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2
190화 흑룡문
“뭐라! 전원 참수를 당했단 말이냐?!”
털썩.
한중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수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다리에 힘이 빠진 그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전왕문주가 잔학무도한 성격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원 참수라니.
마도와도 같은 처벌 방식이 아니던가.
으득.
공손적산이 이를 악물었다.
백청회주, 면섬검 공손적산.
무당의 속가제자 출신으로 유화상단주의 둘째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무의 천재라 불렸다.
그 재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한번은 무당파 장문인이 직접 진산제자가 될 것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는 장문인의 권유를 완곡히 거절했고.
피 나는 수련 끝에 절정고수가 되어 백청회를 만들었다.
그렇게 이십 년.
백청회는 한중 제일이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더는 이룰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한중을 지배하던 구룡성이 떠나고 그 자리에 전왕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잡 문파가 들어온다는 소식.
귀가 번쩍 뜨임과 동시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전왕문이 한중을 가졌다는 건, 백청회도 가능하다는 뜻이었으니까.
곧장 전왕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문주인 투룡 진무전과 철혈패 육학, 아홉의 절정고수, 칠백의 무사.
무시무시한 전력이었지만, 한중 무림의 힘을 모으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우선 형오보와 도검문에 막대한 이권을 약속하고 힘을 합칠 것을 약속받았다.
동시에 구룡성과 정도맹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
극한의 대립 상황을 만든 뒤, 두 세력을 중재해 달라 요청할 심산이었다.
그를 위해 전왕문을 흑도로 낙인찍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온갖 인맥과 재물을 동원하여 데려온 초고수까지.
이제 남은 건 적당한 명분을 얻어 전왕문과 싸우는 일뿐.
하지만, 전왕문은 철저하게 싸움을 피했다.
온갖 시비를 걸고 행정을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포악함을 넘어 잔인무도한 성격을 가졌다는 전왕문주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결과였다.
덕분에 공손적산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형오보와 도검문의 압박이 계속된 건 물론, 초빙한 고수에게도 황금이 계속 들어갔다.
이에 공손적산은 무리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제자들을 동원하여 물리적인 충돌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던진 무리수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형오보와 도 검문에 전해라. 때가 되었다고.”
이렇게 된 이상 기호지세다. 어떻게든 기회를 살려야 한다.
“예!”
공손적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 * *
“문주님! 신발이 더러워집니다. 금방 청소를 마칠 테니…….”
“뭘, 이 정도로.”
찌걱. 찌걱.
피바다가 된 연무장을 걷자 신발에 굳은 피가 달라붙었다.
꼭 죽은 망자들의 원혼이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이런 거 보면 나도 무림인 다 됐네.’
피를 봐도 별 감흥이 없으니 말이야.
털썩.
계단에 걸터앉아 전왕문의 전경을 바라봤다.
히이잉. 히잉-
커다란 마구간에선 칠백 마리의 말들이 울음을 내뱉었고.
육백이 넘는 문도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도를 뿜어내면서 바삐 움직였으며.
한쪽에 마련된 식당에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지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정말 멀리도 왔다.’
저 모든 게 내 거라니.
개뿔도 없이 시작한 무림 생활이었는데 그동안 많은 것을 이뤄 냈다 싶다.
‘흐음…….’
훗날 작성할 자서전의 제목을 잠깐 고민했다.
‘고아 거지가 환생을 숨김? 알고 보니 북궁세가 후계자? 아니야. 차라리 전지적 무전이 시점이 더…….’
그렇게 헛생각을 하던 차.
“누구냐?!”
“멈추지 않으면 찌르겠다!”
정문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왔군.”
쿵.
한달음에 날아가 정문의 처마 위로 올라가니 예상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파와 흑도를 불문하고 오백이 넘는 한중의 무림인들이 도열해 있었던 것이다.
흑도를 경원시하는 풍조를 생각했을 때 이는 결코 쉽고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을 이끄는 세 명의 남자.
바로 백청회주와 형오보주, 도검문주였다.
아, 참고로 한중도검문의 문주 같은 경우 월하루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선물이라면서 비싼 술을 사 주기도 했고.
“도검문주는 오랜만이네?”
“크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자 불편하게 받았다.
상황이 상황이니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대인이라 저 정도에 삐치지 않는다.
그냥 일기에만 살짝 적을 뿐이다.
한중도검문주가 싸가지를 숨김. 이렇게 말이다.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강철 갑주를 입은 아홉이 날아왔다.
종극린, 만풍, 당양강, 서인청, 덕산, 당진형, 당팔, 우제준, 이금.
철혈일로부터 구로의 로주를 맡고 있는 아홉의 고수였다.
그리고.
“간덩이가 부었군.”
후우웅.
철혈패 육학까지.
육학 노인네는 나한테 패배한 전력이 있는, 나보다 한 수 아래의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칠패에 속한 고수답게 엄청난 기세를 뿜어냈다.
뭔가 밥을 먹지 않아도 든든한 느낌이었다.
반면, 그런 전왕문의 전력을 확인한 한중 무림인들의 표정은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원래 직접 겪어 봐야 무서운 줄 안다.
타이슨 형님도 맞기 전에는 누구에게나 계획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펼쳐지자.
“전왕문주는 들으시오!”
백청회의 회주 공손 뭐시기가 앞으로 나섰다.
“전왕문은 구룡성으로부터 한중의 안녕과 번영을 책임지라는 명을 받았음에도 백성 서른 명을 무참히 죽였다. 이에 나 백청회주 공손적산은 한중의 백성들을 대신하여 전왕문의 만행을 구룡성에 알리는 한편, 전왕문에 맞서려 한다.”
내공을 담은 목소리가 주위를 쩌렁쩌렁 울렸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저러는 거다.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함으로 보였다.
그게 바로 명분이 되고 방패가 될 테니까.
“하나! 전왕문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지금 즉시 한중을 떠난다면 이 결정을 철회할 수 있으니 지금 즉시 답을 요구하겠소이다!”
“지랄하네.”
“진정 전왕문주는 이들의 분노가 보이지 않으시오?! 서른이나 되는 백성을 죽였음에도 진정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오?”
선동질 실력을 보아하니 저 새끼 저거 아무래도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 같다.
1900년대 초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나치당의 주요 임원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뭐, 질문을 들었으니 대답은 해 줘야지.
“여기 백성들이 있나? 내 눈엔 구룡성에 반하는 역도들만 보이는데 말이야.”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구나! 피를 그렇게나 봤음에도 또 보자는 것인가!”
피식.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놈이 아무리 비난해도 AOS 리그에서 다져진 내 멘탈에는 어떠한 흠집조차 낼 수 없으니깐 말이다.
“공정한 법을 집행하는 무사들을 공격한 놈들이다. 그것도 천하제일 마도라 불리는 십마련의 코앞에서. 이게 역적질이 아니면 뭐지?”
“……정녕 끝까지 가 보자는 거로군.”
백청회주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더는 전왕문의 횡포를 두고 볼 수 없다!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한중의 백성임을 부정할 것이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함께 온 이들을 향해 외쳤다.
“내 말을 따르는 자는 지금 즉시 집으로 돌아가 상복으로 갈아입어라! 내가 직접 장례를 주관하여 죽은 원혼들을 위로하겠다! 장례가 끝난 후, 수하들의 목을 구룡성에 보내어 따져 묻겠다!”
우르르.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쇼.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 아마 내성에 줄을 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 봤자 백룡당이랑 은룡당이겠지만.’
일단 공론화를 시키고 난 뒤 무슨 수작을 부리겠지.
상상도 못 할 고수를 초빙했을지도 모르고.
앞에 모여 있던 오백의 무인들이 하나둘 자리를 빠져나갔다.
어느샌가 다가온 유소평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이는 게 편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최악은 놈들과의 싸움이 장기화하는 거니까.
비록 한중에는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유소평의 의견대로 이 자리에서 끝내 버리는 게 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사흘 안에 자멸할 테니까.”
“아무리 흑사문주가 뛰어나다 해도 저들은 수십 년 이상 한중에 자리 잡은 유지들입니다. 사흘은 너무 빠릅니다.”
“걱정하지 마.”
우려가 잔뜩 담긴 유소평의 눈을 마주 보았다.
“든든한 조력자가 있잖아?”
* * *
돈향루.
용체의 지엄한 명으로 주방에서 부대지개를 만들고 있던 박룡문주 북궁장환은 여느 때와 같이 재료 손질을 하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돼지고기를 담은 포대 자루에 미리 정해 둔 암호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八二八二.
최대한 빠르게 행동을 개시하라는 신호.
북궁장환이 재빨리 후원으로 가 북궁창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고맙네.”
“흥.”
북궁창이 곧장 부하들을 소집했다.
작전명, 한중 상륙 작전.
순식간에 몰아쳐 한중 무림을 개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용체의 뜻이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알았다. 내가 신호를 주면 곧장 움직이도록.”
“예.”
준비를 마친 북궁창은 한중의 최중심지를 향해 걸어갔다.
용체가 정해 준 조력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처음 뵙겠어요. 한중상련의 총관, 묘향이라고 해요.”
아름다운 외모와 현명함이 깃든 눈빛을 확인한 북궁창은 확신했다.
“강호의 잡졸 북궁창이 부인께 인사 올립니다.”
“부, 부인……!”
그렇게 반 시진.
상의를 마친 북궁창은 자신 있게 말했다.
“일은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다고 전해 주십시오. 진 부인. 아니…… 사모님.”
“그, 그이도 굉장히 만족스러워 할 거예요.”
그렇게 시작된 상륙작전.
흑사문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주루와 기루가 널려 있는 유흥가였다.
우르르.
그들은 열 명씩 몰려다니며 자신들에게 보호세를 내라고 루주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 소식은 해당 기루에서 보호세를 받는 흑도들에게 전해졌다.
아무리 장례식 중이라지만, 자신들의 구역이 침범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저놈들이다!”
“한 놈도 성히 보내지 마라!”
그들은 상복을 입은 채로 달려갔다.
하지만.
“잡졸들이다. 두 군데씩만 부러뜨려 놔라.”
상대는 그 옛날 북궁세가 흑룡대의 진전을 이어받은 흑사문이다.
빠악. 콰직. 콱!
허접한 흑도들로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흑사문은 그 광경을 본 루주들에게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 일 년 동안은 달에 은 한 냥씩만 받겠소. 어쩌시겠소?”
은 한 냥.
기루들이 보호세로 바치는 돈의 평균이 은 열 냥인 걸 감안했을 때 십분지일밖에 되지 않는 액수.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터지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서 받는 돈치곤 너무 적지 않은가.
하지만, 한중 유흥가의 주인들은 수십 년간 상권을 유지해 온 이들.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처음 본 당신들을 믿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소. 당장 구역 정리도 안 된 것 같고.”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우린 후불로 받을 테니까.”
후불이라니.
이건 안 받을 수 없는 조건이 아니던가.
“하, 하겠소. 당신들에게 보호세를 줄 테니 꼭 이기시오!”
한중 유흥가의 루주들이 한목소리로 흑사문을 응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