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juk battlefield's non-mortgage loan specialist RAW novel - Chapter 68
67화
천당채서 표파자가 머무는 대호전(大虎殿)엔 이틀 전부터 술동이가 끊임없이 드날았다. 말이 전각이지 통나무로 대충 지은 건물 안은 이름처럼 커다란 대호의 가죽이 걸려 있고, 바닥엔 온갖 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삼사십 병이 넘었다.
“끄윽, 술이 모자라 꺼냈다만, 이건 귀하디귀한 금봉(金蜂)의 자연왕대(自然王臺)로 담근 술이다. 사위 될 놈 오면 꺼낼 요량이었거늘, 아까우니 맛만 보고 말거라.”
얼굴 시뻘게진 주휼이 눈치를 줬다.
“산중왕이라는 분이 배포가 그게 무어요. 안 줄 거면 처음부터 주질 말 것이지, 조금만 먹고 말라니. 이런 법도가 어딨답니까.”
반면, 훨씬 더 마시고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한 사마진이 투덜거렸다. 주휼은 된통 걸렸다는 듯 머릴 흔들었다.
“아들놈도 그리 잘 마시더냐?”
“같이 먹어본 적은 없지만, 어미 닮아 금세 취한다더이다.”
사마룡 들으면 조금 억울할 만한 말일 테다. 주휼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아들놈이 다 컸는데, 같이 술도 안 마셔봤더냐.”
“이 무에 좋다고 같이 마십니까, 좀 지나면 오줌밖에 안 되는데.”
귀한 술 다 동내 놓고 한다는 말이. 주휼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는 방금 내온 술을 뒤로 감췄다.
“농담이외다, 농담.”
사마진은 술을 도로 뺏어왔다.
“산왕께선 따님과 자주 드시겠소?”
“술? 술은 무슨, 얼굴 못 본 지도 오래됐다.”
주휼은 툴툴거렸다.
“그러게 산왕의 자식을 어이 멀리 바다로다 보내셨소.”
사마진은 귀한 술을 사발로 털어 넣었다.
“흥, 보타문에 늙은 비구니가 무에 그리 멋있다고.”
보타문(普陀門), 달리 보타암(普陀庵)은 절강성(浙江省) 주산(舟山) 군도에 자리 잡은 여류 문파로, 규모는 작지만 심심치 않게 검후(劍后)를 배출해 온 당찬 검문이었다.
주휼이 말한 여승, 여월신니(如月神尼)는 검마가 죽은 직후 가장 먼저 검절로 추천될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고, 사파거두 주휼의 자식이 그런 인물 제자로 있는 건 놀랄 만한 일이었다.
“신니께서 따님을 제자로 받은 게 더 신기할 따름이외다.”
“내 자식이지만 워낙 잘나야지.”
주휼은 흥겨워 술을 들이켰다. 사마진은 고갤 끄덕였다. 그가 봐도 주휼의 여식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여월신니가 그녈 제자로 받은 건, 다른 모든 걸 감안할 만큼 뛰어난 자질을 가졌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 큰 녹림 굴리는 일보다 자식새끼 하나 맘대로 하는 게 더 어렵더라.”
천하의 주휼에게도 자식 일은 맘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요샌 녹림 일도 맘 같지 않으신 것 같더이다만.”
사마진은 기어코 주휼의 속을 긁어놨다.
“썩을 놈. 그건 본좌의 무능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리에 따른 결과니라. 벌써 반백 년 넘게 평화가 지속됐다. 말이 평화지 속은 썩어 고였으니,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느니라.”
주휼은 의외로 이번 녹림 사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지금 추산되는 녹림도만 몇 명인지 알더냐? 자그마치 일백칠십만이니라, 일백칠십만. 달리 조무래기들까지 치면 얼마나 되겠더냐. 셈보다 더 많을 것이니라.”
중원 땅에 사람이 많기로서니, 일백칠십만이면 황실 군병에 맞먹는 숫자였다.
“내 아무리 그들을 대표한다만, 이게 과연 옳게 된 일일까 싶다.”
주휼은 한 잔 더 들이켰다. 벌써 술은 절반도 안 남았다.
사마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주휼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었다. 그는 단순 산적 우두머리를 넘어 효웅(梟雄)이 될 만한 인물이었다. 더 큰 것을 볼 줄 알았다.
“녹림을 어찌하실 생각이외까.”
사마진은 미리 잔을 가득 따랐다.
“가만두면 더 나쁜 놈들 앞잡이나 될 게고, 이번 기회 한 번 싹 정리해야지.”
더 나쁜 놈들이란 마교를 의미하리라.
“적마단까지 손잡고 날뛰던데 괜찮으시겠소?”
주휼이 빈 술병을 뒤로 던지며 말했다.
“그러니 그놈의 정사회담인가, 사정회담인가 하는 거 아니더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에 가증스런 낯짝들을 본다더냐.”
말이 시원시원했다.
“크큭. 옳으신 말씀이외다.”
그때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그만 마실 때가 됐다.”
주휼이 자릴 털고 일어났다.
“더 드시지 않고요.”
사마진은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놈아, 그래도 어느 정도 해놓고 바라야지, 마냥 달라고 하면 줄 것도 주기 싫은 법이다.”
역시 난 사람이었다.
같은 시각, 사마룡은 두 여인 사이에 앉아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남궁설과 팽료가 차도를 보이자 남궁억과 팽군이 쉬겠다 들어갔고, 두 여인이 시중으로 사마룡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물!”
“여기.”
남궁설의 부탁 아닌 명령에 웬일로 사마룡은 고분고분 물을 챙겨 가져다줬다. 당연 사마룡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남궁설은 눈 뜨자마자 이것저것 성가신 요구를 했고 사마룡은 볼이 부어 투덜거렸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사마룡은 귀에 피가 나도록 핀잔을 들어야 했다. 남궁설이야 본래도 그랬다만, 팽료도 한마디씩 거드는데 그게 진땀을 빼게 했다. 애당초 사마룡이 그녀들을 두고 나갈 만큼 모질지 못했으니, 이제 자극하지라도 말자는 게 사마룡의 처신이었다.
“그나저나 요새 잘나간다며?”
남궁설이 대뜸 물었다.
“잘나가다니?”
사마룡은 요게 또 무슨 심술을 부리나 했다.
“듣기론 밤낮없이 여인들과 어울려 다닌다던데?”
무슨 망측한 소릴.
“어맛, 정말요?”
팽료가 화들짝 놀라 쳐다봤다. 그걸 믿고 경멸하는 눈을 하다니.
“무슨 헛소리야.”
사마룡은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얼마 전 남궁을 찾은 객분께서 그러시더라, 사마세가 어딘가 네가 만든 환락궁이 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마룡은 버럭 소릴 지르다 문득 생각이 송죽 별채에 미쳤다.
“요거 봐라? 진짜였니?”
남궁설 눈이 표독스러워졌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사레들릴 뻔했다.”
사마룡은 그리 말하고 속으로 고민에 빠졌다. 제게 풍문이 떠도는 것도 좋을 것 없지만, 마교가 활동을 시작한 이때 한유아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거처를 옮겨줘야 하나.
“무슨 생각을 그리하니?”
남궁설이 반쯤 일어나 물었다.
“너 이불 들추니 안 씻어 냄새난다 생각했다, 왜.”
사마룡은 그러고 멀찍이 떨어졌다.
남궁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옆에 칼이 있다면 벌써 던졌을 기세였다.
웅성웅성-
마침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가 왔나 볼까.”
사마룡은 얼씨구 밖으로 도망갔다.
“두고 봐.”
남궁설은 속으로 서슬 퍼런 칼을 갈았다.
“후우.”
팽료는 그때까지도 이불을 꼭 붙잡고 있었다.
천당채 중앙 공터엔 두 개 무리가 대치 중이었다.
하나는 남궁세가 창궁검수 남궁금(南宮檎)을 필두로 한 정도맹 인물들이었고, 다른 하난 녹림십팔채 표파자 산하 최고무력 집단, 맹호대(猛虎隊)의 인물들이었다.
남궁금은 남궁세가의 최고 전력답게 웅혼한 예기를 자랑했고, 의외인 건 맹호대의 인물들도 그에 결코 밀리지 않는단 거였다. 무엇보다 외모가 주휼 저리가라로 흉흉했다. 이 정도면 달리 기준이 있지 않을까 의심이 됐다.
“뭣 하는 짓이더냐?”
사마룡이 도망 나온 때, 주휼과 사마진도 같이 당도했다. 술 냄새가 확 났다.
“표파자를 뵙습니다!”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주휼은 흡족한 얼굴로 그들을 맞았고, 정도맹 사람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사마진 대협을 뵙습니다.”
남궁금도 사마진을 보고 깍듯한 인사를 했다. 그도 일찍이 사마진과 주휼이 검마를 죽인 일을 들었다. 사마진은 이제 일개 대주를 넘어 흠모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벌써 어디는 사마진을 멸마신검(滅魔神劍)이라고도 불렀다.
“대협 소리 듣기 민망하네.”
“이제 익숙해지셔야지 될 겁니다.”
사마진과 남궁금은 제법 안면이 있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사마진 물음에 남궁금이 답했다.
“일행을 모시러 왔습니다만, 저들이 먼저 위협을 가하여.”
그러자 맹호대를 이끄는 득근(得筋)이 발끈했다.
“우리가 뭘 했다고 그러느냐. 보자마자 칼을 뽑은 건 너희들이 아니더냐!”
성내는 모습이 흉신악살이 따로 없었다. 사마룡은 정도맹 사람들 맘이 충분히 공감됐다.
“갔던 일은 어이 됐더냐.”
주휼이 묻자, 득근은 곧장 큰 상자를 마차에서 내렸다.
“완수했나이다.”
주휼은 상자 뚜껑을 발로 차 열었다.
“헉.”
정도맹 사람들이 놀라 물러났다. 거긴 사람 머리통 여덟 개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마교에 가담했던 열세 개의 산채 중 여덟 개 채주의 머리통이었다.
주휼은 으쓱해져 물었다.
“어떠냐, 이 정도면.”
“차고 넘쳐 혼자서도 충분해 보입니다만.”
사마진은 저런 전력을 따로 빼돌린 주휼이 얄미웠다. 그새, 남궁금과 득근은 다시 으르렁거렸다.
보통의 정과 사가 만날 때가 이럴진대, 정사회담이란 게 원만할 리 있겠는가. 게다가 서쪽 멀리 불청한 객까지 움직임을 가졌다. 누가 가게 될지 모르지만, 보통 정신없는 행사가 아닐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