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2
43화
빠악! 도르르르.
훈제 계란의 갈색 껍데기가 한 줄로 말끔히 벗겨졌다.
목이 막히지도 않는지 입에 가득 넣고 움푹움푹 씹는 머리 위로 또 하나의 계란이 내리쳐졌다.
빠악!
[화제의 인물, S급 랭커의 정체 …… 랭킹 1위 이겸 동생 이모아?] [화랑 측, “아무 문제 없다” 일축] [오늘의 PICK! 뛰어넘는 징검다리 각성, 가능한가?]쯧쯧쯧.
찜질방 한구석에 틀어져 있는 작은 티비 앞에서 설타음이 이어졌다.
“저 봐. 세상을 위해서 일한다. 여러분을 구한다 말만 번지르르 늘어놓지, 지 좋은 자리 넘겨주려고 하는 건 다 똑같다니까.”
“현영 엄마 얘기 못 들었어? 저거 완전 비리라잖아.”
“어떤 게?”
“동생 랭킹 올려주려고 이겸이 대신 측정한 거다. 그동안 시스템이랑 몰래 거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거다, 어쨌다 말들이 많아.”
호로록.
일부러 요란스럽게 마신 식혜 한 모금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전부 빨려 사라졌다.
무심하게 내리던 핸드폰 화면 위로 뉴스에 링크된 동영상 하나가 걸렸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썸네일에서 목석처럼 우뚝 서 있던 구서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번개 같은 플래시가 끊이질 않고, 온갖 카메라와 마이크들이 그만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겸 님도 이 사실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지금 어디 계신가요!”』
『“길드장님께서는 용무 때문에 잠시 외출하셨습니다.”』
『“급격한 랭킹 상승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어떻게 하신 거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도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고요,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니까 잠시만…….”』
『“이모아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양, 질린 얼굴로 청산유수 대답하던 구서복이 잠시 멈칫거렸다.
그 망설임을 눈치챈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모아는 어디 있습니까!
이모아, 이모아…….
이윽고 억울함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을 하고는 선포했다.
『“저도 모릅니다.”』
찰칵찰칵! 찰칵! 더더욱 거세지는 플래시 세례.
풉! 씹던 노른자가 조금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지, 뒤이어 황당하다는 목소리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무슨 소리야?”』
『“그게 말이 돼? 저 사람 보좌관 아냐?”』
『“숨기려고 거짓말하는 거겠지, 무슨.”』
그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분통 터지는 목소리.
『“아, 진짜 저도 모른다고요.”』
그러나 사람들은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었다.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이겸 님과 함께 도망친 것 아닙니까?”』
『“정체가 뭡니까!”』
묻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카메라와 마이크의 압박에 쭈그러드는 구서복은 이제 얼굴만 동동 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불쌍한 놈. 저게 사실인데…….
속으로 미약한 안쓰러움을 전하고 있을 때 즈음.
『“아, 저도 진짜 모른다고요오오오!!』
사자후 같은 원성이 기자들을 일순 잠재웠다.
성큼성큼.
포위된 자리를 분노한 발걸음으로 한방에 뚫어버린 구서복은 곧 카메라 하나를 덥썩 붙잡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게 확대된 놈의 얼굴이 다다다다, 쏘아붙이듯 앙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씨 가출하신 지 한참 되셨거든요? 맘대로 집에 왔다가, 나갔다가. 오랜만에 왔더니 먹을 게 없다고 핀잔이나 주시고. 맛있는 거 해놨더니 냉장고에서 썩어빠질 때까지 돌아오시지도 않는 아주 제멋대로 망나니라고요!! 지금 우리도 실종신고 해야 될 판이라고. 예? 기자님들. 오셨으니까 저 말 좀 합시다. 아가씨!! 어디 계세요. 사고치고 집에 안 들어올 거면 연락이라도 좀 하시라고요!!”』
오오오오.
뚝. 구서복의 간절한 외침이 끊김과 동시에 검은 화면이 나를 반겼다.
그 위로 비치는 나는 옅은 빡침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서복…… 나를 지금 대국민 망나니로 만들었겠다?’
가만 안 둬, 이 아저씨.
그리고 진짜 몇 번 찬물에 밥 말아 먹긴 했었잖아!!
억울함을 토해낼 길이 없어 잘근잘근 빨대를 짓씹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모아의 S등급 선포 이후 대한민국은 왈칵 뒤집혔다.
이게 가능하냐부터 시작해 이겸이 무슨 짓을 벌인 거 아니냐.
공평한 루트로 각성의 힘을 얻은 게 맞느냐, 안팎으로 종일 이모아의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별다른 말을 얹지 않는 화랑의 무응답 역시 불길이 커지는 데 한몫을 했다.
사람들은 그걸 온갖 루머에 대한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채본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헤아리지 못한 불찰을 통감합니다. 현재 언급된 각성과 랭킹에 부정한 부분이 있다면 조사로 샅샅이 밝혀내겠습니다.”』
거세지는 여론에 못 이기는 척 공식 석상에 튀어나왔다.
이해운이 직접 나선 건 아니었고, 그 밑을 꽉 잡고 있는 서이본이 대변인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화제는 화제로 덮으라고.
한창 채본 못 믿겠다, 저런 놈들을 어떻게 대가리로 세워 놓느냐 불신했던 사람들도 어느새 연구소 사건은 잊어버린 양 한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겸을 갖다 놔라!』
해명시켜라!
등급으로 잠잠했던 벽을 박살 낸 건 난데, 온 세상이 그의 추락만을 바라는 것처럼 굴었다.
물론 드문드문 내 이름을 빌려 이겸을 쉴드치는 댓글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 것도 보이긴 했지만…….
└ 각성알못 늬 민간인이지?ㅋㅋ
└ 나몰래 점핑 이벤트라도 했나봄 같이하자 씨*
└ 걔 E등급인거 내가 똑똑히아는데 뭔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E까지 갈 필요도 없음 C등급 선발전 1위신데ㅎ (사진)
살벌하게 두드려 맞고 별안간 몇 달 전 C등급이었던 사실만 끌어올려 줬다.
벌러덩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다시 화면을 열어 쌓인 메시지 창들을 확인했다.
몇백 통씩 날아온 구서복의 문자는 가볍게 스킵하고. 주서윤, 권해이, 하나, 연, 강민희 리오…… 심지어는 도학까지.
무슨 일인지 연유를 묻기 위해 날아온 안부들이 끝도 없었다.
그런데 단 한 명.
‘이겸.’
그에게서 온 연락은 아직도 보이질 않았다.
우적우적.
기계적으로 계란을 씹어 삼키던 가슴이 퍽퍽했다.
주먹으로 명치를 퍽퍽 두드리고 있자, 앞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아주머니 둘이 뒤를 돌았다.
눈이 마주친 뒤.
“목 막혀? 수정과 좀 줄까?”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정하게 묻는 말에 미소로 일관했다.
그렇게 그냥 관심을 내려놓길 바랐는데…….
“하하. 아하하.”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괜히 멋쩍은 웃음을 내뱉었다.
얼음밖에 남지 않은 식혜를 괜히 마시는 척하고, 부산스레 계란 껍데기를 뒤적였다.
설마 내가 누군지 눈치챘나? 속으로 식은땀이 삐질 흘렀을 때.
“그런데 아가씨는 여기서 웬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시선 속에 담겼던 본질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휴우. 난 또 뭐라고. 손등으로 새까만 선글라스를 한 번 고쳐 쓰고 답했다.
“제가 라식 수술한 지 얼마 안 돼서요.”
“그래?”
넉살 좋게 반응한 것과 달리 다시 앞을 돌아본 두 여사님들은 아까 때 미는데 탕에서도 끼고 있더라니까. 수군거렸다.
그렇다.
내가 이 찜질방에 찾아온 이유는 단 한 가지.
‘목욕재계(沐浴齋戒).’
선 성향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위해서였다.
정보창을 열었다.
【선 성향: 84%】
‘하루종일 쌔빠지게 굴렀는데 고작 2퍼센트 올랐다고.’
목 끝까지 한숨이 차올랐다.
오늘 선 성향을 위해 한 일들을 나열해보자면, 일단.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기부했고.’
비각성자들과 하위 각성자들의 복지를 위해 일한다는 사랑의 재단에 1억을 쾌척했다.
화랑 창고에서 쌔빈 비상금이 좀 남아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리고.
‘연탄 봉사 미션도 했고.’
기여한 연탄 장 수대로 아주 쪼금씩.
진짜 개미만큼 선 성향이 쌓이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 최소 오천 장 정도는 나른 것 같았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이것도 나름 잘 오르는 미션이라고요.’
얼굴에 검댕이를 잔뜩 묻히고 돌아와 묵은 때를 빡빡 미는 것으로 간신히 1%를 더 채웠다.
아. 정말 안타깝게도, 한 가지 방법을 실패하긴 했다.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자그만 방 한 칸.
손수건만 한 빛이 바닥에 내려앉고, 작은 창살 하나만 사이에 두었던 공간 속.
「“신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실 겁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고해성사 히든 미션.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익명성이 철저한 공간이었지만 아무리 짜내도 ‘고해? 그게 뭔데.’ 상태로 한참을 침묵했다.
이 신성한 분위기도 영 고까웠고.
‘게임 속에서는 그냥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됐는데!’
묵묵한 침묵 속에서 결국 산발로 머리를 쥐어뜯다가, 간신히 하나를 찾아 말했다.
「“어……. 오늘 아침에 또 아저씨의 전화를 씹었습니다. 고해합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울리지 않는 미션 완료 소리.
허벅지에 올려둔 주먹을 인내심을 다 해 꽉 쥐었다.
누가 봐도 하기 싫은 목소리로 과거의 사죄 거리를 뽑아냈다.
「“심심하면 용태의 머리를 후드려 쳤습니다. 고해합니다.”」
「“…….”」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지만 다리를 부러트리고 등을 잘근잘근 밟아서는 안됐습니다. 고해합니다.”」
「“…….”」
「“사지를…… 에이씨.”」
안 해, 썅!
뭐 어쩌라는 거야? 성난 이를 드러내며 성당을 튀어 나왔다.
선 성향이라는 게.
솔직히 말하자면 미션을 진행하면서 누구를 돕고, 구하면서 천천히 채워지는 거지, 억지로 올리겠다고 팍팍 땡길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애카에서도 신성계 플레이가 선호되지 않는 걸 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지키기도 어렵고, 올리기도 어렵고.’
선택지 하나만 잘못 골라도 시궁창에 처박히는 게 선 성향이었으니까.
매트리스 위로 빙글 돌아누웠다.
황토색 천장 위로 여러 사람의 얼굴이 둥둥 떠오르다가, 생각이 멈춘 인물은 결국 이겸이었다.
‘아무 대응도 하지 않은 건 이해가 된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모아의 능력과 저주에 대해 모두 설명해야 했다.
그건 이겸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과 같았고, 채본도 그 사실을 아니까 저렇게 뻔뻔하게 나온 거겠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해운을 족쳐서 네가 한 짓이라고 다 털어놔라.
그리고 대중들 앞에 봐라, 이 새끼가 나를 가둔 범인이다 라는 걸 터트리는 수밖에 없는데, 스킬 못 쓰는 건 둘째고 만약 저 새끼들이 먼저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얽히고설킨 생각으로 이마가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짭.
입맛을 한 번 다신 뒤,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 하나를 전송하고 주머니 속으로 처박았다.
딱딱한 바닥에 등이 배겼지만 애써 눈을 감았다.
이렇게까지 가긴 싫었는데.
[리오 나 좀 도와줘요]찍어 보낸 글자가 잠들기 전까지 눈앞을 어룽거렸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