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56)
··· 작동시키라는 명령도 없었건만.
지이이잉!
“왜, 왜이래?”
“누가 가동시켰어?!”
워프가 개방됐다.
주변을 지키던 성기사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가동된 게 십여년이 훌쩍 넘은 워프다.
그게 왜 갑자기 강제로 가동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 나온다!”
“저건······!”
······ 워프를 타고, 누군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다수가.
“뭘 타고 넘어온 거지?”
“용?”
“아, 아니야. 저건 페어리 드래곤이야······!”
“페어리 드래곤······?!”
하나같이 페어리 드래곤을 탄 채로 말이다.
일반 용종도 아닌 보다 상위의 종.
이미 멸절했다 알려진 신화 속의 드래곤이다.
그 숫자가 무려 열 마리를 훌쩍 넘겼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스럽다.
성기사들조차도 어쩔 줄을 몰라할만큼.
그때였다.
무리의 중심에 선 남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원탁의 기사단이다. 나는 아벨로프이며 기사단의 부단장이니. 너희의 교황을 만나러 왔노라.”
내가 원탁의 주인이다.
원탁의 기사단!
빌헬름을 필두로 한 명실상부 최강의 기사단.
하지만 정작 단장 빌헬름과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를 제외하면, 다른 단원의 이름이 알려진 예는 없다시피 했다.
마치 유령처럼.
수많은 전장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유령 기사단’이 바로 그들이었다.
약소국이었던 발란 왕국에서 탄생한 기적!
발란 왕국이 지금의 틀을 갖추게 된 건 사실상 ‘원탁의 기사단’ 덕분이라 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들이 발란 왕국 소속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용병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괴물들!
-이름도 없고, 출신성분조차 알 수 없는, 전장의 귀신.
그들이 성장한 곳은 전장이었다.
전쟁 중인 왕국에 돈을 받고 대신 전투를 치러주는 용병 기사단.
말이 기사단이지 용병단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일개 용병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돈만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명분을, 명예를 따졌기 때문이다.
허나, 전장에 나서는 순간.
그들은 악귀(惡鬼)가 되었다.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취급할 수 없는 악의 병기였다.
싸우고, 죽이며, 오로지 피를 보는 데 혈안이 된 흉악한 귀신들!
-원탁의 기사단은 빌헬름이 아니었다면 흉신악살의 소굴로 기억됐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소리마저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다.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기에 도리어 빌헬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었을 뿐.
전장에서 그들을 마주한 병사들은 하나같이 전의를 상실했다.
어디서 이런 놈들만 골라 모아둔 건지 신기할 수준이었으니.
“원탁의 기사단?”
“부단장 아벨로프······?”
그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당연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원탁의 기사단은 사라졌다.
대원정과 함께 대다수가 명을 달리했을 터.
하물며 부단장의 이름 또한 처음 들어본 것이다.
애초에 빌헬름과 세렝게티를 제외하거든 부단장마저도 이름이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원탁의 기사단이고, 부단장 아벨로프라고?
하지만 단순히 거짓말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우선 이 상황.
폐쇄된 워프를 어떻게 강제로 열고 출입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아벨로프라 칭한 남자의 기세가.
그 강렬함이, 성도 전체를 잡아먹는 듯했으니.
“잠깐. 저 여기사는 세렝게티 아닌가?”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
“어, 맞네!”
그때였다.
모두가 부단장 아벨로프의 뒤를 바라보았다.
아벨로프의 존재감에 묻혀 잠시 보이지 않았으나, 그 뒤에 있는 건 분명히 순백의 기사 세렝게티다.
투구를 쓰고 갑옷을 착용했대도 그녀의 빛나는 태는 숨겨지지 않았다.
세렝게티를 확인한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커졌다.
“맞아. 얼마 전에 발란 왕국에서 프리드릭 왕을 물러나게 했다는 그······!”
“순백의 기사가 함께한다는 건······ 정말 원탁의 기사단이라는 말이잖아.”
“설마 원탁의 기사단이 부활했다는 거야?”
“그런데 그들이 왜 성도 아드리움에?”
세렝게티는 현재 판게니아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폭풍처럼 주변국들을 점령해가던 아이언 왕국의 프리드릭 왕.
그가 세렝게티와 결전을 벌인 뒤 한발 뒤로 물러난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빌헬름의 목격담이 한 번씩 들어오던 게 그럼······.”
“··· 소문이 사실이라는 거네?”
“말도 안 돼. 진짜로 전부 살아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아는 용병이 분명히 몇 명은 죽는 걸 직접 봤다고 했어!”
“죽여도 죽지 않는 유령들······!”
꿀꺽!
사람들의 목울대가 너나 할 것 없이 울려댔다.
원탁의 악귀들은 죽여도 죽지 않는다.
그 소문이, 어쩌면 단순한 소문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들은 정말 죽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의아한 건 왜 그들이 이곳에 나타났냐는 점이었다.
여신교의 성도 아드리움에 말이다.
“······ 성스러운 성도에 무단으로 침입한 놈들이 누군가 했더니, 너희였나.”
그 순간이었다.
마치 공기가 울리듯 사방을 진동케 하며 나타난 자.
“말론님이시다!”
“최강의 성기사!”
“와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교황의 직속이자, 가장 강한 성기사로 이름이 드높은 말론.
그가 성기사들을 이끌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절대무적.
무패의 괴물.
1년에 한 번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든 그가 나타났으니 환호할 수밖에.
그러나 말론은 말론대로 어이가 없었다.
“분명 대원정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는 알았다.
이름은 몰랐지만, 저들이 진정 ‘원탁의 기사’라는 것을.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원정에서 그들은 죽었다.
단순 목격담만이 아니라, 상당히 높은 신뢰성을 바탕으로 말론이 직접 조사하여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교황을 만나러 왔다.”
“성하께선 바쁘시다. 무단 침입자들을 만날 시간 따윈 더더욱 없으시지.”
“그렇다면 강제로 찾아갈 수밖에.”
“······ 나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말론은 피식 웃고 말았다.
부단장 아벨로프.
놈의 이름은 처음 들어도, 놈을 만난 건 처음이 아니다.
전장에서 한 번 아벨로프와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리고.
“너는 이미 옛적에 내게 패하지 않았던가?”
아벨로프는 말론에게 패배했다.
소문처럼 괴물 같은 놈이긴 했지만, 말론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로 허망하게 목을 내줄 위기에 처했다.
세아 성녀가 막아서지 않았다면, 놈은 자신에게 이미 죽었으리라.
그런데 단장인 빌헬름이 직접 찾아와도 가소로울 판국에 아벨로프라니.
다시 싸워봤자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그 찰나.
스릉!
부단장 아벨로프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여신의 죽음을 은폐하고, 사도외신의 손을 잡은 교황에게 죄를 묻고자 우리 원탁이 직접 찾아왔으니, 막아선다면 한패로 보고 모조리 베어주마.”
단호하게.
한 치도 떨리지 않는 음성으로.
그 말은 성도 전체에 퍼져나갔고.
“저, 저게 무슨 소리야?”
“여신께서 죽으셨······.”
“어허, 그런 불경한 소리 말게!”
“성하께서 사도외신의 손으 잡을 리가 없지 않나!”
··· 사람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여신이 죽었을 리 없다.
하물며 교황이 그 사실을 은폐하고, 다른 신과 손을 잡는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순간, 말론의 표정이 잔뜩 굳어버렸다.
“너는 정말 불경하군. 아벨로프······ 그리고 네놈들은 전원 참수형이다.”
스릉!
최강의 성기사, 말론이 검을 들었다.
도저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전부 토막을 내버리리라.
여신교 최강의 성기사 말론과 원탁의 기사단 부단장 아벨로프의 대결.
갑작스러운 최강자들의 싸움에 모두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
아벨로프는 긴 꿈을 꾼 기분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기 전까지의 수많은 기억이 반복되어 스쳐지나갔다.
-디아블로님의 선택을 받은 아이야.
-너는 선택받았다. 죽음을 받아들여야한다.
본래 그는 악신의 제물로 태어나 생을 마감할 운명이었다.
가장 강력한 악신이라 칭해지는 4대 악신, 그중 디아블로에게 먹히는 숙명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벨로프는 희망을 모른다.
그런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기사왕, 빌헬름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벨로프. 너에겐 썩히기 아까운 재능이 있다. 나와 함께 하겠느냐?
악신의 교단을 모조리 뿌리뽑은 빌헬름은 아벨로프에게 제안했다.
그만이 아니라 다른 단원들 모두에게 말했다.
비록 제자라 불리진 않았으나, 그들은 빌헬름의 제자와 다를 게 없었다.
그와 함께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동고동락하였으니.
검을 휘두르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해줬으니까.
이름 따윈 알려지지 않아도 좋다.
그저, 빌헬름과 함께 검을 휘두를 수만 있다면.
그가 써내려가는 전설을 옆에서 지켜볼 수만 있다면!
이 한 목숨, 바쳐도 상관 없었다.
‘나는 죽었을텐데.’
대원정에서 아벨로프는 죽었다.
기사왕 빌헬름이 마왕에게 닿을 수 있도록 온 몸을 불살랐다.
하지만······.
살아난 것이다.
세계수는 그들에게 새로운 육체를 선물했다.
더할나위 없이 강력한 신체를.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보다 더 완성된 강인한 몸을!
“이, 이게 어떻게 된······!”
말론은 두 눈을 부릅떴다.
최강의 성기사라 칭송받는 그이건만.
그의 검이, 닿지 않는다.
도리어 아벨로프의 검이 말론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단순히 육체만 완성된 게 아니다.
기술적으로도 성장했다.
그것도 비교자체가 불가할만큼.
‘제물로 길러진 탓에, 내 몸은 나의 재능을 따라오지 못했다.’
아벨로프는 언제나 아쉬웠다.
악신의 제물로 선정될만큼 그의 재능은 훌륭했으나.
악신에게 바쳐야 했기에, 그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갈고 닦지 못했다.
빌헬름에게 발견되었을 땐 이미 온 몸이 굳은 뒤였다.
다른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
세계수에 의해 완성된 육체를 갖게 된 지금, 그의 재능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론을 압도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스컥!
빛으로 이루어진 말론의 검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말론의 목에 아벨로프의 검이 닿았다.
“역시 약해졌군.”
아벨로프가 실망어린 목소리를 내었다.
자신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말론 자체가 약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성기사 역시 신의 힘을 부여받은 자.
여신이 죽은 지금, 성기사의 힘도 자연스럽게 약해질 수밖에.
“이 녀석이 죽는 걸 보기 싫다면, 길을 열거라.”
“······ 감히 말론 단장님을······!”
성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길을 여세요.”
그 사이를 막아서며 나타난 존재가 있었으니.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기함을 터트렸다.
“세, 세아 성녀님?”
“성녀님께서 나설 자리가 아닙니다.”
침입자들을 막는 일이다.
성녀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아 성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나서는 게 아닙니다.”
그리곤 이어서 말했다.
“교황 성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원탁의 기사들이여.”
*
교황청.
열 두명의 추기경과 함께, 그 가운데에 앉아있는 교황.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원탁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 이야기는 들었다. 나를 찾았다고?”
노쇠하며 피로한 얼굴.
검버섯이 잔뜩 핀 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