 방문자는 굳게 닫혀있던 무명의 입을 열게 했다.
* * *
축제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난잡해진 장원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취한 호인들은 난잡하게 떠들고 난폭하게 음식을 먹었다.
사흘 밤낮 이어진 축제였기에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 또 먹었다. 음식과 술은 계속 날라졌기에 장원은 그동안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더러워지지는 않았지만 술을 거의 무한정으로 퍼준 이소호칸 때문에 대다수가 만취가 되었고 정신없이 백모 지파의 장원을 황폐화시켰다.
축제가 끝난 나흘째 정오까지 장원에 늘어져 있던 범인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축제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축제에 초대된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기 지파로 돌아갈 채비를 할 때 장원의 문 앞으로 한 범인이 다리를 절며 다가왔다.
문 앞에서 경비를 보던 범인 하나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 범인에게 물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입니까, 영감?”
“형님을 뵈러 왔다.”
약간 구부정한 허리, 뜨거운 불길에 갈기의 끝은 휘어져있어 볼품없어 보였지만 대장일로 다져진 몸의 근육은 노쇠한 그를 다부지게 지탱하고 있었다.
비록 누추해졌지만 동쪽 지파의 자랑스러운 백색 갈기를 이렇게 풍성하게 가진 자는 이소호칸을 제외하고 한 명밖에 없었다.
선고우. 이소호칸의 동생이 직접 몸을 이끌고 장원으로 온 것이었다.
선고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경비를 서던 범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영감, 안쪽은 축제 마무리로 매우 소란스럽소. 이따 오후에 찾아오는 게 어떻겠소.”
그의 말투는 명백히 귀찮다는 어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 기간 초병들은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에 피곤함이 극대로 고조되었기 때문이었다.
축제 기간에 주먹다짐과 결투가 빈번하게 일어났기에 소란스러운 축제를 정리하기 위해 초병들은 안간힘을 써야 했다.
또한 술을 마시는 것은 좋지만 대다수가 과하게 마셔댄 탓에 만취한 취객들의 뒤치다꺼리는 정신이 멀쩡한 초병들이의 몫이었다. 워낙에 휴식 시간도 짧고 인원이 없어 장원 문을 지키는 일까지도 혼자 서야만 했다.
심신이 지쳐 그는 가볍게 차후에 오라는 말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선고우에게는 그 말이 신경에 거슬리기엔 충분했다.
오른손 위에 들려있는 지팡이가 몸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그의 근육에서 나오는 강함은 충분히 대우받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불구의 신세. 기량의 십 분지 일에도 안 되는 젊은 녀석에게 깔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선고우는 어렵게 가슴속 울분을 넘겨두고 다시 말했다.
“이 늙은이가 이런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다시 오라는 것은 과한 처사가 아닌가. 잠시 형님을 만나 이야기만 하고 갈 것이니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
선고우가 자신을 고르고 골라 차분하게 말했지만 상대는 선고우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대답했다.
“영감, 아무리 그리 말씀하셔도 대족장님께서 손님 이외의 사람을 장원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명도 있고, 나중에 오는 게 좋겠…….”
순간 보초를 담당하던 범인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어야 했다. 너무도 큰 살기가 그를 덮쳐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직감하고 몸을 피하려고 했으나 이미 위험은 번개와 같은 빠르기로 자신을 덮치고 있었다.
“크어어!”
초병의 턱 안쪽으로 두툼한 손가락이 들어가 있었다. 선고우의 손이었다. 목을 조르는 순간적인 악력에 초병은 잇새로 새어나오듯 비명을 질렀다.
“뭐라, 손님만? 혈족인 내가, 동생인 내가 형님을 뵈러 가는 것도 이렇게 고되게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 나를 대체 무엇으로 보는 것이냐.”
선고우의 옥색 빛깔 눈이 선명하게 빛을 받아 반짝였다. 의욕이 없고 기가 빠져있는 그의 눈동자가 활기에 가득 찼다. 물론 그 활기의 원동력은 분노에서 오는 것이었다.
선고우는 눈을 치켜떠 괴로워하는 초병을 바라보며 손을 천천히 올렸다. 형을 닮아 워낙 몸집이 크고 팔이 길었기에 초병은 곧 다리를 지상에서 떼고 선고우의 오른쪽 팔에 지탱해서 몸이 들어 올려졌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두 손을 들어 상대의 팔을 잡아 손톱을 꺼내어 할퀴었지만 선고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주, 아주 날 짚단 보듯하는구나.”
선고우는 그대로 팔을 내려 그를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는 등부터 땅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먼지구름을 만들어냈다. 먼지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최하가 기절한 것이 분명했다.
선고우의 팔은 손톱으로 생긴 상처들 때문에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초병을 넘어 장원으로 절뚝거리며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