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35)
정령 농사꾼 – 35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즐거운 외식 이후.
서서히 생명력이 움트는 시기가 되었다. 이름 모를 들풀이 자라나고, 몇몇 식물들은 꽃까지 피웠다.
“벌써 꽃이 폈네?”
그렇게 중얼거린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묘한 감성이 올라온 것이다.
그때, 귀여운 작업복에 커다란 밀짚모자를 사뿐히 쓴 하와가 고개를 양옆으로 기울이면서 흥얼거렸다.
“하와~ 하와왕!”
슬슬 질릴 법도 한 익숙한 오솔길을 걷는 것조차 하와에게는 즐거움인 듯싶었다. 특히나, 처음으로 꽃이 핀 오늘 같은 날에는 더더욱 말이다.
건우가 하와의 흥얼거림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면서 읊조렸다.
“평화롭구나.”
그러자 저 먼 곳까지 눈에 들어오는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아직은 앙상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파릇함이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하와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 앞에 멈춰 섰다. 그러다니 건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와!”
“같이 구경하자고?”
건우는 하와의 지근댐에, 끌려가듯이 들꽃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하와는 어느새 건우의 손을 놓고 들꽃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하와~ 하와~”
들꽃을 어루만지면서 노는 하와. 건우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이런 건 남겨야지.’
찰칵!
대충 찍어도 그림이 되는 하와. 꽃이 하와인지, 하와가 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건우는 아빠미소를 지은 채, 그 사진을 저장했다. 그러면서 하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들꽃 향, 같이 맡을까?”
“하와!”
흔쾌히 수락한 하와. 건우는 그런 하와와 같이 들꽃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볼에 닿는 부드러움. 하와가 간지러운 지, 꺄르르 웃었다.
‘행복하다.’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허락된 작은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뭔가가 둘의 눈앞을 스윽 지나쳤다.
비이-
앵앵거리는 날갯짓과 묘하게 익숙한 울음소리.
그에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하와였다.
“하와!”
놀라면서도 즐거운 듯이 웃는 하와.
하지만 건우는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벌러덩 넘어질 정도로 놀랐다.
“뭐, 뭐야?”
사람 주먹만 한 거대한 벌이 눈앞을 지나가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건우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면서 거대한 벌의 정체부터 살폈다.
“바위벌?”
그랬다. 건우와 하와의 눈앞을 태연하게 지나간 그것의 정체는 바로 바위벌이었다.
‘어째서 바위벌이 여기에?’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식은땀을 찔끔 흘렸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던전 농지에서 나온 건가?’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바위벌이 태연하게 나타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슬슬 활동할 시기가 됐었지.’
녀석들이 직접 날아다니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먹이를 주러 갈 때마다 땅의 정령을 통해서 대략적인 상황은 알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비이-
그냥 스쳐 지나가고 끝일 줄 알았던 바위벌이 크게 허공을 크게 선회해서 다가오더니, 들꽃 위에 사뿐히 앉았다. 그리고는 건우와 하와를 향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이-
녀석이 고개를 숙이자, 들꽃의 가는 줄기 역시 꺾일 듯이 휘어졌다.
그 모습에 건우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우리한테 인사한 거야?’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하와가 손을 번쩍 들면서 바위벌의 인사에 답변했다.
“하왓!”
상큼한 인사.
그 인사를 받은 바위벌이 다시 들꽃을 발판 삼아 날아올랐다. 온몸에 들꽃의 꽃가루를 덕지덕지 묻힌 채로 말이다.
“하와~”
마지막까지 바위벌의 뒷모습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주는 하와. 조심해서 다니라는 인사였다.
그에 건우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생각했다.
‘하와야. 바위벌이 아니라, 사람들이 조심해서 다녀야 할 판이란다.’
그는 그러면서 일단 던전 농지로 향하기로 했다.
***
“헤에-”
비이-
엘은 던전 농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에 앉아서 꿀을 채취하는 바위벌을 구경하고 있었다. 양손으로 턱받침을 하고 엎드린 채로 말이다.
“신기하답니다.”
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투명한 날개와 발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건우와 하와가 던전 농지로 들어섰다.
엘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서 오세요!”
반갑게 둘을 맞이하는 엘. 그에 하와가 반갑게 마주 인사했지만, 건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바위벌에 대한 것 때문이었다.
그에 엘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에 건우는 아차 싶어서 표정을 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뭐하고 있었어?”
그 물음에 엘은 언제 불안했냐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바위벌이 꿀을 채취하고 있어서 구경하고 있었답니다! 무척이나 신기하답니다~”
엘의 말에 건우와 하와가 바위벌의 꿀 채취 장면을 가까이에서 살펴보았다.그리고 건우는 어째서 엘이 바위벌에게 시선을 빼앗겼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신기하긴 하네.’
사람 주먹만 한 바위벌이 사람 새끼손톱만 한 작은 들꽃 위에 사뿐히 앉아서 꿀을 채취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와왕~”
눈을 반짝이면서 신기해하는 하와.
건우는 그런 하와는 내버려 두고 살짝 구부렸던 몸을 폈다. 일단 상황 파악부터 끝내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엘. 그런데 언제부터 바위벌들이 활동을 시작한 거야?”
그 물음에 바위벌에게서 시선을 거둔 엘이 잠시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면서 떠듬떠듬 바위벌이 언제부터 활동했는지 떠올렸다.
“새벽부터 조금씩 보였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뿔토끼 숫자보다 많이 날아다닌답니다!”
그 말에 건우가 잠시 움찔거렸다. 현재 뿔토끼의 숫자는 50마리에 육박했으니까 말이다.
건우는 침착하게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던전 농지 밖으로 나간 바위벌들은 대충 얼마나 돼?”
“음, 그렇게 많지는 않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대답한 엘은 슬슬 위화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건우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엘의 작은 몸이 조금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혹시 문제가 있는 건가요? 제가 또 실수를 한 건가요?”
그렇게 묻는 엘의 모습에 건우는 최대한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괜히 잘 못 말했다가는 또 엘이 넙쭉 엎드리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건우가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무 문제없어. 오히려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어서 그래.”
건우는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스스로가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농작물들을 위해서라도 엘에게 던전 농지에 드나드는 각종 곤충과 날벌레를 막지 말라고 해두었으니까 말이다. 당연히 엘은 바위벌의 출입도 막지 않았을 것이다.‘바위벌을 못 나가게 하라고 미리 말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움츠린 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아무튼 앞으로 바위벌은 던전 농지에서 나갈 수 없게 해줘. 들어오는 건 받아주고.”
건우는 그러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엘이 움츠렸던 몸을 슬며시 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건우가 바위벌의 활동에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위벌로 인해서 혹시 모를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바위벌은 벌집이나 자신을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몰라.’
이는 일반인들이 아니라, 헌터들 중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바위벌 자체가 비주류 몬스터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사람들이 바위벌에 대한 대처법을 알아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어. 결국, 바위벌 자체가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해야 사고가 안 날 거야.’
몬스터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게 하는 것. 건우는 다른 몬스터라면 몰라도 바위벌이라면 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애초에 사람들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몬스터가 바위벌이었고, 상당한 지능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시도해볼 가치는 있어.’
거기까지 생각한 건우는 바위산을 올려다보았다.
잘 보면 어느새 여기저기 출입구로 보이는 구멍들이 뽕뽕 뚫려있었다.
‘나중에는 바위산 전체에 구멍이 생기려나?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식겁하겠네.’
건우는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같이 온 하와를 바라보았다.
“하와?”
순진한 얼굴로 건우를 올려다보는 하와.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지는 것을 느끼면서 입을 열었다.
“땅의 정령 좀 부탁해.”
“하와!”
하와는 어렵지 않다고 대답하면서 간단히 땅의 정령을 소환했다.
소환되자마자, 건우와 하와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땅의 정령. 그에 맞춰서 하와도 거수경례를 취했다.
-뭉!
“하왓!”
거의 매일 보지만 질리지 않는 모습. 건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땅의 정령에게 평소와는 다른 지시를 내렸다.
“오늘은 먹이를 보내는 게 아니야. 들어가서 여왕바위벌 좀 불러줄래?”
-뭉!
건우의 지시를 들은 땅의 정령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이고는 바로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후, 땅의 정령은 일반 바위벌보다 커다란 바위벌과 함께 나왔다. 하지만 여왕바위벌은 아니었다.
‘병정바위벌.’
병정바위벌은 일반적인 바위벌보다 1.5배 정도 되는 몸집을 지닌 녀석이었다. 낫처럼 생긴 날카로운 앞발을 지닌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고 말이다.
‘바위벌 전문 헌터들이 사고를 당하는 것도 대부분 이 녀석 때문이지.’
그 정도로 바위벌집의 꿀을 노리면 나타나는 이 녀석의 위험도는 보통 바위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건우는 그런 병정바위벌을 보면서 살짝 긴장하면서 말을 걸었다.
“음, 안녕?”
비-
공격적으로 생긴 것과는 다르게 아주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병정바위벌. 그 모습에 하와가 눈을 반짝이면서 다가갔다.
“하와와~”
아무래도 다른 바위벌과 다르게 생겨서 신기해 보인 모양이었다. 건우는 그런 하와를 이례적으로 막지 않았다. 하와도 벌레한테 만큼은 무적이 되는 작업복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병정바위벌이 하와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
“하와~”
비비-“
“하와왕!”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는 둘 만의 의사소통. 건우는 그 의사소통을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둘 다 정신연령이 비슷한 지, 꽤 말이 통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그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끼어들었다. 슬슬 이곳에 온 용건을 해결해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그가 병정바위벌에게 물었다.
“여왕바위벌은?”
비비-
“나올 수 없다고?”
여왕바위벌은 여전히 산란에 힘쓰고 있기에, 직접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건우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그럼 내 말을 전해줄 수는 있지?”
비-
“좋아. 그럼 잘 기억했다가, 내 말 좀 전해줘.”
건우는 그렇게 병정바위벌에게 자신이 생각해둔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을 공격하지 말라는 것!
인간이 몬스터에게 해주는 최초의 사상 교육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