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77
276화 킹 메이커(5)
적룡당과 하오문의 콜라보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자존심을 내려놨다 해도 한 세기가 넘게 원수로 지내 왔던 골이 얕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결국 서로를 인정했다.
“잘 지냈는지 모르겠소.”
“별로 잘 못 지냈네. 앞마당에서 얼쩡거리는 놈들 때문에 통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그냥 얼쩡거리는 게 아니라 묶은 빚을 받으러 온 걸 수도 있소.”
“과거에 매몰되어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지.”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가 붙게 마련이지.”
“이자도 있는 거였군.”
“혹시 아오? 먼저 낸다고 하면 조금 깎아 줄지.”
“얼마나 깎아 준다고 하던가?”
“대충 절반 정도를 생각한다 하외다.”
“……많이도 깎아 주는군. 그래서 남는 것이 있나?”
“이쪽도 사정이 급하니 말이오.”
“이유를 물어도 되나?”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으려면 한시가 바쁘게 뛰어야 하오.”
“그렇군.”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는 것도 방법이외다.”
“…….”
“생각이 있소?”
“이제 와서 본가로 인정할 수는 없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이해하오.”
“하나, 하오문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거절하는 일은 없을 것이야.”
“그거면 되오.”
흘러간 과거를 털어 버리기로 한 것이다.
한 세기가 넘게 묵은 원한이 사그라드는 순간이었다.
세기의 화해를 성사한 나야말로 무림 비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빠르게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자 두 사람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미쳤구려.”
“부성주가 되자고 적을 만들 수는 없지 않겠느냐?”
“어차피 부성주가 되어 감찰권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사방에 적이 생겨날 겁니다. 그게 싫으시면 부성주가 되고도 얼굴마담으로 사셔야죠.”
“……틀린 말은 아니구나.”
“어쩌시겠습니까? 하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적룡당주가 각오를 세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좋습니다. 그럼, 잘해 보자는 의미로 손을 맞잡으십시오.”
멈칫.
“……꼭 해야 하오?”
“여인네 손도 아니고…….”
“어허, 이런 답답한 사람들을 봤나. 큰일을 치르기 전에는 단합이 필수인 거 모릅니까?”
“그, 그러지.”
척.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이 선거, 이겼다.’
* * *
삑삑삑. 삐삐삐삐삑!
“구백팔십삼!”
어떤 새끼야?!
뒤질래?
“동료의 실수를 넘기지 못해서야 서로의 등을 어떻게 지켜주나!”
악!
“팔 번 동작 준비!”
악!
“이천 회 실시한다. 몇 회?!”
이천 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실시!”
삑삑삑. 삐삐삐삐삑.
‘잘하고 있군.’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전룡당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셨다.
후루룩.
“당주님, 이선방주가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번쩍.
용마산이 햇빛을 반사하며 들어왔다.
그가 자리에 앉자 매란이가 차를 가져다줬다.
“고맙소이다.”
나름 매너 있는 대머리인 용마산이 작게 읍을 했고.
“아, 아니옵니다.”
매란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목소리는 왜 떨리는 거며, 얼굴은 왜 붉히는 것인가.
‘설마?’
이러면 빼박캔트다.
‘감기 걸렸나?’
어디 아픈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병세가 더 심해지기 전에 청소소에게 보여야 할 듯싶다.
‘아.’
순간, 용마산이 쥔 찻잔이 눈에 들어왔다.
감기 환자가 우려 준 차라면 전염이 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
“잠…….”
후루룩.
마시는 걸 제지하려던 차 용마산이 차를 들이켰다.
“응? 무슨 할 말 있소?”
“…….”
뭐, 알아서 하겠지.
“그냥 일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려고.”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문도를 삼백이나 동원했으니 파급력이 작지 않을 것이오.”
“오.”
삼백 명이면 구룡성에 있는 하오문도의 거의 전부다. 용마산이 이 일을 결코 작게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대머리가 추진력이 있다.
‘아마존 창업자도 대머리였지.’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용마산이 물어 왔다.
“정말 괜찮은 것이오?”
“뭐가?”
“다른 당을 비방한 게 아니오?”
“비방이 아니지.”
“그럼?”
“사실을 알린 거지.”
그랬다.
이번 작전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소문.
상대 후보와 당에 관한 소문을 구룡성 전체에 퍼뜨려 지지율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었다.
사실, 이 작전은 100% 내 아이디어라고 할 수는 없다.
‘……내성 무인들의 약점들을 건네주마.’
‘그런 건 또 언제 모았답니까? 아니, 애초에 그거 불법 사찰 아닙니까?’
바로 적룡당주의 제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이렇게나 좋은 패를 쥐고 있는데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아무거나 막 가져다 쓸 수는 없다.
청룡당의 장로가 치질 환자라고 소문내 봤자 지지율이 깎일 리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 후보들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알려지는 게 더 공익에 부합하는 정보들을 풀었다.
만에 하나 우리가 퍼트렸다는 게 걸리더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을 알린다라……. 그게 그거 아니오?”
“얘가 뭘 모르는구먼.”
언론의 자유도 모르다니……. 쯧쯧.
“구룡성이 만들어질 때 내세운 명분이 뭐였냐?”
“……힘을 잃은 나라를 대신하여 백성들을 지킨다며 일어선 걸로 알고 있소.”
“그래, 그런데 그 구룡성의 구성원이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고 가진 것을 빼앗았다면 어떻게 될까?”
“그야 당연히 구룡성에서 처벌을 내릴 것이 아니오?”
“무사 정도는 잡아서 처벌을 내릴 수 있겠지. 하지만 당주의 핏줄이라면? 혹은 직전제자라면? 과연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질까?”
“…….”
“끽해야 면벽 일, 이 년이다. 길어봤자 사오 년이고. 심지어 이 새끼들은 뇌옥도 안 가. 그냥 집에 있는 거야.”
구룡성에서 경찰 역할을 하는 외당에서 오래 일했기에 잘 알고 있는 사안이다.
기껏 사고 치는 놈을 잡아 와도, 놈이 소속된 당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며 데리고 가기 일쑤였다.
실제로 묘향을 포함해 수십 명의 여인을 속여 기녀로 만든 금종대가 멀쩡히 돌아다니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이야기를 모두 듣고서도 용마산은 여전히 의문이 남았는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하여 이번 선거에 이용한 것이오? 부성주에서 떨어뜨려 응징하자는 뜻으로?”
“꼭 그런 것만이 아니야.”
“그럼?”
“분위기를 바꾸자는 거지. 힘 좀 있다고 힘없는 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끔.”
“폭로를 통해서 말이오?”
“바로 그 폭로가 쌓여야지 바뀌는 거야. 뜻이 있는 위정자들은 뭔가를 바꿔 보려 할 테고, 뜻이 없다 해도 남의 눈이 무서워서 사고를 치지 못할 테니까.”
“으음…….”
그제야 내 뜻을 이해했는지 용마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으니 다행이군.”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 하나 있소.”
“뭔데?”
“금종대의 취미가 여장인 건 대체 왜 폭로하라 시킨 것이오?”
“……재미있어서?”
뭐, 타블로이드지도 언론으로 쳐 주니까.
* * *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돈을 뿌리며 선거 유세를 이어가던 금룡당주는 이상함을 느꼈다.
수군수군.
금룡당의 행렬을 보는 백성들의 눈초리가 평소와는 달랐던 것이다.
우르르.
“3번이외다. 3번!”
“3번을 기억해 주시오!”
물론, 그렇다고 금룡당원들이 뿌리는 돈을 안 받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분위기가 달랐을 뿐.
“으음…….”
후계자 시절 천하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던 금극이다.
그런 그가 백성들의 눈에 담긴 적의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이게 대체…….”
그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라고 명령하려던 찰나.
“다, 당주님!”
멀리서 총관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금극은 안 좋은 예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냐?”
“크, 큰일 났습니다. 지금 태룡로를 중심으로 소문들이 퍼지고 있습니다.”
“무슨 소문이!?”
“그…….”
총관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빨리 말하지 못하겠느냐!”
답답함을 느낀 금극이 대번에 소리를 질렀다.
“이 공자가 저질렀던 일에 대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사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
금극의 눈이 질끈 감겼다.
* * *
“글쎄, 청룡당의 장로들이 도박판에 드나든다면서?”
“도박이 끝나면 기루에 가서 질펀하게 논다는구먼. 심지어 나이 어린 기녀들만 좋아하여 스물이 넘으면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다고 그러더군.”
“말세로군. 말세야. 그 명성 높은 장로들이 대체 왜 그러는지……. 쯧쯧.”
“장로들 역시 남자로 태어났으니 여인을 탐하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긴 하지.”
“회룡당의 무사가 저기 있는 주점 주인을 두들겨 팼다면서? 얻어맞은 주인은 골병이 들어 뒷방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고.”
“에잉, 빌어먹을 놈의 구룡성.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당주와 사촌지간이라며 겨우 면벽으로 끝냈다더군.”
“허어, 회룡당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태룡로 뒷골목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들이다.
‘제대로 먹혀들었군.’
소문이 제대로 퍼진 걸 확인하니 흡족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진짜는 따로 있었다.
“금룡당주의 둘째 아들이 여자들을 속여 기녀로 만들었다면서?”
“어디 그뿐인가? 첩으로 팔아넘기기까지 했다더군.”
“천하의 후레자식이 따로 없군.”
“글쎄, 그놈 취미가 여장이라지 뭔가?!”
“허이고. 지랄을 하는군, 지랄을 해.”
이처럼 금종대가 벌인 범죄에 대한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간 것이다.
매운맛의 기사가 클릭을 유도하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
금종대의 이야기로 태룡로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물론, 천하 곳곳에 지부를 설립하여 전장을 운영 중인 금룡당인 만큼 그들에 대한 자료는 더 있었다.
손님이 사망해도 그의 돈을 맡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 자식에게 알리지 않는다든지, 혹은 상황이 급한 이에게는 더 비싼 이자를 받아 낸다든지 하는 사실들 말이다.
그럼에도 금종대를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간단했다.
‘잘 가라. 금종대.’
묘향의 남편으로서 이 변태 여장 코스어를 사회적으로 묻어 버리기 위함이다.
묘향은 용서했지만, 나는 용서하지 않았거든.
“가야겠군.”
돌아서는 민심도 확인했겠다, 술도 다 마셨겠다 슬슬 일어나려던 순간, 주점 바깥에서 웬 남자가 들어와 외쳤다.
“지, 지금 광장에 금룡당주가 나타났다네!”
“에이,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글쎄, 금종대를 두들겨 패고 있으니까 하는 소리지!”
“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지금 당장 가 봐야겠구먼.”
우르르.
구경거리가 귀한 무림 세계의 주민들답게 주점 안에 있던 백성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아이고! 계산들은 하고 가셔야지!”
주인의 애처로운 비명을 뒤로하고 달려 나가니 광장 한가운데를 가득 메운 금룡당의 무사들이 보였다.
뻐억! 뻐억! 뻐억!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금종대를 내공이 실린 쇠 막대로 두들겨 패는 금룡당주도.
이윽고.
빠악!
털썩.
어딜 잘못 맞았는지 금종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워매…….”
부성주가 되겠다는 갈망이 느껴지는 매질이었다.
더군다나 이건 단순한 매질이 아니다.
만금전장의 둘째 공자인 금종대의 앞날 브레이커가 될 만한 매질이었다.
비록 후계자는 아니지만 그 역시 금룡당의 직계, 현대로 따지면 재벌 n세.
그런 그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개 맞듯이 맞았다는 사실은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런 일을 저지른 금룡당주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봤다.
“모든 건 자식놈을 잘못 키운 내 탓이오. 우리 금룡당은 피해를 보았던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건 물론, 빈민들의 구제에 더욱 힘을 쓰겠소이다. 그리고.”
탁.
그가 금종대를 발로 차며 말을 이었다.
“이놈을 구룡성 밖으로 추방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소이다.”
“…….”
좌중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만큼 금룡당주의 발언이 충격적이라는 뜻이었다.
“권력이 뭔지…….”
아들마저 버리는 비정함에 절로 한숨이 내쉬어졌다.
뭐,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
목구멍에 시원한 탄산의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