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60)
섬뜩하게 웃으며 대공자 나율량의 눈알을 들어 보이는 목경운.
순간 할 말을 잃은 섬독왕 백사하가 황급히 나율량의 오른쪽 눈을 지혈하면서 다그쳤다.
“무슨 짓이냐?”
백사하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을 마치 그 외에는 전부 다 된다는 걸로 착각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이건 좀 성가시거든요.”
“성가셔?”
이런 목경운의 말에 백사하가 문득 몇 년 전에 벽력권왕 원병학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백 어르신. 혹시 대공자와 비무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대공자 말인가? 아니. 없네. 요즘 부쩍 무위가 진보했다지?] [네. 해서 비무를 겨뤘는데 놀랍더군요. 예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호오. 그 정도인가?] [네. 그런데 무위도 그렇지만 특이한 눈을 가졌더군요.] [특이한 눈?] [네. 한쪽 눈이 은색 빛을 띠고 나서는 제 초식을 보다 수월하게 읽어내더군요.] [초식을 수월하게 읽어내? 눈에 특이한 힘이라도 있단 말인가?]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물론 대공자 본인이 그걸 밝힐 리는 없겠지만요.]벽력권왕 원병학은 대공자 나율량의 적수공권 스승이었다.
시혈곡의 수석패 세 개를 얻은 혜택으로 가르침을 청한 대상이 그였었다.
해서 오왕 중에서는 나율량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이기도 하다.
이에 백사하가 혀를 차며 말했다.
“대공자의 눈에 대해선 얼핏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정말로 그게 특별한 눈이라면 더욱 널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나겠구나.”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적이 되었으니까요.”
목경운은 나율량에게서 동질감을 느꼈기에 알 수 있었다.
놈은 깨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아마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아쉽네.’
차라리 지금 죽이는 편이 훗날을 위해 좋으리라.
하지만 백사하의 말대로 회주의 제자를 죽이게 되면 그자와 곧바로 척을 지게 될 것이다.
회주에게서 알아낼 것이 있기에 지금 당장에는 죽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놈의 힘을 그나마 약화시키는 편이 나았다.
그러다 문득 목경운은 이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령.
-말해라.
-청령이 이 자의 몸을 차지하는 건 어떤가요?
생각해보니 청령이 이 자의 몸을 차지하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듯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주의 첫째 제자인 대공자 나율량이 아닌가.
그를 통제할 수 있다면 회주와 접근할 수도 있고, 나율량이라는 성가신 적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청령이 뜻밖의 말을 했다.
-무리다.
-네?
-무리라 하지 않았느냐.
-어째서죠?
-깨달음을 통해 벽을 뚫고서 화경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체내 기운이 정기신을 관통하여 육신뿐만이 아니라 혼마저도 더욱 견고해지기에 빙의가 불가능해진다.
-······시도해본 적이 있나요?
-안 해봤을 것 같으냐?
청령의 말투를 들어보니 한 번은 시도해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대공자 나율량에게 빙의를 시켜서 통제하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섬독왕 백사하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공자와 원수를 지게 되다니.”
백사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예의상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송구스럽습니다. 저 때문에 사부님께서도 난처하게 되셨습니다.”
“난처? 그래. 난처하다면 난처하겠지. 하나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 하겠느냐? 노부는 절대로 노부의 식구를 버리지 않는다.”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상대는 다른 이도 아니고 회주의 첫째 제자인 대공자 나율량이다.
그의 광기와 냉혹함을 떠나서 지지하는 자들만 하더라도 천지회 내에서 4할에 달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최대의 적을 만든 것이다.
냉정하게 본다면 방금 전에도 자신을 돕지 않고 그 자리에서 파문시켰다면 대공자 나율량과 척을 지는 일은 없었을 거다.
게다가 이 말은 지금 생각해도 의외였다.
‘식구를 버리지 않는다라···.’
보기와 다르게 백사하는 상당히 의리를 중시하는 듯했다.
제자로 삼은 자신 역시도 식구로 보는 건가?
의아해하는데 백사하가 말했다.
“후우.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정리를 하자꾸나.”
“정리요?”
“그래. 딱 세 가지를 물을 것이다. 이 사부를 신뢰한다면 답변하거라.”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목경운은 어떠한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나율량과 대립을 한 백사하였기에 지금으로서는 한 배를 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적당히 정보를 공유해서 그를 한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맞았다.
그때 백사하가 물었다.
“대공자와는 어쩌다 싸우게 된 것이냐?”
“대공자가 먼저 저를 공격했습니다.”
“뭐? 대공자가 먼저 공격해? 대체 무슨 이유로 말이냐?”
대공자가 비록 타인과 다른 면이 있다고는 하나 상당히 합리적인 인간인 걸로 안다.
그런 자가 왜 갑자기 목경운을 먼저 공격한 것일까?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이 사부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정말입니다. 한 가지 짐작 가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짐작? 말해 보거라.”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답했다.
“저를 경계하는 것 같았습니다.”
“경계?”
이 말에 섬독왕 백사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러다 대공자 나율량과 목경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신음성을 흘렸다.
“흐음.”
사실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자신 역시도 목경운의 현재 무위를 보며 놀라지 않았던가.
불과 한 시진 전만 초절정의 경지였던 그가 어느새 벽을 뚫고서 화경의 경지가 되어 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백사하 그조차 벽을 뚫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던가.
자그마치 수십 년 가까이 수련을 했음에도 이제야 겨우 벽을 뚫게 되었다.
한데 고작 17세에 불과한 목경운이 이를 해냈다.
현 무림에 있어서 가장 최연소에 가까운 나이에 절세고수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아!’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깨달음의 단초를 주었던 것이 목경운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화경의 경지에 올라있었던 걸까?
이에 백사하가 물었다.
“벽을 언제 뚫은 것이냐?”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 물어도 되겠느냐?”
“대공자와 싸우던 도중입니다.”
‘!!!!!!!!’
이런 목경운의 말에 순간 백사하의 턱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지고 말았다.
이미 벽을 뚫었을 거라는 예상이 벗어났다.
하면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우다가 도중에 깨달음을 얻었단 말인가?
“하······.”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경탄만 나올 뿐이었다.
이 아이는 천운(天運)을 타고 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 천운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타고난 자질이 없다면 타인과 겨루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백사하가 흥분을 가라앉히고서 이내 물었다.
“······이건 두 번째 물음과 관련이 있다. 파마독경은 대체 어찌 익힌 것이냐?”
그렇지 않아도 이것도 굉장히 궁금하던 차였다.
고작 비급을 한 번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 목적은 목경운에게 파마독경의 뛰어남과 대단함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그의 물음에 목경운은 잠시 고민했다.
‘흐음.’
평소라면 이 재능을 숨겼겠지만 이미 백사하가 모든 걸 보고 말았다.
어차피 숨길 수도 없었다.
이에 별수 없었기에 목경운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한 번 보고 익혔습니다.”
“······뭐?”
백사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비결을 한 번 보여줬을 뿐인데 그걸 보고서 익혔다고?
순간 백사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정도로 오랫동안 무공을 연마한 자는 어지간한 무공을 접하게 되면 그 원리를 금방 이해할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고작 한 번 본 걸로 무공을 습득할 수 있냐고 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무공에는 단순히 초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승 무학으로 갈수록 초의, 즉 초식마다 담긴 의지나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는 그것을 완벽하게 익힐 수가 없었다.
백사하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정말 한 번만 보고서 그것을 익혔다는 것이냐?”
“그냥 읽는 것만으로는 힘들죠. 비급을 보면서 필적에 담겨있는 초흔을 심상으로 읽어내고 그것을 머릿속에 담았습니다.”
“심상? 허어···.”
백사하가 탄성을 흘렸다.
고작 17세에 불과한 녀석이 심상마저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웠다.
자신조차 초절정의 극에 이르러서야 초흔을 보고서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어린 녀석이 그걸 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괴물이로구나.’
백사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는 범인들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그야말로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이었다.
백사하가 나율량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해가 가는구나.’
그가 왜 이렇게까지 목경운을 경계했는지 알 것 같다.
송곳이 날카로우면 자루에서 튀어나온다.
이 아이의 재능이 딱 그러했다.
비결을 단 한 번 읽고 나서 터득하는 괴물 같은 오성에 싸우는 도중에 깨달음을 얻어 벽을 뚫어버리는 말도 안 되는 무위의 진보마저 갖췄다.
두려움, 아니 전율마저 느끼게 할 정도의 무재였다.
‘어쩌면 무림사에 다시없을 괴물의 탄생을 노부가 지켜보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이 정도의 괴물 같은 진보라면, 어쩌면 이십여 년 내로 무림의 정점이라 불리는 육천(六天)의 영역에 이를지도 몰랐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백사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클클.”
심지어 손발이 자신도 모르게 떨릴 지경이었다.
만약 목경운을 적으로 만났다면 필히 죽여야 할 재능이었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이 녀석을 제자로 받지 않았던가?
말년에 행운이 겹경사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노부에 이어서 파마독경을 대성한 자가 둘이나 생겼다. 더는 본가에 후계를 걱정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저 제자로 받는 걸로 만족하려 했던 그였다.
하나 이젠 정말로 목경운을 백가의 일원으로 받고 싶어졌다.
어차피 정파와 가문을 등지고 나왔다고 하니, 이 아이를 백가의 양자로 삼는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놈은 보물이다. 최고의 보물.’
너무 기뻐서 당장에라도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클클클. 좋다. 이 사부의 궁금증이 해소되었구나. 이제 마지막 물음이다.”
“궁금하신 게 많으시군요.”
“많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제 이 사부와 너는 한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로를 의지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
“······위기.”
위기라면 위기일 수도 있었다.
성가신 적을 만들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사부가 묻고 싶은 건 하나다. 이제 어찌할 것이냐?”
“어찌할 거냐고요?”
“그래. 대공자를 적으로 삼은 이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다.”
‘하나?’
뭔가 생각해둔 바가 있는 모양이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사부님께선 생각하신 바가 있으십니까?”
“생각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있겠느냐? 대공자가 후계자가 되면 너도 그렇고 우리 백가도 그 입지가 위험해지게 될 것이다.”
“······뭐 그건 그렇겠네요.”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느냐?”
“대공자가 아닌 다른 자가 후계자가 되게 해야겠지요.”
-딱!
백사하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래! 노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니라. 대공자가 아닌 다른 후계자를 밀어야 우리 사제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
“원래라면 대공자의 지지세력이 워낙 막강하기에 다른 두 후계자들에게는 기회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어떤 점이 말이죠?”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섬독왕 백사하가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선택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