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달콤한 초대 (2)
양신아는 짜증 나는 상사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좋아진 모양이다. 그녀는 발그레하게 물든 두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환하게 웃었다. 까르륵 터지는 웃음소리가 몹시도 경쾌하고 기쁨이 섞인 것이 그 상사라는 자가 정말 싫었나 보다.
특별부서에 있을 때도 흘리듯이 상사가 너무 자기랑 안 맞는다고 투덜거렸는데, 치근댄다는 말까지 하는 걸 보아하니 상사가 어떤 인사일지 대충 짐작은 간다.
“정말 너무 좋아요. 너무 좋은데, 오늘 당장에 바뀌진 않겠죠? 아무리 협회라고 해도 그 인간은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순식간에 치워버릴 순 없을 거 같은데….”
“당장 없어지기를 바라는 눈치입니다, 양신아 씨.”
“에이, 저도 염치가 있죠.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진 않아요. 부장님의 일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알고 있는데, 사람 됨됨이가 글러 먹은 상사까지 빠르게 처리해달라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바뀐다는 확정적인 대답을 들었으니 이제 기다리는 건 문제가 없다며 양신아가 키득키득 웃었다. 양신아는 원래도 잘 웃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기쁨에 겨워 입꼬리가 내려갈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물론 빨리 바뀌면 전 좋아요. 오늘이면 정말 좋고, 내일이어도 최고로 좋죠! 출근했을 때, 그 인간이 없다는 것만 알아도 세상이 즐거워질 게 분명하거든요!”
“평소에는 출근길에 돈을 주워도 슬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통장에 돈이 잔뜩 있기만 했어도 진작 일은 때려치웠을 거라며 양신아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다 마신 컵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고송찬에게 송찬 씨도 출근은 싫지 않으냐며 말을 붙였다.
안타깝게도 고송찬은 협회가 좋아서 경찰직도 버리고 온 사람이라 전혀 동의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양신아는 협회 사람들은 다들 애사심이 투철한 거 같다며 도리질하더니 손뼉을 짝 치며 대화 주제를 살짝 바꿨다.
“아, 그래요. 협회는 협회 일을 하는 거겠지만, 어쨌든 제가 이득을 보는 입장이니까 부장님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당황스럽습니다.”
“어머, 이런 걸로 당황스러워하시니까 조금 놀랍네요. 다짜고짜 부장님한테 뭔가를 주겠다는 사람, 많지 않아요? 보좌관님, 그러니까 부협회장님부터 뭔갈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시던데.”
진예신이 나한테 나한테만 무른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협회 바깥까지 소문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양신아야 잠시나마 일을 함께하면서 눈치챘다지만, 설마 다른 이들도 아는 건 아니겠지?
문득 든 고민에 한숨을 푹 쉬니 양신아가 짓궂게 눈을 휘었다.
“부협회장님만큼은 언감생심 바라지는 않지만, 부장님하고는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가만 보니까 부장님은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한테 말랑말랑해지셔서 영악한 짓을 좀 해보는 거죠. 이렇게나 좋아한다고 나름대로 어필이랄까? 그래서 말인데, 가지고 싶으신 물건이라거나, 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양신아의 맑은 갈색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어두운 흑색이 스쳤다. 워낙 빠르게 사라져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단순히 검은빛이 아니라 나뭇가지의 형태를 취했음은 알았다.
양신아의 마석이 수묵화를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덴드리틱 아게이트고, 함께 일할 적에 몇 번인가 기회가 되어 모습을 봤는데 선명한 나뭇가지 모양이 아름다웠던 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신아 씨의 도움이라면야 환영하지만, 제가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애석합니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내 번호 알고 있잖아요? 안부를 물을 때 빼고는 연락이 없어서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 번호로 내가 필요해지면 꼭 신호를 줘요. 이래 봬도 발도 넓고, 전투가 아니라면 능력도 꽤 쓸만하니까요!”
“양신아 씨의 유능함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아하하, 안 받겠다고 안 해서 너무 좋네요! 아, 그러고 보니 송찬 씨. 송찬 씨도 부장님께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습니까?”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기도 좀 이상한데, 고송찬은 나를 유달리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라서 먼저 무언가 요구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할 말이 있다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를 못한 나머지 내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우물쭈물하는 걸 보다 못한 내가 먼저 말하라고 재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기꺼이 이번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고송찬에게 먼저 용건을 꺼내 보라고 재촉했다.
“말씀하십시오, 고송찬 씨.”
“그…. 부장님께서 오늘 일이 있으시잖습니까. 중요한 일 같은데 제가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꼭 오늘 말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말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중요도의 판단은 제가 할 테니 일단 말씀해 보십시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일이 어그러지는 경우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비롯한 S급 감응자들을 동경한다는 티를 팍팍 냈던 고송찬이다.
유독 직속 상사이자 나이가 어린 내게 더 약하다는 점이 날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나 싶어서 약간 못마땅하지만, 그게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닌지라 평소에는 적당히 받아 주는 편이다.
그래서 얼핏 아부처럼 들리는 저 말이 실은 정말로 내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겠다는 뜻이라는 것쯤은 잘 안다.
‘그래서 어쩌라고. 고송찬이 굳이 휴일에 전할 말이 있다고 할 정도인데 내게 바로 말하기엔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거라면, 감의 영역에서 경종을 울렸다는 뜻이야.’
감응자들의 감각이란 건 굉장히 미묘하다. 어지간한 직감은 대개 들어맞는 경우가 많은데, 감이라는 건 시간이 조금 흐르면 ‘위험하겠다’고 판단했던 것도 ‘괜찮을지도’라고 바뀌어버린다.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예민해졌던 감각이 본래대로 돌아오면서 무뎌지는 거라고 심초연이 그랬다.
그것도 너덜너덜하게 난도질당한 이시영의 팔에 무자비하게 소독 역할을 겸하는 치료 물약을 붓고 꿰매면서 말이다.
‘그때 분명 심초연은 불안해졌을 때 빠져나왔으면 안 다쳤을 거라고 노려봤고, 이시영이 반박 없이 다 자기가 잘못했다 빌었어.’
무시무시하게 눈을 치뜨는 심초연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초연이 네가 제대로 치료해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며 실없이 웃던 이시영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AI도 그보다는 감정 기복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표정 변화가 극히 드물던 심초연에게서 분노한 표정을 처음 봤던 진귀한 기억이기도 하다.
네가 그래서 안 된다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심초연과 S급치고 내가 매우 둔하다며 허허 웃기만 하던 이시영의 상황을 깨준 건 균열 공략을 마치고 볼에 생채기 하나를 달고 귀환한 진예신이었다.
멍하게 두 사람을 보고만 있던 내게 다가온 진예신은 ‘등급이 높을수록 직감도 날카로운데, 동시에 무뎌지는 속도도 빠르다’며 최이안이 짐승 같은 감을 가졌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며 속삭였었다.
‘그러니까 하루 이틀 지나버리면 나름 높은 등급에 속하는 고송찬도 무뎌져서 괜찮을 거라고 판단할 거고, 나한테 말을 안 해주고서 잊을 수도 있단 얘기지.’
그래서 빨리 말하라고 눈으로 재촉하자 고송찬이 연신 커다란 손으로 목 뒤를 주무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말입니다. 제가 이번에 남해 섬들을 둘러보고 왔잖습니까. 협회 사람이 찾아가니까 거기 사시는 어르신들께서 고생 많다고 하시면서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민원 비슷한 것들을 넣으셨습니다.”
“자주 있던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들 도서와 산간으로 외근을 다녀오시면 민원업무부에 들러서 전달해주시는 걸로 압니다.”
“아, 물론 민원은 당연히 전달해 드릴 겁니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 거기 어르신 중에서 자식이 협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분이 계셨는데, 최근 들어 연락이 없다고 그러시는 겁니다. 걱정되어 소식을 듣고 싶으니 전달해 줄 수 있냐고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알기론 협회 직원 중에서 그 섬과 연관된 분이 없었습니다.”
고송찬은 우선 감응자 직원 중에서 찾아보았지만 해당하는 직원이 없다는 결론을 확인했다. 그리고 비감응자인 일반 직원들은 평범한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어서 연락이 끊기는 경우는 없지 않으냐며 부연 설명을 했다.
옆에서 빨대를 물고 있던 양신아가 일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계속 말을 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만 가볍게 까딱여 긍정했다.
고송찬은 한결 긴장이 풀린 얼굴로 말을 쭉쭉 이어 나갔다.
“그걸 내색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냥 최근에 협회가 매우 바빠서 자식분의 연락이 안 왔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어르신께서 염치 불고하고 자식에게 전해주길 바란다면서 조금 낡은 지도를 주셨습니다.”
“지도라니. 특이한 걸 맡기셨습니다.”
“예에, 그렇습니다. 끝이 많이 낡았기도 했고, 지도가 신기하기도 해서 어르신께 여쭤봤습니다. 소중하게 쓰신지도 같은데 이걸 왜 보내려 하시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요즘 뱃길이 이상해졌다는 겁니다.”
뱃길? 뜬금없이 나온 말에 눈을 끔뻑였고, 양신아가 흥미진진하게 눈을 빛냈다.
고송찬은 주섬주섬 외투 안주머니를 더듬더니 어르신께 받았다던 낡은 지도를 꺼내 테이블에 쫙 펼치며 섬과 육지 사이의 공간을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조금 연한 색으로 그려진 선들이 있는데, 이게 본래 섬에서 쓰던 뱃길이라고 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쓰던 안전한 길이었는데, 올해 유독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고입니까?”
“갑자기 풍랑이 거세지는 건 예삿일이고, 평생을 뱃사람으로 사셨던 분이 길을 잃으시기도 했고, 배가 실종되기도 했답니다. 처음에는 빈 배가 사라졌는데, 가장 최근에는 외지인이 섬을 향해 오던 길목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도 했습니다.”
“외지인? 그럼 섬사람들이 밖에서 들어오고 있던 배가 사라지는 걸 목격하기라도 한 겁니까? 그런 이상한 현상이라면 바로 협회 쪽으로 신고가 들어왔을 텐데, 들어온 게 없습니다.”
“예. 그럴 겁니다. 하루만 기다려보고 신고하려고 했는데 세 시간 정도 지나니까 항구에 멀쩡히 배가 돌아왔다지 뭡니까. 그래서 신고는 못 했고, 걱정됐던 섬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는데, 그는 자신이 평범하게 섬에 들어왔다고 말했답디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지만, 협회가 전적으로 해결하기엔 미묘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세간 상식에서 벗어난 기묘한 일은 아이온이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아 협회로 일거리가 들어오지만, 그 외의 부분은 경찰 쪽에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특히 결론적으로 아무 일도 없는 셈이라 협회가 자진해서 나서기엔 그림이 이상해진다. 고송찬도 그걸 알기 때문에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거고.
‘다만 조금 걸리는 게 있는데….’
이 세계의 바다는 용왕의 손아귀에 있는데, 그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뱃길을 엉망으로 흩뜨릴 성정이 못 된다.
지금이야 내가 낫게 해줘서 멀쩡해졌지만, 얼마 전까지 골골대던 몸이라 힘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뱃길을 쉬이 건들지도 않았을 거다.
고송찬이 내려놓은 지도를 보며 새로이 선을 그린 듯 진하게 표시된 푸른 선을 손으로 짚었다.
“그러면 이 푸른 선이 새로 사용하게 된 뱃길이라는 거겠고, 이걸 주신 어르신께서는 자식분이 이걸 알아보고 안전하게 귀향하기를 바라셨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예에. 그런데….”
잠시 인상을 찌푸린 고송찬이 지도의 구석을 가리키며 말을 더했다.
“여기 보시면 어르신께서 자식분 이름을 써두셨잖습니까. 그래서 지도를 전해주려고 협회 명부를 확인했습니다마는 정말 없었습니다. 재직 중인 사람에서도, 은퇴한 사람 중에서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