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성주 북궁백(4)
사부가 성주로 취임하고 구룡성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문상을 필두로 군사부의 서생들은 북쪽 지방, 즉 청해와 신강, 감숙 이북을 안정시킬 방안을 계속해서 제시했고.
그 계획에 맞춰 내성의 당주들은 하나 된 목소리로 전력 증강을 준비했다.
예산의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소수 정예로 운영해 왔던 구룡성이었지만, 영역이 넓어진 만큼 더욱 많은 머릿수가 필요했던 탓이다.
하물며 백가장과 은성표국까지 떠났으니 그러한 전력의 공백은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내성의 여섯 개 당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전력의 증강을 꾀했다.
바로 합병.
대기업이 덩치를 키우는 데는 인수 합병이 제일 아니겠는가.
돈은 넘쳐 났고 속가 문파와 방계 혈족이 천하 곳곳에 퍼져 있으니 어렵지도 않다.
무릇 사람이란 안정된 직장을 얻고 싶어 하는 법.
모르긴 몰라도 ‘합병하쉴?’ 하고 서찰을 써서 보내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눈치 빠른 상인들 역시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십마련이 두려워 떠나지 못했던 비단길 원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운남과 사천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가지고 한중으로 와 부피가 작은 진귀한 물건들로 바꿔 서역으로 향했다.
당연히 한중의 시전거리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천이 바쁘게 움직이던 날의 아침.
나는 사부가 있는 태룡전에 도착했다.
“…….”
해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술을 훌쩍이는 사부를 보니 참 말이 안 나온다.
“술 마시는 사람 처음 보나?”
“술 드시려고 성주 되신 겁니까?”
“네가 하라 그러지 않았나.”
“아니.”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멀쩡하게 나가셔야죠.”
“무슨 일 있나?”
“오늘은 전룡당이 입성하는 날이지 않습니까.”
“으음……. 잊고 있었군.”
당황했는지 평소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사부가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
그랬다.
오늘은 전왕문이 구룡성에 합류하는 날.
부당주를 맡은 북궁창이 흑룡대 삼백을 이끌고 오는 날이었다.
북궁창이 부당주 자리에 오른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무공이면 무공, 인품이면 인품. 종친회를 이끌던 정치력, 더군다나 오랜 기간 일 문을 이끌던 풍부한 경험까지.
누가 봐도 완벽한 부당주감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간부들 전원이 만장일치로 합의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앞으로 그는 내가 없을 때 나를 대신하여 전룡당의 견해를 대변할 것이고, 내가 있을 때는 나를 보좌해 당의 전반적인 운영을 도울 것이다.
그렇게나 든든한 그가 온다는 생각에 벌써 기대가 되었다.
그동안 너무 쓸쓸했거든.
친구를 만들어 보려고 여기저기 나가 봤는데 전부 실패했다.
당주라는 신분과 성주의 제자라는 배경 때문에 다가오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원래 알던 사람들하고 놀자니 제정신인 사람이 몇 없었다.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정상인인 위지 형은 사자맹에 맞서는 호북 수비대로 파견 나갔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적일이삼 형제나 적화란하고 놀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덕분에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묘향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수십 번의 서찰을 주고받은 끝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외로움에 사무쳐 전서구란 네트워크를 이용한 구구톡으로 고백을 해 버린 것이다.
이에 묘향 역시 애(愛)라는 글자를 적어 답신을 보내왔다.
그리고 오늘.
‘빨리 보고 싶다.’
마침내 그녀가 나를 보러 구룡성에 오게 되었다.
묘향을 생각하며 기다리다 보니 사부가 나왔다.
“…….”
외당주 시절부터 입던, 그러니까 지은 지 십 년은 족히 넘어 해질 대로 해진 회색 장포를 입고 말이다.
“다른 거 없습니까? 번쩍번쩍한 태사의 같은 거요. 몇 벌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나는 이게 편하다.”
휘적휘적 걸어 나가는 사부를 보며 생각했다.
“진짜.”
왜 내 주위엔 정상인이 없는 걸까?
* * *
“전체, 차렷!”
척.
“열중쉬어!”
척.
“차렷!”
척.
“성주님께 대하여 경례!”
구-! 룡-!
“구룡!”
절도 있는 동작에 절로 흐뭇해졌다.
역시 제식을 가르쳐주길 잘한 것 같다.
‘척마멸사는 개뿔…….’
구룡성의 구호를 현대식 제식으로 통일할 생각에 벌써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리고 들려오는 제식의 꽃.
띵띵띵띵 띠띠띠. 띠리띠리띠. 띠리띠리띠…….
바로 묘향의 금음이었다.
‘캬…….’
아름다운 운율을 켜는 고고한 자태, 어여쁜 얼굴, 거기다 넘치는 마음까지.
천상의 선녀가 따로 없지 않은가.
깜짝 방문한 그녀의 자태를 계속해서 눈에 담았다.
그러기도 잠시, 불순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으음, 금룡당 쪽 애들의 눈빛이 수상하군. 눈깔을 하나씩 뽑든지 해야겠어. 어라? 금종대 저놈은 아직도 저 지랄이네?’
아무래도 잡도리를 한번 해야 할 듯싶다.
그렇게 황홀한 금음이 끝나고 나서 사부의 축사가 시작되었다.
“크흠, 존경하는 구룡성의 동지들이여……. 우리는 십마련이란 커다란 산을 넘어……. 이제는 강호 제일의……. 또한 앞으로 어떠한 위협에도…….”
아, 참고로 축사는 내가 써 줬다.
명색이 내가 개파한 전왕문이 내성에 합류하는 거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전왕문을 구룡성의 기둥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전룡이라 칭하겠다.”
축사를 마친 사부가 힘 있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전룡당주는 앞으로 나오도록.”
사부의 부름이 들리자마자 곧장 튀어 나갔다.
“전룡당주 진무전이 성주를 뵙습니다!”
살짝 오글거리는 대사에 문상을 비롯한 내성의 당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척.
사부가 허공섭물을 펼쳐 혈금으로 만들어진 붉은색 당주 패를 내게 보냈다.
그것을 받아들자 사부가 재미있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씨익.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사부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천하를 울리는 고수였지만 출세라곤 전혀 관심 없던 사부.
외당 조장으로 취직하여 하루빨리 재산을 모아 구룡성에서 튈 생각만 하던 나.
그런 두 사람이 지금 성주와 당주로서 마주했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부탁하지.”
“명심하겠나이다!”
와아아-!
그렇게 전왕문은 구룡성의 한 축으로 합류했다.
* * *
행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북궁창을 비롯한 흑룡대와 함께 외성 밖 전왕문으로 향했다.
문상이 축하의 의미로 써 준 전룡당(戰龍黨)의 현판이 우리를 반겼다.
은룡당이 쓰던 터를 넘겨받긴 했지만, 이곳이 좋았던 탓에 전룡당의 터전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후계께서 구룡성의 성주가 되셨으니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았군요.”
“이게 다 흑룡대주 같은 능력 있는 조력자 덕분이지.”
“하하,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습니다.”
“가족들은 어디 있어? 단신 부임이야?”
“천천히 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강행군을 해야 해서 말입니다.”
“그렇군.”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북궁창이 눈치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런 그에게 묵직한 전낭 하나를 건넸다.
“크흠, 경사스러운 날이니까 들어가서 술이나 한 잔씩들 하라고.”
“대원들이 좋아하겠군요. 감사합니다.”
씨익.
커다란 덩치의 북궁창이 자리를 피하니 가녀린 체구의 여인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와락!
“누, 누이.”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아직 사람들도 많은데…….”
“볼 테면 보라죠.”
“아니.”
무림 세계의 여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과감함에 흑룡대의 무사들이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히힛.”
포옹을 푼 묘향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웃었다.
“가요.”
“어딜?”
“밥 먹으러요. 술도 마시고요. 듣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요. 하고 싶은 말도 많고요.”
* * *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끊임없이 조잘거렸다.
“몇몇 상단에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절 보고 수군거렸던 거 있죠?”
“으음…… 한중에 가는 대로 팔 하나씩 잘라야겠군.”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으셔도 돼요. 이미 시전에서 쫓아냈으니까요.”
“……쫓아내면 뭐가 달라져?”
“망하는 거죠. 일부러 가장 매입을 많이 할 때를 노려 쫓아냈으니 부도를 피할 도리가 없을 거예요.”
“…….”
상련을 운영하던 중 있었던 작은 해프닝부터.
“글쎄, 소소가 또 도박장에 출입하는 거 있죠?”
“뭐? 그걸 그냥 놔뒀어?”
“그럼 어떡해요. 가면을 쓰고 들어온걸요. 대신 조치는 취해 놨어요.”
“어떻게?”
“도박장을 관리하는 도방주에게 말해 사기도박을 열어 소소 돈을 모조리 털었어요. 이제 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 오지 못할 거예요. 아, 돈은 제가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돌려주려고요.”
“그, 그래. 잘했네.”
주변 사람과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주문한 요리들과 술이 나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가정식에 가까운 요리에 묘향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머,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네요? 하나같이 주루에서 팔 만한 요리들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오랜만에 왔는데 좋아하는 걸로 먹어야지. 주인에게 따로 말해서 주문했어.”
“고마워라…….”
“크흠, 나야 뭐 항상 누이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멋.”
묘향이 벌게진 양 볼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비록 누이가 한 것보다야 별로겠지만, 남이 해 준 것도 나름의 맛이 있지 않겠어?”
감동한 그녀가 생선찜을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그러게.”
그렇게 술과 함께 요리를 즐기던 중 묘향이 일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 인수하셨다던 백가장의 사업체들을 확인해 봤어요. 정말 엄청나던데요?”
“나도 놀랐어. 금룡당 다음으로 부자라더니, 정말이더라고.”
“그만한 자산들을 무일푼으로 쓸어 담은 문주님의 수완이 더 대단하죠.”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럼요.”
입을 가리고 웃던 묘향이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제게 맡겨 주세요.”
당당한 태도로 경제권을 요구하는 그녀의 모습에 우려감이 절로 커졌다.
“나야 상관없는데……. 너무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재미가 늘어 가는 거죠.”
우아한 자태로 술을 마신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한중상련이 아무리 세를 불리고 있다 해도 중개를 해 주고 이익을 얻는 것뿐, 자체적인 수익은 얼마 안 돼요.”
“저번에 인수한 상단들이 있잖아?”
일전, 묘향과 양령은 한중에서 쫓겨난 상단들을 인수한 적이 있다.
“성에 안 차서요.”
“그래서 백가장의 사업체를 상련에 편입하려고?”
“맞아요. 최대한 규모를 키워 편입시키려 해요.”
“어떻게?”
“백가장은 주로 면포를 만들었어요, 대량으로 생산하니 다른 곳보다 원가가 싸서 적지 않은 이문을 남겼지요.”
“그렇지.”
“저는 다르게 하려 해요. 경쟁자가 넘쳐나는 중원이 아닌 서역에 가져다 파는 거죠.”
“흐음…….”
“전왕문의 무사들 덕에 표국을 쓰지 않아도 되니 비교할 수 없는 이문이 남을 거예요. 그렇게 규모를 키워 구룡성의 상단들을 흡수하는 게 최종 목표구요.”
“……대단하긴 한데, 그렇게 되면 한중상련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이의 몸이 두 개는 아니니까.”
“이미 도와줄 사람을 찾았어요. 문주님도 아는 사람으로요.”
“누구?”
“양령이요.”
뜬금없는 이름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누이, 양령은…….”
“알아요. 하오문도인 거.”
“그러니까 그게 문제지. 아무리 내가 하오문주와 친하게 지낸다 해도 남의 사람을 믿고 쓰기엔 좀 불편한데?”
보안 문제도 있고 말이다.
“염려 말아요. 양령은 하오문을 탈퇴했으니까요.”
“뭣?”
“배가 불렀거든요.”
“도, 돈을 많이 벌어서?”
“설마요. 애를 배서 배가 부른 거지 그런 심리적인 요인은 아니에요.”
“누, 누구랑?!”
“글쎄, 종극린 로주랑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는 거 있죠? 덕분에 번갯불처럼 혼인식을 올렸어요.”
소식을 전하던 묘향이 은근슬쩍 눈치를 줬다.
“호, 혹시 우리는 언제쯤…….”
“크흠.”
나는 아직 연애를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