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5
16화
재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셀 수 없을 만큼 존재했지만 그중 레전드 재수 없음 1위를 뽑으라면 단연코.
즉시 말할 수 있었다.
시스템의 의도를 눈치채자마자 기분이 고까워졌다.
이건 시간 안에 미션을 해결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애초에 폭주를 노렸다 이거지.’
【최초 근원 도달자!】
【공적치를 6.2% 얻으셨습니다.】
얄밉게 튀어나온 알림창과 동시에 산 중턱쯤에서 번들거리기 시작한 시푸른 돌덩이를 노려봤다.
사실 처음부터 2시간이라는 타임 리밋도 너무 짧다고는 생각 했었다.
친절하지 못한 설명.
여기 사람들이 나처럼 이미 경험해 본 진행 방식도 아니었고, 만약 운이 좋아 제한 시간 안에 여기까지 도달했다 하더라도.
‘또 막을 방법을 찾아야 된다는 소리잖아.’
그냥 아주 다 죽으라고 하지 그래.
절로 비아냥이 튀어나왔다.
말 그대로였다.
마치 근원 장소를 발견하면 포탈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꾸며내 놓고, 실질적으로 뭐라도 있어 보이는 저 파란 돌덩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함정이었다.
아니, 말하자면 저게 그 발생 근원이 맞긴 한데.
‘저걸 발동 시키려면 또 특정 아이템을 찾아야 된다고.’
내 세계에서 주구장창 욕했던 방식을 여기서 고대로 보고 있자니 환멸이 밀려왔다.
2시간은 무슨.
“각성자들 죄다 집합시켜도 12시간은 걸리겠구만.”
그럴싸한 희망을 쥐여주고 이제 끝났구나.
아무 피해 없이 지나가겠구나. 생각하던 사람들의 멘탈을 터트리기 적합한 시나리오였다.
폭주한 포탈.
마수들이 쏟아지고, 서울 곳곳이 불바다가 되는 새해 종말 장면이 그대로 그려졌다.
이겸은 물론이고 수많은 랭커들이 추락했겠지.
물론.
‘내가 없었을 때의 이야기다.’
호랑이의 ‘ㄹ’까지 나왔을 때 힌트의 답이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아무리 찾아봐도 홀로 시작하는 동네는 없었을 뿐더러.
‘똑같아.’
뒤죽박죽 섞여 있긴 했지만 나는 이런 이벤트를 예전에도 해본 적이 있었다.
답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철석같이 특정 장소의 이름을 알려주는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올해가 호랑이의 해라고 주구장창 붙이는 기사 제목들 덕분에 바로 연상할 수 있었다.
‘그게 한 삼 년 전이었나?’
범의 해는 아니었고.
비슷한 맥락의 황금 돼지 이벤트를 했던 기억이 싸악 살아났다.
그게 곧장 인왕산으로 직진한 이유였다.
‘날 찾아오세요.’ 써 붙이고 빛나는 돌덩이 대신, 어둠 속에서도 형형한 호랑이 동상 앞에 선 이유 역시.
“뭔 팔자에도 없는 착호갑사 노릇하게 생겼네.”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 근원을 막기 위해선 또 다른 물건이 필요했다.
아마도, 이 차원 속 호랑이의 무언가가.
빛나는 동상 위로 손을 얹었다.
【히든 이벤트 차원을 발견하셨습니다!】
【공적치를 10.3% 얻으셨습니다.】
【최초 발견자!】
【공적치를 3% 추가로 얻습니다.】
【민담 차원(호환虎患)에 입장하셨습니다. (현재 인원 : 총 1명)】
#
【MISSION】
▷ 호환 민담을 완수해라.
― 분류 : 차원
성공 시, 이벤트 아이템 지급.
실패 시, 사망.
#
“어이, 자네 뭐하나!”
누군가 어깨를 거세게 쳐오는 손길에 퍼뜩 눈을 떴다.
꿈이라도 꾼 것 같이 멍한 눈에 들어오는 건 깜깜한 밤.
나무, 흙길.
시야에 잡힌 인왕산의 풍경은 그 전과 딱히 다른 게 없었다.
다만.
“벌써부터 정신 빼놓고 있으면 호랑이가 물고 가도 모르겠네. 바짝 긴장하고 있으라고.”
상투를 튼 아저씨가 엄한 얼굴로 일갈했다.
【민담 속 이야기에 간섭하여 임의로 복장이 덧씌워집니다.】
【장비 – ‘상처 난 갑옷’】
【무기 – ‘끝이 뭉툭한 창’】
【복장에 맞지 않는 일정 스킬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고개를 내려 옷차림을 살폈다.
움직일 때마다 묵직한 갑옷이 절그럭댔다.
‘들어 왔구나.’
한순간도 놓지 않았던 지팡이 대신 까슬하게 느껴오는 창대를 매만지며 주위를 살폈다.
민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보니, 전체적인 주제는 같아도 매번 그 속의 내용은 랜덤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호랑이를 잡는다, 까지는 알겠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산적들이 우글거렸다.
유일하게 주변을 밝히는 횃불이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럴 때는 매번 그랬듯이.
‘흐름을 탈 수밖에.’
그 순간, 얼굴부터 다부진 장군감 하나가 선두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요 근래 더더욱 기승을 부리는 범 때문에 애통함이 강처럼 흐르는 나날입니다.”
말하는 투가 침통함에 젖어 있었다.
“놈들은 점점 더 영역을 넓히고, 인육을 먹이 삼아 또 다른 호환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차일피일 변명을 대며 사냥을 미루기만 하는 군관놈들 대신, 우리는 오늘. 우리의 손으로 직접 삶을 지키러 이곳에 왔습니다!”
“와아아아!”
“인간의 두려움을 모르는 짐승에게 죽음을!”
“죽음을!”
머리 위로 사기에 찬 각궁과 창이 요동쳤다.
와, 와아아아.
대충 분위기를 보고 팔을 흔들며 동조했지만 나는 여전히.
‘뭐라는 거야?’
아까 나를 혼쭐냈던 아저씨를 조용히 건드렸다.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는 그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그러니까, 호랑이 한 마리만 잡으면 된다 이거죠?”
그러나, 그 상투 아저씨는 또.
“예끼, 이놈아.”
그러더니.
“여기 이 얼뜨기 누가 데려왔어? 또 줄초상 낼 일 있어?”
갑자기 뒷덜미를 붙잡고 주변에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저는, 조용히 물어봤는데요.
힐끔힐끔 내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이 한마디씩 말을 얹었다.
“누가 뭘 데려와. 지 발로 지원해서 왔겠지.”
“겁대가리 없이 굴러온 거 보니까 여기 사람은 아닌갑네.”
“거죽 때기 노리고 왔다가 목 물려 가는 놈 하나 더 생기겠구만.”
껄껄껄.
산적 같은 얼굴들이 입을 쩍 벌리고 웃을 때마다 목젖이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잠깐. 설마 지금 나도 저렇게 생겼냐?
잠시 질색하며 얼굴을 매만져봤지만 맨들맨들한 피부 그대로였다.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온 상투 머리 하나가 어깨에 턱 팔을 걸쳤다.
무게에 몸이 휘청거렸다.
“풋내기 도련님. 잘 들으시오. 그 얇은 손모가지로 보통 범이라도 하나 잡으면 다행이지, 우리가 지금 잡으러 가는 건 평범한 놈이 아니야.”
“맞아. 소문도 못 듣고 지원했남? 거, 주막집 순이네 자식들도 냇가에 멱 감으러 갔다가 죄다…….”
“이 사람아.”
무슨 좋은 소리라고 떠벌리냐며 사냥꾼 하나가 호통쳤다.
주위를 둘러본 산적1이 조용히 속삭였다.
“벌써 수십 명을 집어삼킨 짐승일세. 그런 말 못 들어봤나. 사람을 너무 많이 잡아먹은 나머지, 사람의 목소리를 갖게 되어 먹잇감을 꾀어내는 호랑이가 있다고.”
“그건 짐승이 아니라 요물이지. 요물.”
“다 허무맹랑한 소리야. 죽다 살아난 놈들이 하는 헛소리라고.”
주변이 또 웅성거렸다.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걸 보아하니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호랑이, 사람 목소리, 요물…….
멍하니 생각하던 내 입에서 문득 깨달음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아. 들어본 적 있어요.”
순간 여러 개의 시선이 와다다닥 내 얼굴로 박혔다.
진짜냐고 묻는 것 같은 그 눈알들 때문에 당황했다.
뭐야? 자기들이 먼저 떠들어놓고?
‘장산범이었나.’
내가 아는 한 애카에서 등장하는 마수는 아니었지만,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호랑이 요괴.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다.
괴담을 기반으로 하면 충분히 보스로 등장할 법하지.
그런 뜻에서 대화에 참여한 거였는데…….
“다들 뭉쳐서 뭐 하나?”
선두에 섰던 그 장군이 다가와 미묘한 분위기를 해산시켰다.
옆에 있던 산적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후다닥 전열대로 서더니, 열중쉬어 자세로 굳었다.
실세는 실세구만.
생각하는 도중 그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멀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겁나 크네.’
눈이 이모아보다 몸통 반절은 더 위에 있었다.
내려다보는 눈빛이 살벌했다.
풍채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한 그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우리 마을 사람인가?”
“아, 예. 그런 건 아니고.”
뭐라 해야 되냐. 아까 그 순이네? 누구?
간절한 구조의 신호를 보냈지만 방금 전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떠들던 산적들은 지나가던 개미만도 못하게 나를 무시했다.
철저히 앞만 보는 시선들.
역시 인생은 혼자다.
나는 최선을 다해 뇌리에 박혀 있는 사극 장면들을 상기시키려 노력했다.
“그, 지나가던. 나그네입니다.”
컥.
누군가 참지 못한 웃음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사정이 있어 묵고 있습니다.”
이미 망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치밀었다.
그러나 장군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나 볼 뿐, 당장 꺼지라는 불호령이 떨어지진 않았다.
대신 아까보다 방어적인 자세로 팔짱을 끼고.
“우리 마을과 관련도 없는 사람인데 이런 곳에 참여해도 되겠나? 무척 위험하고 험난한 사냥이 될 텐데.”
간접적으로 눈치를 줬다.
나는 부러 더 맹한 얼굴을 했다.
세상은 상대방의 대답을 턱 막히게 할 아방한 인간이 승리한다.
“먹여주고 재워주신 은혜 갚는 거죠, 뭐.”
내 입에 들어왔던 건 하나도 없긴 한데요.
능청을 떨자 장군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각궁대신 창을 받았군. 이유가 있나.”
그런 것도 이유가 필요하냐?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대답대신 창을 몇 번 위로 던졌다가 받았다.
“걱정마세요. 뭘 써도 죽지는 않을 정도니까.”
실력 테스트는 이제 심드렁했다.
설화도 아니고. 민담의 최고 등급은 잘 쳐봤자 A+인 수준이었다.
스킬 사용에 제한이 걸려 있는 게 좀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절반 정도 각성을 마친 지금의 나에겐 두려울 게 없었다.
‘요물 호랑이를 잡으라는 목표도 어느 정도 알아냈고.’
그러나 내 태도가 거드름 피우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장군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마디 했다.
“다행이군. 손가락만 남은 시체가 늘어나는 건 우리도 보고 싶지 않으니.”
그러더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허. 나는 그 등 뒤에 조용히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저거 지금 나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거 아님?’
나중 가서 제발 온 동네 호랑이 다 잡아달라고 붙잡지나 말아라.
가볍게 혀를 차며 뭉툭한 창을 손으로 굴렸다.
앞에 선 싸가지 장군이 호령했다.
“지금부터 사냥을 시작한다! 반드시 서넛의 동료들과 함께하며, 소문의 범을 마주 했을 때에는 섣불리 덤비지 말고 횃불로 먼저 위치를 알리도록. 알았나!”
“예!”
“움직여라.”
화다다닥.
무기를 지닌 장수들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반면 나와 안면을 튼 산적들은 여유작작했다.
“아이고, 급히 간다고 호랑이가 제 발로 나타나나.”
머리에 묶은 끈을 다시 한번 질끈 동여맨 뒤, 내 등을 툭툭 쳤다.
“같이 갑시다, 고운 도련님.”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아저씨 감이 좋네. 줄 잡을 줄도 알고.”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손등으로 가볍게 코끝을 훔쳤다.
낡은 갑옷 위를 퉁퉁 두드렸다.
‘30분.’
그 안에 끝낸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