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73)
회색 수염의 한 그을린 얼굴의 노인이 허망하다는 눈빛으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이름은 구문혁.
검을 만드는 장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자였다.
‘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즉위식으로 떠들썩하고 화려할 거라 여겼던 대전은 온통 피투성이었고, 사방에 잘려나간 시신들이 쌓여있다시피 했다.
거의 수백여 명에 달하는 자들이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오? 류 소저.’
그렇게 엄청난 참사에 넋을 놓고서 대전을 둘러보던 구문혁의 눈이 커졌다.
구문혁이 황급히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곳의 한복판에는 붉고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류 소저!]그가 찾던 여검객,
오늘 회주 즉위식을 치룰 월맥의 류소월이었다.
구문혁은 몸을 숙여 황급히 쓰러져 있는 그녀의 맥을 짚었다.
그렇게 맥을 짚던 구문혁의 얼굴이 이내 굳어졌다.
‘이······이럴 수가.’
맥은 뛰지 않고 있었고 그녀의 체온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몸이 굳어있는 걸로 봐서 사후 경직이 진행되고 있었다.
망연자실하게 숨을 거둔 류소월을 바라보던 구문혁의 시선이 이윽고 그녀의 가슴 쪽으로 향했다.
‘심장이?’
피에 젖어 미처 몰랐는데 옷을 살짝 들어올려보니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가 비어있었다.
심장이 그대로 뽑혀나간 모양이었다.
-꽉!
구문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여인임을 떠나서 류소월은 그가 알고 있는 수많은 무림인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실력을 지닌 검객이었다.
심지어 벽마저 넘어서지 않았던가.
그런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허망하게 이리 목숨을 잃은 거지?
‘류 소저······.’
-우우우웅!
등에 봇짐과 함께 지고 있던 목함이 떨려왔다.
이에 구문혁이 중얼거렸다.
[······너도 알아차린 것이더냐?]-쿵!
구문혁이 바닥에 목함을 내려놓았다.
목함의 뚜껑을 열자 그 안에 막 탄생해 생기가 넘쳐나는 순백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그녀의 검인 순연(順戀)이었다.
류소월이 직접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완성되면 즉위식에 맞춰서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최고의 검을 완성했건만.’
그가 만든 수많은 검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역작이라 할 만했다.
검을 완성하고 나서 그녀가 기뻐할 얼굴을 기대하며 왔던 구문혁으로서는 허탈하면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정작 주인은 이 검을 만지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우우웅!
마치 그것을 알기라도 하듯 검명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구문혁이 떨리는 눈으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이 죽어 나가는 무림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하루하루를 장담할 수 없었으나 이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누구지?’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류소월은 당대 최고수 중 하나였고 천지월회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이런 참극을 저지르려면 이에 상응하는 규모의 세력을 갖춰야만 가능했다.
구문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에 있는 시신들을 살폈다.
그의 일족은 몇 대 전부터 검을 제작함에 있어서 검주의 검법을 요구 해왔기에 이에 관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부했다.
‘대부분의 시신이 검에 의해서 난 상처들이니 잘 살펴보면 단서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천지월회와 대립할 만한 단체일 확률이 높았다.
가장 높은 확률로 구파일방 중에 하나······.
‘!?’
그때 구문혁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신들에 남아있는 검흔을 살폈는데 상당수가 특별한 검식이 담겨 있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설마하며 시신들을 살피던 구문혁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연히 단체 간의 싸움이라 여겼는데, 대부분의 시신이 한 사람의 소행으로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특별한 검법을 쓰지 않았다.
단순히 검을 휘둘러 베었다.
‘압도적인 힘. 압도적인 날카로움······.’
이 검흔을 보면 그러했다.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이것을 어떠한 것도 막지 못했다.
검을 막았다면 그 막은 병장기 채 잘려나갔다.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병장기와 함께 몸이 두 동강이 날 만큼 대부분의 검흔이 일검에 의해 결판이 났다.
‘······괴물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은 여기에 어울리는 듯 했다.
이런 괴물이었다면 아무리 검의 기재인 류소월이라고 해도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역시도 마주치기 싫을 만큼 너무 강한 자였다.
그런데,
‘음?’
흔적들을 살피던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일부 시신들이······.
-쿵! 쿠르르르르!
그때 커다란 굉음 소리에 구문혁이 시선을 돌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전이 흔들리며 바깥쪽에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설마 이 참극을 벌인 자가 아직 이곳에 있는 것인가?
잠시 머뭇거리던 구문혁이 이내 용천혈로 기운을 일으켰다.
-팟!
그의 신형이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아주 잠시 이 검흔을 만들어낸 자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던 그였지만 이내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설령 이 괴물 같은 자를 상대하진 못하더라도 류 소저와의 교분을 위해서라도 범인이 누구인지 정도는 확인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전 밖으로 나온 구문혁의 안색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오싹!
‘······이게 대체.’
그의 이런 반응은 기감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압도하는 소름 끼치는 기운 때문이었다.
뛰어난 무인일수록 기운을 개방하게 될수록 그것을 느끼기 쉽다.
그런데 한 공간도 아니고 이 흉폭하면서 사악한 기운은 사방을 뒤엎고 있었는데,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수십, 수백 여 장을 가득 메우는 듯했다.
어찌 인간이 이런 엄청난 기운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위압감에 사로잡혀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하아······하아······.]구문혁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무리 진정하려고 해도 사방을 가득 메우는 이 흉폭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이 기운이 어디에서 퍼져나오는지 알겠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괴물의 눈에 들어가는 순간 인지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몰랐다.
그러는데 이윽고 구문혁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아?’
그도 그럴 것이 사방을 위압하던 그 흉폭한 기운이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대체 무슨 일인 거지?
이에 그가 땀으로 젖은 이마를 소매로 닦은 후, 기운이 느껴지던 진원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곳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천지월회의 본단에서 서북쪽으로 약 2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
이곳에 도착한 구문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곳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는데, 해가 질 무렵을 연상시키듯 주홍빛이 흘러나와 지상을 비추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잘려나간 몇 산봉우리부터 부서진 거대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하늘에 떠있어서 마치 이 주변 전체가 세상이 아닌 곳처럼 느껴졌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엄청난 광경에 넋이 나가서 이를 바라보던 구문혁이 이내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
그것은 허공에 떠있는 거대한 바위 중 하나의 위에 누군가 서 있는 누군가였다.
펄럭이는 검은 도포에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는 한 사내였는데, 그의 손에 하나의 검이 들려 있었다.
묵빛 검인데 그것을 보는 순간 구문혁의 입이 벌어졌다.
장인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훌륭한 병장기를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는 그였다.
‘······완벽하다.’
묵빛 검을 보는 순간 구문혁은 일순간 그 형태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검의 형태는 그가 장인으로서 여태껏 생각하던 어떤 검과도 비교하기 힘들 만큼 이상적이었다.
저 검은 대체 누가 만든 거지?
검을 보며 온갖 상상에 빠지던 구문혁이 이내 자신의 뺨을 때렸다.
-짝!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검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자의 얼굴을 상세히 봐둬야 억울하게 죽은 류소월 소저를 위해 복수라도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때,
-촤르르르르!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사내가 들고 있던 검이 분해되며 그것이 환(環)의 형태로 바뀌며 팔에 안착하는 것이 아닌가.
구문혁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멀쩡하던 검이 분해되더니 어찌 환의 형태가 된 거지?
뭘 어떻게 하면 저런 게 가능한 거지?
일족 대대로 장인을 업으로 삼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고민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이를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슥!
-흠칫!
구문혁은 당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가 고개를 돌리더니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기감을 최대한 죽이고서 숨어 있었는데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러다 저자의 손에 죽게 되는 건가?
이를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였다.
바로 그때였다.
-쾅!
그때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엄청난 광경이 벌어졌다.
먹구름 사이로 뚫려 있던 구멍에서 눈부신 빛줄기 흘러나와 지상을 향해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그 빛이 어찌나 밝은지 눈을 일순간 감아야 할 정도였다.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눈을 감고 있던 그의 신형이 이내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호신강기를 일으킨 구문혁은 정신없이 이곳저곳에 부딪혔다.
-쿵! 쿵! 쿵!
그렇게 몇 번을 부딪치고야 여파가 끝났는지 멈출 수 있었다.
눈을 뜬 구문혁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거의 수십여 장 가까이 튕겨 나간 것 같은데 멀리 빛줄기가 내려친 곳을 바라보니,
* * *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었다고요?”
“네, 증조부께서는 급히 그곳으로 갔는데, 바위나 잘려나간 산자락이 떠있던 것도 사라져 있었고 주변은 평야처럼 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장주 구천무의 증조부 구문혁은 이를 보며 꿈을 꾼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먹구름 사이로 뚫려 있는 주홍빛 구멍도 사방을 떠다니던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목경운이 물었다.
“그자는요?”
목경운이 물은 자는 그 묵빛 검을 쥐고 있었다는 긴 머리카락의 사내였다.
장주 구천무의 증조부가 남긴 기록대로라면 그가 청령의 심장을 뽑고 그 참사를 일으킨 범인일 확률이 높았다.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요?”
“네, 증조부께서는 그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 살아남은 천지월회의 사람들까지 동원하여, 삼 일 밤낮으로 주변을 수색했으나 어떠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변으로만 끝냈나요?”
“아닙니다. 증조부께서는 기억하고 있던 그자의 인상착의를 그려서 넘겼고, 한동안 천지월회에서도 진범으로 추정되는 그 정체 모를 자를 찾기 위해······.”
-아니야!
-차차차차차창!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고막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외침 소리와 함께 작업장에 있던 수많은 물건이 폭사되듯이 부서졌다.
이 광경에 목경운이 고개를 돌려 청령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본 목경운의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청령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곳곳이 핏물로 물들고 있었고, 그녀의 영력이 소름 끼치도록 올라가고 있었다.
“이게 대체?”
장주 구천무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않았으나, 급격히 치솟고 있는 영력 때문인지 일렁이는 무언가를 발견한 구천무가 어느새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이에 목경운이 그에게 멈추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며 청령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청령. 일단 진정하시죠.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가······누가 진범이라는 것이냐?
-콰득! 콰득!
바닥의 목판이 뜯기며 가시처럼 들고 일어났다.
마치 그녀의 원한 넘치는 영력에 반응하는 듯했다.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귀안을 개방한 목경운의 눈에는 그녀의 치솟는 영력이 점차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