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146
154. 밝혀지는 비밀(1)
유서준은 순간 당황했다.
그녀가 묻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엄청나게 많이 벌었기 때문에 그냥 물어보는 것일까.
“테러를 어떻게 알아? 내가 테러집단 대장도 아니고.”
유서준이 웃으며 질문을 피했다.
서하나가 큰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며 다시 질문했다.
“엊그제 풋 옵션을 샀지? 500배 상승으로 화제에 올랐던 풋 62.5를 샀겠지. 수량도 많았으니 사기도 쉬웠을 테고. 그게 아니면 그렇게 못 벌었을 것 아냐.”
“풋 옵션 65까지 세 종목 다 샀어.”
“그래, 평소에 절대 하지 않던 옵션 매수를 왜 했을까? 이상하지 않아?”
서하나가 정곡을 찔렀다.
유서준은 쉽게 그녀의 의문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하나가 리모컨으로 티비를 껐다. 실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정색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예전에 내일부터 주가가 오른다거나 내일부터 내린다거나 그런 예측 많이 했었잖아? 그것도 의문이긴 하지만 예측 가능하다고 봐. 가끔 주가 챠트를 기가 막히게 읽는 사람 가운데는 그런 변곡점을 찍어내기도 하니까. 전문가가 ‘다음 주부터 오를 것 같습니다’라고 예측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유서준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말이야, 며칠 전에 스타크래프트 결승전 보고 오면서 풋을 사겠다고 말했잖아? 난 그때 대수롭지 않게 들었어. 주가 하락을 예측했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하락이 일어나긴 했어.”
서하나가 다소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경제 내부 문제가 아니야. 테러라는 외부 원인이지. 이건 주가 챠트를 열심히 본다고, 경제를 열심히 연구한다고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지?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말 그대로 테러집단 대장이 아니면 모르는 내용이지.”
그제야 유서준은 서하나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들었다. 아무리 위대한 경제학자라도 또, 주식에 대한 감이 좋아도 테러를 미리 알고 투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유서준은 그것을 맞춘 셈이었다. 당연히 서하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증권과 투신 파생팀에 풋 옵션 매도를 치지 못하게 했던 것으로 미루어보면 넌 분명히 테러 발생을 알고 있었어.”
생각해보니 적당히 어물쩍거리며 변명으로 빠져나가기는 틀린 것 같았다.
유서준은 그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놀랍게도 이번에 증권사 중에서 풋 매도를 치지 않은 곳은 딱 두 군데뿐이야. 하나는 우리. 바로 서준 씨가 하지 못 하게 했으니까. 다른 한 곳은 해솔 증권. 거긴 왜 풋 매도를 하지 않았는지 나도 몰라.”
서하나의 말에 유서준은 충격을 받았다.
해솔 증권이 풋 매도를 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박강수 역시 테러 발생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게 가능할까?
그의 의식은 박강수의 책상 위에서 보았던 익숙한 표지의 다이어리를 떠올렸다. 그게 정말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였나? 거기에 테러가 적혀있었을까? 911 테러는 워낙 큰 사건이었고 주가에 영향을 많이 미쳤으니 나중에 일기에 언급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역시 그 일기장이 마지막 네 번째 다이어리가 맞았어.’
유서준은 확신을 굳혔다.
앞으로 그가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는 박강수였다. 2017년부터 박강수는 괴물이 되어 등장할 것이다.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하나의 단정 짓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정황으로 추측해보면 분명히 서준 씨는 테러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어. 어떻게 된 거야?”
따로 변명할 말이 없었다. 이럴 때는 진실로 돌파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그는 서하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을 결심했다. 어디에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일기장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은 그를 제외하고 구인혁 뿐이다. 구인혁은 실제 이 일을 벌인 당사자니까 외부인은 아니다. 여기에 그의 아내인 서하나가 들어간다. 서하나는 실상 완벽한 외부인이다. 이것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모르지만 그는 서하나를 믿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내이니까. 앞으로도 한배를 타고 있을 사람이니까.
유서준은 천천히 입을 뗐다.
“다 말해줄게.”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의외로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는 그를 보고 서하나가 오히려 당황했다.
유서준은 서재로 가서 다이어리 세 권을 들고 왔다.
서재 한쪽에 꼽혀있는 다이어리를 들고 오자 서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도 몇 번 꼽혀있는 상태로 본 적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부부 사이일지라도 각자 지켜줘야 할 사생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서준이 첫 번째 다이어리를 펼치며 말했다.
“이 다이어리는 1987년부터 1996년까지의 일기를 적은 거야.”
평범한 내용이었다. 서하나는 그가 왜 갑자기 다이어리를 펼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두 번째 다이어리를 폈다.
“이 다이어리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의 일기를 적은 거야.”
“요즘 쓰는 건가 보네. 2006년까지 쓰겠다는 뜻이지?”
서하나가 다시 반문했다. 누구나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유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2006년까지 이미 적혀 있어. 정확하게는 2016년까지인가.”
서하나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서준은 오늘 날짜 일기를 폈다.
테러 이후 둘째 날 만기일에 벌어진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제의 분위기와 달리 예상외로 주가가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유서준은 그다음 장을 넘겼다.
*
2001년 9월 14일 금요일. 종합주가지수 482.29. 코스닥지수 50.21.
약보합으로 시작한 지수는 곧바로 폭락으로 돌변했다. 거래소는 12일 저가까지 뚫고 내려가더니 막판에 간신히 약간 반등해서 끝났다. -3.4% 하락이다. 갑작스러운 선물 하락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선물 매도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당분간 500선은 힘들 것 같다. 코스닥지수는 전일 보다 무려 -7.34%나 하락해서 끝이 났다.
제대로 살아남은 종목이 없다……(중략)
*
“응? 이게 뭐야?”
서하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이어리 내용을 주시했다.
유서준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내일 주식시황이야.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야.”
“거짓말…….”
서하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유서준은 그녀의 반응을 이해했다. 내일 벌어지는 일이 미리 적힌 다이어리가 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는 그녀를 이해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테러집단 대장이 아닌 이상 테러를 미리 알 방법은 없어. 하지만 다이어리에 테러가 적혀 있었어. 나는 미리 그것을 대비했던 것이고. 또 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풋 옵션 매매를 할 생각을 했던 거야. 일단 믿어지지 않겠지만 내가 처음부터 전부를 말해줄 테니 끝까지 듣고 질문해. 어때?” 유서준의 차분한 말에 서하나가 일단 그의 말을 들을 자세를 갖추었다.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뭐라고 변명하는지 들어보기나 하자란 모습이었다.
유서준은 처음 다이어리와 편지를 발견한 날부터 시작했다. 가능한 한 쉽게, 그 부분의 일을 다이어리에서 펴서 보여주며 설명을 진행했다.
서하나의 안색이 수시로 바뀌었다.
모든 설명이 다 끝났을 때 그녀는 이것을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증명은 간단해. 내일 일기 내용을 확인하면 돼. 내일 종합주가지수, 코스닥지수. 아무리 내가 예측을 잘한다손 치더라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잖아? 아, 여기 또 있네. 내일 선물 매도에서 사고가 난다고 했으니 그것도 한번 확인해보지. 이런 사고는 특별한 것이니까.”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서하나의 안면이 심하게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유서준과 다이어리를 번갈아 오갔다.
유서준은 그녀의 고민과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꼭 좋은 일일까. 만일 내일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오늘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일 지구가 사라져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떤 철학자의 말은 이상론일 뿐이다. 대부분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다이어리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내일 지구가 사라진다는 그런 극단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내일 일을 알아서 좋은 부분이 있고 나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김현아의 죽음에 대해 적힌 부분만 해도 그렇다. 그 한 구절 때문에 그는 몇 년을 고민하며 지냈던가.
특히 최근 들어서는 거의 신경 쇠약에 걸릴 만큼 걱정을 했다. 그렇다면 이젠 김현아의 죽음이 해소된 것이 맞을까? 혹시 아직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정확한 것은 그날이 지나가 봐야 안다. 그때까지 그는 여전히 가슴을 조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실 돈을 번 부분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에 1조란 재산을 갖고 있다면 대단히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유서준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는 바람에 자신의 재산을 즐길 여유를 잃어버렸다. 그의 재산은 오로지 먼 미래의 외환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마련하는 수단일 뿐이다. 모든 수익과 행동이 그때로 맞추어져 있어서 그는 평범한 일상과 사고를 모두 잃어버렸다.
어찌 보면 가장 불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서하나도 그 부분을 어렴풋하게 깨닫고 있는 듯했다.
“이걸 행운이라 해야 하나 불행이라 해야 하나…….”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유서준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먼 미래에 내가 파산한 후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미친 듯이 돈을 모을 수밖에 없었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남들은 1조를 가져 좋겠다고 하지만 나에게 그 돈의 크기는 의미가 없어. 나는 자살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니까. 사실 얼마가 필요한지도 몰라. 확실한 것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뿐이야.”
서하나는 그 절박함을 알 수 있었다.
그녀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었다. 아버지 치료비가 없고 회사에서 잘릴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가도건설에서 수모를 받게 될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을까. 다른 대책을 마련하려고 별별 수단을 써보지 않았을까. 그래도 해결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머리가 복잡했다.
유서준이 그녀의 어지러운 표정을 확인하고는 결론을 말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하나야.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그대로 나아가자. 그것뿐이야. 다른 것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까.”
사실상 그는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대처해왔다. 다이어리를 활용하여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하게 부를 일구었다.
구인혁이 추정했던, 다이어리가 과거로 보내진 이유는 둘이었다. 유서준의 자살을 방지하고 김현아로 보이는 여인을 죽음에서 구해내는 것. 어쨌든 김현아는 구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젠 자신의 자살만 방지하면 되고 그 밑바탕은 외환위기에 대적할 수 있는 부를 일구는 것이다. 목표를 단순하게 잡을수록 행동도 편해지고 명료해진다.
서하나는 그의 말에 약간 감동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신기에 가까웠던 주식 감각이 모두 거짓이란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도 그의 남다른 면모도 느껴졌다. 그래, 어쩌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잔기술이 아니라 큰 흐름을 파악하고 적응하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주식에서도 짧은 기간에서는 매수매도 타이밍이 중요해 보이지만 긴 기간에서는 자산관리 포트폴리오가 훨씬 더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서준은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이젠 모든 판단은 그녀의 몫이다.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그는 자신 있었다. 서하나의 현명함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