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ll Search Gets Done RAW novel - Chapter 39
39. 검집 (1)
며칠 뒤, 제주도.
해발고도 1947m의 한국의 명산, 한라산의 정상 부근.
검은 옷의 남자 둘이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자주 오다니던 곳인 걸까.
그들은 헤매지 않고 백록담까지 한 번에 도착했다.
“······!”
앞서가던 자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눈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비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백록담의 호수가 있었던 자리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물이 말랐다.”
흑요어가 즐겁게 헤엄치던 호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백록담의 수위는 가끔 낮아지기는 했어도, 역사적으로 완전히 말라붙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곳.
그런데 그런 곳이 완전히 말라붙어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혹시라도 어딘가에 물이 고여있지는 않은지, 백록담의 곳곳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때 170번 요원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165번! 여길세! 여기에 흑요어가······.”
“뭐라?”
165번은 170번이 있는 장소로 몸을 활처럼 튕겨 쏘아져 나갔다.
“씨발!”
부디 잘못 본 것이기를 바랐다.
덜덜 떨리는 손이 흑요어였던 뼈다귀로 옮겨졌다.
살점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거대한 생선의 뼈.
마치 약 올리는 듯 생선 머리의 볼살은 남아있었다.
그 주변에는 모닥불을 피웠던 흔적이 남아있었고, 가끔 초장으로 보이는 빨간 것이 떨어져 있었다.
“씨바아아알!”
이는 필히 누군가 이곳에 흑요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냥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이곳은 민간인의 진입이 통제된 활화산.
게다가 백록담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는 이 안에 풀어놓은 흑요어를 완전히 감추고 있었기에 감시의 우선순위가 높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그저 흑요어의 성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끔 들려주는 게 전부긴 했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이곳에서 흑요어를 기르는 사실은 칼라미티 소속의 요원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보였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이 근처의 유니콘 목장 녀석들이 저지른 짓인가?”
“글쎄. 그 녀석들은 얼마 전 스톰 차저 녀석들에게 습격을 받고 큰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럴 경황이 있었을까?”
“뭐가 나올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조사는 한 번 해보지······.”
165번은 이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
잠깐 두 요원의 주변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더는 아무런 추측도 들지 않았다.
현장에는 흑요어를 맛있게 구워 먹은 흔적 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
놈의 정체에 대하여 뭐라도 추측이 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뭐라도 생각해내야 하는데······.
“크윽······.”
먹고 남은 생선 대가리에 단서 따위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대체 누구냐!!!”
그가 내지른 분노의 함성이 한라산 백록담 전체에 울려 퍼진 후 메아리로 돌아왔다.
대체 누구냐!!!
“어떤 도둑놈의 새끼가 감히······!”
칼라미티에서 기르던 몬스터를 훔쳐먹은 거냐!
그러나 보안상의 이유로 차마 그 말까지는 할 수 없었다.
***
같은 시각, 암중 건강원.
나는 작업대에 몇 개의 물건을 내려놓았다.
검은색 유니콘의 뿔 2개와 흑요어가 두르고 있던 흑요석 갑피.
그리고 한쪽에는 스톰 차저 길드원에게 노획한 대(對) 몬스터 포획용 마취총 한 정.
혹시 몰라 김정수를 위한 호신용품으로써 챙겨온 것이었다.
“허어. 이것들은 또 뭔가?”
어디서 또 괴상한 것을 가져왔냐는 듯 짜증스럽게 채근하는 김정수.
그도 그럴 것이, 다음에는 꼭 그의 몸보신을 위한 재료도 하나 챙겨와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 보는신기한 재료들에 대한 호기심이 함께 묻어나 있었다.
나는 일단 그를 어르기 위해, 감춰왔던 물건을 함께 내밀었다.
“당연히 어르신 것은 따로 챙겨왔습니다.”
“이것들 말고도 뭐가 더 있다고?”
나는 주섬주섬 아이스팩과 함께 담겨있는 상자를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하얀 액체가 가득 담긴 병이 여러 개 있었다.
“어르신 혼자 계실 때. 적적하시면 하나씩 꺼내 드십시오.”
김정수는 병을 하나 집어 들고 내용물을 살폈다.
“이 흰 것들은 대체 뭔가? 우유 같은 건가?”
“그 안에 든 게 바로 유니콘 요거트입니다.”
“허허, 이런 애들이나 먹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네만.”
약간 실망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히는 김정수를 보며 나는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거 한 병에 못해도 몇 백 만원씩 할겁니다. 좀 그러시면 그거 말고 인삼 같은걸로 드리구요.”
그러자 김정수는 호다닥 박스에 쌓여있는 병을 하나하나 냉장고로 옮겨 넣고는 말했다.
“그럼, 또 뭘 해주면 되겠는가. 저것들은 전부 다 처음 보는 걸세.”
“유니콘 뿔과 흑요석 갑피를 각각 잘 빻아서 곱게 가루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유니콘 뿔은 빻기 전에 잘 말려주셔야 하구요.”
“요즘 드는 생각인데, 차라리 정점길드에 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
“어르신, 농담도 잘하십니다. 다음에 몸에 좋은 것 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유니콘 요거트 추가 주문해 드리고요.”
“그런데 이 총은 또 뭔가?”
“참. 이것도 어르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잠시 마취총을 만지작 거리는 김정수를 바라봤다.
“크흠.”
이전에 함백산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가 사용하던 샷건이 박살나서 마음에 걸렸는데.
이걸로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샷건 베이스로 만들어진 마취총이니, 어쩌면 그가 가진 ‘산탄총 마스터리’의 효과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김정수에게 강해지기 위한 재료를 모두 맡겨놓았다.
그리고는 다음에는 꼭 정말 몸에 좋은 걸 하나 챙겨줘야지 생각하며··· 그가 괜히 더 툴툴대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
몇 시간 뒤에 도착한 암중모색 길드의 대표실.
밖에 있는 여직원의 말에 의하면, 안인식은 잠시 외출 중이라고 했다. 어차피 금방 돌아온다고 하였고, 나는 마음 편히 안에 들어와 기다리는 중이었다.
“슬슬 나머지 단약을 먹어볼까.”
나에게 남아있던 단약은 1개.
자이언트 크랩의 보스급 개체, ‘깊은 곳의 거주자’에서 나온 정수를 달여 만든 새하얀 단약이었다.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아직까지 남아있던 작은 알이었다.
꿀꺽.
단약을 씹지 않고 그대로 물과 함께 삼켜버렸다.
맛도 맛이었지만, 자이언트 크랩에서 나온 정수라서 그런지 역한 비린내가 올라왔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비위가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근력 D-]정보창을 확인하며 수치가 오르길 기다렸으나, 아직 아무런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역시 그대로 삼키는 것보다는 씹는 게 나았던 것일까.
아니면 큰 알에 비해서 확실히 작은 알은 효과가 적은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소화가 되지 않아서 그런건지······.
아무튼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검집을 회수하는 건데.”
곧 있으면 벌어질 ‘헌터 박람회 테러’ 사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굵직한 일 중 가장 큰 스케일의 사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사건만큼은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다.
칼라미티와의 긴 싸움, 그 신호탄이 된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목숨을 잃었던 각 길드의 수장들과 박람회에 출품되었던 아티팩트들 등. 그 피해는 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다.
이 테러를 막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꾸준히 힘을 모아왔다.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단 한 번의 기회. 다행히 지금껏 계획한 일들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헌터 박람회 테러 사건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준비를 하고 힘을 키웠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마지막 스펙업을 한 번더 해줄 필요가 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전에 발견했던 아티팩트 ‘덧없는 칼날’을 완성시키기 위한 ‘검집’의 회수.
나는 오랜만에 배낭 속에 항상 들고 다니던 부러진 검을 꺼내 들었다.
“역시 이건 일단 접어두는 게 좋으려나.”
‘검토’를 통해 아티팩트 등록원부를 살펴봤을 때, 그 검집의 현재 소유주는 바로 ‘알데바란’ 이었다.
칼라미티의 여섯 간부 중 한 명으로서 지금의 내가 결코 맞닥뜨려서는 안되는 인물, 알데바란.
그는 현재 동북아시아의 칼라미티 조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바로 한국 랭킹 2위의 대 길드, ‘정점’의 수뇌부에서.
“정점 길드의 부길드장, 이지수.”
알데바란은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현재 사용하는 신분은 당연하게도 가짜 신분.
알데바란이 왜 암중 조직, 칼라미티에 가담하고 있는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알데바란이 내 검의 검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메이지 헌터(Mage Hunter).”
미래 기억을 통해 알고있는 놈의 이명이었다.
이는 마법사 계열 헌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문자 그대로, 마법사 계열 헌터를 사냥하는 데 특화된 스킬을 가진 특이한 헌터였다.
짤그랑─
나는 만지작거리던 검을 다시금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검이 알데바란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내 손에 들어온 건 정말 행운이었다.
만약 이것이 그의 손에 들어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시너지를 보였으리라.
“놈도 그걸 알고 있겠지.”
검집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몇 군데 예상한 곳이 있었다.
물론 그곳들 대부분은 호랑이굴이나 다름이 없는 장소들이었다.
첫 번째는 알데바란이 현재 형식적으로 살고 있다고 알려진 거주지.
두 번째는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으로 추정되는 정점 길드의 부길드장실.
“이 중에 검집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
우선 거주지는 아닐 것이다.
검집은 감히 가격을 측정할 수 없는 S급 아티팩트.
설마 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물건을 집안 장롱에 숨겨놓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역시.”
항상 자신을 따르는 A급-S급 헌터들이 산재해있는 장소.
정점 길드의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문득 나는 항상 지니고 다니는 포션 하나를 떠올렸다.
이전 마고트 던전에서 국 팀장이 보낸 정보팀 헌터들을 따돌리기 위해 마셨던 ‘금지된 맛’ 포션.
“한 번 ‘유령 장막’을쓰고 잠입해 본다면······.”
‘유령화’ 상태를 이용해 아티팩트가 있을 곳까지 숨어들어, 아무도 모르게 훔쳐오는 계획.
하지만 이 작전에는 문제가 있었다.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 없는게 첫번째 문제고. 두번째 문제는······.”
‘유령화’ 상태에서는 물건을 집을 수 없다.
상태가 풀리길 기다렸다가 물건을 집고 다시 ‘유령화’에 돌입하여 빠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유령화’가 풀린 동안 알데바란에게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즉, ‘금지된 맛’ 포션을 효과 지속시간을 계산해서 적당량만 마신 뒤, 어디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아티팩트를 찾아내 다시 포션을 마시고 빠져나오는 계획.
짧게 줄이면,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으음. 좀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검집을 찾을 수 있을만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무렵, 메시지창이 하나 떠올랐다.
[근력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D]“······.”
너무 강력한 적을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항상 극상의 당도를 자랑하던 이 메시지가 조금은 덜 달게 느껴졌다.
그러던 때였다.
벌컥!
그리고 암중모색 대표실의 문이 열리며 안인식이 들어왔다.
“아아. 한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그의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길쭉하게 내려와 있었다.
몇날며칠 야근을 한 직장인처럼 폐인의 몰골을 하고 있는 안인식 길드장.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내가 알려준 여러 가지 정보들을 이용해 회사의 매출을 키우고 있었다. 던져주는 정보만 제때 받아먹는 것만으로도 기막힌 수익이 계속 나오니, 도저히 멈춰 있을 수 없었으리라.
암중모색 길드는 최근 진행하는 마석 유통 사업으로 인해 현금 흐름이 정상화되었고, 보유금도 착실히 쌓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안 그래도 탐지 계열 길드의 대표로써 원래 바빴던 안인식.
심지어 최근에는 내가 제안하는 일까지 수행하느라 밤낮은 물론이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모양이었다.
“안 길드장님. 요 며칠간 별일 없으셨습니까?”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사실 무슨 일이 있기는 합니다.”
“예? 그게 무슨.”
무언가 불안한 듯 주변을 돌아보던 안인식.
그는 몇 차례 탐지 스킬을 사용하더니 이내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휴우.”
다시 보니,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어두워 보였다.
혹시 내가 너무 많은 일을 시킨 건가?
순간 자그마한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 좋자고 하는 짓이었지만, 그만큼 안인식에게 일을 떠넘긴 것도 사실이었으니.
그러나 곧,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조금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잠시 후 내 맞은편 자리로 와서 앉은 안인식은 자그마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깨달은 사실입니다만, 누군가 계속 우리 길드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설마··· 그건가?
그 말을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치직!
나는 곧 ‘전자기적 시야’를 펼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
창문 바깥에 누군가 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