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89
288화 혈종(4)
사인교에 타고 있는 혈종주가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안광을 내뿜었다.
“크윽.”
“아아…….”
“정신 차려!”
붉은색 안광에 노출된 우리 애들이 하나둘 다리가 풀려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파직.
곧장 경력을 내뿜어 사기를 차단하니 혈종주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호오, 기를 기로써 쓰지 않고 폭발시켜 내뿜다니. 참으로 신기한 무공이구나. 경력이라…… 경력…….”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이내 크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래! 전왕류! 천하의 전왕류만이 경력을 다룰 수 있지. 너는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전왕류의 계승자였구나! 북궁가의 후계자였어!”
북궁가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혈종주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걸 이제 알아봤어? 하긴, 눈깔이 개눈깔이니 뭘 알아볼 수 있을까.”
“마침 잘됐구나! 안 그래도 내 팔을 이렇게 만든 복수를 하고 싶었건만, 갑작스럽게 중원을 떠나게 되어 아쉽던 차였다. 전왕류의 계승자를 죽여 북궁가의 재건을 망치면 조금은 복수가 되겠지.”
“그 말을 꼭 우리 사부 앞에서 해줬으면 좋겠네. 십 초식 안에 대가리가 불타오를 텐데 말이야.”
“구룡성의 위상을 믿고 그러는 거라면 소용없다. 내가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건 오로지 혈신뿐, 구룡성이든 무황성이든 혈신의 권능 앞에선 벌레와도 같은 존재일 뿐이니.”
“구룡성의 위상이 여기서 왜 나와? 그냥 네놈이 팔 병신이라는 걸 얘기한 건데.”
“내 눈에 네놈은 곧 있으면 죽을 시체에 불과하다. 본좌는 시체의 도발에 발끈할 정도로 마음이 좁지 않다.”
“그,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
“너희가 말하는 그 혈신, 본 적이나 있냐? 혹시 너도 속으로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밑에 애들한테서 돈 뜯어내려고 우기고 있는 거 아냐?”
“이노옴!”
내가 ‘신은 없다’라는 종교인들의 발작 버튼을 누르자마자 혈종주가 손가락을 뻗어 붉은색 레이저를 발사했다.
쿠아아아!
혈종주의 독문무공 혈화지가 전룡기와 힘 싸움을 하는 것으로 일생일대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 * *
발작 버튼이 눌렸음에도, 혈종주는 각종 음모를 꾸미는 어둠의 흑막답게 힘으로만 싸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최측근을 탱커 라인으로 세워 두고는 그 뒤에서 혈화지를 방출했다.
철저하게 원딜의 포지션을 유지한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신체가 근접전을 펼치기엔 부적합하다는 걸 알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한때 AOS 게임에 빠져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수도 없이 맞았던 나다.
한타 포지션을 짜는 실력은 내가 한참 위다.
쾅!
“끄아악!”
“감히 용체를 노리는 자, 한 놈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리라!”
완숙한 초절정고수인 북궁창을 필두로 명도를 휘두르는 흑룡대원들이 탱커 라인을 이루었고.
바로 뒤에선 적이를 비롯한 적룡당원들이 명검을 이용하여 적의 목숨을 끊는 근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죽엇! 뒤져! 죽엇!”
내 바로 옆에 있는 적화란 역시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며 암기를 던져 댔다.
당연히 혈종주도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번쩍.
그가 혈종의 신공절학인 혈향지를 펼쳐 아군의 목숨을 노렸다.
콰아앙!
하지만 그의 공격은 전주시에 가로막혔고, 허공에서 터진 충격파가 비동 안을 휩쓸었다.
“큭.”
전주시와 이어진 실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화경(진)에 다다른 나라도 전직 십대 고수였던 혈종주의 기공은 막기가 버거웠던 탓이다.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원인을 찾던 혈종주가 크게 웃으며 좋아했다.
“뇌전시까지 내려주시다니 혈신께서 우리를 보우하시는 게 틀림없도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번쩍!
혈종주가 감탄과 동시에 쏘아 보낸 혈화지.
이번에는 나를 직접 노려 왔다.
“……!”
보자마자 느꼈다. 내게 날아오는 혈화지가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품은 것을 말이다.
‘칫.’
후우웅!
아껴 둔 비장의 한 수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
“가랏, 전주몬!”
구결을 읊조리며 전주시를 쏘아 내자 한 줄기 백색 빛줄기가 핏빛의 혈화지를 분쇄했다.
사일검법, 후예사일.
상당한 내공을 쏟아부어 펼친 묵룡당의 신공절학이었다.
쑤아앙! 쾅!
“크윽!”
“커억!”
다시 한번 터진 충격파에 적아 상관없이 신음을 흘렸다.
그만큼 서로 많은 내공을 담아 공격을 했다는 증거였다.
“사일검이라니! 이 무슨!”
혈종주 역시 놀랐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내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혈화지가 아무리 신공절학이라도 한 번 쏘아 내면 끝인 단발성의 공격이다.
반면, 전주시는 이기어검의 묘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희대의 기물이 아니던가.
혈종주가 당황한 틈을 타 탱커 라인 한 명의 등에 강렬한 일격을 선사했다.
퍼엉! 후드득.
“이노옴!”
혈종주가 분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어? 에베베베.”
“죽어라!”
“너나 뒤져!”
쑤아앙! 번쩍! 콰아앙!
좁아터진 비동 안에서 충격파가 또다시 터졌다.
“끄아압!”
한번 경험해 봤던 탓인지 북궁창은 호신강기를 넓게 발해 아군을 지키는 데 성공한 반면.
“크어억!”
“혀, 혈신이시여!”
“사, 살려…….”
적들의 탱커 라인은 줄초상이 나 버렸다.
“이익!”
한편, 분한 기색을 내보이는 혈종주를 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할 만하다?’
명색이 전 무림 랭킹 10위안에 들었던 혈종주다.
아무리 사부에게 한쪽 팔을 잃었다지만, 아직 나로서는 맞서기는커녕 시간을 끌기도 급급해야 맞는 상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까 보니 해볼 만했다.
아니, 오히려 부하들을 앞세우는 게 가소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
무심코 터져 나온 감탄사.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야, 너 이 새끼. 부하들 뒤에 숨지 말고 일로 나와 봐. 오늘 네가 그렇게 부르짖는 혈신 나부랭이한테 보내 줄 테니까.”
내 앞의 벽은 이미 허물어진 상태였다고.
* * *
전룡당의 군사이자 자신의 아들인 유소평에게서 무전이 위기에 빠졌다는 서찰을 받은 문상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각 당에 현 상황을 알리고, 자원자를 받아들여 구출대를 조직해 곤륜산맥으로 파견하는 한편.
“흑산호들을 급파해야 합니다!”
북궁백에게 달려가 구룡성 최고의 정예인 흑산호를 급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성주의 제자라는 무전의 신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룡성의 미래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순 없다.’
문상이 진무전이란 인물을 내심 구룡성의 미래라고 여겼던 탓이다.
천하제일의 무재,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망, 시류를 보는 통찰력, 번뜩이는 기지, 물러서지 않는 철혈의 용기까지.
이런 재능에 힘입어, 나이 이립도 안되어 전왕문이란 대문파를 세우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일까.
차갑기 그지없는 구룡성 내성의 당주 모두에게 지지를 받는 건 물론, 소탈한 성격으로 외성의 백성들까지 사로잡았다.
덕분에 시전거리를 조금만 걷다 보면 꼭 진무전의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였다.
이런 인물을 죽게 내버려 둔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 유기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호들갑 좀 떨지 말게. 이미 전룡당의 정예가 곤륜산으로 출발했다지 않나?”
“성주님!”
그런 무전의 스승인 성주는 심드렁하게 굴 뿐이다.
“숨어 있던 혈종주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개입한 정황도 확실하고요. 자칫하면 전룡당주를 포함한 전룡당 전부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도 헤쳐 나가지 못하면 죽는 게 마땅하지.”
“그 무슨……!”
너무나도 덤덤한 답에 문상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체 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의문.
‘혹시 권력 때문에?’
차기 성주를 견제하는 마음인가?
문상이 순간 떠오른 의심을 속으로 부정했다.
권력에 관심이 없는 북궁백이다.
성주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사람이 바뀔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전룡당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미리 마련해 놓으신 거다.’
생각을 정리한 문상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무언가 조치를 취해 두신 겁니까?”
“내가 예전에 그놈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기억하고 있나?”
문상의 질문에 뜬금없는 질문으로 답하는 북궁백.
문상이 당황하며 반문했다.
“예전이라면……?”
“무전이 놈의 세 치 혀에 놀아나서 우리가 천하의 사기꾼이 될 뻔했던 때 말이야. 당시 답답한 마음에 우리 둘이 비무도 보러 가지 않았나?”
“아! 극살대마와 전룡당주의 비무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맞네.”
“그거라면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성주님께서 전룡당주를 평가하시길, 노력이 부족하여 기초가 부실하고 그 때문에 질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끝인가?”
“……벽에 걸쳐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북궁백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문상이 대경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되물었다.
“서, 설마?!”
“예상하는 게 맞네. 무전이 놈이 벽을 넘어섰어. 그것도 완전하게.”
문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물론, 무전이 언젠가 커다란 성취를 이루리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은가.
그것도 이립도 되지 않은 나이에 절대지경이라니!
“이럴 수가! 말도 안 되는. 아, 아니. 일단 감축드립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횡설수설하는 문상에게 북궁백이 작게 웃어 보였다.
“놀랄 것도 없지 않나? 원래도 경계에 서 있었으니 말이야.”
“제가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힌 무인은 아니지만, 경지가 높아질수록 벽을 넘는 데 드는 시간과 고통이 배가 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계에 걸쳐 있었다 해도 그 나이에 절대지경에 든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성취지.”
북궁백이 약간은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노력을 했네.”
“노, 노력을 말입니까?!”
“그래. 그것도 하루 두 시진씩이나 말이야.”
“…….”
문상이 어이없어하는 눈빛으로 북궁백을 바라봤다.
하루 두 시진 가지고 노력이라니.
외성에 있는 무관의 어린 관원들도 최소한 하루 세 시진은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을.
피식.
“농담이네. 아, 노력한 건 맞아. 그래 봤자 남들이 한 노력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지만, 제 딴에는 한 거니까 인정은 해 줘야지.”
“그, 그렇군요.”
당황한 문상을 향해 북궁백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최근 세상을 보고 온 게 주효했던 것 같네.”
“……황궁을 불태우고 호연회를 설립한 일이 말입니까?”
“그래. 정확히는 황궁을 불태운 게 더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더군.”
“그, 그게 전룡당주가 경지에 든 것과 무슨 상관인지…….”
“경지가 높아질수록 삶과 무공은 하나가 되네. 삶에 대한 태도가 무공에 나타나고 무공에 대한 철학이 삶에 녹아드는 거지.”
“…….”
“무전이 놈은 인생의 대부분을 서천 땅에만 머무르며 보냈네. 가끔 나간다 해도 임무를 수행하는 게 끝이었고. 그런 놈이 그 넓은 강남 땅을 보고 왔으니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겨도 생기지 않았겠나?”
“그,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문상이 이상함을 깨닫고 물었다.
“한데 그동안 왜 아무 말씀 없으셨는지…….”
“제 놈도 인지하지 못하는데 내가 미리 가르쳐 줘 봤자 뭐 하나? 저 혼자 깨달아야 가치가 있는 법이지.”
“…….”
“그러니 신경 쓰지 말게. 팔 한쪽 없는 혈종주 정도는 놈의 상대가 아니니까. 사자맹주가 나타나도 그놈 목숨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
말을 마친 북궁백이 귀찮다는 듯 나른한 자세로 누웠다.
하지만, 문상은 볼 수 있었다.
북궁백의 입가가 계속해서 실룩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