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15
314화 안휘(3)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고.”
이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림 한 장이라니.
이쯤 되니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펄럭.
그림을 펼쳐 봤다.
삼백 년이나 지났음에도 그림은 색만 약간 바랬을 뿐 썩은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뭐…… 다들 잘생기긴 했네.”
그려진 인물들을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정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오른쪽은 남경에서 만난 남궁유룡과 닮았으니 남궁무영일 거고 차례대로 이산, 청구서, 천자헌, 그리고 북궁수천 조상님이겠군.’
그렇게 그림을 살펴보던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유전자의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거 아니야?’
반면, 엄마 쪽 유전자는 발언권이 아예 없었고.
어떻게 삼백 년이 지났어도 후손들하고 이렇게 똑 닮을 수가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긴…… 다들 명문 무가의 후손들이니 강한 유전자는 필수겠지.’
사람의 재능은 유전으로 결정된다는 가설이 떠올랐다.
‘갑자기 억울해지는군.’
전생에서 공부를 못한 이유가 엄마 아빠의 유전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성적표 나올 때마다 두들겨 맞았었는데 말이다.
뭐…… 지금은 억울해할 시간 따위는 없지만.
샤아아.
칠감도를 펼쳐 주변을 살폈다.
‘아직 누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있다던 행사 때문에 방비가 허술한 모양.
사실, 사자맹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악서였으니 방비를 철저히 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
툭.
창고에서 튀어 올라 밖으로 빠져나갔다.
휙.
심장이 터져 죽은 스물의 시체 사이에 발을 디뎠다가, 곧바로 비천풍을 펼쳐 달려 나가려던 찰나.
“……뭐야?”
위화감 가득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커다란 불길을 내뿜는 커다란 불기둥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수백이 넘는 인파.
순간 전생에 봤던 캠프파이어가 떠올랐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발걸음을 멈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누가 죽인다더냐? 말만 잘 들으면 아무 해도 입히지 않는 건 물론이고 천국도 보여 주겠노라.”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참상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무장으로 추정되는 그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아악! 저리 가! 저리…….”
“이년이!”
퍼억! 퍼억!
“쿨럭.”
말을 듣지 않으면 두들겨 패는 건 물론이고.
“흐흐흐, 이럴 때는 내가 혈염방 소속인 게 행복하단 말이지. 뭐 하냐? 술이나 한잔 따라 보거라.”
덜덜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여인의 몸을 떡 주무르듯이 만지는 건 물론이었으며.
“이년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자, 잘못…… 커헉.”
촤확!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단숨에 죽여 버리는 놈까지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관인 건 아까 본 혈염방주가 앉아 있는 쪽 광경이었다.
가장 상석에 자리한 그는 열다섯의 여자들과 함께 있었는데.
“크핫핫, 좋구나!”
문제는, 그 여자들이 열두셋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으흑, 흑……”
“허어, 묻지 않느냐. 이름이 무엇인지.”
“야, 양선이라고 하,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태구나.”
“가, 감사합…….”
“그럼, 어디 속살 한번 보자꾸나.”
“예? 아악!”
그 모습을 보니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고, 온몸에서 경력이 터져 나왔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며 지붕을 이루고 있는 기왓장들이 대번에 박살 났다.
참아야 하는 상황인 건 알고 있다.
자칫해서 정체가 들통나기라도 하면 사자맹의 지독한 추격을 받을 수도 있고, 구룡성과 사자맹의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전쟁이 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인간으로서 넘지 않아야 할 마지막 선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놈들은 그런 선을 한참이나 넘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놈들을 그냥 두고 갈 바엔 접싯물에 코 박고 뒈지는 게 낫다.
꾸욱.
“이 시발 새끼들아!”
후웅.
내공을 잔뜩 담은 사자후가 터져 나가며 근처를 울렸다.
“크억.”
“귀, 귀가!”
“안 들려!”
내공이 약한 몇몇이 가슴과 귀를 부여잡고 쓰러짐과 동시에 나머지 놈들이 내가 서 있는 전각의 지붕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뭐야?!”
“침입자다!”
“저 새끼 잡아!”
대로한 혈염방주가 자신의 태도를 뽑아 들며 나를 가리켰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을 잡아 육시를 내지 않고.”
챙챙챙챙.
일견 보기에도 삼백에 가까운 혈염방도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나는 그런 놈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모조리 씹어먹어 주마.”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였다.
* * *
절정고수 극소수와 잘 쳐 줘야 일류 수준 열댓 명, 나머지는 이류에 불과한 혈염방 무인들과 절대지경에 오른 나.
당연히 싸움의 양상은 일방적이었다.
퍼억. 후드득.
내 간단한 손짓 한 번에 한 놈이 머리뼈가 골절되어 쓰러졌고.
빵! 퍽퍽. 우드득.
“끄어억! 파, 팔이!”
“다리가 부러졌어. 누가 나 좀…….”
가볍게 뻗은 각법에 맞아 날아간 적이 근처 놈들의 팔다리를 부러뜨렸으며.
쿠릉. 콰아앙!
내가 한 번씩 옅은 경력을 터뜨릴 때마다 주위 놈들의 갈비뼈가 모조리 부서졌다.
그럼에도 여태 싸움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놈들을 죽이는 것보다 놈들에게 고통을 주는 걸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지직.
“끄아악!”
눈에 띄는 놈의 골반뼈를 완전히 으스러뜨렸다.
실력 좋은 의원을 찾아간다면 죽지는 않을 거다.
비록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걸 본 다른 놈이 외쳤다.
“사, 사람이 어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무인.
몇 없는 절정고수였기에 처음부터 타깃으로 삼았던 이였다.
방금 여자에게 검을 휘두른 놈이기도 했고.
팟.
곧장 이형환위를 펼쳐 놈의 턱 양쪽을 붙잡고 물었다.
“니들은 사람이라서 이런 짓을 벌였고?”
“우웁. 웁!”
퍽. 촤왁!
놈의 양 눈알을 터뜨리고 혀를 뽑았다.
삶과 죽음 어딘가에 내던져진 놈이 몸을 떨며 정신을 잃어 갔다.
“괴, 괴물……!”
“도망…… 도망쳐야 해!”
“비켜!”
전의를 상실했는지 방주를 제외한 모든 놈들이 몸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대탈출에 나는 손가락을 펼쳐 놈들에게 전주시를 날려 보냈다.
푹푹. 푹.
음속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간 굵은 바늘이 사정없이 움직이며 놈들의 양쪽 아킬레스건을 사정없이 끊었다.
머리를 터뜨려 단숨에 죽일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자비로운 형벌이었다.
나는 쓰러진 놈들에게 다가갔다.
“오, 오지 마!”
놈들이 배를 바닥에 깔고 기어갔고.
“걱정하지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놈들의 단전을 터뜨리고 다리를 통째로 뽑아냈다.
푸확!
아, 물론 지혈은 필수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였으니까.
“끄어억!”
“아, 안 돼. 저리 가! 아, 안 돼에!”
“커헉!”
“제, 제발…… 크흐흑.”
애원하는 놈의 다리를 뽑으며 말했다.
“네놈들은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이들의 울음을 받아 준 적이 있냐?”
푸확!
그러기를 반 시진.
피바다를 만든 나는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갔다.
몸을 숨긴 혈염방주를 찾기 위함이었다.
찌걱. 찌걱.
사실, 놈이 어디 있는지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틈틈이 칠감도를 펼쳐 놈의 위치를 파악해 놨거든.
단상을 지나쳐, 전각에 들어서자마자 발을 굴렀다.
콰직. 우르르.
바닥이 무너지며 숨어 있던 놈이 보였다.
놈은 혼자가 아니었다.
밖에서 챙겨 왔는지 한 여자아이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이년 목이 부러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가까이 오지 마라!”
딱히 위협이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전주시의 속도라면 놈이 힘을 주기도 전에 골통을 터뜨려 버릴 수 있으니까.
“일단, 진정하고 대화를 하자.”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놈은 자신의 작전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협상을 요구했다.
“대화라…….”
“그래,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이유는 차고 넘치지.”
찌걱.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내 얼굴을 보여 줬다.
“당신 같은 고수가 대체 누구의 사주를…… 헉!”
그러자 놈의 두 눈이 밤톨만 하게 커졌다.
내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패, 패군?! 당신이 대체 여길 왜……?”
“네놈들의 악행을 더는 두고 보지 못하겠는지 하늘이 나더러 가 보라고 하더군.”
“이익!”
갑자기 손가락에 힘을 주는 혈염방주.
아무래도 협박을 통해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듯 보였다.
“장담컨대 그 여자애가 죽으면 네 놈을 스물아홉 조각으로 찢어발겨 주마.”
멈칫.
“사람 같지도 않은 게 제 목숨은 아까운 줄 아는군.”
“……원하는 게 뭐냐……. 아니, 뭐요.”
“원하는 거? 별거 없어. 그냥 니들이 착하게 사는 거니까.”
“구체적으로 말해 준다면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소.”
“뭐…… 세금을 삼 할만 걷고 백성들을 수탈하지 말 것이며 위해를 가하지 말라는 정도?”
“그런 거라면 내일 당장…….”
“근데 그게 불가능하잖아? 안 그래?”
“지금 실수하는 거요. 내가 누군지나 아시오?”
“알지. 혈염방주 백준막. 사자맹주의 사돈이자 사자맹 사 공자의 장인.”
“그걸 알면서 대체 왜……?”
“아까 말했잖아. 하늘에서 혈염방을 징치하라고 했다고.”
펑.
“끄아악!”
전주시를 쏘아 내 놈의 팔목을 터뜨렸다.
허공섭물을 펼쳐 소녀를 안전하게 구출한 뒤 놈에게 걸어갔다.
“하나만 묻자. 대체 밖에 있는 여인들은 어디서 데려온 거냐?”
“크흑…….”
“어쭈? 대답 안 하지?”
펑.
아파하는 놈의 발목을 터뜨림과 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횃불을 집어 들었다.
“커헉!”
“지혈해 줄게.”
치이익.
“끄아악!”
살이 타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울려 퍼지는 비명.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야, 기왕 이렇게 된 거 몇 번 더 버텨 봐라.”
바닥에 쓰러진 놈이 눈물을 쏟아 내며 입을 열었다.
“매, 맹에서 사 왔소! 크흑흑.”
“맹?”
“사자맹 말이오!”
“자세히 말해 봐.”
놈이 눈알을 굴렸다. 나는 놈의 쇄골을 으스러트리듯이 잡았다.
뿌드득.
“으윽…… 죄, 죄인들의 가족이오!”
“죄인들이라면?”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한 백성과 그 가족들은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오. 우리는 그런 노예를 산 것뿐이고.”
“허!”
기가 막히다 못해 심혈관이 막히는 대답.
아무리 사파의 맹주라고 해도 명색이 천하오패씩이나 되는 놈들이 백성을 노예로 전락시켜 사고팔다니.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단초를 제공한 건 사자맹이라는 뜻이네?”
“맞소! 모든 건 맹이 잘못한 것이지, 우리는 그저 맹에서 하라는 대로…… 끄아악!”
꽈드득.
“다…… 다 말했으니 이제 그만…… 끄어업!”
화가 치밀어 올라 놈의 쇄골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더는 볼 것도 물을 것도 없던 터라 나는 발끝에 경력을 담아 놈의 아랫배를 후려 찼다.
“끄어업!”
혈염방주가 한참이나 비명을 지르며 발광하더니 이내 기절했다.
내공은 흩어졌고 오른손과 왼발이 날아갔으니 살아난다 해도 사람 행세 하고 살기는 글렀을 터다.
그래도 속 시원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내가 구한 건 모두가 아니라 소수였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이거 보여 주려고 여기로 이끈 거야?”
운명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