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 stacking hunter RAW - volume 1 (3)
1-2장.
수습 헌터들의 마지막 난관, 실전 테스트.
이걸 통과하지 못하면 정식 헌터로 인정받을 수 없다.
헌터로 활동할 수 있는지 역량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임하지 않거나 팀워크가 엉망이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자, 그럼 참여 인원 부르겠습니다.”
도로 한가운데에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그 게이트 근처에 차단선이 쳐져 있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부 실전 테스트를 치르러 온 수습 헌터들이었다. 헌터 협회의 교관이 참가자 인원을 순서대로 불렀다.
“서민아 씨.”
“네, 넷!”
“이번이 마지막 기회시군요.”
“그, 그렇습니다.”
“이번엔 열심히 하셔서 좋은 성적 거두시길 빕니다.”
“네에…….”
소심해 보이는 여성이 손을 반쯤 들었다. 교관은 그녀가 두 번이나 탈락한 낙제생임을 확인했다.
실전 테스트에서 세 번 탈락하면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 더는 정식 헌터로 활동할 수 없게 된다.
‘탈락자들은 엇나가는 경우가 많지.’
모처럼 능력을 찾아냈는데 헌터로 일할 수 없게 된다니.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에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뒷세계 브로커들이 손을 내민다.
‘낙오자들을 모아다 용병으로 써먹지.’
교관은 서민아를 보며 생각했다. 두 번이나 떨어졌다면 이번에 통과할 확률 역시 희박하다.
서민아의 뒤에서 경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풉! 그럼 두 번이나 떨어졌어?”
“어지간히도 못 싸우나 보네.”
어떤 무리가 그녀를 보며 대놓고 비웃었다. 교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쳐다봤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군.’
그는 명단을 살폈다. 저 둘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게다가 교육받은 일수도 2주 정도밖에 안 됐다.
“천성준 씨, 임정섭 씨.”
“네.”
“예.”
“두 분은 교육 일수를 덜 채우셨네요. 교관이 조기 수료자로 추천해 줬나요?”
“예, 뭐. 별것 없던데요.”
천성준과 그의 친구로 보이는 임정섭. 둘은 실실 웃으며 건방을 떨었다.
교관은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천성준은 다른 교관에게 추천을 받을 만큼 종합 점수가 아주 뛰어났다.
하지만 임정섭은 달랐다. 점수는 딱 평균점. 조기 수료를 받을 급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했더니 임정식 헌터의 동생이었군.’
이번에 6급으로 올라간 엘리트 헌터, 임정식. 그의 입김이 닿은 모양이었다.
‘수료식 시험에 인맥을 동원하다니. 쯧, 수락한 교관이 누군지 몰라도 한심한 작자다.’
교관은 혀를 찼다. 물론 규칙을 어긴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교관이 가진 권한을 행사한 거니까.
하지만 거기에 다른 이들의 주관이 섞였다면 공정하지 못한 결과랑 다를 게 없지.
“이수현 씨, 이수현 씨?”
유근혁 교관이 추천했다던 수습 헌터. 이수현의 이름을 연신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수현 씨 없습니까?”
다른 시험도 아니고 실전 테스트에서 지각이라니. 이건 틀림없는 탈락 사유였다.
유근혁 교관과는 사적으로 아는 사이였는데, 그에겐 조금 실망했다.
‘이런 불성실한 사람을 조기 수료자로 추천한 거야? 유근혁 교관, 사람 보는 눈이 형편없군.’
불성실한 것치곤 의외로 종합 점수가 좋았다. 교육 기간에도 지각이나 결석은 없었다.
“이수현 씨는 그럼 오지 않은…….”
빵빵!
교관이 탈락 칸에다 체크하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사람들이 전부 뒤쪽 차도를 쳐다봤다. 용달차를 끌고 온 남자가 운전석 창문에 손을 내밀고 다급히 흔들었다.
“이수현 왔습니다!”
“이수현 씨, 본인입니까?”
“예!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지각하셨으니 3점 감점입니다.”
교관은 가차 없이 감점을 먹였다. 이수현은 트럭에서 내리며 속 편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피식대며 그를 비웃었다.
“자기가 무슨 이삿짐센터야?”
“킥킥!”
아예 대놓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성준과 임정섭이었다.
이수현은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천성준이 실실 쪼개며 시비를 걸었다.
“뭘 봐? 전격 맛 좀 볼래?”
파지직!
천성준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푸른 전격이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움찔하며 고갤 돌렸다. 이수현도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이수현이 겁먹었다고 판단한 천성준은 키득대며 덧붙여 말했다.
“처신 잘하라고.”
교관은 한숨을 푹 쉬며 그들에게 경고했다.
“거기 두 분, 지금 싸우면 바로 탈락입니다.”
‘천성준, 보기 드문 전기 속성의 마력을 지녔어.’
전기 계열 능력은 다루기가 까다롭지만, 파괴력만큼은 확실히 보증한다.
천성준이 최고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건 저 마력 덕분이겠지.
“지금부터 두 팀씩 던전에 돌입할 겁니다. 서로 경쟁은 하되 공격해선 안 되겠죠. 명심하세요. 몬스터만 공격하셔야 합니다.”
“예.”
“그럼 지금부터 두 명씩 팀을 짜세요. 딱 5분 드리겠습니다.”
교관은 조금 떨어져서 수습 헌터들을 쳐다봤다. 그의 예상대로 천성준과 임정섭은 한 팀이 됐다.
천성준은 강력한 전격 능력으로 딜러를 맡았고, 임정섭은 등에 멘 방패로 탱킹을 책임지겠지.
‘이수현, 트럭으로 몬스터를 친다고?’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이었다. 그래도 유근혁 교관의 추천까지 받았으니 분명 강하겠지.
‘천성준과 이수현. 둘 중 누가 더 뛰어날까.’
* * *
“저기, 혹시 저랑 팀 하실 생각…….”
“아, 죄송해요. 전 이미 정했거든요.”
“아, 네…….”
서민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물러섰다. 모두 그녀를 피했다.
이미 두 번이나 떨어진 낙제생이랑 누가 팀을 해 주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공격이나 방어 능력도 없었다.
“혹시 팀 아직 안 구하셨나요?”
“아, 네!”
그녀의 뒤에서 팀을 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서민아는 활짝 웃으며 돌아봤다.
목소리의 주인은 트럭을 타고 온 이수현. 그녀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저랑 팀 하실래요? 아무도 저랑 안 해 주려고 해서요.”
‘이 사람이랑 팀 짜도 괜찮을까?’
중요한 시험을 치는데 지각하고 용달차까지 몰고 왔다. 그렇다고 무기나 보호구가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하긴. 지금 내가 팀원을 가릴 처지가 아니지.’
그녀와 이수현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팀을 다 짰다. 어차피 둘은 팀이 될 운명이었다.
“저, 혹시 포지션이 뭔가요?”
“딜이랑 탱. 둘 다 됩니다. 제가 버스 기사 할게요.”
버스 기사라니. 지금 우리가 게임이라도 하는 줄 아는 건가.
지각에다 태도도 진지하지 않고 가벼웠다. 신뢰도가 팍팍 깎인다.
“저는 버프 스킬을 가진 서포터거든요. 전투 능력은 없는데 괜찮겠어요?”
“딱 좋네요.”
이수현은 자신만만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팀이 전부 이뤄지자 교관은 무작위로 수습 헌터들을 불렀다.
교관은 돌입 전에 평가 방식을 설명했다.
“팀 점수와 개인 점수도 따로 매깁니다. 그리고 꼭 한 팀만 합격하진 않습니다. 둘 다 붙을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죠.”
가장 먼저 시험을 치르는 팀들이 교관과 함께 게이트로 돌입했다.
두 팀이 시험을 치르는 시간은 10분. 한정된 시간 동안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어이, 아재.”
“…나?”
“그럼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뒤에서 천성준이 대뜸 그를 불렀다. 이수현은 고갤 돌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게 초면에 반말이나 해 대다니. 마음 같아선 꿀밤이라도 먹여 주고 싶었다.
천성준과 임정섭은 놀리듯이 사실을 말했다.
“늦게 와서 못 들었겠지만, 아재랑 같은 팀 된 여자. 이미 두 번이나 탈락한 낙제생이야.”
“분명 짐이겠지. 한마디로 꽝 골랐다고. 큭큭!”
“…….”
서민아는 그들의 노골적인 조롱에도 가만히 있었다. 그들의 말은 전부 사실이니까.
어정쩡한 버프 능력에 신체 능력은 일반인 수준. 말 그대로 짐덩어리였다.
서민아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걸 본 천성준이 킬킬대며 확인 사살을 했다.
“그냥 버리고 혼자 하는 게 나을걸? 아니면…….”
“야.”
이수현은 그의 말을 잘라먹었다. 그러자 천성준이 얼굴을 구기며 손가락을 들었다.
파직!
푸른 전격이 손가락 주위에 생성됐다. 누굴 협박하는 데 아주 도가 텄다. 저런 녀석이 헌터가 된다면 앞날은 안 봐도 뻔했다.
“진짜 전격 맛 좀 볼래?”
“어디 해 보던가. 그럼 넌 탈락할 텐데.”
“교관은 10분 뒤에나 나올 건데 무슨…….”
“우리 형이 누군지 알아? 6급 헌터라고!”
천성준은 임정섭의 든든한 뒷배를 믿었다.
형제가 6급 헌터라는 말에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6급이면 어지간한 중견 길드에서도 부장급의 대우를 받는다. 이수현은 그 사실을 잘 몰랐다.
“6급? 그래서 뭐 어쩌라고.”
“깝치지 말고 알아서 기어. 나중에 쓴맛 보기 싫으면.”
“수현 씨, 그냥 참아요.”
“…….”
이수현이 사고라도 쳤다간 그녀도 덩달아 곤란해진다. 하지만 그녀의 만류에도 이수현은 천성준에게 다가갔다.
천성준의 표정이 점차 험악해졌다. 주변 사람들도 둘의 대치 상황에 웅성댔다.
“뭐야, 한판 해보자고?”
슥.
이수현은 주먹을 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천성준이 뭐하냐는 눈으로 째려봤다.
“괜히 얼굴 붉히지 말고 좋게좋게 가자고.”
“허, 이게 미쳤나…….”
천성준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휘두르려다 멈췄다. 놈이 이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날 도발해서 탈락시키려고? 흥. 뻔하지.’
천성준은 그의 속내를 간파하고 같잖아서 피식 웃었다. 그는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이수현의 악수를 받아 줬다.
‘살짝 놀래켜 줄까.’
접촉한 상대에게 전격을 흘려 넣는다. 힘 조절하는 방법은 헌터 아카데미에서 죽어라 배웠다.
그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으며 전기를 흘려보냈다.
[10만 볼트 이하의 전압에는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수현은 그가 흘려 준 전격을 야금야금 먹어 치웠다. 그것도 모자라 그가 몸에 지닌 전력까지 쭉 흡수했다.
“…어?”
“이제 됐지?”
“너 어떻게…….”
왜 멀쩡하냐고 물어보려던 천성준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때마침 교관과 수습 헌터들이 게이트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도전팀은 던전 안에서 10분도 채 못 버틴 것이다.
교관은 악수하던 둘을 발견하고선 질문했다.
“거기, 둘. 지금 뭐하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화해의 의미로 악수 좀 했습니다.”
이수현은 빠르게 손을 떼고서 물러났다. 천성준은 부들대며 그를 노려봤다.
마음 같아선 멱살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교관 앞에서 그러면 바로 탈락이다.
“다음 팀 호명할 테니 바로 준비하세요.”
교관은 탈진한 첫 번째 팀들을 돌려보내고 다음 팀을 불렀다.
시간은 쭉쭉 흘렀다. 드디어 이수현의 차례가 왔다.
“이수현 팀, 천성준 팀. 다 준비됐습니까?”
“예, 준비됐습니다.”
교관들의 추천을 받은 두 사람이 게이트 앞에 섰다. 이수현이 트럭의 운전석에 오르자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뭐야, 저 새끼. 던전 들어가는데 트럭은 왜 타?’
천성준은 손을 들고서 교관에게 따졌다.
“아니, 교관님. 던전 안에 차를 타고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트럭은 이수현 씨의 무기입니다.”
“예?”
“잘 모르면 닥치고 돌입 준비나 해.”
“뭐라고!”
툭.
이수현은 그렇게 말하고서 문을 닫았다. 그러자 천성준이 이를 갈며 그를 노려봤다.
“민아 씨도 빨리 타세요.”
“아, 네…….”
서민아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조수석에 앉았다. 그래도 트럭 안에 있는 편이 안전하겠지.
“돌입 준비 다 했으면 출발합니다.”
1톤 트럭이 게이트로 천천히 진입했다. 서민아는 안전띠를 꽉 매고 이수현에게 질문했다.
“저기, 차를 무기로 쓴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곧 알게 될 거예요. 아, 그리고 곧 몸이 안 움직일 건데 당황하지 마세요. 싸움 끝나면 풀어 드릴게요.”
“네? 그게 무슨…….”
“보조 무기 장착.”
“오오!”
서민아를 조수석에다 태우자 그녀의 버프 능력이 적용됐다.
화르륵!
트럭의 외견이 세기말 영화에서 나올 법하게 변경됐다. 배기 기관에서 불꽃과 함께 진한 매연이 배출됐다.
“뭐, 뭐야 저거?”
“8기통!”
천성준과 임정섭은 트럭을 보더니 주춤했다. 교관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더듬더듬 물어봤다.
“수현 씨, 그게 당신의 능력입니까?”
“아뇨. 트럭이 변한 건 민아 씨의 버프 때문인데요.”
‘정작 버프 걸어 준 사람은 완전히 얼어붙었는데.’
서민아는 마네킹처럼 굳어서 꼼짝도 안 했다. 당황스러울 만도 하겠지. 앞에다 사람 하나 매달 것 같은 차량 비주얼인데.
“그래서 여긴 무슨 던전이죠?”
F급 던전이라길래 동굴이나 지하 미궁을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구의 오지를 떠올리게 하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아, 예. 여긴 고블린들이 자생하는 숲입니다. 제법 규모가 큰 마을도 확인했죠.”
“그럼 그 마을로 쳐들어가는 거겠네요?”
천성준이 제 성질을 못 참고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자 교관이 곧바로 고갤 저었다.
“아뇨. 우린 마을 밖을 돌아다니는 고블린 무리랑만 전투할 겁니다.”
“어째서요?”
“밖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이 다 달려들어도 못 이기니까요. 마을 토벌은 내일 정식 헌터들이 할 겁니다.”
“겨우 고블린인데요?”
천성준은 교관의 설명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1성 몬스터, 고블린은 슬라임과 더불어 최약체 몬스터 중 하나.
“쓰레기들 좀 모였다고 뭐 달라져요?”
“천성준 씨, 그런 마음가짐으론 던전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자기 능력을 신뢰하는 건 좋지만, 과신하면…….”
“아, 예예.”
천성준은 교관의 조언을 잔소리라 여겼다. 그는 재미없단 표정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임정섭이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급히 얘기를 늘어놨다.
“어차피 정식 헌터 되면 형이 길드에 꽂아 준댔어.”
“하긴. 며칠 뒤엔 더 센 놈들도 실컷 죽일 수 있겠지. 겁만 많아선…….”
“출발할 겁니다. 지금부턴 입 닫고 조용히 움직이세요.”
교관은 천성준의 불평을 무시하고 먼저 앞장섰다. 그러자 이수현의 트럭이 그를 뒤따라 움직였다.
임정섭은 불쾌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저 시끄러운 엔진 소리 때문에 다 몰려오는 거 아냐?”
“그럼 나야 오히려 좋지.”
“하긴, 네 능력은 진짜 개사기니까.”
파직.
천성준은 손가락에 뇌기를 모아 전류를 생성했다. 보고만 있어도 든든해지는 능력이었다.
“넌 방패막이 역할만 잘해 주면 돼.”
“그래, 성준이 너만 믿을게.”
임정섭은 비싸게 주고 산 은빛 방패를 꺼내 들었다. 부족한 실력은 장비로 메꾸면 된다.
‘흐흐, 마탑에서 비싸게 주고 산 고급 방패라고.’
타이탄도 섞인 합금 방패라 어지간한 피해로는 꿈쩍도 안 했다. 그는 이 방패만 믿고 달려드는 고블린을 밀쳐내기만 하면 된다. 마무리는 천성준이 해 줄 테니까.
“쉿. 모두 멈춰요.”
우뚝.
움직이던 사람들이 교관의 지시에 따랐다. 수풀 너머로 순찰 중인 고블린들이 보였다.
총 여섯 마리. 교관은 고갤 끄덕이며 테스트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네 명이면 충분히 상대할 만하겠지.’
“두 팀, 준비됐습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제가 바로 개입할 겁니다.”
“어느 팀이 먼저 합니까?”
“두 팀이 동시에 진행합니다. 경쟁하되 서로를 견제해선 안 됩니다. 고의성이 느껴지면 바로 탈락인 거 아시죠.”
“예, 그럼 바로 출발합니다.”
빵빵!
이수현이 그렇게 말하며 경적을 울렸다. 교관은 화들짝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몰래 기습해도 모자랄 판에 대놓고 소릴 내다니.
부우웅!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미 세기말 트럭은 쌍라이트를 켠 채 고블린 무리를 향해 달리는 상황.
“어, 어?”
“미친!”
[쌍라이트의 시선 집중 효과가 강화됐습니다.] [적들이 일시적으로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콰앙!
고블린들이 볼링 핀들처럼 날아갔다. 강화된 쌍라이트의 효과로 놈들은 석상처럼 가만히 있어 줬다.
여섯 중에 네 마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관은 멍하니 그걸 바라만 봤다.
천성준과 임정섭은 입을 쩍 벌리고 넋을 놓았다.
‘저, 저게 뭐야?’
진짜 차로 몬스터를 칠 줄이야. 상상도 못 한 공격 방식에 천성준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잠시 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임정섭에게 소리쳤다.
“저 새끼한테 뺏길 순 없지. 정섭아, 가자!”
“어? 으, 응!”
두 사람도 수풀에서 튀어나와 남은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트럭에 시선이 빼앗겼던 고블린 둘은 당연하게도 기습에 당했다.
파지직! 터엉!
천성준은 전격이 흐르는 창을 고블린의 가슴팍에다 찔렀다. 임정섭은 방패로 대가리를 후려쳤다.
“키에엑?”
“키익!”
두 마리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변변한 반격조차 못 해 보고 쓰러진 고블린에게 천성준은 창날을 푹푹 쑤셨다.
푹! 파지지직!
고압 전류에 고블린의 살점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놈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죽어, 죽으라고! 크하핫!”
“킥킥. 새끼, 벌레처럼 꼼지락대고 있네.”
“키, 키에엑…….”
‘일부러 안 죽이고 고문을 하다니. 지독하군.’
교관은 그들의 포악질에 절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몬스터라도 그렇지. 반항할 의사조차 없는 적에게 전기 고문을 하다니.
‘뭐라 할 말이 없군. 방심하다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몬스터를 잔혹하게 죽이는 건 감점 사유가 아니었다. 하지만 저걸 마냥 정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저런 부류의 사람들은 몬스터가 없었으면 사람에게 능력을 휘두르고도 남았을 테니까.
‘헌터로 살아남으려면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하는 건 맞지.’
고블린 둘은 전기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죽었다. 그러자 천성준은 혀를 날름대며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에이, 이것밖에 못 버텨? 아직 1분도 안 지났는데.”
“고블린들이 다 그렇지 뭐.”
“좋아, 남은 것들도 전부…….”
내가 처리해 주겠다. 그렇게 말하려던 천성준은 흠칫 놀랐다.
아까 차에 치여 바닥에 널브러진 고블린 네 마리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임정섭에게 말했다.
“야, 정섭아. 저것들 빨리 확인해 봐.”
“뭔 확인?”
“저것들 죽었는지 살았는지! 빨리!”
“아, 알았어.”
천성준이 신경질적으로 나오자 임정섭은 허둥지둥 달려가 고블린의 맥박을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목을 짚어 봤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전부 죽었어?”
“죽었다고? 그냥 차에 치인 게 단데?”
“그냥 차가 아니야.”
운전석의 창문이 쓱 열렸다. 그 안에서 이수현이 천성준에게 말했다.
“1톤 트럭이라고.”
“시발, 이건 무효야. 비겁하게 차 쓰지 말고 자기 힘으로 싸우라고!”
“싫은데?”
“뭐, 뭐?”
천성준은 그의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수현이 이죽대며 말했다.
“이건 내 능력인데? 오늘 아침에 협회가 빌려 준 거야. 그리고 너희가 나한테 뭐라 할 처지냐?”
“갑자기 뭔 개소리를…….”
“그 창. 그리고 네 친구 방패. 협회에서 보급해 준 장비가 아니잖아?”
“…….”
“자기들은 비싼 장비 쓰면서 나만 비겁하다 빽빽 소리 지르고 말이야. 애새끼도 아니고 뭔…….”
천성준은 분한 얼굴로 창대를 콱 잡았다. 분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수현이 지적한 건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그들이 들고 온 장비는 전부 임정섭의 형이 지원해 준 것들이다. 수습 헌터들은 선뜻 사기 힘들 정도로 비싼 물품.
“교관님, 저 이대로는 테스트 못 끝냅니다!”
“예?”
“제 점수가 저 자식보다 낮을 거 아녜요.”
교관은 평가지를 작성하던 중 뜬금없는 요구에 당황했다. 천성준은 그야말로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참 피곤하게도 산다.”
“닥쳐! 잘못하면 탈락할지도 모르잖아!”
교관은 평가 점수를 기입하다 멈칫했다. 엄밀히 말하면 천성준은 탈락이 아니었다. 혼자서 고블린 두 마리를 잡긴 잡았으니까.
하지만 임정섭은 논외였다. 방금 그가 한 건 방패로 고블린을 몇 번 밀친 게 전부였다.
‘규정대로 하면 임정섭은 확실하게 탈락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임정식 헌터와 저들을 추천해 준 교관까지 노발대발하겠지.
그는 부정을 저지를 생각은 없지만, 굳이 피곤한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자신뿐만 아니라 이수현과 서민아에게 보복하려 접근할지 모른다.
‘이수현이 네 마리나 즉사시킨 탓에 저들은 제대로 평가할 기회도 없었지.’
정말 이례적인 경우였다. 기대주로 뽑힐 만도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트럭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들겼다.
“예, 교관님.”
“수현 씨 팀만 허락한다면 저들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교관의 추천까지 받고 왔는데 턱걸이로 합격하거나 탈락해 봐라. 저들만 특혜를 받은 거 아니냐며 문제가 불거질 거다.
“그러면 특혜 아닙니까?”
“저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임정식 헌터는 6급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이 보복당할지 모르니…….”
“예, 뭐. 알겠습니다.”
“민아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저 둘의 운명은 그녀의 대답 여부에 달려 있었다.
그녀가 아무 말도 안 하자 불안해진 천성준이 막말을 날렸다.
“솔직히 저 여자도 불합격 아냐? 아무것도 안 했잖아!”
“맞아! 트럭만 일했지. 자기는 한 것도 없으면서 뻔뻔하게…….”
“뭐래. 트럭이 강해진 것도 전부 버프 덕분인데.”
“뭐?”
서민아의 버프 덕분에 고블린들을 수월하게 골로 보냈다.
“민아 씨는 화도 안 나요? 똑 부러지게 한마디 해요. 아…….”
이수현은 열심히 두둔해 주다 그녀가 조용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작게 속삭였다.
“보조 장비 해제.”
“허억, 허어억!”
무표정했던 그녀가 숨을 크게 헐떡이며 평소대로 돌아왔다. 교관과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어, 어… 어?”
“그래서 어쩌실 겁니까? 저들에게 기회를 주실 건가요.”
“그, 그게 그러니까…….”
서민아는 소심하게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교관의 뒤에서 천성준이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이수현이 그를 쏘아봤다.
천성준은 분한 얼굴로 눈을 깔았다. 이수현이 말을 바꿔 버리면 곤란해지니까.
“기회를 드릴게요.”
“휴.”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네.”
“대신 저도 재평가를 받게 해 주세요.”
“네?”
“…제 점수, 합격점이 아니죠?”
그녀의 질문에 교관도 잠깐 멈칫했다. 솔직히 방금 상황만으로 그녀의 점수를 매기긴 애매했다.
‘이수현이 원래부터 저리 강한 건지, 그녀의 버프 능력이 대단한 건지. 속단하기 이르다.’
“그럼 세 분이 팀을 짜 보겠습니까?”
“셋이서요?”
“민아 씨의 버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면 그게 제일 확실할 것 같습니다. 저 두 명의 서포트를 맡아 주세요.”
“…네!”
그녀는 결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게 진짜 마지막 기회였다.
천성준은 팔짱을 끼고서 아니꼽게 바라봤다.
“아, 꼽사리 끼는 거 좀 에반데?”
“뭐, 버프니까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럼 전 뭘 하면 됩니까?”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해 주시면 됩니다. 수현 씨는 이미 합격이니까요.”
* * *
‘찾았다.’
고블린 세 마리가 보였다. 아까 무리에 비하면 숫자는 적었지만,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인 건 확실했다.
천성준은 자연스럽게 팀의 리더를 도맡았다.
“딜은 내가 다 넣을 테니까, 방금 얘기한 대로 하자고. 질문?”
“없어요.”
“괜히 나서지 말고 버프나 잘 넣어. 인질로 잡히지 말고.”
“…예.”
임정섭은 그녀한테 으스대며 말했다. 합격하고 싶다면 자기들 말이나 들으란 식이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굽신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버프 넣어 드릴게요. 그런데 주의할 점이 있어요. 감정 통제가 어려워져서 금방 지칠 수도 있으니…….”
“오오! 갑자기 힘이 펄펄 넘치는데? 버프 효과 죽인다!”
“쩐다. 이게 버프 효과인가? 어이, 꼽사리는 여기서 구경이나 해.”
“앗, 잠깐만요!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그녀가 다급히 경고했지만 둘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버프로 모든 능력치가 뻥튀기된 탓이었다.
게다가 둘은 버프 스킬을 받아 본 적도 처음이라서 이성이 마비됐다.
“크히힛!”
“미친… 최고야!!”
둘은 피에 굶주린 광전사처럼 뛰어갔다. 멀리서 지켜보던 이수현이 피식 웃었다.
‘민아 씨의 버프는 버서커. 양날의 검이지.’
능력치를 한계까지 끌어올리지만, 버프 대상을 금방 지치게 만든다. 저렇게 마구잡이로 달려들면 금방 탈진할 터.
‘저렇게 원숭이처럼 날뛰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지.’
저놈들 언젠가 사고 치겠네.
고블린들은 맹수처럼 달려드는 두 사람을 보더니 허둥지둥 도망쳤다.
그런데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고블린들이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는 게 아닌가.
‘설마 저것들, 유인하는 건가?’
고블린들은 1성급 몬스터라 약하지만 어느 정도 지능이 있다. 게다가 무리를 지어 사냥하기에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고 교육 시간에 배웠다.
“이런, 고블린들이 함정을 팠나 봅니다!”
교관도 고블린들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눈치챘다. 천성준은 고삐 풀린 망나니처럼 침까지 질질 흘리며 전격을 마구 방출했다.
“한 마리도 안 놓칠 거야! 너흰 내가 다 잡는다!”
“멈춰, 이 새끼들아!”
“키에엑?”
‘쯧. 저러면 금방 방전돼서 뻗을 텐데.’
이수현의 예상은 적중했다. 도망치던 고블린들에게 전격을 쏴 재끼던 천성준이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그는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임정섭이 괜찮냐고 다가왔다.
“성준아, 너 괜찮아?”
“헉, 헉. 야, 고블린들은?”
“미안, 놓쳤어. 수풀 속으로 뛰어가서…….”
“아오, 씨발! 넌 그거 하나 못 따라잡아?”
“미, 미안…….”
파지직!
천성준은 고블린을 한 마리밖에 못 잡았다. 분명 전격의 위력은 강해졌는데 명중률이 이상했다.
‘고블린 따위가 내 공격을 피해?’
“성준아, 이제 우리 어쩌지?”
“좀 닥쳐 봐. 생각 중이니까.”
세 마리 중에 하나만 겨우 잡았다고 말하면 교관뿐만 아니라 그 자식이 비웃겠지.
으득.
이수현이 실실 쪼갤 모습을 상상하자 머리에 열이 확 올라왔다. 천성준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걸 본 임정섭이 덜덜 떨며 걱정스럽게 말을 걸었다.
“서, 성준아? 너 괜찮은 거 맞지?”
“…그래. 이 녀석은 놈들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잖아.”
“키에에엑!”
파지직!
쓰러진 고블린의 가슴팍을 짓밟으며 전기 고문을 가했다. 그러자 녀석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다른 녀석들 어디로 도망쳤어! 말해!”
“키, 키이익…….”
고블린은 침까지 질질 흘리며 겨우 손가락을 뻗었다. 특정 방향을 가리키자 천성준은 씩 웃더니 창날로 목구멍을 뚫었다.
“키엑?”
“흐흐. 왜? 살려 줄 줄 알았냐? 얼른 뒈져.”
푸확!
고블린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천성준은 놈의 숨통을 끊고서 발로 걷어찼다.
시체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날아갔다. 천성준은 임정섭한테 눈짓으로 명령했다.
“잠깐만요, 천성준 씨, 임정섭 씨. 멈추세요!”
“…뭡니까?”
소릴 듣고 급히 달려온 교관이 둘을 불러 세웠다. 남은 두 마리를 추격하려던 천성준은 그가 훼방을 놓자 짜증을 냈다.
“이건 고블린의 함정입니다. 10분이 다 되어 가니 철수하죠.”
“놈들을 그냥 보내 주라고요?”
“예. 규정을 어기면 탈락입니다.”
천성준은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심장이 쿵쿵대며 거세게 펌프질을 해댄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날 무시해?’
정상적인 사고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힘에 취해서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말았다.
천성준은 등을 보인 교관에게 슬쩍 다가갔다. 입으로는 수긍하는 척하며 손에 마력을 모았다.
“…알겠습니다.”
“젊은 혈기에 일을 그르치면 안 됩니다. 던전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나도 알아!”
“끄으윽?”
파지직!
교관의 목덜미를 붙잡고 감전시켰다. 설마 자길 공격할 줄은 몰랐는지 대응이 늦었다.
그 작은 방심이 승패를 갈랐다.
파지지직!
임정섭은 쓰러진 교관과 천성준을 번갈아 쳐다봤다.
“서, 성준아?”
“쫄지 마. 안 죽였어. 그냥 기절한 거야.”
“왜 그랬어!”
“아이, 시팔. 교관 새끼가 자꾸 꼴 받게 하잖아!”
“아, 아무리 그래도…….”
교관을 기습해 기절까지 시켰으니 그냥은 안 끝날 거다. 합격은 고사하고 징계를 받게 되겠지.
임정섭은 저 새끼가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싶었다. 원래부터 자기 능력만 믿고 막 나가던 놈인데 오늘은 유독 심했다.
‘눈은 뭐 저렇게 충혈됐어? 악마가 따로 없네.’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간 자신도 교관처럼 새카맣게 구워질 거다.
임정섭은 침을 꼴깍 삼키며 눈치만 살폈다.
“이, 이제 어쩌지?”
“어쩌긴. 고블린들 마저 잡아야지. 그 새끼들 잡히기만 하면…….”
따악-!
작은 돌멩이가 천성준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는 확 돌아보며 범인을 찾았다.
아까 도망쳤던 고블린들이다. 그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저 새끼들이 돌았나!!”
“서, 성준아! 같이 가!”
임정섭은 혼자 달려가는 천성준을 쫓아갔다. 그는 무거운 방패를 메고 있어 조금씩 뒤처지다 결국 놓치고 말았다.
“헥, 헥…….”
임정섭은 지쳐서 잠시 멈췄다. 잠시 숨 좀 돌리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어?”
고블린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어림잡아도 스물 가까이 되어 보인다. 그는 벌벌 떨며 방패를 꺼내 들었다.
‘서, 성준이 이 새낀 나만 내버려 두고 어디까지 간 거야!’
함정. 임정섭은 교관이 말했던 게 떠올랐다. 어서 도망쳐야 한다.
‘교관. 그래, 교관을 깨워서 어떻게든…….’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 고블린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놈들은 괴성을 지르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패로는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
“끄아아악!”
* * *
“저, 저기 교관님이 쓰러져 있어요!”
“쯧. 딱 보니까 천성준한테 당했네요. 일어나세요, 교관님.”
“으윽!”
교관은 감전됐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는 머릴 흔들며 일어났다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질문했다.
“천성준과 임정섭은 지금 어딨습니까?”
“그건 저희도 모르죠. 고블린을 쫓아갔지 않을까요?”
“이런 씨……!”
교관은 비틀대며 일어났다. 전부 자기가 방심해서 벌어진 실책이다.
고블린들의 함정에 걸렸으니 그 둘도 무사치 못할 터.
“천성준 그놈이 교관님을 공격했습니까?”
“…예. 눈이 정상은 아니긴 했는데, 설마 절 공격할 줄 몰랐습니다.”
“설마 그 사람 눈이 붉어졌어요?”
“예, 심하게 충혈됐더군요. 다치기라도 한 건지…….”
“죄, 죄송해요! 전부 저 때문이에요.”
“민아 씨가 왜 사과합니까? 다 천성준 그 자식 업보인데.”
눈이 충혈됐다는 교관의 말에 서민아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난 그녀한테 팩트를 짚어 줬다. 그러자 그녀는 고갤 저으며 추가로 설명했다.
“눈이 붉어진 건 버프의 부작용이에요.”
“버프? 버서커인가 뭔가 그거요?”
“…예. 제 버프에 걸리면 감정이 앞서거든요. 그래서 천성준이 교관님을 공격한 거겠죠.”
그녀가 뭐라 경고해 주기도 전에 멋대로 뛰쳐나갔었지. 그것도 전부 버프의 영향이었구나.
난 트럭에만 버프가 걸려서 그런 줄 몰랐다.
“민아 씨가 불합격한 것도 그 버프의 부작용 때문이에요?”
“네. 제 버프로 팀원들이 다른 사람들이랑 싸우는 바람에…….”
버프의 효과는 뛰어나지만, 부작용이 팀마저 붕괴시킨다.
‘확실히 개선할 필요가 있어.’
“교관님, 그 자식들 어쩔 겁니까?”
“당연히 구해야 합니다. 두 분은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협회에 신고해 주시겠습니까?”
“민아 씨, 혼자서 게이트까지 가실 수 있죠?”
“네?”
내 말에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쳐다봤다. 교관도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다.
“수현 씨, 너무 위험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구출할 테니…….”
“교관님 혼자 뭘 어쩌시려고요? 몸도 성치 않으신데. 타세요. 녀석들이 있는 곳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퉁퉁.
나는 트럭을 두들기며 말했다. 교관은 어쩔 수 없이 내 말대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는 감전의 후유증으로 몸이 무거워 보인다.
“안전띠 딱 매시고.”
“아, 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차로 몬스터를 칠 텐데.
찰칵.
안전띠를 매자 경쾌한 팡파르 소리가 울렸다.
[축하합니다! 보조 무기, ‘전 7급 헌터 강현석’을 획득했습니다!] [무기에 탐지 옵션이 추가됩니다.]“…흐읍?”
강현석은 당황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몸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 이게 뭐죠! 몸이 꿈쩍도 안 하는데, 저주입니까?”
“아, 놀라지 마세요. 제 능력이니까. 조수석에 능력자가 탑승하면 트럭이 강화돼요.”
“예?”
나는 내비게이션을 실행했다. 그러자 던전의 지도가 표시됐다.
붉은 점과 푸른 점. 몬스터들의 위치와 다른 능력자들의 위치.
“능력자의 역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움직일 수 있나 보네요. 보통은 꼼짝도 못 하던데.”
“…그래서 트럭은 뭐가 바뀐 겁니까?”
“교관님, 탐지 능력이 있으셨군요.”
나는 경로 설정을 마치고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목표는 붉은 점들에게 완전히 포위된 푸른 점.
“둘 다 붙잡혀서 마을에 끌려간 모양인데요?”
“젠장! 고블린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몬스터라 위험합니다.”
“시간 끌면 얘네들 죽겠죠?”
“예, 협회가 빨리 지원 병력을 보내 줘야 할 텐데…….”
강현석은 주먹을 쥐고 싶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입을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그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그럼 저희가 시간이라도 벌어야겠네요?”
“…생판 남을 위해 목숨을 거실 수 있습니까?”
“그럴 리가요. 제가 무슨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도 아니고.”
부우웅!
나는 대답과 함께 힘껏 액셀을 밟았다. 트럭에 남은 기름은 3할 정도.
내구도와는 별개로 한 마리를 칠 때마다 기름이 팍팍 깎여 나간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적군은 거의 세 자릿수에 육박했다.
“오늘 아침에 협회에 보고는 했거든요.”
“뭘 말입니까?”
“제 새로운 능력이요.”
“…새로운 능력?”
강현석은 멍한 눈으로 내 말을 따라 말했다. 수습 헌터가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다니.
“그럼 오늘 늦은 것도 설마?”
“예, 위력 테스트를 해야 한다며 협회 사람들이 보내 주질 않던데요? 실습 시험 끝나고 다시 오겠다고 말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길이 꽉 막혔다.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다.
‘그땐 진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늦게 도착해서 시험도 못 치를 뻔했다. 자기들이 대신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원리 원칙만 들먹이고.
“수현 씨, 새로 얻은 능력이 뭡니까?”
“10만 볼트.”
“…예?”
“가서 보여 드릴게요.”
끼이익!
타이어의 마찰음과 함께 트럭은 수풀을 싹 밀어 버렸다. 목적지를 향해 그저 직진한다.
붉은 점들 근처로 도착하자 커다란 목책이 보였다. 저게 고블린들이 세운 마을이구나.
“어쭈. 나무로 성벽을 세웠네요?”
“예, 고블린들은 생각보다 제법 똑똑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놈들도 있죠.”
“특별한 놈들이요?”
“돌연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술이나 육체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놈들이 종종 있죠. 그러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돌연변이라…….”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목책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옆에서 당황하며 소릴 질렀다.
“수현 씨! 머, 멈추세요! 뭐 하시는……!”
쿠웅-!
난 트럭으로 목책을 들이받았다. 그러자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며 확 기울었다.
트럭의 내구도가 1 감소했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난 씨익 웃으며 경적을 마구 울렸다.
“키익?”
“키에엑!”
경적에 마을 안에 있던 고블린들의 어그로가 확 끌렸다. 놈들은 연장을 챙기고서 트럭을 포위했다.
“그 녀석들은 안쪽에 있네요.”
끼익!
너희들이 포위하면 뭐 어쩔 건데. 그냥 돌파해 주마. 나는 고블린들을 쳐 버리고 쭉 직진했다.
‘이 붉은 점은 다른 것보다 유독 진한데, 돌연변이려나?’
어지간한 던전에는 보스 몬스터라 불리는 놈들이 있다. 아마도 여기 대장이겠지.
“아, 저기 있네요.”
나무 꼬챙이에 매달린 천성준과 임정섭이 보였다.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처럼 팔다리가 꽁꽁 묶여 있었다.
“사, 살려 줘요!”
“살려 주세요!”
천성준과 임정섭은 트럭의 등장에 반색하며 소릴 질러 댔다.
그 밑에서 불을 피우던 고블린들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막사 안에서 커다란 고블린이 나왔다.
“크륵! 뭐냐. 인간의 마차인가?”
“뭐야, 얜 말도 하네?”
“감히 내 마을에 들어오다니. 저놈을 당장 끌어내라!”
고블린 대장이 곡도를 휘두르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나는 기어를 올리고서 페달을 밟았다.
트럭을 향해 달려들던 고블린들이 치이며 날아갔다.
“크륵? 이런 건방진 놈이…….”
고블린 대장은 돌진해 오는 트럭을 피하지 않고 곡도를 휘둘렀다.
쿠르릉!
그러자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낙뢰가 트럭 위로 쾅 하고 떨어졌다.
[무기의 내구도가 0이 됩니다.]파앗!
트럭은 벼락의 충격에 먼지로 변하며 소멸했다. 안에 타 있던 이수현과 강현석이 바닥을 굴렀다.
고블린 대장이 숨을 훅 뱉으며 쩌렁쩌렁 소리쳤다.
“인간 놈들… 신의 분노를 맛봐라!”
“에이, 씨. 트럭 내구도가 벌써 다 됐네.”
“아니, 수현 씨가 너무 험하게 몰았잖아요. 목책도 다 부수고…….”
“하긴. 그것도 그래요. 교관님은 저 녀석들부터 구해 주세요.”
“그럼 수현 씨는요?”
“트럭의 복수를 해 줘야죠.”
나는 보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번개 쓰는 고블린이라니. 괜히 대장 자릴 꿰찬 게 아니네.
“방금 번개를 막 쏘던데, 특별 고압 전기 취급 교육은 받았냐?”
“크륵? 교육?”
“그럼 관련 자격증은?”
“자격? 그게 뭐냐.”
“아무것도 없으면 법적 처벌 받아야지. 시작은 가볍게 1만 볼트.”
“……!”
파지직!
나는 손가락으로 1만 볼트를 발사했다. 보스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안전 수칙은 지키라고.”
“…끼에엑!!”
고블린 로드는 1만 볼트에 맞고 정신을 잃었다. 나는 손가락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카우보이같이 훅 불었다.
“겉은 바삭해지고 안은 촉촉해졌네.”
꿈틀꿈틀.
놀랍게도 고블린 로드는 죽지 않았다. 이따금 움찔대며 경련을 일으켰다. 1만 볼트에 감전됐는데도 살아남다니.
‘벼락을 다뤘었지. 그럼 전기 내성이 있는 건가?’
나는 기절한 고블린의 뺨을 후려쳤다. 몇 번 따귀를 때리자 녀석이 가물거리는 얼굴로 정신을 차렸다.
“…키엑!”
“일어났냐?”
“이, 인간 놈이 어떻게 신의 힘을 다루는 거냐!”
“신은 개뿔.”
고블린 로드는 허둥지둥 일어나 거리를 벌렸다. 난 녀석한테 궁금한 것부터 물어봤다.
“근데 너 그거 맞고 어떻게 살았냐? 분명 제대로 맞췄는데.”
1만 볼트의 위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한 건가. 아니면 저 녀석이 특별한 걸까.
“키익! 마력도 없는 가짜 힘에 죽겠냐!”
“마력?”
그렇구나. 고블린의 지적에 내 머릿속의 안개가 싹 걷혔다.
내가 방금 쏜 건 마력이 없는 평범한 고압 전류였다. 그래서 저 녀석은 마력 장벽으로 용케 버텼던 거다.
‘등급 높은 헌터들은 포탄에 맞아도 멀쩡하다니까. 이것도 당연한 결과지.’
“진정한 신의 분노가 뭔지 보여 주마!”
놈은 양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고 만세를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뭐야, 맨손이잖아. 곡도에 담긴 능력이 아니었어?’
고블린이 진짜 천둥 마법을 부리는 건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동시에 번쩍하며 낙뢰가 떨어졌다.
콰르릉! 파지지직!
이수현의 몸에 벼락이 정통으로 꽂혔다.
고블린 로드는 사악하게 웃으며 감전된 이수현을 노려봤다.
“가짜 놈. 꼴좋다!”
“…크흡!”
이수현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다른 생명체라면 진즉 죽었어야 정상인데.
이수현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주, 죽지 않아? 어떻게 신의 분노를 맞고도 멀쩡하지?”
“꺼억!”
이수현의 입에서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배부르단 얼굴로 트림했다.
그러자 고블린 로드가 경악한 얼굴로 삿대질을 했다.
“키익! 당장 말해라! 너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냐!”
“난 너랑 달리 전기 관련 자격증이 있거든.”
“…자격이라고? 웃기지 마라. 네놈에겐 신물이 없다!”
“신물?”
고블린 로드는 바락바락 소릴 질렀다. 나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귀만 후볐다. 그러자 녀석이 다시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저 반지는 뭐지?’
녀석이 끼고 있던 반지가 순간 반짝였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블린 로드가 당황해서 계속 손을 뻗었다.
“내려쳐라! 얼른 내려쳐!”
“네 능력이 아니라 그 반지의 능력이었구나?”
“……!”
파지직!
나는 흡수했던 벼락의 전력을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위협적인 스파크 소리에 녀석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며, 몇 번을 쏴도 소용없다. 그딴 가짜 힘으로는 날 죽일 수 없어!”
“10만 볼트.”
콰아앙-!
아까 쐈던 건 이번 공격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벼락을 흡수한 덕분에 전력은 충분했다.
푸른 전격이 순식간에 고블린 로드를 덮쳤다.
“갸아아아악!”
놈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수십 미터나 튕겨 날아갔다. 전신이 시커멓게 타서 숯처럼 변했다. 이번엔 진짜로 죽었다.
“내 마력을 담아서 쏠 수 없으면, 마력이 담긴 전격을 흡수하면 되지.”
나는 녀석의 손가락에서 은색 반지를 빼냈다. 그러자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알림이 들렸다.
‘어디 보자.’
나는 아이템 설명을 쭉 읽어 봤다.
[천둥 군주의 반지] [등급: 에픽]– 착용하면 벼락 마법을 하루 세 번 쓸 수 있는 반지.
일반적인 벼락의 전압은 10억 볼트. 나에겐 완벽한 보조 배터리였다.
‘이게 웬 떡이냐. 위급할 때 이걸로 충전하면 되겠네. 고블린이 어디서 이런 귀한 물건을 구했지?’
“수현 씨! 괜찮습니까?”
“예?”
“벼락에 정통으로 맞았잖아요!”
강현석 교관은 그새 주변의 고블린들을 해치우고 인질을 무사히 구출했다.
천성준과 임정섭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녀석들에게 목소릴 팍 깔고서 따졌다.
“야, 너희들. 목숨 구해 준 사람한테 고맙단 말도 못 하냐?”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
임정섭은 허겁지겁 대답했지만 천성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꼴에 자존심 부린다 이거지?
“교관님, 일단 여기서 탈출하죠. 곧 고블린들이 몰려올 겁니다.”
“아, 예. 모두 제 뒤에 꼭 붙어서 따라오세요.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예?”
나는 설명 대신 손을 뻗어 능력을 발동했다. 대형 면허를 따고서 얻은 새로운 스킬인데, 직접 몰아 본 적 있는 차량 한정으로 일정 시간 동안 구현할 수 있다.
‘하루에 딱 한 번에다 한 시간이지만, 유용한 능력이지.’
면허 시험장에서 몰았었던 버스를 상상하며 소환했다.
스킬로 구현된 거라 실제보다는 내구도가 약하지만, 고블린의 상대로는 충분하지.
“…갑자기 버스가?”
“수현 씨, 차를 소환할 수 있었습니까?”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일단 타세요. 마을 안에 고블린이 수십 마리는 될 테니까.”
강현석 교관을 장착한 뒤로, 내비게이션은 차량의 기본 옵션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을 켜자 주변 적들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마을의 고블린들이 이쪽으로 물밀 듯이 몰려오고 있다.
내가 재촉하자 모두 버스에 탑승했다.
[장비의 특수 효과가 발동됩니다.] [버스 이용 요금을 마력으로 징수합니다.] [1,200마력을 획득했습니다.] [1,200마력을 획득했습니다.] [1,000마력을 획득했습니다. 해당 대상에게선 마력을 더 징수할 수 없습니다.]“어, 뭐야?”
“크윽!?”
“정섭 씨, 괜찮습니까?”
“가, 감사합니다.”
천성준은 비틀거리다 겨우 자리에 앉았고 임정섭은 넘어질 뻔했다.
옆에 있던 강현석 교관이 그를 붙잡고서 자리에 앉혔다.
임정섭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겨우 감사 인사를 했다.
‘내 마력이 갑자기 사라졌어. 저들도 비틀대는 걸 보니 마찬가지인가.’
강현석 교관은 운전석 쪽을 바라보며 이변을 눈치챘다.
그의 몸에서 상당량의 마력이 빨려 나갔다. 거기에다 천성준과 임정섭도 마력을 빼앗긴 모양이다.
어지럼증과 함께 비틀대는 건 마력 고갈 현상의 대표적인 예니까. 강현석은 혹독한 교관 훈련을 받아 왔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견습 헌터들에겐 아직 짐이 무거웠나 보다.
“저, 속이 이상해요…….”
“웁! 웨엑!”
“야, 토할 거면 창문 밖으로 뱉어.”
“예, 옙! 우욱……!”
특히 임정섭은 남아 있던 모든 마력을 빼앗겨서 구토까지 했다. 핸들을 돌려 버스의 방향을 바꾸던 이수현이 다급히 소리쳤다.
‘버스에 능력자를 태우니 마력을 뜯을 수 있네? 진짜 개꿀이다.’
갑자기 몸에서 힘이 넘쳤다. 징수한 마력이 내 몸으로 흘러들어 온 것이다.
마력의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러니 맨손으로 총알도 튕겨 내지.
꽈악!
핸들을 쥔 손에 푸른 기운이 모여들었다. 저들에게서 받은 마력이었다.
스스로 마력을 생성할 수 없지만, 남에게서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좀 어엿한 헌터가 된 기분이네.’
내가 능력자가 됐다는 게 확 실감이 됐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느낌.
나도 애처럼 이렇게 들뜨는데, 나보다 어린 학생들은 더했겠지.
백미러로 천성준을 흘끔 쳐다봤다. 녀석은 자존심이 다 구겨져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했다.
“키에엑!”
“캬악!”
고블린들은 저들끼리 뭐라 꽥꽥대며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버스 기사는 망설임 없이 페달을 밟았다.
“비켜.”
뻐어엉-!
끼어들었던 고블린들은 그대로 밀어 버렸다. 소리는 되게 요란했지만, 버스에 흔들림이 없었다.
“와, 씨. 개쩐다.”
“…야, 임정섭. 좀 닥쳐.”
“미, 미안…….”
임정섭은 고블린들을 날려 버린 마을버스의 위력에 감탄했다. 그러자 천성준이 좀 닥치라고 했다.
그걸 본 강현석 교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천성준 그리고 임정섭 씨, 두 분은 탈락입니다.”
“…뭐라고요?”
“이유까지 설명해 줍니까?”
고블린의 유인책에 걸리고 교관까지 공격했다. 이건 탈락이 문제가 아니라 징계감이었다.
“제가 협회에 보고하면 두 분은 수습 헌터 자격을 박탈당할 겁니다. 헌터와 불법 각성자의 차이점은 아십니까?”
“…헌터는 동료를 배신하지 않는다.”
천성준은 첫 번째 교육 시간에 배웠던 걸 그대로 읊었다. 분한 마음에 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그게. 교관님, 성준이가 그땐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변명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서민아 씨가 걸어 준 버프 때문에 이성을 잃었겠죠.”
“…그 꼽사리가 뭐가 어쨌다고요?”
버서커 버프의 효과를 몰랐던 천성준이 바로 반응했다. 강현석은 그녀의 버프에 대해 전부 털어놓았다.
그러자 임정섭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어쩐지! 저희가 솔직히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거든요?”
“그래, 전부 그 여자 때문이야!”
“아뇨, 이건 전부 당신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강현석은 천성준의 말을 끊고서 반박했다.
“민아 씨는 당신들에게 버프의 부작용을 경고하려 했어요. 그녀를 무시하고 멋대로 추격한 건 여러분들의 판단이죠.”
“…….”
“게다가 같은 팀원을 노골적으로 무시했죠. 자기 힘만 믿고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고요.”
“그 망할 버프만 아니었으면 탈진할 일도 없었어!”
천성준은 너무 억울했다. 버서커의 효과로 고블린들을 추격하는데 체력이 동나 버렸다.
그의 전기 능력은 마력뿐만 아니라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탈진한 상태에서 능력이 나오지 않자 순간 당황했고, 그건 패배로 이어졌다.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여 매질을 당한 뒤, 마을로 끌려갔다. 눈을 떠 보니 임정섭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실전에서도 적에게 그런 변명을 늘어놓을 겁니까?”
“……!”
“천성준 씨, 정신 좀 차리십시오. 그딴 마음가짐으로 임할 거면 헌터를 포기하세요. 그런 식이면 금방 죽을 테니까.”
“뭐, 뭐라고!”
“교관님, 애들한테 너무 엄격한 거 아니십니까?”
한창 운전하던 이수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애들이니까 이러는 겁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선 그게 죽음으로 직결됩니다.”
“나보고 헌터를 포기하라고? 닥쳐!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임정섭은 한숨을 푹 쉬며 천성준을 쳐다봤다. 교관이 천성준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도전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연 팔이 할 거면 그냥 내려. 너만 힘들게 살아온 줄 아냐?”
“뭐?”
“너보다 더 간절한 사람은 대놓고 무시했으면서, 자기 얘기는 들어 달라고? 뻔뻔한 것도 적당히 해야지.”
“너……!”
이수현이 딱 꼬집어 말하자 천성준은 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교관과 임정섭이 그를 말렸다. 운전하는 이수현은 무방비 상태.
그가 능력이라도 썼다간 버스가 뒤집힐 거다.
“그냥 놔두세요.”
“하지만…….”
“어차피 저 못 때려요. 때리려고 하면 바로 버스에서 추방되니까.”
이수현은 태평하게 자신의 능력을 밝혔다. 이 안에서 그는 버스 기사이자 갑이었다.
아무리 강한 능력자라도 여기선 승객일 뿐.
[게이트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실 분은 하차 버튼을 눌러 주세요.]기계음이 정거장 앞에 도착했다고 알려 줬다. 창문 밖으로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강현석 교관! 무사하셨군요.”
연락을 받고 도착한 협회의 교관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교관은 버스 안에 앉아 있던 천성준과 임정섭을 보더니, 안도했다.
“휴, 너희들 무사했구나. 혹시라도 잘못됐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교관님…….”
그들을 조기 수료자로 추천해 준 교관이었다. 강현석 교관은 그가 누군지 확인하고선 바로 납득했다.
‘차범석 교관, 기회주의자라고 들었는데. 임정식 헌터가 저 남자한테 접촉했구나.’
그를 직접적으로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강현석보다 그의 교관 경력이 더 길었으니까.
그때였다. 운전석에서 이수현이 차범석 교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애들 가르친 교관, 본인 맞습니까?”
“예, 제가 맞는데… 당신은 뭡니까?”
“그럼 조기 수료자 추천도 그쪽이 했겠네요?”
“수현 씨, 잠깐만……!”
강현석이 뭐라 말리기도 전에 이수현은 당당히 말했다.
“야, 추천장 써 줄 거면 똑바로 좀 가르쳐서 보내. 쟤들 때문에 트럭이 날아갔다고!”
“뭐라고? 너 이 새끼, 이름 뭐야!”
“나한테 따지고 싶으면 올라와서 말해.”
“오냐, 딱 보니까 수습 헌터 같은데. 교관한테 입을 털어?”
차범석이 성질을 내며 버스에 올라갔다.
[1,200마력을 획득했습니다.]차범석이 버스에 올라타자 양질의 마력이 나의 몸에 깃들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내 멱살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아까 한 말 다시 지껄여 봐. 내 교육이 뭐가 어째?”
“당신이 엿같이 가르친 덕분에 우리 다 죽을 뻔했다고.”
“이, 개새끼가……!”
차범석 교관이 내 말에 부들대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한 대 후려칠 기세다.
‘다른 교관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주먹을 휘두를 순 없겠지.’
협회의 교관은 수습 헌터한테나 갑질할 수 있는 직위다. 그러니 정식 헌터에겐 한 끗발 밀린다는 소리.
“미안한데, 나 오늘 합격했거든? 교관이 정식 헌터한테 손찌검해도 괜찮겠어?”
“…하, 합격했다고?”
내 말에 녀석도 이성이 슬금슬금 돌아왔다. 헌터 협회는 유명 길드한테 헌터를 다 뺏기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 와중에 협회의 교관이 헌터에게 무례한 짓을 했다고 알려지면 후폭풍이 찾아올 거다.
나는 차범석의 멱살잡이를 가볍게 뿌리쳤다.
“교관님, 저 합격한 거 맞죠?”
“예, 이수현 팀은 전원 합격입니다. 천성준 팀은 전원 불합격이고요.”
“부, 불합격이라고?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저 애들이 얼마나 우수한데…….”
차범석은 말도 안 된다며 강현석에게 따졌다. 난 그에게 사실을 얘기해 줬다.
“욱해서 교관까지 공격한 놈인데, 뭘 그리 포장해. 무조건 탈락이지.”
“뭐라고? 너희들, 그게 사실이니?”
천성준의 만행에 차범석은 대체 왜 그랬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둘은 고개를 팍 숙였다.
천성준과 임정섭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X됐다. 임정식 헌터한테 뭐라고 말하지?’
다른 시험은 못 쳐도 괜찮다. 따로 기록이 남지 않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실습 시험은 몇 번 만에 합격했는지 기록한다.
길드 가입할 때도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니 되도록 한 번에 붙어야 좋았다.
그래서 임정식 헌터가 자기한테 돈까지 찔러 줬는데… 그걸 저들끼리 말아먹었으니.
‘씨발. 망했다.’
차범석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임정식 성격상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터.
뭔가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수현이 보였다.
순간 아이디어가 번뜩이며 음흉한 계획이 떠올랐다.
* * *
“제, 제가 합격이요? 정말요?”
“예,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민아 헌터님.”
“가, 감사합니다! 꺅! 너무 좋아!”
서민아는 게이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강현석 교관은 그녀에게 합격했다고 알려 줬다. 소심하던 모습은 다 내던지고 소릴 빽 질렀다.
임정섭은 부럽단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다 한숨을 뱉었다.
“나 떨어진 거 형이 알면 큰일 날 텐데…….”
“…미안하다.”
“어? 뭐라고?”
“미안하다고! 나 때문에 너까지 떨어져서.”
천성준이 먼저 사과했다. 그러자 임정섭은 눈을 끔뻑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세상에.
저 싸가지가 나한테 먼저 사과를 하다니…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려나.
“네가 웬일이냐? 나한테 사과를 다 하고.”
“뭐, 뭐가!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거든?”
천성준은 부끄러워서 버럭 성질을 냈다. 그러자 임정섭이 킬킬대며 자기 배를 잡았다.
“야, 너희들. 다친 곳 없냐?”
“어, 없습니다!”
“…없어요.”
“그건 다행이네.”
이수현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임정섭은 잔뜩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다. 천성준은 쪽팔려서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저 놀리려고 왔습니까?”
“아니, 민아 씨가 왜 합격했는지 모르는 눈치길래.”
“…….”
솔직히 탈락자가 타인의 합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추했다. 그래서 천성준은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솔직히 수현 형님이랑 같은 팀이라서 붙은 거 아닙니까?”
“야, 임정섭.”
“아, 왜. 솔직히 내 말 맞잖아?”
“…….”
천성준은 임정섭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솔직히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이수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쯧쯧. 그런 마인드면 너희 또 떨어질걸?”
“예?”
“…다음엔 무조건 합격할 겁니다.”
“교관을 공격했으니 징계부터 받아야지.”
천성준은 징계라는 말에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당장 헌터가 되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임정섭이 자존심 다 버리고서 굽신댔다.
“저, 수현 형님.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봐 달라니. 뭔 소리야?”
“성준이도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잖습니까. 크든 작든 징계를 받으면 교육 과정을 처음부터 받아야 하는데…….”
“야, 임정섭.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네가 왜 굽신대? 잘못은 내가 했어. 책임도 내가 질 거야.”
“야, 자존심 좀 굽히고 살아, 인마! 지금 고집부릴 때야?”
“너희 지금 우정 테스트하냐? 사과는 나 말고 교관님이랑 민아 씨한테나 해.”
이수현의 지적에 둘은 뜨끔한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천성준은 그들에게 다가가려던 중, 고갤 돌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유가 뭡니까?”
“뭔 이유.”
“서민아가 붙은 이유요.”
“간단해. 버프의 효과는 확실했잖아? 너희들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해서 나대다 뻘짓한 거지. 남 탓만 하지 말고 본인의 부족함부터 고쳐. 불평은 그 뒤에 해.”
“…….”
그 한마디에 바로 납득했다. 천성준은 교관과 서민아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허리까지 숙여 가며 정중히 사과했다. 강현석과 서민아는 웃으며 그의 사과를 받아 줬다.
* * *
“수현 씨, 합격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트럭 망가진 것도 대신 수습해 주시고…….”
“사람의 목숨을 구하셨는데, 차 한 대면 싼 편이죠.”
중고로도 천만 원은 족히 한다고 들었는데, 협회에선 트럭의 소멸에 대해 어떠한 배상도 청구하지 않았다.
이수현이 던전의 보스를 죽이고 멀쩡히 돌아왔으니까. 사망자라도 나왔으면 협회 측에서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던전의 고블린 로드는 돌연변이였다지.’
유근혁 교관은 이수현에게 차를 권하며 눈치를 살폈다. 본론으로 들어갈 타이밍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날, 시험에 지각할 뻔했다면서요?”
“어휴, 말도 마세요. 여기 사람들, 어찌나 말이 안 통하던지. 시험에 늦는다고 말했는데도 꾸역꾸역 능력 테스트를 진행하더라니까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수현이 답답하단 얼굴로 자기 가슴을 팍팍 쳐댔다. 그러자 유근혁이 그를 어르고 달랬다.
“그, 새로 얻은 능력 말입니다.”
“아, 이거요?”
파지직!
이수현이 손가락에 보여 주기식 전격을 생성했다. 전기는 속성 마력 중에서도 상당히 희귀한 마력이었다.
그걸 본 유근혁이 감탄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제가 본 전기 계열 능력자만 셋이네요.”
“네? 저랑 천성준 말고도 더 있습니까?”
“예, 작년에 합격하신 분인데…….”
유근혁은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해 보여 줬다. 양궁 선수와 같은 복장을 한 고등학생이었다.
“…누구죠?”
“모르십니까? 나예린 헌터인데, 양궁 협회에서 알아주던 유망주였죠.”
“선수였습니까?”
“예, 청소년 대표였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능력을 각성한 바람에…….”
“저런.”
능력을 각성하면 스포츠 선수로 절대 활동할 수 없다.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양궁 선수가 되겠다던 꿈을 접고 그녀는 헌터가 되었다.
“수현 씨, 새로 얻은 전격 능력. 제대로 다루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요. 고블린 로드도 전기 통구이로 만들었는데.”
“음, 천성준 수습 헌터는 작년 초에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연습했죠.”
“뭐 그리 오래 걸렸답니까?”
“그만큼 전기 능력은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1년 만에 완벽히 다루는 것도 실은 대단한 거죠.”
천성준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천재였다. 그는 미성년자였지만, 능력이 너무 위험한지라 고위험 각성자로 분류됐다.
“나예린 헌터는 그걸 석 달 만에 해냈습니다. 전 세계를 뒤져 봐도 드문 케이스입니다. 천재를 넘어선 천재죠.”
“아, 예. 이걸 저한테 말해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고위험 각성자로 선정된 사람들은 협회에서 철저히 관리합니다. 천성준 수습 헌터도 교육 기관 안에서 1년을 생활했죠.”
얼마 전, 천성준은 순순히 징계를 받았다.
그는 스스로 강현석 교관을 공격했던 걸 인정했고, 한 달의 재교육 및 사회봉사 활동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사상자가 없었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심한 처벌은 피했다나. 그래서 아직도 수습 헌터였다.
“그럼 저도 그 녀석처럼 고위험 각성자니까…….”
“예, 원칙적으로는 능력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교육 기관의 감시 대상입니다.”
“그럼 헌터 자격도 취소됩니까?”
“취소는 아니고 보류됩니다. 전기 능력은 특히나 살상력이 뛰어나서…….”
“저 전기 잘 다룹니다! 관련 자격증도 있습니다!”
“물론 전 수현 씨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건 별개입니다. 최소 몇 달은 걸리겠죠.”
“하…….”
이제야 돈 좀 벌어 보나 싶었는데. 이수현은 그의 설명에 시무룩해졌다.
그러자 유근혁이 넌지시 본론을 꺼냈다.
“수현 씨가 헌터로 활동할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요?”
“수현 씨의 능력이 마침 전기 계열이라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죠.”
그는 아까 보여 줬던 나예린 헌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수현은 고갤 갸웃하며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나예린 헌터는 이미 나라의 인정을 받은 고위험 각성자입니다. 나라의 허가가 나올 때까지 그녀한테서 능력 컨트롤을 배우는 거죠.”
“학생의 제자가 되라고요?”
“그렇게까지 딱딱한 관계는 아닙니다. 그녀는 협회 소속의 헌터로 활동 중인데, 공략대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와, 아직 고등학생 아니에요?”
“예, 실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나이도 어린데 공략대를 이끌다니. 얼마나 엘리트인 거야.
이수현이 감탄하며 그렇게 말하자 유근혁은 머릴 긁적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나예린 팀장이 이끄는 7팀 소속의 헌터들이 다른 길드와 대거 계약했거든요.”
“협회에서 다른 길드로 이적하는 건 비일비재하잖아요?”
“이적은 어쩔 수 없지만, 공략대의 최소 인원은 꼭 채워야 해서요.”
“그렇군요. 이번 달에 팀원이 확 빠졌나 보네요?”
“예, 뭐. 비슷합니다.”
공략대의 최소 인원은 셋. 아무리 강한 헌터라도 게이트에 들어가려면 그 인원을 채워야 한다.
‘던전에 들어가려면 팀원 하나가 급히 필요한 상황이란 거군.’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나예린 헌터와 함께 행동한다고 약속해 주시면, 수현 씨의 헌터 활동도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로 협회에 인력이 없어요?”
“저희는 수현 씨의 가능성을 본 겁니다. 평범한 분이었으면 이런 제안은 드리지도 않았죠.”
이수현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대로는 뭔가 부족하다.
‘지금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건 자격증이야. 최대한 많은 스킬로 바꿔야 해.’
정확히는 각종 자격증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권한.
특정 스킬을 얻으려면 공부를 해서 자격증이나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상위 자격증을 따려면 실무 경력이 필요해.’
심지어 몇 달도 아니고 몇 년이나 필요하다. 그런 제약 때문에 그가 딸 수 있는 자격증은 많지 않았다.
“좋습니다. 협회랑 계약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기간은 우선 석 달 정도로…….”
“그냥 전속 계약합시다.”
“…네?”
헌터의 전속 계약은 법으로 금지된 조항이다. 물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편법이지만, 계약 기간이 지날 때마다 새로 계약을 하면 되니까. 실제로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렇게 계약을 연장했다.
“그럼 협회에 계속 남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예. 특별한 일 없으면요.”
“하지만 그럴 이유가…….”
“물론 제가 협회에 요구할 조건이 몇 개 있습니다.”
“그렇군요.”
유근혁은 당연히 그럴 거라 여겼다. 이수현 정도면 대형 길드도 노려 볼 법했다.
그런데도 협회랑 계속 계약하겠다니. 그도 뭔가 노리는 게 있겠지.
유근혁은 계약서를 내밀며 천천히 조항을 설명했다.
“협회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모든 세금의 면제입니다. 그리고 가족분들의 안위는 나라에서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설령 수현 씨가 던전에서 사망하더라도 말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해 주세요.”
“어떤 조건입니까?”
“모든 자격증 시험. 저만 어떤 제약 조건 없이 무조건, 혼자 따로 칠 수 있게 배려해 주세요.”
“예? 자격증이요?”
“네. 대부분의 자격증들은 응시하는 데 경력을 요구하잖아요? 그걸 없는 걸로 해 주세요. 다른 곳도 아니고, 국가 직속 단체인 협회라면 그 정돈 충분히 가능하겠죠?”
“그렇긴 한데…….”
“아, 그리고 가르쳐 줄 강사진들도 제가 부탁하면 딱딱 준비해 주시고.”
전혀 예상치 못한 조건에 유근혁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가능합니다! 그런 거라면 협회에서 얼마든지 준비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