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ll Search Gets Done RAW novel - Chapter 103
104. 절체절명의 도시 (3)
도쿄대 병원 앞.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길드원들 앞에 선 검은 섬광의 길드장, 다이스케는 나를 바라보며 45도 각도로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대단하군.’
나는 그러한 다이스케를 바라보며 속으로 내심 감탄했다.
이 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S급 헌터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 등급은 고작해야 E급.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나타난 나를 대하는 다이스케의 태도는 공손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방금 전, 씨 자이언트로부터 목숨을 잃을뻔한 그를 내가 구해주었다지만…
아무래도 헌터 등급에 따라 계급처럼 인식되는 업계 특성상, 저 정도로 됨됨이가 바른 사람을 마주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아닙니다. 마침 저희가 그곳에 떨어지는 바람에, 기회가 좋았을 뿐이지요.”
“그런데··· 검색 길드에 대한 얘기는 전해 들은 바가 있습니다만, 길드장님께서 그 정도의 전격 스킬을 구사할 줄 아신다니.”
“기껏해야 3티어의 ‘벼락불’ 정도 사용하는 게 전부입니다.”
지금의 나는 가면을 쓴 신원미상의 헌터가 아니었기에.
적절히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다이스케는 나의 겸손한 말에 의아한 듯 잠시 머뭇거리는 듯 보였지만, 굳이 이렇게 말하는 나를 향해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먼저 질문을 한 가지 던졌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여러 국가의 길드에서 지원을 보냈다고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도와주러 오신 모든 분들께서는 현재 도쿄 곳곳에 있는 다양한 필수 시설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곳, 도쿄대 병원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저희, 검은 섬광뿐입니다.”
다이스케는 씨 자이언트의 사체를 치우는 자신의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은인 분들께 차라도 한 잔 대접할 수 있어야 옳겠으나, 그러지 못하는 점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 뭔가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겠죠. 어서 하루빨리 평화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때. 다이스케의 뒤쪽에서 꽤 큰 기계장치를 옮기던 일련의 헌터들이 눈에 띄었다.
“잠깐, 저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알아보고 말끝을 흐리자, 그들도 우리를 보고는 곧장 우리에게 다가왔다.
암중모색 길드의 일본지사 헌터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서며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길드장님?”
“오, 모두들 여기에 있었군요. 모두들 험지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오신다는 말씀은 못 들었는데, 어쩐 일이십니까?”
사실 내가 필요해서 안인식을 끌고 온 거였지만, 그는 적당한 대답을 이어갔다.
“가장 중요한 일본에서의 테스트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직접 와봐야지요. 어떻게, 테스트는 어떻게 잘 진행되어가고 있습니까?”
“이곳 현지 테스트는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정확도와 오차율은 저희가 처음에 상정했던 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 그거 다행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누가 만들었는데요, 하하.”
그러던 중, 다이스케가 다가와서 또다시 45도 각도로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암중모색 길드의 안인식 길드장님이셨군요. 진작 못 알아 봬서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안인식에게 다가와 또다시 감사의 표시를 하는 다이스케.
이번에는 그의 뒤에 있던 모든 길드원들마저 다 함께 각 잡아 인사를 건넸다.
길고 긴 몬스터와의 사투 속에서, 한명 한명 모두 지치고 초췌한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각이 잡힌 채 대열 해있는 모습은 마치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정신을 대변하는듯했다.
“네? 아,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이곳에서 테스트 중이신 던전 탐지 레이더 덕분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암중모색의 헌터분들께서 저희와 함께 해주고 계신 데, 그 덕에 도쿄와 그 주변지역까지 던전과 몬스터들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테스트 현장이 위험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검은 섬광이 함께 해주고 계시니 저 또한 마음이 놓입니다. 하하.”
“도움을 받는 처지인데,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지요.”
비록 다이스케와는 초면인 관계였지만, 안인식은 능숙하게 그와 던전 탐지 레이더의 보급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차차 몬스터에 뒤덮힌 국가를 수복해나가고, 안정화를 해나갈 예정인 일본은 던전 탐지 레이더의 주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목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안인식이 문득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이 분이 안 계셨으면, 던전 탐지 레이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검색 길드의 길드장님께서?”
“예. 한세훈 길드장님께서 전폭적인 투자를 해주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물건이죠. 물론 아직 완전히 완성된 건 아니지만,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 순간, 다이스케를 비롯하여 주변의 헌터들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잠시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예, 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우연히 떨어진 장소에서 나와 안인식을 은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줄이야.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역사 속에서, 나의 위치 또한 미래 기억과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 방화연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 세훈 씨! 하늘 좀 봐요!”
그녀가 나를 길드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때는, 뭔가 다급한 일이 있다는 의미였다.
위를 올려다보자, 새빨간 덩어리들이 먼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것들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었는데,
“메테오?”
김마리가 문득 유명한 8티어의 화염 계열의 마법 스킬을 읇조렸다.
그러나, 그것은 ‘메테오(Meteor)’ 같은 것이 아니었다.
“화산탄이군요.”
“화산탄이요?”
나는 화산탄이 뿜어져 나왔을, 도심지에서도 잘 보이는 저 시뻘건 산꼭대기를 가리켰다.
후지산 정상.
멀리서도 용암에 뒤덮인 모습이 관측되었고, 자세히 보면 지금도 멈추지 않고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화산탄을 볼 수 있었다.
“저기 보이는 후지산에서 튀어나오는 용암 덩어리입니다. 날아오는 동안 굳어서 돌처럼 변하죠.”
“저것 때문에 지금 도시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 거군요.”
“네,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현재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저것입니다.”
원래였다면 화산탄이나 용암 등은, 흔히 마주할 수 없을 뿐 자연재해의 일부였다. 따라서 그것을 비현실적이거나 이상 현상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사실, 저건 그렇게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라바 웜이 계속해서 날뛰고 있는 증거지.’
현재 저 후지산의 화구에는 바로 SS급 보스 몬스터, 라바웜이 제집처럼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원래부터 활화산이었던 후지산은 결국 폭발을 일으키게 된 것일 터.
저 몬스터에 의해, 단순히 후지산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라바 웜은 분화구 속에 새끼를 잔뜩 낳아서 지맥을 따라 흘려보낸다.
그리고는 다른 지역에 있는 화산들까지 활성화 시켜서 폭발을 유도하는데…….
아직까지는 도쿄를 비롯해 지맥이 이어져 있는 몇 개의 화산만 폭발하고 있지만, 결국 일본 열도 전체의 화산 전체가 일제히 대폭발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나면… 정말로 일본 열도의 멸망도 초읽기라고 할 수 있었다.
스릉─
잠시 내가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다이스케가 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각도를 보아 할 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제 위치로 이동하여 병원을 방어하라!”
그 말과 동시에, 검은 기모노를 입은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미리 정해놓은 듯한 위치로 이동했다.
병원 외곽을 완전히 둘러싼 것은 물론이고, 몇 명은 옥상으로, 몇 명은 주차장 쪽으로.
각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들은 카타나를 움켜쥐었다.
“온다!”
화아아아악!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불붙은 화산탄이 운석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 콰콰쾅! 콰콰콰콰콰쾅─!
병원의 주변으로 떨어지는 것들은 그대로 무시.
다만, 병원으로 직접 떨어지는 것들은 대기하고 있던 검은 섬광 길드의 헌터들이 튀어가 하나씩 배어나겠다.
서걱! 서걱!
그들은 이런 상황은 아주 많이 겪어봤다는 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생각 외로 노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떨어지는 화산탄을 잘 막아내는가 싶었는데…….
나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추가적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화산탄의 양이··· 조금 많아지고 있는 것 같은?
“병원의 중요 시설만이라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막아서라!”
다이스케의 다급한 외침소리가 화산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뒤섞여 울려 퍼졌다.
병원의 주차장에 늘어져 있는 야외 병상 쪽으로 수십 개의 화산탄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검은 섬광의 헌터는 다섯 명.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로 저걸 막아서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한 듯했다.
“너무··· 많아!”
“큭, 젠장! 어떻게든 막아!”
“의료진과 환자들만이라도 지켜라!”
어느새 사제로서 야외 병상을 돌아다니며 의료 봉사 행위를 하던 김마리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섬광의 헌터들이 미처 막아내지 못한 화산탄 하나가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사제님, 위험합니다!”
그것을 발견한 검은 섬광의 헌터 한 명이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잠시 후면 저 사제를 비롯하여 병상 위에 누워있던 수많은 환자들이 크게 다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김마리는 자신의 묵주를 높이 치켜들었다.
“저건··· 사제님?”
묵주에서는 불길하고 어두운 마나가 흘러나왔다.
“스피릿 월(Spirit Wall)!”
쉬쉬쉬쉬쉬잇─!
일대에 고막을 갉아 먹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투명한 영체들이 환자들의 위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각기 절규와 비통의 감정을 뿜어대는 수많은 영혼들이 굳건한 벽처럼 새워졌다.
쾅! 콰콰쾅! 콰아아앙!
쏟아지는 화산탄은 마나가 담긴 스킬이 아니었다.
또한 그녀가 사용한 건 고작 2티어의 흑마법 계열의 스킬이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그녀의 주변에 떨어지는 화산탄을 막아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사··· 사제님이 왜 흑마법을?”
주변의 헌터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놀라움의 감정을 표현했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사제가 아니라 보통 헌터입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시길.”
“아니, 그 복장과 묵주는 성십자회의 그것입니다만?”
“옷은 입을 게 딱히 없어서 그렇고, 묵주는··· 이게 없으면 스킬 보정이 잘 안 돼서?”
“그게 무슨···?”
애초에 헌터법상 흑마법은 불법이었기에, 검은 섬광의 헌터는 뭐라고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흑마법이 불법인들, 그녀의 스킬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차마 입을 뗄 수는 없는 상황.
검은 섬광의 헌터는 이를 아는 듯, 어물어물 고개를 돌리며 김마리를 모르는 척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발바닥 중앙에 모이던 마나를 폭발시켰다.
타앗!
그리고 진각을 디디며 높이 뛰어올랐다.
“세훈 씨?”
“길드장님?”
옆에있던 방화연과 황명수가 놀라서 나를 불렀지만, 이미 내 몸은 화산탄이 떨어져 내리는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도 도웁시다!”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화산탄은 소나기처럼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나는 ‘벼락의 지휘자’의 창끝에 바람 속성의 마나를 불어넣었고, 동시에 분출시켰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 그었다.
부웅!
“바람의 장막(Wind Wall)!”
투화악─!
허공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생겨났고, 동시에 야외 병상이 몰려있는 병원의 주차장으로 쏟아져 내리던 화산탄들이 각도가 틀어지며 빗겨나갔다.
콰콰콰콰콰쾅!
그러나 쏟아지는 화산탄은 아직도 많았고, 바람의 장막의 지속시간은 짧았다.
스으윽─
내 옆에 나타난 사라가 자신의 왼팔을 쭉 뻗으며 같은 스킬명을 한 번 더 외쳤다.
“바람의 장막!”
투화아악─!
나보다 두 배 정도 큰 사이즈의, 바람의 장막이 생겨났다.
“사라, 너?”
“한, 바람 스킬은 제가 한 수 위라구요?”
“잘했어!”
“후후훗.”
그랬다.
그녀는 5티어의 ‘윈드 워크’를 익힌 사막 부족의 일원.
‘바람의 장막’은 이미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숙련도로.
한 겹 더 펼쳐진 바람의 장막은 추가적인 화산탄들을 빗겨냈고, 그 사이에 황명수가 옥상으로 튀어 올라왔다.
그의 옆에는 조준혁이 붙어있었다.
끼이이익─
수많은 화살을 머금은 그의 활시위가 주우욱 잡아당겨졌고,
“애로우 스프레이(Arrow Spray)!”
딩─
그것이 놓아지자마자, 우악스럽게 쥐고 있던 화살들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쐐애애애액!
조준혁의 ‘백발백중’과, 황명수의 ‘강철의 손아귀’를 품은 수십 발의 화살이 창공을 향해 솟구쳤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그리고는, 마치 미사일 방어 체제가 떠오르는 듯한 장관이 하늘에 펼쳐졌다.
동시에 방화연의 할버드 끝에서 캐스팅되어가던 화염 덩어리가 폭죽처럼 쏘아졌다.
“화염구!”
화아아악!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한 발의 불덩어리는 잿빛 창공의 한 지점에서 일순 그 모습을 감췄다.
일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군중은 침묵을 이어갔고, 내 머릿속에도 ‘뭐지?’라는 의문이 들려던 순간.
흡사 불꽃놀이와 같은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불꽃놀이가 아니라, TNT 몇 톤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할 만큼 강렬한 공중폭발이 일어나며 날아오던 화산탄을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 뒤로 후지산에서 분출되어 쏟아지던 화산탄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오오오······.”
고요하던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짝짝─
문득 튀어나온 누군가의 손뼉소리.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곧이어 박수갈채로 이어졌다.
짝짝짝짝짝······.
병원의 의료진과 환자들, 그리고 검은 섬광의 헌터들까지 모두 물개처럼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곳의 현장을 총지휘하고 있던 검은 섬광의 길드장, 다이스케.
그는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잠깐··· 이건, 도게자?
“다시 한번 검색 길드의 한세훈 길드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유, 이러지 마십시오.”
나는 급하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도와준 건 맞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인사를 받자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다이스케는 내 부축을 받아 일어나며 말했다.
“주기적으로 이런 화산탄의 비가 쏟아지곤 합니다. 그동안은 수비가 잘 이어지고 있었는데, 최근 연이어서 습격해오던 A급과 S급 몬스터들 때문에 헌터들의 수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윽고 검은 섬광의 길드장은 눈꼬리에서 흐르는 물기를 스윽 닦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한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이스케는 겉보기에 냉정하고 차가운, 어떻게 보면 야쿠자같이 생긴 날카로운 남자였다.
그러나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니, 뭔가 내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어서 정비를 하고, 또다시 습격해올 몬스터에 대비를 해야 하겠지요.”
“그것도 그렇구요.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며, 나는 손가락을 펴서 한쪽을 가리켰다.
그 끝에는 한때 만년설에 뒤덮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던 일본의 영산(靈山)… 지금은 그저 용암과 화산탄을 쏟아내며 시뻘건 악산(惡山)이 되어버린 후지산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뿜어져 올라가는 화산재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저 분화구 속에는 지금 일본이 처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놈이 용암에 몸을 담그고 한가롭게 반신욕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전에, 저기에 가야 합니다.”
***
같은 시간, 대전 외곽에 위치한 검색 길드의 사옥.
그곳의 2층에 있는 암중 건강원.
그 옆의 호실에는 초대형 냉동 창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냉동 창고의 입구에서, 김정수는 시름을 앓는 소리를 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얼마 전 새로 마련된 이 냉동 창고. 그는 이곳의 식자재에 접근하기 위해 문을 열려다 흠칫 주저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피요오오오오오오옷─!》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스하트 피닉스의 특징 때문일까?
개나 고양이만했던 놈은 며칠 만에 호랑이 혹은 그 이상은 될법한 사이즈로 성장해 버렸다.
그리고 줄곧 잠잠히 있었던 놈은 오늘따라 유난히 난리를 쳐댔다.
쿵! 쿠우웅! 쿠웅!
냉동 창고의 입구를 부숴버릴 기세로, 안쪽에서 문을 두들겨대고 있는 새끼 아이스하트 피닉스.
“한세훈 군이 여차하면 죽여도 된다고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로구먼.”
김정수는 다이어 울프의 송곳니를 이용해 강화된 산탄총을 꼬나쥐었다.
철컥─
등에는 여차하면 휘두를 강화된 베틀 엑스도 메어져 있었다.
“젊었을 때 생각이 나는구먼.”
그의 펌핑된 이두박근에는 힘줄이 도드라지게 올라왔다.
사실 그의 현재 상태는, 그가 생각하는 젊었던 시절보다 훨씬 강력한 상태였다.
직접적인 전투 상황이 없어 스스로도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젊었던 자신을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진 상태. 아무리 S급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이깟 갓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핏덩이를 상대로 고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흡!”
타앗!
김정수는 퍼뜩 드는 불길한 느낌에 곧장 현란한 백스텝을 펼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콰아아앙!
문짝이 폭발하듯 깨져나갔다.
동시에 엄청난 냉기가 내부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펄럭─
동시에 복도로 나와 거대한 날개를 펼치는 아이스하트 피닉스.
“난동을 피우는 날짐승에게는 살처분만이 답이지. 흘흘흘.”
김정수는 놈을 향해 주저 없이 샷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쾅! 투쾅! 투쾅!
‘솔루스의 송곳니’로 강화된 산탄총.
그 총에 달려있는 탄환에 ‘점화(Ignite)’ 스킬을 부여한다는 옵션 때문인지, 불타는 수백 개의 탄환이 피닉스를 향해 발사되었다.
그 모습은 얼핏 보면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피닉스의 몸통이 화염 속성의 탄환을 맞고 벌집이 되었다.
그러나 놈은 나름대로 S급 태생의 몬스터였다.
아무리 역상성의 공격이긴 해도, 고작 이 정도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약한 몬스터는 아니었던 것.
《피요오오오옷! 피요오옷!》
현란하게 샷건을 돌리며 다음 탄환을 장전하던 김정수는 뭔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마치··· 옛날에 운디네들에게서 받았던 묘한 느낌.
이 몬스터에게서는 사람을 향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느껴지는 건 누군가에게 가고자 하는 의지였다.
“그랬군··· 그동안 매일같이 이놈을 길들이려고 그렇게 애쓰더니만······.”
당장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 그저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성공한 게로군.”
그는 벌집이 된 몸을 재생시키는 아이스하트 피닉스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아직 뜨거운 열기가 가시지 않은 샷건의 총구를 거두었다.
“녀석. 설마, 가고 싶은 거냐?”
《피요옷···!》
“그래. 한 번 가고 싶은 대로 가보거라.”
김정수는 2층 복도 한구석의 발코니로 다가갔다.
“대신, 최대한 높이 날아가거라. 잘못 하면 인근 주민들에게 민원이 들어와서 포획될 수도 있으니.”
그는 평소에는 잘 안 써서 닫혀 있었던 폴딩 도어를 촤르륵 열어 재꼈다.
그가 문을 열자, 아이스하트 피닉스는 푸르른 얼음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