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41)
십일성천을 만들어낸 저 황금률의 드루이드 말이다.
‘······ 너는 어떤 절대적인 개념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게냐?’
십일성천과 같은 시간의 힘일까?
아니면 아예 다른 개념일는지.
무엇이 되었든, 진리를 위협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잊힌 신은 비로소 인정했다.
저 존재야말로.
-내 낭군님이 되려무나, 그대여.
······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그녀가 기다리고 기다려온,
이곳에 존재하는 그 어떤 영혼보다도 더욱 탐나는 영혼이라는 걸.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보다도 말이다.
가증스러운 두 여신 따위는 아예 보이지도 않을 만큼.
뺏고 싶다.
갖고 싶다.
잊힌 신의 눈이 투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낭군님?’
······ 정말 난데없는 프러포즈였다.
자신의 남편, 혹은 연인이 되라는 말.
여태껏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눈빛도 달라졌다.
부담이 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그 간악하고 가증스러운 여신들은 그대를 이용할 생각뿐이다. 하지만 나는 달라. 내 전부를 바쳐 그대를 지고지순의 반열에 올려놓으마.
호칭도 ‘아이’에서 ‘그대’로 바뀌었다.
느닷없는 변화에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아무래도 진리의 바깥에 있는 십일성천의 존재가 잊힌 신의 태도를 변화시킨 모양이었다.
지고지순의 반열.
최고위의 신으로 만들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즉시 답했다.
“거절한다.”
전부를 걸고 대결하는 와중이다.
투쟁할 대상이지, 반쪽을 찾는 여정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처음 만났던 ‘잊힌 신’ 때도 느꼈지만, 잊힌 신들은 하나같이 어그러져 있었다.
사도의 제안이 아닌 건 의외지만, 잘못 선택했다가 그대로 코가 꿰일 수도 있는 노릇.
-······ 여신들 때문이냐? 허나, 잘 생각하거라. 그 간악한 년들은 배신을 일삼아 그대를 끝내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 정도면 자격지심의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내가 알고, 빌헬름이 아는 ‘두 여신’은 결코 배신을 일삼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을 희생하면 희생했지.
처음에는 여신을 증오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악신이다.’
저 잊힌 신의 정체가 확실해진 지금, 더 이상 궁금해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잊혀졌으나, 잊혀지기 전 저 존재는 악신이었을 게 분명하다.
상대를 저주하고 제물로 바쳐 어둠의 힘을 강화하는 존재는 악신뿐이었으므로.
게다가 내가 아는 악신들은 가장 어그러진 존재들이었다.
잠시의 미혹에 속아 그 힘에 손을 댄다면, 더 깊은 심연으로 빠질 뿐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거절한다.”
하여, 거절했다.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이 정도로 철벽을 쳤으면 내 의사는 확실하게 알아들었을 터.
-마지막으로 물······.
“거절한다.”
-세 번이나······!
그 순간이었다.
스으으으으으.
짙은 검은색 연기가 ‘잊힌 신’에게서 마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잊힌 신의 두 눈은 완전히 새까맣게 변했고, 등 뒤에선 두 장의 거대한 검은색 날개가 솟아올랐다.
머리 위로는 ‘검고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검은 태양에 핏빛처럼 붉은 점들이 마구 떠 있는 모습.
흑화했다.
······ 한데, 저 태양의 형태가 무척이나 낯이 익다.
‘앙그라 마이뉴?’
4대 악신 중 하나, ‘앙그라 마이뉴’의 상징이 바로 저 검고 붉은 태양이었으니.
혹, 앙그라 마이뉴와 무슨 관계가 있던 악신인 걸까?
곧이어 완전하게 변해버린 잊힌 신이 나를 향해 말했다.
-··· 나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한기가 흘러나오는 음성.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음울하며 어둡다.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저게 바로 ‘잊힌 신’의 진정한 모습이리라.
그으으으으으-!
고오오오오오오-.
또한, 변한 것은 잊힌 신만이 아니었다.
곧이어 ‘잊힌 신’이 지닌 괴수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13마리의 ‘혼’이 마침내 하나가 되며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지고의 혼.
가장 강력한 형태로.
“뭐, 뭐야 저 모습은?”
“괴수가······ 아니잖아?”
보고 있던 이들 모두가 기겁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완성된 모습이, 너무나도 예상 외였으니까.
도리어 익숙했다.
누구나 알고,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형상.
그 모습은 분명······.
【지고의 혼, 시초의 인간】
······ 인간이었으니.
*
《‘백왕(멸왕 모크)’가 승리했습니다!》
허드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과 진배없었다.
압도적인 차이로,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해 패배했다.
하지만 생각보다의 상실감은 없었다.
‘가능성을 봤으니까.’
자신의 전부를 쏟아넣었다.
그리하여 결과를 내었고, 가능성을 보았다.
몬스터 혼이 ‘엔젤링’으로 진화하며 허드슨 역시 진화한 것이다.
“소질이 있군.”
그때였다.
반대편에 서 있던 백왕이, 불현 듯 입을 열었다.
누구에게 한 말인지 순간 의아했으나 곧이어 허드슨은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백왕이 다시금 말했다.
“너는 재능이 있다, 인간.”
“제게 무슨 재능이······?”
“너는 너 자신보다 누군가를 키우는 게 체질이다. ‘엔젤링’은 우리 백호족도 극소수만 진화시키는데 성공한 ‘진화의 상징’이니.”
“······.”
허드슨이 다시금 자신이 지닌 ‘몬스터 혼’을 바라보았다.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엔젤링은 단순한 몬스터와 거리가 멀다.
겉보기엔 날개달린 슬라임에 불과하나, 저것은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백호족도 인정하는 진화의 상징!
“그것은 너의 역량에 따라 ‘엄청난 괴물’이 될 수있다. 잘 키워보도록.”
“··· 멸왕 모크보다 말입니까?”
“뭐?”
허드슨의 대답에 백왕이 순간 당황하여 되물었다.
하지만 허드슨의 표정은 굉장히 진지했다.
방금전 겪은 저 멸왕 모크의 힘은 경천동지라는 말이 실로 어울렸다.
이곳에서 대결을 펼치는 그 어떤 몬스터 혼보다도 파격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잊힌 신도, 박현명이 진화시킨 존재들보다도 더욱 인상이 깊었다.
만약 그보다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하하! 가능성은 있다. 엔젤링은 우리도 잘 모르니. 백호족도 닿지 못한 영역이 틀림없이 있을 테지.”
백왕이 어깨를 으쓱하며 크게 웃었다.
엔젤링은 진화의 상징이지만, 그것을 만드는데 성공한 백호족이 거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엔젤링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백왕에게 인정받자 허드슨의 두 눈에 광명이 깃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왕은 저 멀리있는 황금률의 드루이드와 잊힌 신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모든 괴수가 합쳐지며 만들어진 형상.
그 형상이 만들어지자마자 절로 오한이 들었으므로.
‘시초의 인간이라······.’
얼마나 강한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저 불길할 따름이다.
저토록 불길한 인간은 이전에도 본 적이 없었다.
확실한 건, 근질근질하다는 것.
마음 같아선 그가 직접 싸워 보고 싶을 정도였다.
뿐만인가.
이곳에서의 대결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처음에는 싸울 만한 놈이 안 보였는데, 상대들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도, 잊힌 신도.
그리고 또 한 명.
예상을 웃도는 의외인 자가 있었다.
‘앤드류.’
자신과 함께 태초의 숲에서 엘프들을 도왔던 인간.
비록 타락했으나, 앤드류의 힘은 백왕에게도 꽤 인상적이었다.
한데, 그 이상으로 특이한 개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머지않아 눈앞으로 안내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5강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남은 한 명은 ‘데빌 언더 나이트(90등급, hp 5,000,000)’와 대결을 치르게 됩니다.】
【대진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잊힌 신(시초의 인간) vs 앤드류(어둠의 심장)】
【황금률의 드루이드(십일성천) vs 백왕(멸왕 모크)】
【파뷸라(광신의 사냥개) vs 데빌 언더 나이트】
‘드디어!’
백왕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한없이 고대하던 녀석과의 대결이 마침내 성사되었으니!
녀석을 꺾고, 잊힌 신마저 꺾어, 백왕 자신이 정점에 설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최강임을 증명하리라.
네놈, 오주력이냐?
-너는 왕의 피를 이었단다.
-백호족의 왕이 되어 북부를 이끌 거라!
······ 지금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
모질게 자신을 매질하던 그들의 한(恨)이.
‘왜 갑자기······.’
백왕은 한차례 고개를 저었다.
느닷없이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으니까.
-돌아보지 마라.
-도망치지 마라.
-꿋꿋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게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백왕이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시절.
이제 막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가.
······ 지금이야 북부에서 백왕을 거역하는 이는 없으나, 그때만 하더라도 백왕은 잡아먹기 좋은 사냥감에 불과했으므로.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탓에 도망치기 급급했으며, 겁이 많아 언제나 숨을 자리부터 확인하던 그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부터 자신의 피해와 관련해선 미래시라 불릴 정도로 감이 좋았다.
승리와 패배를 싸우기 전부터 이미 안다.
하여, 오직 승리하는 자리에만 나섰다.
굳이 패배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됐다.
무적, 무패의 제왕.
그렇게 북부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며 크람델을 다스렸건만.
‘내게 유일하게 패배를 안겨준 건 빌헬름뿐이었지.’
처음이었다.
그토록 짙은 냄새를 풍기는 놈은.
먼발치에서 놈을 봤을 때, 백왕은 그 즉시 알았다.
절대로 놈과 정면으로 싸워선 안 된다고.
하지만 정면대결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잡히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문제는 빌헬름이 사주력을 포함한 크람델 전역을 볼모로 붙잡은 것이다.
백왕은 그때 처음으로, 패배가 확정된 자리에 섰다.
그는 북부의 왕.
다스리는 자들 없이 왕으로서 군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리고 패배했다.
‘그 패배는 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허나 쓰라린 아픔도 잠시.
결과적으로 백왕은 그 덕에 성장할 수 있었다.
백호족의 진정한 능력을 일깨웠다.
마치 운명처럼.
왕으로서의 선택을 하자 왕의 능력을 각성한 것이다.
‘빌헬름. 놈과는 다시 붙어보고 싶군.’
만약 다시 빌헬름을 만난다면 다시 한번 붙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는 피하지 않을 각오가, 자신이 생겼으니.
“황금률의 드루이드. 너에겐 묘한 냄새가 난다.”
킁킁.
한차례 냄새를 맡은 백왕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는 승리의 냄새를 맡았다.
강렬한 승리의 감각.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묘한 냄새가, 하나 있었다.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지?”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의문을 표했다.
물론 일반적인 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깊게 있는 존재 자체의 냄새에 관한 것이다.
백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이나 익숙한 냄새다. 오주력······ 그 까마귀의 냄새가 왜 너에게서 나는 걸까?”
처음부터 그랬다.
명예의 세계수가 있는 곳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까마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다른 자들은 맡을 수 없는.
오직 각성한 백왕만이 맡을 수 있는 녀석의 냄새가 사방에서 풍겨댔다.
그리고 그 냄새를 지니고 있는 게 황금률의 드루이드라는 걸 알아봤을 땐 순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까마귀가 아니니까.
그 칠흑의 까마귀가 풍겨대던 악취와 한없이 어두운 마력 따위는 일절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도리어 반대다.
신성하고 또 신성한 자.
그런데도 왜, 황금률의 드루이드에게서 오주력의 냄새가 나는가?
마음 같아선 대놓고 묻고 싶었다.
네놈, 오주력이냐고.
“······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기야··· 오주력 그 까마귀가 감히 황금률의 드루이드로 변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