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41)
건우는 오전 동안만 밭을 정비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씻었다. 그리고 마루 한가운데에서 큰 대자로 뻗었다.
“으그라아악!”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온몸을 비트는 건우.
그는 그러다가, 금세 차분해져서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은 마치, 거실 바닥과 하나가 된 슬라임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하와와 엘, 소아, 가온도, 건우의 근처로 모여서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하으악!”
“으기아극!”
“라야갸략!”
갸으갹!
물론 각자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괴상한 소리와 온몸 비틀기도 잊지 않았다.
건우는 그런 것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슬슬 잠이 들려는데,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반응한 건우가 눈을 번쩍 뜨더니, 엄청난 속도로 벨소리를 꺼 버렸다. 그리고 하와와 아이들의 상태부터 살폈다.
“하와와와…….”
“히으음…….”
“냠냠.”
갸응.
아이들은 어느새 단잠에 빠져서, 고른 숨을 내뱉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안 깼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건우 형님. 저 박예준입니다.
건우에게 전화를 건 인물은 다름 아닌, 아이스 프린스 박예준이었다.
건우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응. 잘 쉬고 있어?”
-하하. 사실, 못 쉬고 있습니다.
“그래? 설마…… 벌써부터 수련하고 있는 거야? 좀 쉬면서 해. 그러다가 탈 날라.”
그 말에 박예준이 살짝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시실, 짐 싸고 있었습니다.
“짐? 무슨 짐?”
-오늘 아침에 파견 해제 공지가 떨어졌습니다.
건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잠깐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곧 있으면 박예준과 포식자 민서린의 파견이 끝나고, 이곳을 떠날 거란 사실이었다.
건우가 순간적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보다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무래도 다른 파견자들이, 파견 해제 통보 좀 빨리 해 달라고 건의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 그 덕분에 파견도 빨리 끝났고, 부모님 콜도 빨리 떨어졌습니다. 내일까지 길드로 복귀하랍니다.
그 말에 건우는 불꽃남자 박중혁과 얼음여왕 정수진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강원도의 양대산맥이라고 볼 수 있는 길드를 각각 운영하고 있는 만큼, 후계자 수업도 빨리 진행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했다.
거대 길드를 운영한다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부랴부랴 준비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우는 이 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좀 아쉽네.”
-저도 정말 아쉽습니다. 아직 형님께 배울 점이 많은데…….
“라일라 씨 때문은 아니고?”
-흠흠.
건우의 장난 어린 질문에, 박예준은 대답 대신 과장된 헛기침을 했다.
건우는 그것을 피식 웃고 넘겼다.
“정확히 언제 떠나는 거야?”
-저랑 박예란은 내일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민서린 선배님은…… 박예란이 물어보러 갔습니다.
당장 내일 떠난다는 말.
그 말에 건우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진짜…… 많이 아쉽네. 그럼 오늘이 묵계리에 있는 마지막 날이겠네?”
-네. 그렇습니다.
“흐음, 그러면 오늘 송별회 한번 해야 하는 거 아냐?”
-송별회…… 말씀입니까?
“응. 완전히 이별하는 건 아니지만, 몸이 멀어지는 거긴 하잖아. 몸 조심히 잘 가라는 의미에서 송별회 한번 소소하게 하자.”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박예준의 침음 소리가 통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뜸을 들이던 박예준이 말을 이었다.
-저는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송별회라는 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송별회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송별회가 뭐, 별거야? 만나서 밥 먹고, 술도 좀 마시고…… 덕담 정도 주고받는 거지. 아무튼,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서 송별회 하는 걸로 하자. 내가 준비해 둘게.”
-그러면 박예란 데리고 저녁 시간에 맞춰서 가겠습니다. 아, 민서린 선배님도요.
“그래, 알았어. 기다릴게. 저녁에 보자.”
건우는 그렇게 박예준과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은 좀 허전하겠네.’
묵계리는 평범한 시골 동네였다. 최근에는 젊은 피가 많이 수혈되긴 했지만, 그래도 건우 또래의 청년은 거의 없었다.
그런 만큼, 살갑게 다가오는 박예준은 건우에게 친한 동생임과 동시에 친구 같은 존재였다.
‘얼마 전에 예준이가 떠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아쉽진 않았었는데…… 막상 코앞에 닥치니까 기분이 묘하네.’
건우는 그러면서 한동안 북받쳐 오르려는 감정을 추슬러야만 했다.
‘이러다가, 내일이 되면 울어 버리는 거 아니야? 주책맞게?’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한숨과 함께 묘한 감정을 전부 내뱉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송별회는 제대로 해 줘야지.”
그는 그리 중얼거리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어느새 태양이 저물면서,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건우는 오늘 하루 푹 쉬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송별회 준비로 인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 봤자, 친한 사람들을 부르고 음식 장만하는 것 정도지만…….’
그는 그러면서, 미리 준비해 둔 솥뚜껑과 화로를 살폈다.
그가 송별회의 메인 음식으로 준비한 것은, 솥뚜껑에 굽는 다양한 고기구이였기 때문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양 갈비 고기, 미노타우로스 고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건우는 그렇게 메인 음식을 확인하고, 슬슬 화로에 불을 넣기로 했다.
“자, 투입!”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짓을 하는 순간이었다.
-핫!
-핫핫!
-핫핫핫!
불의 정령들이 줄지어서 화로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면서 솥뚜껑을 달구기 시작했다.
그 덕에 솥뚜껑에서 허연 연기가 슬슬 올라왔다.
건우가 그것을 확인하고, 솥뚜껑 위로 돼지비계를 슥슥 문질렀다.
“준비 끝.”
그렇게 고기 구울 준비를 마칠 때쯤.
“하와!”
“상추 가져왔답니다!”
“밥 어디에 놔?”
갸웅!
하와와 아이들도 열심히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다.
어머니가 준비해 주시는 각종 음식들을 펼쳐진 상 위에 가져다 두는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준비되어 가는 송별회 자리.
마침, 이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좀 더 일찍 와서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레스토랑 일이 좀 밀려서 늦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도착한 인물은 바로 초인 쉐프 정수찬.
“저 왔어요. 혹시 좀 늦었나요? 죄송해요.”
냐앙!
다음으로는 민서린과 돌쇠.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뺙!
마지막으로는 박 남매와 빙닭이 도착했다.
건우는 신비술사 조윤아와 집사 나이트도 초대할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성장의 비약 제조가 코앞인 만큼, 참기로 했다.
‘그럼 이제 다 온 건가?’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다행히 빠진 사람은 하나도 없어서, 널널해 보이던 돗자리가 가득 찼다.
그런 상황에서 민서린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와, 상다리가 휠 것 같아요.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준비된 상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그녀.
건우가 슬쩍 웃으면서 답했다.
“생각보다 무리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편하게 드세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기를 솥뚜껑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자극적인 고기 익는 소리와 냄새.
솥뚜껑 가로 떨어지는 기름방울들이 시각적으로도 강한 자극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하와와 아이들이 연신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이 정도로 넋이 나가면 곤란하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꽁다리만 잘라 놓은 김치를 솥뚜껑 가로 빙 둘렀다.
“하, 하와!”
그 모습을 본 하와는 최근에 먹는 양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못 참겠다는 듯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건우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준비해 뒀던 소금을 멋들어지게 촥촥 뿌려댔다. 한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쉐프가 보여줬던 허세 가득한 소금 뿌리기였다.
그에,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깔깔거리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불편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바로 정수찬 쉐프였다.
아무래도 쉐프의 입장에서 봤을 때, 건우의 소금 뿌리기는 아까운 소금만 허공에 날리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소금은 소금소금 잘잘하게 뿌려 줘도 충분한 법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오늘만큼은 허세 가득한 자세를 고집하면서 고기를 구웠다.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침내 잘 구워진 고기들.
건우는 그것들을 접시에 산처럼 쌓아서, 상 위로 올렸다.
“다들 맛있게 드세요!”
건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본격적인 송별회 파티가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떠나는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쓴 것도 있었지만,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소 분위기가 가벼웠다.
건우는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주책맞게 눈물 쏟을 일은 없겠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고기를 구워다 날랐다. 솥뚜껑도 크고, 화력도 세서 고기가 끊길 일은 없어 보였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 완벽한 고기 굽기였다.
잠시 후.
배가 조금씩 차오르자, 아버지가 엘프주를 꺼내 들었다. 건우가 특별히 부족 던전까지 가서 공수해 온 엘프주였다.
“자, 다들 한 잔씩들 받아.”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른들에게만 엘프주를 따라 주었다. 특히, 송별회의 주인공들의 잔은 빈틈없이 꽉꽉 채워 주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예준이 대뜸 나서서 용기 있게 고백을 했다.“건우 형님! 형님만 괜찮으시다면……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건우와 좀 더 편한 사이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었다.
그에 건우는 뭘 그런 걸 진지하게 말하냐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그 제안을 기껍게 받아들였다.
그 뒤로도 송별회는 즐거운 분위기로 쭉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
건우는 상황을 봐서, 오늘의 자리를 마무리 짓자고 제안했다.
그때 나선 것이 바로 정수찬이었다.
“송별회라고 해서 하나 준비해 온 게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드는 거라, 맛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양해해 주십시오.”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꺼내든 것은 바로 케이크였다.
크레이프 케이크였는데, 겉면에는 바위벌꿀이 듬뿍 발라져 있어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정수찬이 식탁 위에 그것을 준비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초라도 하나 꽂을까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괜히 즐거운 분위기가 묘하게 바뀔까 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와가 슬쩍 초를 하나 푹 꽂았다.
“하와!”
그러면서 방긋 웃는 하와.
“그렇다면 저도…….”
“나도나도!”갸웅!
뺙!
냐앙!
엘과 소아, 가온, 빙닭, 돌쇠까지.
아이들은 하와를 따라서 초를 하나씩 꽂았다.
그렇게 총 6개의 초가 케이크에 꽂혔고, 건우는 그 초에 불을 붙여 주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건우가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다른 곳에 가도, 하는 일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네요. 시간 되면 자주 만나자고요!”
송별회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꺼낸 것이다.
그 뒤로 가족들은 한 명, 한 명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덕담, 인사, 격려, 위로, 응원…….
그리고 그 마지막은 하와가 장식했다.
“하왓!”
또 만나자는 간단한 한 마디.
하와는 그러면서, 입으로 후하고 바람을 불어 초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