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36
235화 성주 북궁백(3)
이백만 냥.
현대 가치로 이조 원이 넘는 이 엄청난 돈을 요구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구룡대회가 열리기 얼마 전, 백중천은 나를 찾아와서 사부와 함께 구룡성을 떠나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산서상방에서 발행한 전표다. 은 이백만 냥짜리지. 이 정도면 어디 가더라도 왕 노릇을 하며 살 만한 돈이 아니냐.’
즉, 지금의 백가장은 저 돈을 현금화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구룡성을 통째로 잡아먹는 데는 푼돈이나 다름없지만, 저런 거금을 쉽게 마련했을 리가 없다.
아마 현금화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팔아치웠을 것이다. 설령 나와 사부를 회유하는 데 실패해도 돈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놈의 계획은 실패했고, 이백만 냥은 고스란히 남아 있을 터.
그럼 어떻게 해야겠는가.
뺏어야지.
“왜? 싫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다.”
“목숨값은 원래 비싼 법이지.”
“…….”
무언가를 생각하는 중인지 백중천의 눈동자가 마구 움직였다.
‘여기까지 와서 돈이 아까운 건 아닐 테고…….’
놈을 좀 더 흔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싫으면 관둬. 어차피 거래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백가장이 이백만 냥짜리 전표를 들고 있는 걸 알고 있는데 내가 그냥 보낼 것 같아?”
“뭣?”
“철혈패가 이끄는 전왕문의 오백 기마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 백가장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말이야. 돈이야 뭐, 시체를 뒤져서 찾아보지.”
뻥이다. 오백 기마는 무슨.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명색이 정파 협회에 소속된 자로서 강도질까지 하겠는가.
게다가 성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하늘하늘한 종이에 불과한 전표다. 젖거나 찢어지게 되면 본인이 찾아가서 다시 발급해야 한다.
백중천 역시 이를 알고 있을 터.
“그렇다고 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비록 내 핏줄은 아니라 하더라도 백가장의 무인이다. 가져다 바칠 바엔 차라리 찢어 버릴 것이다.”
역시나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걸 곧장 알아차렸다.
“사실 돈은 크게 상관없어. 그냥 백씨들 씨를 말리는 것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거든. 백가장 최후의 날. 캬, 생각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하네.”
괜히 사람 죽여 봤자 시체만 나오지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돈이 가장 중요하지.
“죗값을 치르고 떠나는 이들을 몰살하다니. 그런 짓이 용납될 수 있을 것 같으냐?”
놈이 당황한 듯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용납되니까 하는 소리지, 그냥 했을까. 황주상단, 기억하지?”
한때, 구룡성의 군납 상단으로서 인신매매를 저지른 게 밝혀져 관련자 전원이 참수된 상단이다.
당시 나는 그들을 치는 와중에 백룡당과 부딪친 일이 있었다.
“우리는 관련이 없다!”
“관련이 없긴. 납치된 여아들을 사다가 거래에 이용한 걸로 알고 있는데. 장부 가져다줄까?”
이건 거짓이 아니다. 하오문에게 직접 부탁하여 알아낸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주상단을 치는 나를 공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덕분에 나는 많은 돈을 써서 여아들을 찾아 집으로 보내거나, 그도 여의찮으면 하오문에 취직시켜 지내게 했다.
이 사실을 진즉 밝히지 않은 이유는, 의심스러운 정황은 넘치지만 실질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증거 따윈 필요 없다.
시전거리에서 ‘백가장이 알고 보니 인신매매에 가담했답니다!’ 하고 소리만 쳐도 죽일 놈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그걸 짐작한 백중천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렀다.
“정해. 백가장이 사마외도의 무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씨 몰살을 당할 건지, 아니면 약간의 재산상 손해만 입고 백가장의 명맥을 지켜 나갈 건지.”
“……너를 어찌 믿을 수 있나?”
“못 믿으면 다른 방법은 있고?”
“알았다. 네 말대로 하지.”
“좋아. 전표는 어디서 받으면 되지?”
“백천상방 가장 안쪽 창고에 숨겨 놨다. 구석에 있는 항아리 밑을 파보면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나는 백가장이 보유한 현금 대부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흘 뒤.
“…….”
처형장으로 끌려 나온 백중천과 눈을 마주했다.
뜨겁지만 차가운 눈빛.
비록 단전이 부서진 탓에 전음을 보내오진 못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전달받았다.
약속을 지켜라.
나는 그런 그의 눈빛을 똑똑히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인, 백중천은 들어라! 그대는 사사로운 권력욕에 사로잡혀…….”
안심이 되었는지 자신의 판결문이 들려오는 와중에도 백중천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촤확!
한때 구룡성의 기둥이라 불렸던 백룡당주의 마지막이었다.
* * *
백중천의 처형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협상한 대로 이백만 냥짜리 전표를 받고 백룡당…… 아니 이제는 백가장이 된 그들이 몸 성히 추방될 수 있게 도왔다.
십만 냥의 벌금만을 매겼을 뿐 직계 및 방계들의 목숨과 무공을 빼앗지 않았고, 가산을 챙길 시간을 주었으며, 사부에게 부탁해 구룡성의 누구도 그들을 쫓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이건 은성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들은 나와 거래를 하진 않았지만, 백가장에만 특혜를 베풀기엔 너무 티가 났거든.
그리고 뭐.
‘은룡당주는 이용만 당한 거니까.’
그의 아들 은룡창하고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이에 청룡당주와 금룡당주를 필두 몇몇 당주들이 반대의 의견을 펼치고, 문상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보내 준다면 구룡성의 법도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부는 단 한마디로 그들 전부의 반발을 뭉개 버렸다.
“따르도록 하라.”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직 정권 초기라서 레임덕이 오려면 멀었는걸.
덕분에 나는 백중천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성에서 쫓겨나 외성에 있는 장원에 머무는 백가장으로 향했다.
“누구 없느냐?”
“다, 당신은?!”
챙챙챙.
나를 알아본 무사들이 검을 뽑아 겨눴다.
“환영 인사가 너무 거친데?”
물론, 지금의 나는 구룡공화국 수령님의 첫째 아들이나 다름없는 신분.
감히 대역죄인들의 식솔들은 나를 공격하지 못했다.
저벅저벅.
그렇게 무사들을 무시하고 걸어 들어가자 집안 어르신들과 함께 백무하가 나타났다.
피로, 짜증, 분노가 섞여 있는 얼굴.
천룡회라는 특권 계층을 이끌며 특권 의식에 찌들었던 백무하는 온데간데없었다.
“잘 지냈수?”
“지금은 바쁘니 그만 돌아가라.”
“잘 못 지냈나 보네. 이리 날카로운 걸 보면.”
그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명색이 목숨의 은인인데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 하는 거 아닌가?”
“…….”
놀라지 않는 것을 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은 파악한 모양.
잠시 입술을 깨물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라.”
그렇게 그를 따라 작은 객실로 들어가자 시비가 차를 가져왔다.
“오, 차 맛이 괜찮네. 아직 살 만한가 봐?”
“…….”
사실 이렇게 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패배자가 된 백무하의 낯짝을 구경하기 위함이었고.
‘백룡당을 잡아먹어 오래된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거니까요.’
다른 하나는 사부를 설득할 당시에 밝힌 포부처럼 백룡당을 먹어 치우기 위함이었다.
자산을 흡수하는 것이야말로 백룡당을 먹어 치우는 가장 빠른 길이었으니까.
백중천에게 받은 이백만 냥으로 말이다.
“가산을 팔고 있다면서?”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상관없긴. 지금 구룡성에서 현금이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바로 난데.”
참고로 첫 번째는 금룡당주다.
“웃기지도 않는군…….”
백무하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역시.’
이놈은 이백만 냥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고.
알았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툭.
그의 앞에 야명주가 가득 들어차 있는 전낭을 던졌다.
입구의 틈에서 새어 나온 영롱한 방사선이 탁상을 밝혔다.
비록 건강에는 좋을 리 없지만, 무림 세계에선 말도 안 되게 비싼 물건.
야명주로 가득 찬 저 전낭 하나의 값어치는 만 냥이 넘는다.
당연히 백무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전대 성주가 숨겨 놓은 보물이라도 찾은 모양이구나.”
뭐, 이상한 오해를 시작한 것 같지만 나쁠 거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내가 백가장의 재산 이백만 냥을 먹어 치운 걸 알면 쓸데없이 분개할 테니까.
“그건 알 거 없고. 팔 거야, 말 거야? 싫으면 그냥 돌아가고.”
“얼마나 가지고 있지?”
“어떻게 상상하든 그 이상을 가지고 있지.”
“전대 성주가 많은 것을 남겨 줬나 보군.”
“뭐…… 대충?”
“좋다. 협상을 하지.”
백무하가 밖을 향해 외쳤다.
“거기 누구 없느냐!”
“예, 공자……. 아니, 가주!”
“지금 즉시 총관을 불러오거라.”
“예!”
그렇게 시작된 협상.
그들은 가장 먼저 자신들이 가진 게 뭔지 보여 줬다.
“……이렇게 많다고?”
오백 년의 역사를 이어 온 백가장의 자산은 어마어마했다.
천만 평이 훌쩍 넘는 목화밭은 물론, 사천성에 위치한 수십 개의 산과 나루터와 창고, 면화를 옷감으로 만드는 공장까지.
모르긴 몰라도 제대로 된 감정 평가를 받아보면 천만 냥은 족히 나올 게 분명해 보였다.
과연 서남부 최고의 섬유 재벌다운 자산 규모였지만.
“백삼십만 냥이라니! 턱도 없는 가격이오!”
무릇 급하게 팔게 되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법.
나는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럼 다 놓고 가든지. 내년쯤 와 보면 전부 불타 없어진 상태일걸?”
“우리의 선택이 전왕문주 당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두시오.”
“금룡당주를 믿고 있는 거면……. 안 된다는 소식이 오지 않았나? 그쪽은 돈을 쓸데가 정해졌거든.”
한중상련과 함께 감숙 이남에 중원 최대 규모의 농장을 짓기로 했으니까.
“……그래도 너무 적소. 재고하지 않는다면 협상은 결렬이오.”
“이것도 많이 친 거라니까 글쎄.”
“차라리 불태워 없애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가격엔 절대 안 되오.”
“…….”
결국, 나는 총관의 저항에 어느 정도 양보를 했다.
“좋아. 백 구십만 냥. 더는 가진 돈도 없어.”
“어림도 없소이다.”
“이백만 냥. 대신 전표가 아닌 현금으로 전액 지불하마. 지금 즉시. 싫으면 관두고.”
현금이란 말에 총관이 고개를 돌렸다.
끄덕.
백무하가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팔릴지 모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선택일 거다.
“좋은 거래였어.”
“……대금이나 지급하고 꺼져라.”
결국, 나는 백가장의 돈으로 백가장의 가산 중 70%를 인수하게 되었다.
덕분에 수중의 현금이 똑 떨어졌지만 그래도 좋았다.
북궁세가의 옛 유산을 되찾았으니까.
‘사부가 좋아하겠군.’
* * *
칠 일 후.
출발한다-!
나는 구룡성의 성벽에 서서 백가장이 떠나는 모습을 구경했다.
“…….”
시선을 느꼈는지 백무하 역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돌렸다.
등천각 시절부터 이어 온 악연.
나는 그 악연을 향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잘 가라!”
뭐…….
곱게 보내 줄 생각 따윈 없었지만 말이다.
“바로 시작해.”
“정녕 할 생각이시오?”
“그럼. 안 할 줄 알았어?”
“아니,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말이오. 너무 잔인하지 않소?”
“직접 조사해서 알잖아. 천하에 다시 없을 개새끼들인 거.”
“……그렇구려.”
용마산이 머리를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 문주의 의뢰를 받아들이겠소.”
“근데 의뢰비는 좀 깎아 주면 안 되냐? 나쁜 놈들 처리하는 건데 너무 비싼 거 같은데…….”
“…….”
이제 하오문은 전 무림에 백가장이 현금 이백만 냥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을 낼 것이다.
그럼 백가장으로서는 지옥이 시작되는 거지.
가장 먼저 사방에서 돈을 노린 승냥이 떼가 달려들 것이다.
십중팔구 죽을 걸 알면서도 일 할의 확률에 기대는 게 인간이거든.
그렇게 하나둘 도적 떼를 쳐 내다 지쳐 갈 즈음 그들은 쉴 곳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쉼터는 아마 백가장의 방계 문파가 될 확률이 높겠지.
남보다야 친척이 그나마 믿을 만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과연 편하게 쉴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방계의 이들 역시 인간이 아니던가.
그들 역시 이백만 냥이란 돈 앞에서 승냥이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찌어찌 돈을 지켜 낸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더욱 거대한 지옥이다.
사자맹.
천하 사파의 총본산인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아마, 사천을 빠져나가는 즉시 사파 무리가 습격을 시도할 게 분명했다.
나는 말을 타고 나아가는 백무하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백무하!”
지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