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39)
진흙 찐빵이 만들어낸 워터 슬라이드의 높이는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척 위험해 보였다.
커브 구간, 꽈배기 구간, 360도 구간이 있어서, 사용자가 튕겨 나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건우는 그것을 보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잠, 잠깐! 너무 위험…….”
“하와아!”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와가 워터 슬라이드에 몸을 맡겼다.
이슬 찐빵이 콸콸 쏟아내는 물길을 따라, 시원하게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리가 후들거릴 만한 상황이었지만, 하와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속도와 스릴을 즐겼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건우가 우려하던 상황에 봉착했다.
커브 구간을 미끄러져 내려가던 하와의 몸이, 코스를 이탈하며 허공을 날았던 것이다.
“안 돼!”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소리치는 건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와앙!”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이 하와에게 새로운 코스가 되어준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와를 원래의 코스로 돌려 보내주었다.
그 뒤로 하와는 꽈배기 구간을 지나서, 대각선으로 기울어진 360도 구간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그 사이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이 있어서, 하와가 코스를 이탈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풍덩!
“하와!”
마침내, 계곡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하와.
하와는 그곳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재밌다는 듯이 꺄르르 웃었다.
그 모습을 본 건우는 영혼이 가출했다가 돌아오는 기분을 느끼면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것이다.
‘다행이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동안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엘과 소아, 가온, 뀨뀽이, 빙닭, 돌쇠까지, 워터 슬라이드를 타고 차례대로 내려왔다.
다들 만족스러운지,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녀석들. 누구는 놀라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뒤늦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신비술사 조윤아가 그런 건우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짚었다.
“이건우 님. 괜찮으세요?”
“으응?”
건우가 그런 조윤아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일행도 전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들도, 건우 못지않게 놀라서 모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건우는 괜히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워터 슬라이드를 만든 것이 ‘위대한 존재’들인 만큼, 계약자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위대한 존재들은 저도 컨트롤하기가 어려워서…… 제가 이번 기회에 주의를 단단히 줄게요. 그리고 아이들한테 훈계도 좀 하고요.”
그렇게 일행 모두를 안심시킨 건우는, 다시 놀러 가라면서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진짜……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그는 그러면서 아이들이 있는 계곡물 쪽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공기 찐빵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다시 한번 다이나믹한 워터 슬라이드를 즐기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건우가 미간을 살짝 모았다.
‘그래. 지금은 열심히 놀아라. 끝나고 나서 보자.’
그렇게 생각한 그는, 그 상태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아이들이 워터 슬라이드에 질려서 그만둘 때까지.
* * *
계곡 물놀이를 끝낸 건우 일행은, 리무진 버스를 타고 묵계리로 향했다.
버스 안에는 하와와 아이들이 눈이 팅팅 불은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건우가 제대로 혼을 내서 펑펑 운 탓이었다.
‘이 정도 혼냈으면, 앞으로 위험한 놀이는 안 하겠지. 아니면 최소한 나한테 허락을 받던가…….’
그렇게 아이들을 혼낸 건우는, 네 찐빵들에게도 일주일 동안 소환 금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그 와중에 불꽃 찐빵이 자신은 다른 찐빵들을 말렸다면서 억울해했지만, 건우는 연대책임을 물어서 불꽃 찐빵에게도 같은 징계를 내렸다.
‘이렇게 연대책임을 물면, 앞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겠지.’
건우는 그리 생각하면서,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든 하와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주었다.
그 손길을 느낀 하와가 한 차례 움찔거리더니, 건우 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부모 노릇이 쉽지가 않아.’
건우는 그러면서,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났다.
하와와 아이들은 말을 아주 잘 듣는 아이들이었지만, 자신과 동생 이찬우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문뜩 떠올렸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우리를 어떻게 키우신 걸까? 분명, 많이 힘드셨겠지?’
건우는 자신이 부모님이었다면, 울화통이 터져서 화병으로 죽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부모님이 존경스러워졌다.
그러길 잠시, 그는 이찬우에 대해서 떠올렸다.
‘녀석은 뭐 하고 있으려나? 슬슬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그는 분명히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이찬우가 원망스러웠다.
집안이 기울어진 것이 이찬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뀐 상태였다.
‘찬우가 무모한 사업에 도전하게 된 건, 어떻게 보면 내 탓도 있어. 내가 막무가내로 초인이 되겠다고 집을 나선 걸, 보고 배웠을 수도 있으니까.’
건우는 그러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언제가, 이찬우가 돌아오면 잘 해주리라고 마음먹었다.
‘대신 부모님께는 죄송하다고 빌게 만들어야지.’
거기까지 생각한 건우는 좌석에 몸을 깊게 묻었다. 열심히 논 만큼,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이려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조윤아가 건우에게 슬쩍 다가왔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고생은 무슨…… 윤아가 아이들이랑 놀아주느라, 고생했지.”
“아뇨. 저는 전혀 안 힘들었어요. 오히려 즐거웠어요.”
“그러면 다행이고.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조윤아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EX급 뿔토끼 뿔은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으음, 도착하자마자?”
“도착하자마자요?”
“응. 뀨뀽이 뿔을 자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될까요? 뀨뀽이가 놀라거나 그러지 않을까요?”
조윤아는 그러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건우는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괜찮을 거야. 지난번에 자를 거라고 말해 두기도 했고, 뀨뀽이도 절각 작업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곧 있으면 더 멋있는 뿔이 자랄 거라고, 오히려 좋아할걸?”
그 말에 조윤아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두 사람은 그렇게 뿔토끼 뿔에 관한 이야기를 일단락했다.
하지만 곧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성장의 비약이 완성되면, 아버지랑 같이 찾아뵐게요.”
“아버지랑?”
“네. 안 그래도, 이건우 님 댁에 들르실 예정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맞춰서 같이 봐요.”
그 말에 건우는 얼마 전에 집사 폰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전에 폰 씨한테 들었어. 마침 근처에 오실 일이 있어서, 들르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아요. 일도 일인데, 평소에도 이건우 님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조윤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신화그룹의 회장 조현수가 평소에 얼마나 건우를 보고 싶어 했는지 설파하기 시작했다.
덤으로, 그간 건우가 이뤄낸 결과물들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도 신나서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듣던 건우는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회장님께서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니야?”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아버지는 꽤 냉철한 성격이라, 대부분 있는 그대로 평가하시거든요.”
“그래? 흐음.”
건우는 조윤아의 말에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회장님은 어떤 성격이셔?”
“아버지 성격이요?”
“응. 성격 같은 걸 알아 두면, 나중에 만나 뵐 때 실수를 조금이라도 덜 하지 않을까?”
그 말에, 조윤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리고 조현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성격은 냉철한 편이세요. 어떤 때 보면, 냉정하다는 생각도 좀 들고요.”
“꽤 이성적이시라는 말이지?”
“네. 상당히 이성적이세요. 어떤 면에서는 감정이 좀 무디신 것 같기도 하고요.”
그 말에 건우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괜히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기업 총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냉철한 사고방식이 아니었다면, 신화그룹 같은 거대한 기업을 이끌 수는 없었겠지.’
건우가 그렇게 조현수에 대한 이미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그려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조윤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척 열심히 일하세요. 마치 일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것처럼요. 아마 룩을 제외하면, 신화그룹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실 거예요.”
“아무래도 회장직이다 보니, 일이 많으신 건가?”
“확실히 그렇긴 하죠. 그래도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렸을 적에는 그런 모습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그녀는 그러면서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건우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괜한 걸 물은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윤아는 금세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렸을 때고, 지금은 충분히 이해해요.”
그 말에 건우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조윤아가 조금 어색하게 미소를 짓다가, 조현수에 대해서 계속 말을 이었다.
“혹시 저희 아버지 모습은 알고 계신가요?”
“회장님 모습?”
“네.”
“으음. 당연히 알지. 아마 우리나라 사람 중, 웬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을까? TV에 꽤 자주 나오시는 단골손님이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TV에서 본 조현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불독처럼 생긴 비만 노인, 머리는 주변머리만 남았고 고집도 무척 세 보였다.
건우가 그것을 떠올리다가, 말을 이었다.
“일단 풍채가 상당히 좋으셨지.”
“뚱뚱하다는 말씀이죠?”
“하, 하하. 뭐, 그렇지.”
“머리도 벗겨지고, 불독처럼 생기고…… 맞죠?”
“으음.”
건우는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던 것을 조윤아가 대신 다 말해 주자,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조윤아가 쿡쿡 웃었다.
“사실, 그분은 제 아버지가 아니세요.”
“응?”
“아버지의 대리인이세요. 대외적으로 신화그룹의 회장님이시지만, 사실은 배우시고요.”
“배, 배우?”
“네. 모습도 일부러 그렇게 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초인이시거든요.”
“정, 정말?”
건우는 조윤아의 말에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조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신화그룹 내에서도 거의 모르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나한테 말해 줘도 돼?”
“물론이죠. 곧 있으면 직접 만나 뵐 테니까요.”
“아. 그러면 상관없긴 하겠네.”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조윤아는 슬쩍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저한테 아버지 사진이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그 물음에 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윤아는 스마트폰을 건우 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화면을 켜는 순간이었다.
하와의 방긋 웃는 사진이 바탕화면으로 떡하니 설정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건우가 슬쩍 웃었다.
“하와가 바탕화면이네?”
“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우니까요.”
“음,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하지. 나도 바탕화면이 하와랑 아이들 사진으로 되어 있거든.”
건우와 조윤아는 그렇게 잠시 동안, 자신들의 하와 사랑을 뽐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사진첩을 터치했다. 지금 보려는 것은 하와 사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하와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사진 역시, 하와 사진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와가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건우가 그것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사진은 나도 없는 건데…….”
“아까 찍었어요. 보내드릴까요?”
“그러면 좋지.”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사진첩을 하나씩 넘기기 시작했다.
하와, 하와, 하와, 하와와 엘, 하와와 소아, 다시 하와, 하와, 하와, 하와와 가온, 하와와 뀨뀽이…….
사진첩을 아무리 넘겨도 보이는 거라고는 하와뿐이었다.
그에 조윤아가 사진을 넘기다 말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와 사진이 좀 많죠?”
“으음, 좀 많긴 한데…… 좋네. 나한테 다 보내줄 거지?”
“물론이죠.”
건우의 요청에 조윤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진첩을 한참 더 넘겨서야, 목표로 했던 인물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비행기 창가에 앉아서, 사색에 빠진 듯한 미남이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
“저희 아버지세요.”
“으음, 엄청 미남이시네? 젊을 때 사진이야?”
“아뇨. 며칠 전에 룩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에요.”
“아아. 며칠 전…….”
건우는 조윤아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흠칫 놀라서 되물었다.
“며칠 전?”
“네. 며칠 전이요.”
그녀의 말에, 건우는 다시 조현수의 사진을 바라봤다.
다시 본 조현수는 아무리 봐도, 건우보다 어려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