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 버려진 놀이공원 (6)
사람처럼 마석도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다.
간혹 독자의 질문에 답변하던 쌍월의 보석 소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마석은 사람의 호의를 사기 쉬운 외형을 고른 것뿐만 아니라 그 성정도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비슷하게 만들어져서 그렇다던가.
그 문답을 읽었을 당시에는 마석은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실체화한 마석을 제법 본 지금은 살아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성정이 형성됐구나 싶다.
그도 그럴 게 자기 능력을 무시했다고 여긴 봄의 분노는 최이안이 제 능력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던 기자 앞에서 보였던 분노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걸.
쾅쾅 발을 구르며 봄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봄의 작은 발이 바닥을 두드릴 때마다 휘청거리는 공간이 참으로 위태롭기 짝이 없다.
“기억을 경험할 때는 당시의 감정은 느낄 수 있어도 아이온은 느낄 수 없으니까 못 알아볼 거라구 생각했겠지? 난 저주라면 그냥 보기만 해도 다 아는데! 아무튼, 이 봄을 무시하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니까.”
“봄이야말로 지금 좀 진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다 곤돌라 떨어지겠어.”
“그 정도로 힘을 쓰지는 않았다구! 정말! 내 말에 맞장구를 쳐줘야지, 타박하면 어떡해?”
“타박이 아니라 부탁이지. 난 네가 화내는 거 충분히 이해해. 게다가 널 무시했다면 그건 날 무시한 것도 되는데, 당연히 같이 화내줘야지. 그런데 장소는 좀 생각해달란 얘기야.”
까딱 잘못해서 이 부실한 곤돌라가 떨어지면 우리만 손해라는 내 말에 봄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요한이에게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을 거라며 눈을 부릅떴다.
내 의지에 따라서만 주문을 사용하는 지팡이 상태보다는 실체화한 지금이 더 잘 지켜줄 수 있다며 어깨를 으쓱이는 봄을 보고 있노라니 여기가 꼭 협회 수련실 같이 느껴져서 픽 웃어버렸다.
언제 짜증을 부리면서 발을 쾅쾅 굴러댔느냐는 듯이 왜 웃냐고 칭얼거리는 봄을 평소처럼 무릎 사이에 앉히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 깔린 저주는 뭔데? 해주는 가능한 거지?”
“으음, 잘 안 들키려고 수작질을 좀 해서 보기가 까다로워서 그렇지, 저주 자체는 그렇게 심각한 건 아냐. 그니까 당연히 해주야 가능하지, 가능한데….”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봄이 유수처럼 말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가능한데 뭔가 지금은 안 된다는 뜻인가?
눈썹을 모으고 콧잔등을 있는 힘껏 찌푸린 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을 재촉하자 봄이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렸다.
“그 해주 말이야…. 우리가 굳이 해야 할까?”
“뭐?”
“봄이는 해주 하기가 싫은데~”
봄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유쾌하게 흥얼거렸다. 그 내용은 전혀 유쾌하지 못해서 난 멍청하게 눈을 끔뻑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협회의 관리·감독 아래에 있는 놀이공원에 무슨 일이라도 터지는 순간, 비난의 화살은 죄다 협회로 향한다.
그것도 보안에 관련된 일이니까 보안부장인 나를 표적으로 삼은 기사가 빗발치겠지. 닥치지 않은 미래지만 눈에 훤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놈이 높은 자리를 꿰찼다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뜯을 생각만 하는 이들이 아주 많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봄이 언젠가 약점이 될 게 뻔한 이곳을 그대로 내버려 두자고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왜. 그냥이라고 대답하면 안 들어줄 거야.”
“내가 그러고 싶은 건데, 안 돼?”
“네 부탁은 대체로 들어주지만, 이건 공적인 일이니까. 여기를 해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이유를 잘 설명해서 날 설득해봐. 이해할 수 있는 이유길 바라.”
“으음~ 괜히 여러 개 겹쳐서 만들어 놓은 저주라서 푸는 거 너무 귀찮고, 당장에 발동하는 것도 아니고, 효과도 막 건물이 무너지는 그런 종류도 아니구.”
아이답게 말랑말랑한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면서 이유를 말하던 봄은 내가 그 어떤 것에도 납득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는지 배시시 웃었다. 수줍은 듯한 그 미소는 천진난만한 봄의 얼굴과 잘 어울렸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많지만! 요한이가 마음에 쏙~ 들 이유는 딱 하나 있지.”
봄이 오른손 검지를 쭉 펴고 살랑살랑 흔들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내게 손짓했다.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라는 표시에 선뜻 봄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숙이자 봄이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속닥였다.
“사필귀정이야.”
“뭐?”
“그대로 두는 게 좋다는 거지. 인과응보일 거구, 자업자득일 거야. 그런 저주라는 거지.”
마석마다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매우 다르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게 하나 있다면 ‘수수께끼를 좋아한다’일 것이다.
직설적인 말을 즐겨하는 영원의 눈물도, 최이안에게 최대한 많은 설명을 해주려는 태양의 왕관도 그랬다.
마석들은 답을 해주기 어려운 질문이나 말해서는 안 되는 부분을 묻는다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빙빙 말을 돌렸다.
지금도 봐라. 봄은 저주가 어떤 것인지는 말해줄 생각이 없고, 그저 내게 해는 되지 않을 테니까 관심을 꺼달라는 듯이 말을 잘라내고 있지 않나.
불만이 잔뜩 쌓여서 미간을 확 찌푸렸더니 봄이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약간 서늘한 봄의 손바닥이 꾹꾹 내 이마와 미간을 눌러댔고, 봄은 배앓이 하는 아이의 배를 문질러주는 할머니처럼 ‘주름아, 쭉쭉 펴져라~’하며 흥얼댔다.
‘내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는 건 맞아. 저주가 있다는 걸 알면서 넘어가는 게 찝찝하기는 한데, 봄이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니 이걸 추궁해봤자 남는 건 없겠지.’
그렇다면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시간은 한정적이며, 언제까지고 이 곤돌라에 죽치고 있을 수도 없다.
기왕 협회를 벗어나서 출장을 나왔으니, 그 기회를 알뜰살뜰 이용해서 할 일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른 아침부터 이곳에 왔는데, 수확이라고는 봄이 찾아낸 주머니와 저주가 깔려 있다는 점, 그리고 풍월주의 수작이 어쨌든 가해졌다는 점뿐이잖나.
심지어 마지막은 반쯤은 짐작하던 거라서 수확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쌍월의 보석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첫 번째는 풍월주 탓이고, 두 번째는 정부 탓이니 일단 의심하면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말이지.’
창작물을 즐기는 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현실이 되니까 실제로 그렇다는 게 문제다.
나를 짜증 나게 만드는 문제의 7할은 풍월주고, 3할은 정부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물증이 없어도 아무튼 풍월주의 수작이라고 가정을 하면 다 들어맞는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게임의 결말처럼 풍월주를 영혼까지 깔끔하게 소멸시키기 전까지는.
불현듯 다시 만나는 날을 고대하겠다던 풍월주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부스러지면서도 여유롭게 웃고 있어서 그때도 속이 시끄러웠지.
복잡해진 속을 다스리며 봄을 불렀다.
“봄아.”
“응!”
내 부름에 봄이 발랄하게 손을 번쩍 들면서 대답했다. 내가 더는 저주에 관해 묻지 않는다는 걸 느꼈는지 눈이 초롱초롱하기까지 하다. 그런 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면서 천천히 말을 골랐다.
“가온이 마석이 말하기를, 가온이 잃어버린 토끼 인형을 찾고 있는데, 그게 이 놀이공원에 있다던데.”
“토끼 인형?”
“그리고 그건 네게도 특별한 물건이랬어. 아는 게 있을까?”
연신 고개를 기웃거리며 토끼 인형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던 봄이 별안간 손뼉을 짝 쳤다.
눈을 댕그랗게 뜬 모양새가 어떤 물건을 말하는 건지 떠올랐다는 표정이어서 빤히 쳐다봤다.
봄은 구슬이 든 주머니를 제 옷 안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으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토끼 인형이라구 해서 한참 고민했지 뭐야. 그렇게 생기긴 했었지.”
“평범한 건 아닌가 봐?”
“그렇다고 엄청 특별하지도 않아. 있으면 좋구, 없으면 말구 같은 느낌이지? 가온이는 고양이니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친근하게 가온의 이름을 입에 담은 봄이 뻥 뚫린 문밖으로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아직도 지잉 소리를 내며 돌아가지만, 이 높이는 촬영할 수 없는지 아래쪽만 비추는 CCTV와 결계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봉인석을 유심히 살피면서 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여기에 있대? 확실하게? 걔가 그런 거 잘 찾기는 하는데, 장소를 확정 지을 정도로 천리안이 있는 건 아닌데.”
“걔? 가온이 마석?”
“응. 이름 별로 안 좋아해서 다들 그냥 걔라구 말해. 이름 말해주지도 않았을걸. 우리야 같은 마석이니까 알지만.”
나름 친한 사이니까 예의를 지켜주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 봄이 조금 더 대화를 나눠도 괜찮겠다며 고개를 도로 안으로 들였다.
잠시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고 발갛게 튼 볼이 눈에 들어와서 내 손으로 감싸주자 봄이 까르륵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의심스럽기는 한데, 걔가 거짓말은 진짜루 못하니까 있겠지. 찾으면 내가 도와줬으니까 잘 쓰겠다고 좀 놀려도 되려나~”
“딱히 필요 없는 거 아니었어?”
“있으면 좋은 거니까! 그런데 진짜 있으려나. 내가 친구를 통해서 본 놀이공원의 기억은 저주의 종류랑 숨겨둔 구슬의 위치. 그리고 여기에 드나드는 풍월주의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머무는 기간과 순서 정도거든.”
제법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봄에게 다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봄이 대번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턱을 치켜들었다.
기특하다며 머리를 토닥여주자 금방 쑥스럽다며 몸을 배배 꼰 봄이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타닥. 바닥의 철판을 가볍게 두드린 발 주위로 옅은 바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사람이 없는 것도 알구, 구슬이 여기 말고도 두 개 더 있어서 회수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는데.”
지금 시기에는 맡을 수 없는 꽃향기가 바람 속에 섞여들었다. 눈을 감고 있었더라면 주위에 만개한 꽃이 가득한 꽃밭이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짙은 향이었다.
봄이 제 뜻대로 아이온을 모으면 생기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건 봄의 전투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척도기도 했다.
반사적으로 왼쪽 손등을 감싸며 문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 내가 올라왔던 오솔길에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 아냐, 그보다는….’
길을 오르고 있는지 입구와 가까워지는 무언가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에 아이온을 모으려는 순간, 봄이 양손으로 내 눈을 가리면서 말했다.
“요한이는 오늘 내가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보지 않아도 돼.”
“잠시만, 싸워야 하는 거라면 같이 싸우는 게 낫잖아.”
“괜찮아. 나 잘 할 수 있어. 무엇보다 ‘저건’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구~”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봄의 손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졌다. 양손은 곧 한 손으로 바뀌었고, 다른 손은 내 허리를 휘어잡았다.
놓아달라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봄이 용케 눈을 가린 상태 그대로 날 들어서 관람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사납게 부는 겨울바람과 발밑을 감싸는 봄바람이 휘몰아쳤다.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상처 없이 관람차 밖으로 착지했지만, 다시금 콰앙! 굉음이 터지며 뒤로 밀려났다.
“그러니까 요한이는 지금부터 가온이 파트너가 부탁한 인형을 찾으러 가. 얘가 덤벼드는 건 예상 밖이지만, 사람이 없는 건 여전하니까 문제없을 거야.”
“행운의 봄!”
“그치, 내가 바로 행운의 봄이지~”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은 봄 앞에는 거대한 방벽이 세워져 있었다.
반투명한 녹색 방벽 바깥으로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모양새의 동물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착지 이후 들렸던 굉음이 아마 저 동물과 방벽이 부딪친 소리였나보다.
“나는 언제나 운이 좋아. 그러니까….”
쾅, 콰앙! 연이어 동물이 날카로운 뿔을 거대하게 키워서 벽을 들이받았다. 굳건하게 서서 바깥을 주시하던 봄이 어색하기만 한 어른의 얼굴로 부드럽게 웃었다.
“친구를 배웅해주는 것쯤은 혼자서도 거뜬해. 그렇지?”
봄바람에 섞인 축축한 물기가 찬 기운에 말라버린 손등에 닿았다.
도저히 마석이라고 볼 수 없는 모양새가 된 저것은 여전히 네 친구일까.
묻지 못한 질문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홀로 애도하겠다는 봄을 나는 감히 말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