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04
303화 출장
사부와의 재회는 보고로 시작되었다.
문상은 사부를 앞에 두고 지난 육 개월 동안 있었던 일과 했던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나눠 보고했고 나는 보고가 끝나기를 뻘쭘하게 기다렸다.
“거참, 어차피 문상이 잘해 놨을 텐데 대충 그냥 넘겨요. 안 맡기면 모를까, 맡겼으면 완전히 믿으라는 말 모릅니까?”
“…….”
뭐, 약간의 불평을 더해서 말이다.
반 시진이 넘는 보고 시간 동안 사부는 몇 번이나 표정을 바꿨다.
성벽이 무너져 다섯이 죽고 서른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침음성을 흘렸고.
성의 늦장 대응이 원인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화가 난 듯 눈살을 찌푸렸으며.
이 점을 고치기 위해 내가 개혁안을 만들었다는 소리에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문상에게 개혁안의 내용과 결과를 듣고는 엄청나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혹, 저놈에게 공을 돌리는 게 아닌가?”
“아니.”
인정할 건 인정하라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개혁안을 만들어 온 것도 당주들을 설득한 것도 진 당주였습니다. 저는 그저 옆에서 추임새만 넣은 정도였지요.”
“……의외로군.”
사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잘했다.”
뜨거운 눈빛과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
사부에게 인정을 받은 듯하여 나도 모르게 살짝 울컥했다.
“아니, 육 개월 동안 사람을 부려 먹었으면 임금을 줘야지 말 한마디로 끝내는 게 어디 있습니까? 유노동 유임금 모르십니까?”
무릇 일을 했으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게 강호의 도리지.
“…….”
곧장 쏘아붙이자 두 사람이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봤다.
내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게 틀림없다.
“……돈이야 충분히 많은 것으로 아는데?”
“많은 거야 제가 피똥 싸게 일해서 번 거고요. 일을 했으니 그 대가는 따로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얼마를?”
“글쎄요. 서른 냥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적군.”
“금자인데요?”
“…….”
사부가 슬쩍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문상이 나섰다.
“크흠,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
“에이, 이 정도 했으면 그 정도는 받아야죠.”
“아무리 성과가 있다곤 하나 겨우 반년 일한 것치곤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 않소?”
“일한 시간이 중요합니까? 무슨 일을 어떻게 했냐가 중요하지요.”
“그렇다고 백성들이 낸 세금을 이렇게 탕진할 수는 없소이다.”
“거참, 탕진이라니요. 거시 경제 관점으로다가 제가 돈을 받아서 쓰면…… 선순환이 일어나서…… 내수 경기가 활성화되어 소득이 높아지고…… 세금이…….”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소. 돈이란 흐르는 강과 같아서 써야…… 하나, 진 당주가 쓸지 안 쓸지도 모르고…… 어디에 쓰는지도…….”
잠시 후.
“허억. 허억.”
문상이 나를 보며 숨을 헐떡였다.
그의 눈빛에서 네 뜻대로 되게 두진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아니, 사부가 주라는데 왜 자꾸 반대하는 겁니까?”
“성의 재정을 위함이지 결코 진 당주가 내 사생활을 만천하에 까발려서 이러는 게 아니외다.”
“…….”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을 집어넣다니…… 청소소가 키우는 귀뚜라미보다 속이 좁은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못하자 사부가 나섰다.
“그러면 일을 더 시키는 게 어떤가?”
“……?”
“저놈은 금자 서른 냥을 가지고 싶어 하고 문상은 아깝다는 의견이니. 일을 더 시키면 균형이 맞지 않겠나.”
간단한 해결책에 문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럼 성주님의 뜻에 따라 조만간 전룡당주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아니.”
왜 내 잔업을 당신들이 결정하냐고.
* * *
다음 날.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애초에 원했던 액수보다 훨씬 큰 백 개의 금자를 지급받게 되었다.
문제는.
“……그러니까, 서천 전체를 살펴보라는 거죠? 이번 개혁이 잘됐나 잘못됐나 확인하는 차원에서.”
“맞네. 쭉 훑어보다가 미비한 부분이 눈에 띈다면 성에 전해 주기만 하면 되니 어렵지는 않을 걸세.”
해야 할 잔업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는 거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서천 땅을 언제 다 살피냐는 뜻으로 여쭌 겁니다.”
말이 지역이지 서천이면 사천과 운남, 감숙, 청해를 합친 지역을 칭하는 것으로 중원의 삼분지 일에 달하는 크기다.
그런 커다란 영토를 홀로 보고 오라는 건 십 년 뒤에나 돌아오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누가 혼자 보고 오라 그랬나?”
“그럼요?”
“자네와 절친한 하오문이 있지 않은가.”
문상이 차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백 냥을 왜 줬겠나? 그런데 쓰라고 준 게지.”
명쾌한 해답.
문상의 말대로 하오문을 통한다면 내가 직접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서천 전 지역을 살펴 달라는 의뢰를 하고 문제가 있는 곳만 살펴보면 되니까.
더군다나 하오문은 구룡성에 속하지도 않았으니 더욱 객관적으로 살필 것이다.
“진즉 그리 말씀하시지…… 오해할 뻔했잖습니까.”
“나 참, 다짜고짜 따지고 든 게 누군데 그러나.”
“크흠,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하오문주가 자리에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래, 제발 하루빨리 구룡성에서 나가게. 그래야 내가 잠을 편히 잘 것 같네.”
“…….”
그렇게 문상의 집무실을 나와 곧장 이선방으로 향했다.
“이제 그냥 하오문이라고 적어 놔도 상관없지 않나?”
현판을 올려다보고 있자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정직하게 걸어 놓으면 오히려 안 믿을 겁니다.”
“양 단주!”
일전, 묘산 구출 작전 때 목숨을 걸고 도움을 줬던 양옥선이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일 년쯤 된 것 같습니다.”
“세월 정말 빠르구먼. 그동안 어디 갔다 왔어? 거하게 한잔 사려 했는데.”
“당주님을 도운 공로로 승진하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출세했네! 가만있어 봐. 이러면 내가 얻어먹어야 하는 거 아냐?!”
“일 차는 당주님이 사시지요. 이 차는 제가 사겠습니다.”
“크크크, 공평하니 좋네.”
“문주님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그래, 안에 있지?”
“예, 마침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하.”
양옥선은 나와 우연히 마주친 게 아니라 마중 나온 거였다.
아마, 내가 걷는 방향을 보고 목적지를 유추했을 것이다.
“역시 하오문이군.”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양옥선을 따라 문주실로 들어가니 용마산이 차를 따르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자리에 앉자 양옥선이 물러났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볼 테니 이야기들 나누십시오.”
용마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소?”
“의뢰를 좀 할까 해서.”
“진 당주의 의뢰라…… 오랜만이군.”
“어때? 일거리 생기니까 좋지?”
“저번처럼 팔 할을 깎아 달라느니, 이십 년 있다가 준다느니 할 거면 그냥 돌아가시오.”
“나를 뭐로 보고. 총알은 넉넉히 준비해 왔으니까 걱정하들 말어.”
“총알이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는 보겠소이다.”
잠시 후.
의뢰 내용을 모두 들은 용마산의 눈빛이 깊어졌다.
“서천의 도시와 마을에 현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거로군.”
“그것도 따끈따끈한 최신 소식으로다가.”
“이해했소이다. 한데 의뢰비가 조금 비쌀 텐데 괜찮겠소?”
“에이, 그건 아니지. 어차피 여기저기 퍼뜨려 놓은 문도들에게서 말만 전달받으면 되는 건데 비쌀 이유가 있나?”
“그 말을 전달하는데 인력이 들어가오. 전서구가 없는 연락소도 많아서 말이오.”
“얼마나?”
“흠…….”
용마산이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견적이 싸진 않다는 간접적인 증거.
나는 그의 입이 열리기 전에 선수를 쳤다.
“금자 열 냥. 어때?”
“삼백 명이 족히 두어 달은 움직여야 할 터인데 금자 열 냥으로는 경비도 나오지 않소.”
“그럼…… 열한 냥?”
“…….”
용마산이 이 병신은 왜 이럴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일흔 냥.”
“삼백 명이 두 달 움직여 봤자 품삯으로 금자 열여덟 냥이 들 텐데…… 너무 덤터기 씌우는 거 아냐?”
“그걸 아는 진 당주도 열 냥을 부르지 않았소?”
“…….”
“그리고 어디 품삯만 들어갈까. 이동하는 경비는 물론 각종 위험 수당을 챙겨 줘야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구조대까지 준비해야 하오. 일흔 냥을 받아 봤자 큰 이문을 기대할 수 없소이다.”
“너 말 섭섭하게 한다? 우리 사이에 이문까지 따지는 거야? 하오문의 복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기까지 했는데?”
“……실비만 주시오.”
“크흠, 진즉 그럴 것이지. 얼만데?”
“쉰 냥…….”
“쓰읍! 원가 절감 안 할래? 고객만족도 신경 안 쓸 거야?”
“……마흔 냥에 맞춰 보겠소이다. 단, 선불이오.”
역시 마법의 단어 원가 절감이다.
촤르륵.
전낭에서 금자를 꺼내 그의 앞에 펼쳐 놓으니, 용마산이 금자를 하나 들어 햇빛에 비춰 봤다.
“혹시 동전에 금박을 입힌 것이…….”
“나 전룡패군 진무전이야. 설마 돈 가지고 사기 치겠어?”
“그간 워낙 당한 게 많아서…….”
“…….”
돈 몇 번 늦게 줬다고 되게 뭐라고 하네.
“그럼, 의뢰는 받아들인 걸로 안다? 나중에 일이 어려워서 돈 더 달라느니 그런 말 하기 없기야?”
“걱정하지 마시오. 하오문의 신의는 결코 가볍지 않소.”
피식.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름 믿음직한 대머리가 아닐 수 없다.
“잠깐, 두 냥이 비는데?”
그 정도는 좀 넘어가 주지.
* * *
잠시 후.
두 냥을 마저 주고 나서야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작전은 실패했지만, 뭐…… 괜찮다.
일흔 냥의 추가 예산을 받아 와 스무 냥이나 남겨 먹었으니까.
“크흐흐.”
어지간한 고수의 십 년 치 연봉을 주운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심지어, 좋은 점은 또 있었다.
합법적 휴가.
서천 전체를 살피고 오라는 성주의 명령이다.
그 말인즉슨.
‘명령을 핑계로 반년은 놀 수 있다.’
당주 회의고 뭐고 반년은 놀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전왕문의 일은 두 노예(유소평과 묘산)가 알아서 처리하고 있으니 걱정도 없다.
“크흐흐.”
그야말로 행복 그 잡채.
“마누라 데리고 여행이나 가야겠군.”
그렇게 이 기쁜 소식을 묘향에게 전했으나.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응? 왜?”
“서천상단의 일이 워낙 바빠서요. 아시다시피 지금이 성수기잖아요?”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잖아?”
“그때도 무리해서 억지로 간 거예요. 그마저도 양 련주가 없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테고요. 이번에 떠나면 정말 감당이 안 돼요.”
“…….”
하지만, 괜찮다.
내겐 마누라도 인정해 준 애인도 있으니까.
“킬킬킬, 화란이는 폐관에 들었다.”
“……갑자기?”
“최근에 풍무환인가 풍유환인가 하는 영약을 먹고는 진기가 안정되지 않는다더군.”
“…….”
“너무 걱정하지 마라. 폐관을 마치면 더욱 대단한 화란이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대체 뭐가 대단해진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폐관에 들었다는데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 꼬셔 봐야지.
혼자 놀러 가는 건 재미없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하루 만에.
“이, 이럴 수가……!”
나를 제외한 구룡성의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뭘 보슈? 여자에게 차인 놈 처음 보슈?”
“유랑 가신다면서요? 저도 같이 가요!”
귀뚤귀뚤.
아, 당양강과 청소소도 제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