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46
정령왕이 된 이유라니.
내가 모르는 그 사실을 실프리스는 알고 있는 건가?
“이렇게만 봐도 최고의 정령왕이신데, 정령왕이 안 되시면 섭섭하죠.”
“그런 거였나.”
혹시 실프리스는 내가 정령왕으로 선택된 이유를 알고 있는가 했지만, 그저 두리뭉실한 얘기일 뿐이었고,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능력자가 아니면 다른 세계에서 오실 리도 없겠죠.”
“잠깐. 뭐라고?”
실프리스는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캔에 담긴 정령수를 한 모금 더 마셨고, 나는 놀란 얼굴로 실프리스를 쳐다보았다.
“어머. 놀라셨어요? 예전에 눈치채신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안 거지.”
“뭐, 일반 정령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정령왕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엘림 님의 근본은 정령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이라는 걸요.”
“그걸 어떻게.”
“처음에 그렇게 놀란 티를 내셨는데 모를 리가 있나요. 후훗. 그때는 참 귀여우셨는데.”
실프리스는 내가 정령이 아니었던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실프리스가 알고 있다면 그녀와 같은 정령왕인 어스와 이프리트 또한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 어째서 한 번도 티를 내지 않은 걸까.
“혹시 그것에 대해 반감이 있는 건가.”
“네? 아니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없어요. 엘림 님이 얼마나 정령계의 중요한 존재인데요.”
“다행이군. 그럼 혹시 내가 정령왕으로 선택된 이유를 알고 있나.”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인 걸 눈치채고 있었던 실프리스라면 나에 대한 또 다른 정보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모르는 내 과거의 진실을 알고 있다면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에 해답이 될 수도 있겠지.
“아뇨. 그건 저도 잘…….”
“역시 그런가.”
하지만 역시 일이 이렇게 간단히 풀릴 리는 없었다.
실프리스는 내게 그것 외에는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약간 실망한 채 정령수 한 모금을 쭉 들이켰다.
“그래도 선대 물의 정령왕이 선택하신 엘림 님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잠깐. 그렇지. 선대 물의 정령왕이 나를 선택했으니 내가 여기 있겠지. 실프리스, 혹시 선대 물의 정령왕에 대해 아는 거 있나?”
나는 약간 격앙된 말투로 물으며 실프리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실프리스는 손을 턱에 가져다 대며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내게 말을 꺼냈다.
“아, 엘림 님은 모르시겠군요. 선대 물의 정령왕님의 전설에 대해서.”
* * *
엘림의 등장 이전.
정령왕의 자리에 군림하던 물의 정령왕.
그의 이름은 엘시드.
그는 엘림의 등장 이전, 정령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정령왕이자 가장 오랜 기간 군림한 정령왕이었다.
일반 정령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엘시드 님만큼은 평생 정령왕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에 대한 민심은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엘시드에게도 끝이라는 게 존재했다.
갑작스럽게 선대 불의 정령왕이 키리엘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그때.
엘시드에게 『끝』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엘시드를 포함한 정령왕들은 불의 정령왕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의 정령왕의 빈자리는 더더욱 커져만 갔고, 엘시드는 점점 쇠약해지는 자신의 몸과 함께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프리트가 후대 불의 정령왕으로 군림하는 데에 성공하자, 엘시드는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지금 군림하고 있는 정령왕들 중 이프리트가 최고참이다.그리고 선대 정령왕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프리트가 불의 정령왕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방법은 후에 기회가 된다면 알려 주겠다.]
…….
‘내 자리를 이제 물려줘야 할 때가 왔다.’라고.
하지만 쇠약해져만 가는 자신의 몸과는 달리 물의 정령 중에는 마땅한 차기 후보가 없었고, 그렇게 엘시드는 어쩔 수 없이 정령계를 위해 자신의 지친 몸을 계속해서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쇠약해져만 가던 엘시드에 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령의 수명은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길지만, 인간과 같이 나이가 들수록 몸이 쇠약해져 간다.]엘시드는 역대 정령왕 중 가장 오랜 기간 군림한 정령왕인 만큼그의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고, 그런 몸으로 무리한 활동을 하다가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엘시드 님!
엘시드가 쓰러지자 치유 마법을 가진 모든 정령은 엘시드를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팔을 걷고 나섰지만, 그 어떤 정령도 수명(壽命)으로 인해 쇠약해진 몸을 고칠 수는 없었다.
결국, 모두가 포기한 어느 새벽. 엘시드는 병상에 누운 채 자신의 마지막 힘을 끌어내 정령계의 전령(傳令)이라고 불리는 물의 파랑새를 소환해 냈다.
그리고 머리맡에 앉아 있는 파랑새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마음은 따뜻하지만 겉은 차갑고, 생각은 깊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는 그런 존재를 찾아라.”
짹.
파랑새는 엘시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창밖으로 날아갔고, 엘시드는 아련한 눈빛으로 날아가는 파랑새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은 뒤 정령들이 확인한 엘시드의 병상은 텅 비어 있었고, 정령들은 갑작스러운 엘시드의 실종에 놀라 정령계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새벽 뒤로는 그 누구도 엘시드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엘시드가 모습을 감추고 인간세계 기준으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엘림』이라는 존재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불의 정령왕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는 엘시드가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사라졌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정령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사라진 엘시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엘림이 정령왕으로 선택받은 이유다.
왜 내가 엘시드의 파랑새에게 선택을 받았는지, 그 수많은 존재 중에 왜 하필이면 나인지는 엘시드가 사라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나를 포함한 모든 정령이 알지 못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진 엘시드는 아직 정령계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 * *
-호야아……! 호야! 일어나아……!
-인간. 죽은 거 아냐? 일어나!
-강호 안 죽었어! 쁠레임! 말 취소해!
-나도 아는데 이 정도로 자는 거면 죽은 거 같단 말이야!
“뭐야…… 니아이스, 플레임. 무슨 일 있어?”
-호야! 일어난 거야? 니아이스, 걱정 엄청 했어!
-인간! 어디 아픈 거야?
“왜들 그래? 별로 안 잔 거 같은…….”
뭐야.
일요일 오후 다섯 시?
내 토요일 어디 갔어.
■ 제47편 중간고사 (3) □
“안 돼. 나 새끼야…… 왜 이렇게 자 버린 거야.”
내가 잠에서 깨어난 현재 시간은 오후 5시 30분.
내가 잠든 시간이 아마 새벽 4시쯤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으면 보통 ‘헉 열두 시간 넘게 자 버렸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열두 시간이면 많이 잤네. 엄청 많이 자 버렸잖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잠든 시간은 『토요일』 새벽 4시.
일어난 시간은 『일요일』 5시 30분.
…….
나는 36시간을 넘게 자 버렸다.
“제발. 안 돼. 안 된다고.”
안 그래도 1분 1초가 귀중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주말의 3/4를 날려 먹다니.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16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중간고사까지 남은 시간은 단 16시간.
나는 지금부터는 죽어도 16시간 동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다.
죽었다고 생각해라 이 말이지.
-호야. 바빠?
“응. 니아이스. 좀 바쁘네.”
-응! 힘내!
-인간. 너무 오래 자서 그래.
“그러게. 좀 깨워 주지 그랬어.”
-그치만 너무 피곤해 보였는걸!
갑자기 닥쳐온 36시간 취침의 후환(後患) 때문인지 아까 전에 꾸었던 꿈 내용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쩌면 중간고사보다 훨씬 중요할지 모르는 기억을 지워 내며 머릿속에 시험공부 내용을 넣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까.
“외워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물론 다른 평범한 아이들에 비해 어린 시절부터 강도 높은 공부만 해 온 나에게 이 정도 시험공부는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재수 없게 들릴 테지만 사실 여태까지 나는 공부가 제일 쉬웠으니까.
평범한 아이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자부할 만큼의 수준 높은 공부를 어린 시절 내내 해 왔었고, 내가 공부해 왔던 기본 상식에 대한 것들은 누구에게도 질 자신 없다고 자부할 만큼이나 자신감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거와는 별개인 것이 바로 내가 다니는 이 학교는 다름 아닌 헌터 학교라는 것.
물론 헌터 학교의 시험도 일반 학교처럼 기본 교과목인 국·영·수가 존재하고 그 비중도 상당수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일반 학교와는 다른 큰 차이점 한 가지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헌터』라는 과목이 있다는 것.
표지에 크게 『헌터』라고 적혀 있는 이 교과서는 국·영·수 교과서에 뒤지지 않을 두꺼운 두께를 가지고 있고, 그에 비례해 시험 점수 비중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교과서 안에 있는 내용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공부해 본 적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내가 여태까지 해 왔던 국·영·수 같은 공부랑은 전혀 별개인 내용이라는 것.
나는 이 헌터 과목에 남은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문제의 답을 못 적고 제출해야 하는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호야아…….
-인가안…….
내가 두 팔 걷고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하려던 그때.
갑자기 니아이스와 플레임이 다가와 내 양쪽 소매를 잡아끌며 나를 불러 대기 시작했다.
“응?”
나는 교과서를 펴다 말고 고개를 돌려 두 정령을 바라봤고, 니아이스와 플레임은 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니아이스 놀아 줘…….
-인간 어제도 잠만 잤잖아. 놀아 줘…….
“놀아 달라고?”
무슨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하필이면 지금처럼 바쁠 때 놀아 달라고 하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저 어린 정령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모른 체할 수는 없고.
어떡하지. 시간이 없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
결국, 나는 니아이스와 플레임의 애처로운 눈빛을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었고,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1층으로 향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리고 1층에 있는 부엌 안 냉장고를 열어 주스 두 병을 집어 든 뒤 다시 2층에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거 하나씩 받아.”
-호야! 주스야? 주스?!
-인간! 주스 또 주는 거야?
“자, 일단 들고만 있어. 지금 마시지 말고.”
나는 주스 병뚜껑을 딴 뒤, 니아이스와 플레임의 품에 각각 한 병씩 쥐여 주고서 2층에 있는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쏴아아…….
끼릭. 끼릭.
“니아이스, 이리 와.”
-응? 호야 왜?
나는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한가득 받아 놓은 뒤 니아이스를 불렀고, 니아이스는 품 안에 주스병을 꼭 쥔 채 짧은 걸음으로 총총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리 들어가서 놀아도 돼.”
-진짜? 오늘은 여기서 어푸어푸해도 돼?
“응. 주스도 안 마셨네. 잘했어. 니아이스.”
-응! 헤헤…….
촤아아…….
나는 니아이스를 번쩍 들어 물이 가득 담긴 세면대 안으로 넣어 주었고, 주스병을 품에 꼭 안고 있는 니아이스는 시원한 물에 들어가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호야! 이제 마셔도 돼? 응? 응?
“응. 마셔도 돼. 놀고 있어.”
-응!
나는 니아이스를 화장실 세면대에서 실컷 놀 수 있게 만들어 준 뒤, 조용히 문을 닫고 내 방으로 향했다.
‘니아이스는 저렇게 해 주면 되는데 플레임이 문제네.’
물의 정령인 니아이스는 물만 있다면 어디든지 놀이터가 될 수 있다.
바다, 강, 심지어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즐거워하니 놀아 주기에는 꽤 쉽고 편한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불의 정령인 플레임.
물의 정령인 니아이스와 달리 플레임과 놀아 주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불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작을 쓰는 옛날 화로를 사용하는 가정집이 아닌 이상 일반 가정집에서 불을 찾아볼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가스레인지뿐이다.
하지만 요리도 하지 않는데 가스레인지만 계속 켜 놓을 수는 없고…….
라이터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집엔 흡연자도 없으니.
…….
잠깐.
라이터라.
“플레임 이리 와 봐.”
-응?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플레임을 책상 쪽으로 불렀다.
플레임은 품 안에 주스병을 꼭 안은 채 책상 쪽으로 쫄래쫄래 걸어왔고, 나는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인간. 이게 뭐야?
“이건 향초라는 거야.”
-향초?
다행히 내 책상 서랍 안에는 전에 사 두고 쓰지 않고 있던 아로마 향초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 향초에 불을 붙여 플레임 앞에 둔다면 은은한 향과 불꽃이 함께 있으니 플레임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할 터.
하지만 향초를 켜기 위해선 불이 필요한 법인데, 라이터 하나가 없는 집에서 불을 어떻게 켜냐고?
화륵!
내 손가락이 라이터인 거.
벌써 잊은 건가.
다들 잊고 있었겠지만 내가 처음 헌터 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유는 손가락에서 라이터만큼의 약한 불꽃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정령사가 되고 나서는 쓸 일이 없는 능력일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쓰이네.
화르르…….
나는 검지에서 아주 미미한 화력의 불꽃을 일으킨 뒤 향초에 가져다 댔고, 향초는 금세 은은한 불꽃을 머금기 시작했다.
-뭐야 인간! 너도 불의 인간이었어?
“그런 건 아니지만, 비슷하긴 해.”
-역시! 불의 정령과 불의 인간! 불 속성은 뭐든지 최고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