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Bird RAW novel - Chapter 127
제 목 : [암천명조] 4 권 제 28 장 – 3
“낄낄낄! 그놈들이야 죽어도 상관없어. 네놈들만 죽인다면 그런
놈들은 언제라도 만들 수 있어.”
무슨 말인가? 오수개 혼자 대문파를 이끄는 수장들 전부를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옥주봉에 있는 놈들은 난등신공 오 수를 익혔다. 하지만 흑거를
상대할 수는 없다. 살아 있는 괴물이니까. 이놈들을 빨리 죽이고
달려가야 한다.’
오수개는 마음을 굳혔다.
“들어와라.”
빈 허공 중에 내뱉는 말.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응답
소리가 없다.
“휴우! 삼지, 잊어버린 것이 있소. 일지는 내 아들놈과 가도귀를
마령신체(魔靈身體)로 만들었소. 하지만 조무양은 내버려두었지.
비접사화가 섭혼금령대법을 시술한 사람은 모두 셋, 그게 실수였소.”
아! 마령신체(魔靈身體)!
섭혼금령대법을 시술하면 혼을 잃는다. 그들을 강산에 담가 오백 일간
정련하면 도검불침의 신체가 된다. 강시대법을 잡술(雜術)로 만들어
버린 마령신체.
“그럼, 조무양이……”
“영이 통하는 사람들이오. 가도귀와 아들놈은 흑거를 따라갔소. 삼지,
이제…… 그대는 혼자요.”
“낄낄낄……!”
오수개는 한참을 웃었다.
평생을 쌓아 온 야망이 물거품으로 변했다. 실망과 좌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멍하고 웃음만 실실 나온다.
난등신공을 일으켰다. 극성으로 끌어올릴 필요도 없다. 손을 들어
통천혈(通天穴)을 내리쳤다.
퍼억!
붉은 피와 뇌수가 비산하고, 오수개는 탁자에 엎어져 편안한 안식을
찾았다.
“미련한 친구……”
신종한은 오수개의 시신을 안아 들었다.
“무림을 제패해서 무얼 하려고……”
한걸음씩 걸음을 떼어 놓았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침통했다. 오랜 세월 벗으로 만난 사람이 천단 사람이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여러분, 이제부터 나는 무림맹주가 아니오. 오랜 약속…… 휴우!
약속을 지키러 떠나겠소.”
불패검왕은 조소봉의 손을 잡았다.
자식을 버린 아버지, 오빠를 버린 누이.
흑거를 따라간 사람은 살아 오지 못한다. 그걸 알면서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령신체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니까.
* * *
두두두두……!
흑거는 옥주봉으로 들어섰다.
산길은 흑거가 지나갈 만큼 넓지 않았다. 그러나 흑거는 조그만
협곡을 거침없이 달렸다.
끼이익! 덜컥!
마차 바퀴가 부서질 듯 요동했다. 마차와 함께 통으로 만든
바퀴라지만 틈새는 있는 법. 흑거는 바위투성이의 협로를 지나기에는
적당치 않다.
핑! 데구르르……! 덜컥!
드디어 바퀴가 빠져 나가고 마차가 주저앉았다.
히히힝! 푸드득……!
준마들은 입으로 더운 김을 뿜어 낸다.
풍여위는 준마들을 잠시 어루만지더니 검을 뽑아 목을 내리쳤다.
이것이 말들에게는 편안한 죽음이다. 비릿한 냄새가 협곡에 가득
번졌다.
조무양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지필묵을 잡아 갔다. 그리고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 한 자를 썼다.
조무양은 화선지를 집어 단혜련의 손에 쥐어 주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인간. 말만 하면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비애.
단혜련은 조무양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눈빛이 흔들린다. 그러더니 손을 빼고 가라 손짓한다.
고개를 돌렸으나 눈에서 눈물이 흐름은 분명하다.
단혜련은 마차에 설치된 손잡이를 일수에 파괴했다.
화진(火陣).
흑거의 마지막이다.
단혜련은 조무양을 쳐다보지 않고 마차를 뛰쳐 나갔다. 쳐다본다면
차마 내버려둘 수 없기에.
일 다경만 지나면 화진이 발동하고, 사방 이십 장은 죽음으로
가득하게 된다.
여동겸은 조무양의 손을 힘껏 잡았다.
“조 공! 웅필대감 그리고 나는 조 공을 잊지 않을 것이오.”
조무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겸이 빠져 나오고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다.
휘익! 휙!
두 줄기 그림자가 흑거로 짓쳐 들었다.
깡마른 몸매의 가도귀와 쇠약한 병검 허중광.
그들은 서슴없이 마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콰앙! 콰아앙……!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곤오철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차는
순식간에 둥근 환으로 변해 버렸다. 흑거에 설치된 모든 암기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흑거가 파괴되면서 섬모는 붉은빛으로 변했다.
나무고 풀이고 바위고 모든 것을 갉아먹었다. 곤오석도 부식되는가
싶더니, 금세 한줌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조무양도,
가도귀도, 병검도……
붉은 섬모는 이십 장까지 번식하더니 멈췄다.
흑거를 중심으로 해서 이십 장 반경을 섬모가 번식하는 한계로 정해
놓았다.
연청운과 철구백 일행은 옥주봉 법왕사(法王寺)를 짓쳐 들어갔다.
안에는 불도에 전념하는 승려 대신 검을 찬 무인들이 백여 명이나
있었다.
난등신공 오 수 대 오 수.
인원수로 승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변수가 있으니, 그것은
연청운이었다. 그녀가 익힌 난등신공 십 수는 가히 무적이었다.
단혜련과 풍여위, 여동겸도 가세했다.
검을 잡은 지 오래됐지만 풍여위의 검공 또한 놀라웠다. 비록
난등신공을 익힌 것은 아니지만 무공 정도는 육 수를 익힌 사람과
다름없었다.
일 각, 이 각……
창! 으악! 퍼엉……!
잡다한 소리와 붉은 피가 청정한 법왕사를 더럽혔다.
철구백이 죽었다.
염왕검(閻王劍)을 피하고 쇄옥지(碎玉指)를 전개하는 순간 척추에
틀어박히는 검날을 느꼈다. 모래성처럼 주저앉는데 차가운 감촉이
목덜미에 닿았다.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여동겸이 죽었다.
난등신공을 익히지 못한 여동겸은 처음부터 이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한 사람도 죽여 보지 못한 채 양손이 떨어지고 가슴에 쇠꼬챙이를
박았다.
비검은 나름대로 버텼다.
하지만 그도 이미 한 팔이 절단된 상태였다. 다행히 왼손이 절단된
관계로 검을 전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 일 인의
가슴에 검을 틀어박았다.
귀제갈은 피로 얼룩진 겉옷을 신경 쓰면서 풍여위에게로 다가갔다.
“천마맹을 재건하려고 해요. 도와 주겠어요?”
풍여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독비도객은 죽었겠지?”
“아마…… 그렇겠죠.”
귀제갈의 눈은 산 밑으로 치달리는 단혜련과 연청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지막 격전지로 달려가고 있다. 연인과 조부가 있는
곳으로……
“천단주도 죽겠지?”
“천하무림인들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죠.”
“도와 주지. 대가는?”
“저를…… 드리면 안 될까요?”
“청혼인가?”
“당신은 오래 살 것 같으니까요.”
풍여위는 손을 내밀었고, 귀제갈은 마주잡았다. 그들이 갈 길 또한
험로이겠지만 재미는 있으리라. 둘이 함께하니까.
비검은 하염없이 단혜련이 떠난 자리를 응시했다.
* * *
녹무수는 비도를 꺼내 들었다.
“천단주, 맞나?”
“크흐흐! 어린 놈, 많이 컸어.”
노야의 음성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괴음이었다.
“사람이 아니군.”
“끼끼끼! 암, 사람이 아니지. 나는 신이야.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신(神).”
“물론 나도 죽일 수 있겠군.”
“끼끼끼! 말이라고 하나?”
그때였다.
“나도 죽여 주시오.”
맑은 음성이었다. 노검이었다.
“흐흐흐! 다 죽인다. 다 죽인다……”
노야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노검은 녹무수를 보면서 씩 웃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지만 원수가 같으니 어쩔 수 없지. 내
무공으로는 여기 죽어 있는 친구들도 어쩔 수 없어. 지겹도록
형편없는 무공이지. 하지만 선수는 내게 양보해.”
녹무수는 한걸음 물러섰다. 선수를 양보했다. 어차피 노검은 상대가 안
될 터이고, 죽을 테니까.
“고맙다. 참! 내가 입고 있는 장삼, 기억 안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