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35)
“헥헥.”
어두운 산속을 헤매고 있는 한 아름다운 미녀가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천지회주의 막내 제자 위소연에게 빙의해 있는 호위 고찬이었다.
옷이 피로 얼룩져서 상처투성이에 지쳤는지 땀에 흠뻑 젖은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아니. 젠장 분명 서남쪽으로 십여 리(里)가량 쉬지 않고 가면 제일 높은 봉우리의 맞은편 산에 있다고 하더니 대체 어딨다는 거지?’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경공을 펼친 고찬은 체력이 바닥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리 빙의한 육체더라도 계속 움직이려면 회복이 필요했다.
결국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고찬은 이내 수풀이 우거져서 이목이 띄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솨아아아아!
전신을 운행하는 차가운 기운에 고찬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기이하구만.’
세외에 사계절이 춥고 눈으로 뒤덮인 북해에 있는 고수 중에 한기(寒氣)를 다루는 자들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이 정도 한기를 지닐 수 있는 거지?
주인인 목경운이 한기가 폭주하지 않게 해소시켜줬다고 들었는데, 몸에서 운기를 하지 않아도 한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희한하네.’
이건 육신의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사 상태에다 자신이 빙의하면서 잠든 원래의 영체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이를 기이하게 여기던 찰나였다.
-바스락!
발걸음 소리로 짐작되는 인기척에 고찬이 긴장된 얼굴로 운기와 호흡을 멈췄다.
아군인가 적군인가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의 앞을 가리고 있던 수풀을 헤치며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왁!”
“흐헉!”
육신이 뛰어나다고 해도 약자였던 시기가 더 길었던 고찬이었기에 순간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일장을 날려버렸다.
-팍!
고찬이 날린 일장에 하얀 서리가 일어났는데, 그의 앞에 튀어나왔던 존재가 황급히 옆으로 몸을 틀어 이를 피해냈다.
그러자 장력이 닿은 수풀이 그대로 얼어 붙어버렸다.
-쩌저저저적!
얼어붙은 수풀을 돌아본 존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다 그것을 건드렸다.
그러자 수풀이 쩌적하며 부러져버렸다.
이에 그 존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뭐냐? 그 육체 제법 세잖아.”
“젠장.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 존재를 알아본 고찬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한기가 어린 손을 내렸다.
갑자기 나타나 그를 놀래킨 존재는 다름 아닌 천지회 회주의 둘째 제자인 장능악의 산하에 있는 오악회(五岳會)의 일원인 사악(四岳) 초연단의 단주 서혜인이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육체에 빙의한 목경운의 식신 중 하나인 규소하였다.
규소하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놀랐어? 놀랐어?”
“거, 소하 공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아, 미안. 겁에 잔뜩 질려 숨어 있는 모습이 재밌어서.”
이런 규소하의 답에 고찬이 혀를 찼다.
이 녀석을 볼 때마다 느낀 건데 원혼이 된 지 오래되었다고는 하나 정신 연령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듯 했다.
“그래서 이 와중에 놀래킨 거요? 그러다 실수로라도 장력을 맞았으면 어쩌려고······.”
“야.”
‘!?’
그때 규소하가 고찬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나 했던지 규소하가 고찬의 양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육체 바꿀래?”
이런 그의 말에 고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이라도 예쁜 육체만 보면 갈아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규소하였다.
역시 청령님의 말대로 이 녀석은 절대 남자가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남자라면 변······.
“되게 싫다는 기색이 역력하네. 싫으면 말아라. 칫.”
“어차피 반납해야 할 육체인데 이걸 노렸다간 주인님께서 크게 혼내실 거요.”
“······으음. 그건 곤란하지.”
“그럼 어서 빨리 갑시다. 놈들이 다시 잡아간 게 인피면구를 씌운 가짜라는 걸 눈치챈다면 어떻게든 되찾으려 추적해올 거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쳐서 기감이 느껴지지 않나 봐?”
“기감?”
규소하의 그 말에 의아해진 고찬이 기척을 죽이던 것을 풀고서 기감(氣感)에 집중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수백여 명에 이르는 기운들이 느껴졌다.
하나 같이 고수들이었다.
여차하면 일전이 가능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고, 고작 살수 출신인 나 따위를 구하기 위해 이 정도의 전력까지 보내주시다니······.’
고찬이 내심 감격을 금치 못했다.
연목검장의 악연으로 시작했는데 자신을 이리도 오른팔처럼 아끼는 모습에 진심으로 마음이 동했다.
이에 고찬은 더욱 목경운에게 충성을 다해야겠다고 여겼다.
이런 고찬의 반응에 규소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반드시 그 육신을 사수해라.]뭔가 고찬이 착각하는 것 같다.
하나 나쁜 쪽으로 오해한 것 같진 않으니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괜히 감동이 깨지지 않게 말이다.
* * *
-구우우우우.
-슈우우우우우우!
찢어진 날개를 파닥거리는 요수 흠원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한쪽 날개를 펄럭이며 어떻게든 낙하하는 속도를 줄여보려 했지만, 워낙 거체였기에 떨어지는 속도가 쉽게 줄지 않았다.
“비, 빌어먹을!”
“아미타불!”
흠원의 날개 깃털과 발톱을 꽉 붙들고 있는 목경운의 수하들 역시도 이 상황에서 무언가를 뭔가를 해볼 순 없었다.
구름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에 어느 정도 시점에서 뛰어내리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을 듯했다.
그렇게 흠원이 지상으로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솨아아아아!
“엇?”
그때 떨어지던 흠원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낙하 속도가 붙기는커녕 느려지자 다들 의아해하고 있는데, 아래쪽을 바라보니 어느새 먼저 지상에 착지한 목경운이 두 손을 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주군!”
사색이 되어 있던 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는 한편으로 대호법 팔독사장 구양소와 우호법 마라현은 목경운의 심후한 내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허허. 말도 안 되는 공력이군. 아직도 여력이 있다니.”
구름보다 높은 상공이었기에 운신이 자유롭지 못해 고작 이매망량의 공격을 막아내기 급급했던 자신들과 달리 목경운 혼자 무형검으로 이매망량들을 전부 죽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진기에 여유가 있는 것을 보면 천지회 내전 때보다도 더 고강해진 듯했다.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겠군.’
내심 목경운의 무위를 목표로 했던 마라현이었지만 이건 도저히 인간 같지 않아서 따라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목경운이 심후한 진기로 낙하 속도를 줄인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지상에 착지할 수 있었다.
하나 그들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을 태울 이동 수단이었던 요수 흠원의 날개가 찢기는 바람에 다시 하늘로 이동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적어도 이를 회복하려면 시일은 걸릴 듯했다.
“쩝 이거 소림사 때가 떠오르는군요.”
섭춘의 말에 다들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소림 항마승의 공격으로 요수 흠원이 날개를 다쳐서 그것이 나을 때까진 지상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소림사 때는 추적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이번에는 반대로 추적해서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빠른 이동 수단에 문제가 생긴 것은 추적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주군.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겝니다.”
대호법 구양소가 우려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밀회와 밀접하게 일을 해왔기에 그들의 습성을 잘 알았다.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작정하고 나선다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상대를 압박한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목경운이 섬서성 북단으로 향하는 것을 막으려 들 것이다.
“대호법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마도 발목을 묶으려 들 겁니다. 주군, 차라리 저희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그때 몽무약이 의견을 냈다.
섭춘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미끼가 된다는 건 설마······.”
“말 그대로다. 둘로 나누어서 적들의 시선을 끌어봐야지.”
“······.”
몽무약의 말에 섭춘이 뭐라고 입을 떼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좋은 방도이기는 했다.
단지 둘로 분산되어 적들의 시선을 끌게 되는 쪽은 더욱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해서 미끼는 누가 될 건데?”
잠시 망설이던 섭춘이 대놓고 물었다.
그러자 몽무약이 섭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 혼자 미끼가 되라고? 그냥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러냐?”
“혼자가 아니라 너를 포함한 나······. 그리고 여기 호법 중 한 분 정도 더 붙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뭐?”
“어차피 우리 둘은 이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전력이다. 적어도 주군의 곁에 호법분들이 붙는 편이 낫다.”
“끄응.”
전략적으로 일리가 있기에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호법들 역시도 몽무약의 의견이 옳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정도 동의했다.
어차피 상공으로 이동하는 것이 묶인 이상 이쪽도 서두르려면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흠.’
하나 목경운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을 미끼로 삼는 전략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면 미끼가 되는 이들은 사실상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예전이라면 목경운에게 이들은 단순히 장기말에 불과했을 거다.
말 그대로 효용가치가 없다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패였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했다.
청령의 조언대로 일대 대종사가 되어 수많은 이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패라고 여기는 마음가짐은 버려야 했다.
정말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아군을 희생시키는 것은 훗날에 있어 악수(惡手)였다.
이에 목경운은 정했다.
“아니. 전부 이대로 돌아가라.”
“네?”
뜻밖의 결정에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끼가 되어 목숨을 잃을지언정 주군을 위해서 희생할 각오는 되어 있는 그들이었다.
“주군. 어찌 그러십니까?”
“주군은 이제 혼자의 몸이 아닙니다. 어찌 홀로 모든 걸 감당하시려 하는······.”
“돌아가라.”
그러나 목경운의 의지는 단호했다.
이들을 미끼로 쓰는 것보다 홀로 이동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희생이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아. 꼭 그렇게까지들 안 해도 아주 안전하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도가 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밀회의 제 일계 춘추였다.
넓은 수레에 앉아서 이동했던 이들과 다르게 그녀는 요수 흠원의 한쪽 발톱 발목에 묶여 있었다.
저 정도로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흔들릴 법도 했지만, 목경운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성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제대로 죄수 취급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섭춘이 그녀에게 묻자 춘추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애송인 빠져.”
“또!”
섭춘이 홧김에 접무도를 뽑으려 하자 몽무약이 이를 황급히 저지했다.
그러자 목경운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뭘 원하지?”
이런 그의 물음에 춘추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뭘 원하는지 알잖아.”
그녀가 목경운을 빤히 쳐다보며 혀를 내밀어 자신의 윗입술을 핥으며 유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보며 섭춘이 혀를 찼다.
‘······미친년.’
요수 흠원의 발톱 기둥에 묶느라 머리를 제외하곤 밧줄로 온몸을 감아버렸는데, 저런 몰골로 유혹하려드는 게 오히려 대단하다 싶을 뿐이었다.
* * *
그로부터 엿새 후,
섬서성 북단 무너진 옛 성터에서 머지않은 한 대나무 숲.
수십여 장을 뒤덮은 대나무 숲의 한복판.
그곳에 죽립을 쓰고 있는 한 사내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검신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슥슥!
그런 사내의 주변에 수십여 구의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하나 같이 단 일 검에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한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헉······헉······. 배, 배신······. 하려는 거요?”
“······.”
“역시······. 역시······배신이······맞구려······. 헉헉······. 그분······그분께서······. 절대······그대를······.”
-푹!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죽립인이 남자의 머리에 검을 박아넣었다.
이에 남자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그런 남자를 내려다보던 죽립인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분을 위해서다.”
그렇게 사내가 검 끝의 피를 털어내며 검집에 집어넣으려고 할 때였다.
사내가 이를 멈추고서 주변을 훑었다.
그런데,
-주르르르륵!
어느새 죽은 시신들에서 핏물들이 빠르게 흘러내리며 점차 고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십여 명이 죽었다고는 하나 이곳은 대나무 밭이었기에 바닥에 피가 스며들 만도 했는데,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에 죽립인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어느새 주변의 대나무에서마저 핏물이 흘러내리며 주변을 붉게 물들여갔다.
지독할 정도로 섬뜩하기 그지없는 불길한 영력이 사방을 가득 메우자 죽립인은 이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귀의영역(鬼意領域)······.’
이것은 원념이 강한 격이 높은 영체가 만들어내는 영력으로 이루어진 영역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