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31
31. 패러독스(2)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이자 일요일이었다.
오전 7시가 약간 지났을 때 유서준은 잠에서 깼다. 한가한 일요일이라 더 잘 수도 있었지만, 어젯밤에 일찍 잠이 든 관계로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창밖으로 밝은 빛이 어렴풋이 비추는 가운데 방안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유서준은 아직도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는 구인혁을 발견했다.
“안 잤어?”
구인혁이 머리를 손으로 헝클었다. 그가 수척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밤새도록 고민했는데 방정식이 안 풀린다.”
유서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천재라던 너도 안 풀리는 문제가 있나 보네. 이제 2학년이라 전공 들어가서 그런가 보지?”
“하하, 그게 아니라…….”
구인혁이 그를 돌아보며 손을 내저었다.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눈을 껌벅거리는 그에게 구인혁이 설명했다.
“흠, 최신 물리학 이론 가운데 초끈이론이라고 있어. 중력시스템을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는 방법인데 이 방법에 따르면 이 우주는 11차원의 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수학적으로 설명이 돼.”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3차원이던가?”
“그렇지.”
구인혁이 고민하는 내용을 유서준이 알기엔 무리였다.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아니 그만이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구인혁이 학교 교과 공부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분야 때문이란 사실이다.
구인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 중력을 다른 힘과 합치기 위해 물리학자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 관련 논문도 많이 발표되고 있어. 말 그대로 천재만 고민하는 분야지.”
“너도 천재라 그 틈에 끼어보겠다고?”
약간 빈정대는 유서준의 말투에 구인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난 그런 것은 관심 없어. 학술적인 논문을 많이 내면 학계에서는 알아주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현실에의 적용을 고민해. 뭐랄까 새로운 이론을 살짝 비틀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비틀면 뭔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유서준은 구인혁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냥 뜬구름 잡는 소리인 줄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구인혁이 무슨 일을 할지 알고 있는 그는 그가 말하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설마…… 너 그 초끈이론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시간여행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유서준의 말에 구인혁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역시나 맞았다. 구인혁은 오래전부터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 타임머신을 고민하고 있었던 거다.
유서준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천재 구인혁의 룸메이트 일 년이면 그 정도는 알게 되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어.”
구인혁은 자신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어쨌든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다시 자신의 노트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초끈이론은 그 시발점일 뿐이야.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지. 시간여행을 실현하려면 다른 수많은 이론이 필요해. 아직 먼 훗날이 되겠지만.”
구인혁이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휘갈겨 쓰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내려다보는 유서준은 그가 써 내려가는 복잡한 수식을 보았다. 역시나 이과생은 이상한 놈이다. 종이에 숫자 몇 개 써놓고 세상이 멸망하는 것처럼 고민하는 것 보면.
뭔가를 고민하는 구인혁을 바라보며 유서준도 많이 갈등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이어리의 존재에 대해 말해야 할까.
그는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와 편지를 꺼냈다. 다이어리에서 구인혁에 대해 언급된 부분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대학 시절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혁아, 잠시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목소리가 가라앉아 신중해진 유서준이 이상했던지 구인혁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무슨 이야기인데?”
“이것 어떻게 생각해?”
유서준은 미래에서 온 다이어리 첫 부분을 폈다. 구인혁이란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된 87년 3월 2일 일기였다.
일기장을 쓱 살피던 구인혁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항상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일기장을 갑자기 왜 보여주나? 뭐, 별 것 없는데? 구인혁이 이상한 녀석이라고?”
“이 일기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그저 그렇구먼.”
구인혁은 오히려 유서준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내가 쓴 거 아냐. 아니다 내가 쓴 것은 맞지. 하지만…….”
“뭔 소리야? 오늘 너 좀 이상하다.”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유서준에게 구인혁이 혀를 찼다.
유서준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미래에서 온 편지를 건넸다.
“이거 살펴봐. 신중하게.”
구인혁이 편지를 읽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이게 뭐야? 2027년 12월 24일? 먼 훗날인데? 구인혁의 계획? 너 요즘 소설 쓰니?”
유서준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다시 편지를 건네받은 다음 진지하게 말했다.
“이거 미래에서 온 거다. 미래의 구인혁이 지금의 나, 유서준에게 보낸 거라고.”
구인혁은 약간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곧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입가에 웃음을 떠올렸다.
그가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폈다.
그는 한 달 후의 일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주가지수가 적혀 있지? 이거 미래의 주가다. 내가 미래의 사실을 적을 수는 없잖아?”
“응?”
구인혁이 다이어리를 세세하게 살폈다. 그는 몇 군데를 뒤적이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럼 최근에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번 것도?”
“당연히 미래를 알고 있으니 벌 수밖에.”
구인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유서준은 그가 사태를 파악할 동안 기다렸다.
다시 구인혁이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유서준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역시 사건의 핵심인물인 구인혁답게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내가 결국 시간여행이 가능한 타임머신을 개발했다는 거네?”
“그런 것 같아. 단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흐음…….”
구인혁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평생 연구해서 성공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에 그는 뿌듯해하는 모양이었다.
유서준은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과연 구인혁의 계획이란 게 뭘까?”
“친구인 유서준의 자살 방지겠지.”
“그것뿐일까?”
“제이의 외환위기를 막으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사회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자살자가 속출한다고 했으니…….”
두 사람은 동시에 침묵에 잠겼다.
구인혁은 자신이 개발한 타임머신이 과거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아마 과학자인 구인혁은 학문적인 호기심에 그것을 개발했겠지만,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한두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게 아니라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다는 사실 말이다.
“후아…….”
구인혁이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아침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온갖 상념이 구인혁의 머릿속에서 엉켜 들었다. 그 핵심은 편지에 나타난 구인혁의 계획이었다. 과연 그게 뭘까.
이윽고 구인혁이 말을 꺼냈다.
“내 생각에 단순하게 위기에 빠진 국가나 사회를 구하기 위해 너에게 미래의 물건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지 않아. 그런 것은 나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거든. 내가 개입했다는 것은, 그것도 위험한 타임머신을 가동해서 미래를 바꾸려 했다는 것은…… 이건 미래의 내가 뭔가 사고를 쳤다는 뜻이야.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을 리가 없지.”
“응?”
유서준은 구인혁의 말을 되새겼다.
구인혁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타임머신을 개발했다고 가정해봐. 분명 테스트를 해보겠지? 그런데 이런 심각한 편지를 넣어 이런 심각한 문제를 갖고 테스트를 할까? 그건 아닐 거야. 즉 이 일이 타임머신이 일으킨 첫 번째 사건이 아니란 말이지.”
구인혁은 편지가 쓰인 그 배경을 고민한 듯했다. 다시 그의 말이 이어졌다.
“대충은 알 것 같아. 아마 내가 그 외환위기를 저질렀을 거야. 내가 타임머신을 사용해서 무엇을 했을지 모르지만, LTCM이란 곳을 도왔고 그 결과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로 나타난 거지. 그게 타임머신을 이용한 첫 번째 결과이고 두 번째가 아마 이 다이어리일 거야. 그사이에 또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유서준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했다.
미래의 구인혁은 자신의 행동 결과로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2027년 12월 그 시점에서 볼 때 다이어리를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는 의미인데…….
유서준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구인혁에게 물었다.
“타임머신이나 시간여행으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거야?”
“응, 지금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널 보면 그렇다고 봐야겠지.”
“과거가 바뀌면 미래가 영향을 받아 바뀌겠지?”
“응.”
유서준은 약간 혼란스러웠다. 현재와 미래의 아니, 과거와 미래의 인과관계가 어지러웠다.
“만일 지금 네가 타임머신 연구를 중단하면 어떻게 될까?”
유서준은 구인혁과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 아냐?”
“그렇지. 이 다이어리도 존재가 사라지고.”
“그게 최선 아닌가?”
두 사람은 바람을 쐬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구인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한 다음 다시 설명했다.
“백투더퓨처라는 영화 기억나?”
마이클 제이 폭스가 열연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백투더퓨처는 작년인 87년 여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개봉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다.
주인공이 어떤 박사가 개발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아버지 세대로 돌아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을 이어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내년 89년에는 주인공이 미래로 가는 백투더퓨처 2탄이 개봉된다고 하여 벌써 팬의 관심이 뜨거웠다.
“거기 보면 과거로 간 주인공이 과거를 변화시키면 미래에서 가져온 사진에서 본인이 사라지거나 그런 장면 나오잖아? 즉 과거의 변화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
유서준은 영화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런 장면이 있긴 했다.
“과거와 미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거구나.”
“그렇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구인혁은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만일 내가 개발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그 사건은 터지지 않을 거야. 너도 변화가 없을 거고. 아마 이 다이어리에 적한 일상이 너의 원래 모습일 텐데 만족스러워?”
유서준은 다이어리의 내용을 떠올렸다.
잃고 얻는 주식매매를 계속하며 항상 돈에 쪼들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나중에는 고향의 땅을 팔아치워 주식매매를 계속했다. 훗날 약간 수익을 낸 것 같긴 했지만 다이어리에서 드러난 2016년까지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다. 그러다 2027년 난데없이 SJ 투자금융 파산이 언급되었다.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어.”
유서준은 한마디로 정의했다.
구인혁이 긴 숨을 내쉬었다.
“후, 비슷한 고민을 미래의 구인혁도 했을 거야. 가능했다면 미래의 구인혁은 과거의 구인혁에게 연락해서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못하게 알렸을 거야.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그리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난 미래의 그가 최고의 방법을 고안했었다고 생각해.”
구인혁의 성격으로 보아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 장애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났다.
구인혁은 타임머신의 개발에 성공해야 하고 유서준은 다이어리를 이용하여 부를 일군 다음 미래에 다가올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