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Korea's absolut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47
대한민국 절대 재벌! 247화
“폐하.”
“말씀하세요. 총리.”
“수상 각하께서 여왕 폐하께 건의 드릴 것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그러고 보니 수상을 대면하지 못한 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군요.”
대한민국이 2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동안.
대마도 왕국은 76%라는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국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렇습니다. 붕어하신 이우 전하를 대마도 왕국의 황제로 추서하는 것이 어떠냐며 여쭈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우 전하를요?”
덕은 여왕은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다.
이우는 대한제국 왕실의 후예이자.
강제적으로 일본 제국의 군인이 된 비운의 왕자였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차남으로 흥선대원군의 장손 이준용이 사망하자.
양자로 입적되어 운현궁의 4대 종주가 되었다.
운현궁을 상속한 후에 공위를 세습해 이우공 전하라는 공족의 칭호를 사용하게 됐고.
일본 제국의 강요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여 일본 제국 육군에 입대했다.
또한, 일본 정부에 의해 일본인과의 결혼을 강요받았지만.
저항하여 조선인 박찬주와 결혼했고.
1945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8월 7일에 히로시마시 니노시마에서 사망한 비운의 황자였다.
“그렇사옵니다.”
“그렇다면 수상이 이제야 조선 왕실을 인정한다는 건가요?”
“대마도 왕국의 뿌리가 조선 왕실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시군요.”
모처럼 덕은 여왕이 미소를 지었다.
“그에 따라 사망하신 이우 전하의 자제분들을 대마도 왕국에 입국시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왕실이 튼튼해야 대마도 왕국의 발전이 지속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윤허하신 것으로 알고 이청 저하와 이종 저하를 입국하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5년 동안 대마도 왕국 왕립 대학에서 교육을 받으신 후 영국 옥스퍼드에서 유학하실 수 있게 조치하겠나이다.”
“또 유학이군요.”
덕은 여왕의 딸인 이선이 하버드에 입학하기 위해 유학 중이었다.
“그렇사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오사카성에 머무시는 이은 저하께서 모레,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입국할 예정입니다.”
“입국 금지 조치까지 풀린 겁니까?”
“예, 수상 각하께서는 이제 대마도 왕국이 안정됐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마도 왕국 군대 장교의 80% 이상이 강철의 신봉자니.
반란이 일어날 소지가 없었고.
이은이 입국한다 해도 가질 것은 왕족의 대우가 전부였다.
* * *
1948년 1월 12일, 대구 카빈 소총 생산 공장.
미국의 승인을 얻어 대구 외곽 지역에 소구경 화기 생산 공장을 설립했고.
그 공장 옆으로는 60밀리 박격포 생산 공장과.
81밀리 박격포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무기를 생산하는 과정을.
미군정에서 파견한 미군 장교 감독관의 감독을 받으면서 생산했고.
카빈 소총의 노리쇠 부분은 자체 생산을 못 하고 전량 미국에서 수입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대구 소화기 생산 공장을 순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생산이 끝난 카빈 소총을 손으로 직접 만지며 성능을 확인했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정계 공장장.”
이곳의 총책임자는 지정천 장군의 아들인 지정계였고.
지정계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 출신으로.
핵심책임자들은 모두 군인이다.
이것은 방위산업체의 특성이라면 특성일 것이고.
비밀 유지 및 정보 유출을 막으려는 당연한 조치였으며.
국가유공자진흥법에 따른 조치이기도 했다.
지정천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항일 독립 운동가 겸 군인으로.
만주에서 독립군 활동을 지휘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에 참여하여 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자치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했다.
“예, 경제부 장관님.”
“노리쇠 부분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미국 정부는 우리에게 소화기와 박격포 생산을 허락하고 기술을 이전해 줬지만.
각 무기의 핵심 부품의 기술 이전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합금 부분이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국방연구소에서 노리쇠 개발에 성공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구에는 국방연구소 소화기 및 박격포 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하루에 생산되는 소총은 몇 자루입니까?”
“하루에 100자루 생산이 가능하지만 노리쇠 수급에 차질이 있어 50자루 정도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노리쇠를 개발해야 가장 기초적인 자주국방을 이룰 수 있다.
“대만 출신 기술자들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3만 5천 명의 대만 출신 이주자 중 4,000명 숙련공은 16개 공업 도시로 분산되었고.
대구에서는 2,000명 정도가 이주해 소규모의 타이완 타운을 형성한 뒤 생활했다.
“크게 문제 되는 불만은 없습니다. 단지 화교 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기에 대구 시민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대구 시민들에게 대만 사람들은 이방인이다.
“공장에서 화교 학교 설립을 지원하십시오.”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신이 단일민족과 백의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능력이 있고 기술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조국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 어떤 민족도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목소리를 살짝 낮추자 지정계 공장장이 내게 바짝 다가섰다.
“비밀리에 오호담당제를 운영해 감시하세요.”
그리고 보니 오호담당제는 북한에서 실시하는 감시체계인데.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 전까지는 감시가 필요했고.
사실 대만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주한 숙련공 중에서 공산주의자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나도 그걸 잘 알고 있어 그들이 입국할 때.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겠다는 전향서를 받았다.
“우리가 감시해야 하는 것은 대만 민족이 아니라 공산주의자입니다.”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고생이 정말 많습니다.”
“장관님, 이제 포항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내 비서관이 조심히 말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철소 부지를 확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갑시다.”
나는 공장 건물에서 나와 자동차 앞에 섰다.
“지정계 공장장, 계속 수고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탔고.
자동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지정계가 우렁차게 거수경례했다.
“충성-!”
거수경례를 끝낸 지정계의 모습이 사이드미러로 보였다.
‘콩 심은 곳에 콩 나는 법이다.’
국가유공자들의 자식들은 이렇게 국가를 위해서 대부분 충성을 다한다.
물론 가끔은 호랑이가 개를 낳는 경우도 있지만.
그 역시 일제 강점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이봐, 박 씨! 거기서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합니까?”
차의 창문을 열어놨기에 지정계의 외침이 내게 들렸다.
‘박 씨?’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고.
급하게 담배를 끄는 젊은 박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차 세우세요.”
끼이익.
그와 동시에 차가 섰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여긴 화약을 다루는 곳입니다. 금연이라고 못 들었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때 젊은 박정이가 지정계 공장장에게 질책 받는 것을 보고.
생산라인 반장 한 명이 급하게 뛰어왔다.
그리고 박정이는 인상을 구겼다.
“왜 그러십니까? 공장장님.”
반장들 역시 하사관 출신이다.
이 공장은 일반 노동자들을 제외한 모든 간부가 군인 출신이다.
“차 반장!”
“예, 공장장님.”
“박 씨한테 시말서 받아!”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웠어!”
공장 간부는 모두 군인이기에 상명하복 분위기가 꽉 잡혀 있었고.
하급자에게 하대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공장에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해하지만, 이 공장은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공장이다. 누군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공장이 폭발에 휘말린다면 우린 국민에게 큰 죄를 지은 죄인이 되는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차 반장이 대답하고 박정이를 봤다.
“박 씨, 가서 시말서 쓰고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도록 해.”
“알겠습니다.”
박정이는 마지못해 대답하고 돌아섰다.
하여튼 나는 박정이의 운명이 나 때문에 완벽하게 변한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저렇게 평범하게 살면 좋을 것인데······.’
이것이 내 바람이다.
하지만 인상을 구기는 모습을 봤고.
짐작건대 박정이는 이 공장을 오래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 * *
1948년 1월 12일 유엔 총회 회의장
중동의 일부인 팔레스타인 지역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상황이 해소되어 일정 기간 영국의 위임통치가 결정되었다.
“영국 유엔 대표, 발언하시오.”
오늘은 영국과 유대인.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각각 다른 입장에서 역사적 급변으로 기억될 날이다.
“유엔의 결정으로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했고, 그에 따라 위임통치 기간이 1948년 5월 15일부로 종료되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을 계획적으로 분할할 것이고, 지역 역시 두 지역으로 분할하여 할당할 것입니다.”
영국 유엔 대표의 발언에 유엔 총회장에 모인 각국 대표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대표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고.
중동 국가 대표들은 말도 안 되는 계획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각국 유엔 대표들께서는 이 안을 투표로 결정해 주시면 감사하겠고, 상임이사국의 대표께는 그 투표 결과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유대인이 소망했던 일이고.
적극적으로 영국을 지원했던 이유였다.
한마디로 유대인들은, 특히 시오니즘을 이루려는 유대인들은.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는 1947년 11월 29일에 이 모든 사항이 발표되고.
실행 계획이 공표되지만 2달 정도 뒤로 밀리게 되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중동의 역사도 나비효과에 의해.
기존의 역사의 흐름과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입니다!”
이집트 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입니다. 어떤 근거로 유대인에게 분할해 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집트 대사, 진정하십시오.”
“지금 진정하게 됐습니까?”
이집트 대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대표의 제안은 투표로 결정될 것입니다.”
총회의 진행자의 발언에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 시오니즘 단체의 경영 이사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다.’
결국, 한마디로 돈으로 나라를 사고자 한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