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여전한 종소리 (7)
사람은 자란 환경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진예신의 성격은 그럼 어디에서 형성된 걸까?
감응자가 된 후부터는 신여월 협회장이 옆에 두고 가르쳤다는 얘기를 여러 사람을 건너 들었고, 윤혜아가 진예신과 꽤 오랜 기간 둘이서만 팀을 이뤄 활동했다는 말도 했었는데 말이다.
또래인 윤혜아의 성격을 닮았을 수도 있겠지만, 윤혜아의 성격은 협회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편이니까 아닐 거다. 그러면 역시 신여월의 까탈스러운 성격을 닮은 게 틀림없다.
신유하가 가끔가다 진예신과 신여월을 번갈아 보면서 통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이유가 이거였군! 신유하가 알았더라면 깔깔 웃음을 터트렸을 생각을 태연하게 하면서 눈을 굴렸다.
‘신여월이 여기 없어서 다행이군. 분명 무슨 재밌는 생각을 하고 있었냐고 탈탈 털었을 거야.’
처음 만나는 균열 주인을 앞에 두고서 할 만한 생산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딱히 멈추진 않았다.
긴장을 안 했다기보다는 엎어치기 한 번에 골골대는 걸 보니까 내가 달려들어도 이길만하지 않나 싶어져서 그렇다.
신체 능력과 아이온 조절 능력의 격차가 큰 사람이 없지는 않은데, 저 정도는 아니란 말이야. B급 감응자인 고송찬 씨나 자기도 진예신과 대련해보고 싶었다며 덤빈 양신아도 세 대까지는 버텼다고.
‘활옷까지 입고서 진예신의 검을 피하길래 몸을 잘 쓰는가 싶었더니만…. 단순히 아이온 조절 능력만 좋은가? 아니면 특수 주문이 독특해서 살아남은 편인가?’
가능성은 높지만, 단순히 맷집만 약할 가능성도 있어서 확신하기엔 일렀다. 움직임이 없는 균열 주인과 여유롭게 손목을 풀고 있는 진예신을 한눈에 담으며 이것저것 가정해보는데, 일순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가 귀에 잡혔다.
옷자락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로 추정되어 반사적으로 균열 주인에게 정신을 집중했지만, 주인은 아직 미동조차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어디에서 난 거지?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소리가 날 법한 곳을 찾는데, 나보다는 진예신이 먼저 발견했다.
“있잖아요, 요한 군. 내가 좀 성가신 걸 깨운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지금 들었거든요?”
“뭡니까? 어디에서 소리 났는지 찾은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말끝을 흐린 진예신이 몹시 얼떨떨하다는 감정을 감추지 않은 채로 느릿느릿하게 말을 더했다.
“요한 군, 혹시 혼자서 움직이는 물건, 본 적 있어요?”
“균열에서는 흔할 일 아닙니까? 인형은 기본이고, 구슬이 혼자 떠다니는 것도 자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가끔은 안에 아무것도 없는 갑주가 혼자서 걸어 다니고, 검을 휘두르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는 게 균열 아니던가. 물체가 아이온의 영향을 받아 특이하게 변화하는 건 이 세계에서 일상이다.
의아한 마음에 몇 가지 예시를 들어 답하자 진예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균열 주인 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 주인의 옷이 혼자 움직였거든요.”
“예? 균열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무리 예측불허하다지만, 움직이는 물체는 개별적인 마수라서 혼합되지 않는 게 상식 아니었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오늘 우리 상식을 바꿔야 하나 봐요….”
진예신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게 얼빠진 듯 나온 말은 끝으로 갈수록 긴장이 담겼다. 자연스럽게 진예신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나 역시도 바짝 어깨를 굳힐 수밖에 없었다.
사부작사부작하며 화려한 자수가 놓인 옷자락이 정신을 잃은 균열 주인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마치 정신을 좀 차려보라는 듯이 옷자락을 연신 부딪치다가 포기한 옷은 저 혼자서 이리저리 팔랑거리다가 천천히 주인을 일으켜 세웠다.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인 균열 주인은 자유의지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 옷에 의해 강제로 허공에 떴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뭐, 저딴 게 다 있어?’
박호승이 봤다면 그대로 졸도했겠는데. 일부러 가벼운 생각을 하면서 긴장으로 뻑뻑하게 굳은 발목을 살살 돌렸다.
둥실둥실 떠오른 옷자락이 바람도 불지 않는데 표표히 흩날리며 솔향을 짙게 풍기기 시작했다.
옷이 날개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저건 옷이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흡사 조종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균열 주인의 아이온이 바닥나는 것만을 기다릴 게 아니었군.’
옷과 주인, 양쪽의 아이온이 다 사라져서 자멸하기만을 고대하다가는 내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내가 신여월보다도 체내 아이온 보유량이 많은 희대의 치트키 같은 몸이긴 한데, 그게 아이온이 무한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게임에서 못 써본 버티기를 이번에도 못 쓰는 게 아쉽긴 하지만, 전투가 격렬해질 상황에서는 그런 감정도 사치다.
언제라도 커다란 기술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온을 내부에서 맹렬하게 돌리며 정화에도 힘을 분배하는데, 불쑥 진예신이 바짝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였다.
“요한 군. 세 번 정도 필요해요. 이후에 1분 정도 더. 어때요?”
전투에만 들어서면 앞뒤 말을 다 자르고 일단 말하고 보는 습관이 있는 건 아는데, 개떡 같은 말을 듣고서 찰떡같이 답해야 하는 내 심정을 좀 생각해보는 건 어떻냐.
도무지 고쳐지지를 않는 진예신의 나쁜 습관을 속으로 씹어대면서 답했다.
“몇 번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타이밍은 제가 맞출 테니 원하는 걸 하십시오. 시간 역시 벌어다 드리겠습니다.”
“역시 요한 군이랑은 말이 잘 통한다니까요. 그럼 부탁할게요.”
내가 널 데리고 게임을 오래 했으니까 답이라도 하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다, 이 자식아.
협회 두루마기를 방패로 삼아 구름을 뚫고 나아가는 진예신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을 삼키며 아이온으로 충만한 발로 바닥을 짓이겼다. 그리고 씨앗을 심는 것처럼 둥글게 빚은 아이온을 박아넣고, 진예신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얇게 실처럼 뽑아냈다.
한올 한올 뽑아낸 아이온으로 바닥을 그물처럼 엮으며 진예신을 향해 가볍게 지팡이를 튕겼다.
‘한 번.’
진예신에게 쐐액- 매서운 소리를 내며 자수로 새겨져 있던 솔잎이 쏟아졌지만, 그에게 스치지도 못하고 바닥에 파바박 박혔다.
몇몇 개의 솔잎은 녹색의 방어막에 튕겨 나가지도 못하고 부러졌으며, 또 몇몇 개의 솔잎은 방어막을 두드리려다가 꼼짝없이 박혀서 오히려 보호막의 일부가 됐다.
자연물의 모습, 그것도 식물의 모습을 취하면 조화의 속성이 짙은 봄이 제 것처럼 흡수한다는 걸 저쪽이 몰라서 다행이지.
공격을 가볍게 쳐내자 다른 자수들도 맥동하듯 꿈틀거리며 튀어나왔다.
달려 나간 진예신은 자신이 박아뒀던 창을 수월하게 낚아챘다.
‘두 번.’
물을 머금어 검게 변한 구름이 허리춤으로 내려앉으며 파직 번갯불을 일으켰다. 지팡이로 발치를 내려찍으며 넓게 깐 그물 전체에 아이온을 추가로 전달했다.
진예신을 피뢰침으로 아는지 한 곳만을 집중적으로 노리던 번개는 바닥에서부터 일어난 수많은 담쟁이덩굴이 구름을 칭칭 감아버려서 아래로 죄다 흩어졌다.
담쟁이의 인사는 속박용으로 만든 것이지 이런 식으로 쓰려고 만들었던 주문은 아니지만, 제법 괜찮은 응용 아닌가.
그물을 줄기 삼아 자라났던 담쟁이 잎들이 바싹 타 재가 되어 바닥에 깔리면서 다시금 그물로 흡수됐다. 깔끔한 환원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은 진예신은 한층 가속도를 붙여 균열 주인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의 창이 심상치 않은 공명음을 흘렸다.
‘세 번.’
허공으로 뛰어오른 진예신과 나아가는 창. 미세하게 실오라기가 날개 끝에 남은 학이 어느 쪽을 붙잡을지 갈피를 못 잡고 날갯짓했다.
어느 쪽이든 앞길을 막는 건 안 되지. 학이 진예신에게로 내려앉기 직전에 내 쪽으로 잡아끌었다.
정말 드물게 사용하는 탓에 숙련도가 다른 주문보다 떨어지는 수목의 손길도 충직한 봄이 도와준 덕분에 원하는 대로 수월하게 발동됐다.
순식간에 타의로 이동된 학이 날개를 다시 펼치지도 못하게 담쟁이의 인사로 꽁꽁 싸매 바닥에 붙여뒀다.
쾅! 그새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한 진예신의 창이 옷깃을 뚫고 벽에 꽂혔으며, 진예신 본인은 기절한 균열 주인만을 쏙 빼서 사슬로 포박해 바닥에 엎어뜨렸다.
숨이나 쉴까 싶은 정도로 움직임이 없는 등짝을 발로 밟고 선 진예신의 모습은 누가 보면 흉악범으로 의심해도 변명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물론 좋게 봐주면 창에 꽂힌 화려한 옷이 깃발처럼 나부껴서 전쟁터 한복판에 적진 장수를 참수시키려는 장군처럼 보이기도 했다.
‘1분이 더 필요하댔는데…. 아하, 저거군.’
진예신이 오른손을 머리 높이로 들어 올리자 옷이 움직이지 못하게 봉쇄하고 있던 창이 쑥 빠져나와 손에 들렸다.
주인을 잃은 옷은 신속한 이동은 불가능한지 너풀너풀 날며 주인에게 향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날아가는 옷을 막아섰다.
미끄러지듯이 그물의 결을 따라 진예신의 등을 지키고 서서 지팡이로 그물 위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지이잉. 그간 잘 먹고 잘 쉰 덕분에 팔팔한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바닥 전체가 빛나며 수많은 담쟁이덩굴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눈앞의 옷, 방치된 학, 진예신이 밟고 있는 균열 주인까지 타고 오른 담쟁이덩굴이 거대한 돔을 만들 때까지 아이온을 쏟아부었다.
“아하하! 정말 기대 이상이에요, 요한 군!”
경쾌한 웃음을 터트린 진예신이 장검으로 모습을 바꾼 무기를 뽑았다. 검집과 검을 균열 주인 양옆에 꽂아 넣은 진예신은 그대로 폭력적일 정도의 아이온을 무기에 주입했다.
깨질 것처럼 찢어지는 소리가 검신을 타고 흐르며 거대한 단두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 딱 한 번 봤던 것보다 훨씬 흉흉한 기세가 감도는 ‘끝을 고하는 처형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비희가 있던 균열에서 익히 느꼈던 ‘열기’가 그때보다 강하게 발휘되고 있었다. 공기 중의 아이온을 태우며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만들고, 공간 전부를 일그러트릴 정도의 괴팍한 기운.
안팎의 경계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균열 내부에 있을 다른 이들의 시선까지도 모두 끌어들였을 것이다.
아주 멀리에서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한 풍월주가 흥미를 느낄 정도로 강렬하게.
‘하여간 손이 많이 가.’
하지만 ‘눈을 가리는 일’ 정도는 결계를 다루는 나에겐 손쉬운 일이니, 진예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너그럽게 어울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바로 아이온을 바닥에 그물처럼 촘촘히 깔아두었던 이유다. 담쟁이의 인사는 내 주변을 에워싸는 사각형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기술이니까. 사전 작업은 필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