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72)
-흠칫!
소녀가 놀란 눈으로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 뭐야? 나보다도 먼저 이 요력을 알아차렸다고?’
이매망량 중에서도 격이 요수 급에 이르게 되면 그 자신의 요력을 갈무리하고 숨길 만큼 영악해지는 것들이 넘쳐난다.
이런 요수들이 작정하고 요력을 숨긴다면 평범한 방사들의 수준으로는 알아차리기 힘든데, 이것을 먼저 눈치채는 것에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방월 급 이상의 방사인가?’
처음에는 목경운을 무림인이라 여겼던 그녀였다.
그래서 혹시나 목숨을 구해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도운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껍데기를 벗겨보니 무림인이 아니라 동종 업계 사람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말이 잘 통할지도 몰랐다.
소녀가 속삭이며 말했다.
“요력을 잘 감지하시네요?”
“그런가요?”
“저도 방금 이 요력을 알아차렸거든요. 이 정도로 요력 감지에 민감하다면 평범한 방사의 실력이 아닌데요. 어느 각 출신인지···.”
“쉿!”
“흡.”
이에 소녀가 또다시 숨을 참으며 입을 다물었다.
이것저것 말을 하면서도 시키는 건 곧잘 하는 소녀였다.
그때 청령이 목경운에게 말했다.
-토루인 게냐?
-토루?
-아까 중생 널 발굽으로 밟아 뭉개려고 하던 그것 말이다.
-아아······ 그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는 것 같네요.
-하나? 아! 흠원이다.
-흠원?
-그래. 놈도 토루와 마찬가지로 곤륜산의 이매망량이다. 어떤 의미로는 토루보다 상대하기가 훨씬 까다롭고 위험하다.
-요수 급 이매망량을 둘이라······.
생각보다 성가신 상황이었다.
괴수 급의 이매망량과는 싸워본 적이 있었지만 그 위인 요수 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요수가 어느 정도 힘을 지녔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물론 벽을 깨고서 화경의 경지에 올랐기에 요수들을 상대로 밀릴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신중을 기할 뿐이었다.
그때 소녀가 혀를 차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둘? 역시 소문이 사실인가보네요.”
“소문?”
“네. 삼안의 그 자가 요수 급의 이매망량 둘을 식신으로 다룬다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 소녀 생각보다 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한데 소저는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죠?”
“네?”
“들어보니 원살각 출신도 아니고 해선각이라고 했나요? 그곳 출신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 복장으로 이곳에 있는 거죠?”
“어음. 그, 그건 말이죠.”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소녀가 갑자기 안절부절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원래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고, 정체를 들켜서도 안 되는 입장이었다.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은 그녀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 그러는 당신은 뭐예요? 당신도 수상하기는 매한가지잖아요.”
“수상?”
“네. 당신도 원살각 출신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 삼안이 식신으로 당신을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죠?”
“모르죠.”
“네?”
“저는 그저 그가 먼저 제 목숨을 노렸기에 그를 죽이려 했던 것뿐이에요.”
“아아. 그런 이유였······ 네에? 잠깐만요. 당신이 삼안을 죽이려 했다고요?”
소녀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반문했다.
“뭐가 잘못됐나요?”
“잘못됐다기보다 그 자를 죽이려고 했다고 해서 놀란 거거든요.”
“그게 놀랄 만한 일인가요?”
“놀랄 만한 일이죠. 그 이형의 기물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데, 혼자서 그 자를 죽이려 한 거예요?”
“그렇게나 위험한가요?”
“당연하죠. 그 삼안의 손에 그를 제압하려고 했던 삼백 명의 방사들이 하룻밤 사이에 끔찍하게 몰살당했었다고요.”
‘!?’
삼백 명이나 되는 방사들이 죽었다고?
그렇게나 많은 방사들을 혼자서 감당할 정도로 주력이 강한 건가?
아니 애초에 영수(靈獸)를 단신으로 제압하여 봉인시킬 정도이니, 어지간한 방사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아까 전에 제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당신 죽었을 수도 있어요.”
“아아. 그것 참 고맙군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그녀가 뾰로통해진 얼굴로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치고는 되게 무미건조하네요.”
“그럴 리가요.”
“됐거든요. 아무튼 되게 간도 크시네요. 그런 괴물 같은 자를 혼자서 죽일 생각을 했다니. 스승님이 주신 호부(護符)를 가지고 있는 저조차도 멀리서 감시하는 게 다인데요.”
이런 소녀의 말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도 모르게 왜 이곳에 있는 건지 목적을 말하고 만 소녀였다.
이를 인지했는지 소녀가 얼굴이 빨개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아으. 이런 식으로 남의 정보를 빼돌려도 되는 건가요?”
“빼돌린 게 아니라 본인 입으로 직접 얘기하셨거든요.”
“아니. 그건···.”
“쉿. 조용히 하시죠. 계속 그렇게 시끄럽게 굴면 밖의 요수가 알아차릴 것 같군요.”
“······.”
이에 소녀가 발을 동동 구르던 것을 멈추고서 입을 꾹 다물었다.
소란스럽게 굴면 이매망량들에게 들킬 염려가 있었다.
이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어쨌거나 소저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서 그 삼안이라는 자를 감시했다는 거로군요.”
“······맞아요.”
어차피 제 입으로 말해서 들킨 마당에 속여서 뭘 하겠는가?
소녀가 순순히 답했다.
“혹 복수 때문인 건가요?”
“복수?”
“네. 그 자가 백 명이나 되는 방사들을 죽였다면서요.”
그 정도 수의 방사라면 소녀나 그 스승이라는 자와 관련된 이들도 있지 않을까?
이 말에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복수도 아니라면 대체 왜 그 삼안이라는 자를 감시를 하는 거죠?”
“위험해서요.”
“위험?”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그저 스승님께서 삼안이 머지않아 천기를 어지럽힐 거라고 해서 명을 받고 감시할 뿐이에요.”
“천기?”
천기(天氣)는 하늘의 기운이다.
방술에서 말하는 천기는 운명이나 세상의 이치 혹은 흐름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런 천기는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야 하는데, 이를 어지럽히게 되면 세상이 위태로워진다는 말이 있었다.
“네. 천기요. 아무튼 간에 저는 사사로운 이유가 아니라 대의로 여기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괜히 방해할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방해를 했던가요?”
“당신을 구하려다가 일이 이렇게 꼬였잖아요. 얼마나 힘들게 잠입했는데요.”
소녀가 자신의 시녀 복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떤 경로로 그곳에 잠입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아아······ 그렇군요.”
“······고작 그게 다예요? 에휴. 그냥 죽든 말든 내버려둘 걸 그랬네요.”
소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고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소저의 이름을 모르는군요.”
“제 이름요? 아 그렇네요. 제 이름은··· 아니다. 숙녀의 이름을 물어볼 거라면 그쪽 이름부터 밝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목경운요.”
“목경운?”
“네.”
“목가라 특이하네요. 저는 여수린이에요.”
“여수린? 예쁜 이름이네요.”
“예쁘다고요?”
“네.”
“그, 그런 입에 바른 말에 제가 좋아할 것 같나요.”
말과는 달리 그녀가 빨개진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가리며 쑥스러워했다.
-아주 단순한 계집이구나.
-그러게요.
보이는 것처럼 감정이 매우 잘 드러나는 유형인 것 같았다.
물론 이를 크게 개의치 않는 목경운이었기에 곧바로 화제를 돌려 본론을 말했다.
“여 소저. 아까 여기가 부엌이라고 했는데, 원살각의 본당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거죠?”
“네?”
“이매망량이 금방 쫓아온 걸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목경운의 말에 여수린이 이채가 띤 눈으로 답했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맞아요. 여긴 본당에서 대략 백장(百丈) 정도 떨어진 곳이에요.”
“백장?”
멀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였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아까 전의 그······ 입구를 만드는 술법으로 더 멀리 갈 순 없었나요?”
“어휴. 그게 쉬운 것 같나요? 이것도 스승님이 주신 이 보구(寶具)가 있어서 겨우 가능했거든요.”
여수린이 손가락에 끼워진 연결된 두 개의 반지를 보였다.
은빛 형태에 반지마다 두 개의 영롱한 녹옥이 박혀 있는 기물이었다.
흘러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보니 그녀가 왜 이것을 보구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걸로 이곳까지 거리를 좁히는 연기 문을 만든 건가요?”
“맞아요.”
“참 편리해 보이네요.”
“편리해 보여도 몇 가지 단점이 있어요.”
“단점? 그게 뭐죠?”
“미리 원하는 장소로 매개체를 정해놓지 않으면 백 장이 아니라 고작 이십여 장 거리 밖에 갈 수 없어요.”
“이십여 장? 많이 짧아지네요.”
절반도 아니고 거의 오분지 일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말했잖아요. 몇 가지 단점이 있다고.”
“그렇네요. 다른 단점도 있나요?”
“다른 단점요? 이 외에도 두 번 정도 연달아 쓰고 나면 최소 일각은 지나야 다시 보구를 쓸 수 있어요.”
“흐음.”
확실히 편리한 만큼 여러 제약이 있는 것 같기는 했다.
하긴 저런 보구에 거리나 시간 등의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이것 이상으로 위험한 물건도 없을 듯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잘만 쓴다면 상당히 유용할 것 같았다.
‘괜찮은 물건이네.’
이런 목경운의 시선을 느꼈는지 여수린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품속에 집어넣으며 경고하듯이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탐내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보구이니까요.”
“쓸 수 없다고요?”
“네. 혹시라도 저한테서 일 장 이상 떨어지게 되면 주력이 쇠해서 부서지도록 되어있거든요. 그러니까 괜히 탐내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아······.’
여수린의 이 말에 목경운이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내심 그녀를 죽이고 저걸 가져갈까 생각했는데 그런 거라면 의미가 없었다.
어쩐지 처음 보는 자신에게 순진하리만큼 보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게 의아하게 여겼었다.
어느 정도 방비가 되어 있으니 이야기해준 것이다.
그렇다는 건,
‘······단점을 일부 속이고 있을 수도 있겠군.’
말이 많고 성격이 오락가락했으나 이 여자는 멍청하진 않았다.
방술은 상당히 복잡한 학문이나 다름없기에 기본적인 머리가 받쳐 주지 않으면 터득할 수가 없는 영역이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숨기는 것도 분명 있으리라 여겼다.
빈틈이 많아 보일수록 경계해야 한다는 게 목경운의 지론이었다.
그때 여수린이 조용히 말했다.
“일각이 지난 것 같네요.”
“아? 그걸 쓸 수 있겠군요.”
“네. 아직 밖에서 이매망량들이 저흴 찾는 것 같은데, 이십여 장씩이라도 이동하도록 하죠. 다행히 주변 건물들 중에 이십여 장 내로 붙어 있는 것들이 있어서 시간을 좀 들인다면 원살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삼안이 크게 분노했으니 당분간은 그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말과 함께 여수린이 검지와 중지에 보구를 착용했다.
그리고 주력을 불어넣으며 보구를 사용하려고 하는데,
“잠깐만요.”
“네?”
“혹시 이것도 되나요?”
“이거라뇨?”
그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이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말했다.
* * *
-팍!
발길질에 바닥을 구르는 방월 조의공의 머리통.
그런 그의 머리통을 발로 찬 조태청이 다소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같은 놈이었다.”
그러자 이윽고 그의 얼굴 근육이 울룩불룩 움직이더니 이내 쉰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군.”
각주실에 속박되어 있는 방사 조의공.
혈해충(血解蟲)을 통해 주언의 사슬을 누가 걸어놨는지 알아내려 했었다.
그런데 그가 목이 잘려 죽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한 놈이었어.’
이 모든 게 같은 녀석이 저지른 것이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 탐욕이 넘치는 사제 조의공을 조종해서 원살각을 통제하려 했던 것도 그렇고, 청령급 이상의 원혼과 관계있는 것도 그렇고, 대담하게도 자신을 찾아와 목숨을 노렸던 것도 전부 같은 놈이었다.
-우둑우둑!
얼굴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조태청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중얼거렸다.
“간만에 사냥할 보람이 나는군.”
그간 그림자 속에 숨어서 스스로를 감춰왔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건드리다니 아주 겁을 상실한 놈이다.
오랜만에 사냥을 즐겨야 할 것 같다.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쳐봐라. 그래봐야 손바닥 안이라고···.’
-촥!
그 순간이었다.
조태청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날카로운 검은 무언가가 바닥을 뚫고서 위로 솟구치며 오른 팔꿈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화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툭!
그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끄으읍!”
팔이 잘려나가는 엄청난 고통에 조태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찰나에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망간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왔다고?
‘이놈?’
말도 안 될 정도로 영악한 놈이다.
보통이라면 암살에 실패를 했으면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 몸을 숨기거나 계속 도망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나타나 아래층 밑에서 거리를 두고서 자신을 저격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으득!
‘죽여버리겠어.’
바닥을 노려보는 조태청의 안면근육이 울룩불룩거리더니, 이내 이마가 갈라지려고 했다.
그런데,
-우우웅!
‘!?’
위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주력.
이에 조태청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려고 하는데,
-휙!
위에서 누군가 거꾸로 떨어지며 갈라지려 하는 이마에 전광석화처럼 단검으로 찔러버렸다.
-푹!
‘!!!!!!!!!!!’
갈라지는 이마에서 검은 피와 함께 흰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 틈에 위에서 떨어진 누군가가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탁!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는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목경운이었다.
“후우.”
목경운이 이마에 단검이 꽂힌 채, 비틀거리는 조태청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하······.’
이 광경을 4층 천장 가까이에 열려있는 둥근 연기의 문을 통해 여수린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