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65
764화 해 보자
살아가다 보면 주어진 선택지가 싫어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차악의 선택도 없고 그 외의 방법도 없을 때.
인생의 쓴맛이라고나 할까.
사회에 던져진 어른의 고충이라고 할까.
“내가 왜 이래야 하는 거예요!”
“넌 이제 어른이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요!”
그런 의미에서 상급 괴이체, 깜빡이는 하루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볼 수 있다.
외형은 고작해야 10대였지만 뭐.
어차피 살아온 시간은 나보다 곱절은 많을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러거나 말거나.
“닥치고 좀 도와줘!”
“끼에에에엑!”
앞에서 무너진 자를 상대하고 있던 멜러디와 망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함께 활동한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가.
망구 저 녀석 왠지 욕하는 거 같은데.
비명에 감정이 섞여 있는 기분.
안 그래도 나설 생각이다.
“가랏, 깜빡이는 하루!”
“으앗?”
뻥 하고 녀석을 발로 밀었다.
기껏 도와주겠다고 왔는데 도움받는 사람이 뒤에서 어물쩍거리면 안 되지.
이게 다 도와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어리둥절 앞으로 밀려 나갔다가 정신을 차린 녀석이 위로 솟구친다.
안고 있는 베개에 비행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녀석을 향해 권능을 사용했다.
“나를-방해하지-마라!”
무너진 자가 거대한 꼬리를 휘둘렀다.
쿠우우웅!
마치 거인이 팔로 휩쓰는 거 같은 풍경.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지간한 동산만 한 녀석이 저러니까 그야말로 재앙이다.
범위가 너무 넓어 피하기도 마땅치 않거니와 정면에서 받자니 부담스러운 공격.
멜러디 또한 꼬리를 잡으려 시도하다 말고 철푸덕 땅에 납작 엎드렸다.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해서 공격을 넘기려는 거 같았으나.
-후웅.
파괴적인 일격 대신 힘없는 바람만 살랑이고 끝났다.
마치 공격을 중간에 멈춘 거 같은 모습.
원인은 저 녀석이다.
허공에 떠올라 베개에 반쯤 누워 있는 녀석이 힘을 사용했다.
녀석의 위로 떠오른 희끄무레한 무언가.
정령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뭔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무너진 자 주변으로 날아가 알랑거렸다.
“으으-어째서? 분명 친 거 같았-는데. 아아-내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녀석.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으나 기회인 건 분명했고.
“마저 실험해 보실까.”
난 곧장 무너진 자를 향해 달렸다.
놈들에 대해 알려진 건 많지 않다.
저번에는 멜러디와 힘을 합쳐 처리했지만 이번에는 내 힘을 이용해 볼 생각.
‘어느 정도 공격이 통하는지도 확인은 해 둬야지.’
언제 갑자기 홀로 놈들을 상대할지 알 수 없으니.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검강] [절삭(SSS) Lv.8] [스킬 레벨 업!] [절삭(SSS) Lv.9]-촤가가가각!
역시나 검강에 절삭까지 합쳤지만 완전히 베어 버리는 건 불가능.
피 대신 개념과 혼돈이 흐르는 놈들은 그 자체로 물리법칙을 일부 어그러트린다.
물리력이 아닌 마법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럼 여기서.
[영혼 찢기(SSS) Lv.9]이어서 혼돈과 비교적 반대되는 힘인.
[러브 앤 피스(SSS) Lv.10]신성력을 주입.
푸슉!
찐득한 체액이 튀어 오른다.
검강으로 길어진 검날이 내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으나 여전히 부족하다.
“너를-찾아낸 내게-무엇을!”
칼 한 방 박힌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등에서 종기 같은 것이 화산처럼 솟아오르더니 활짝 벌어진다.
-후우우웅!
안에서 튀어나온 찌꺼기와 살점이 유성처럼 쏟아졌다.
함께 딸려 온 피가 포탄을 쏜 후 맴도는 먼지처럼 퍼졌으니.
[개념, 질척임이 움직임을 방해합니다.]끈적한 무언가가 온몸을 억눌렀다.
단번에 떨어지는 속도.
마치 깊숙한 물속, 아니 사막에 파묻힌 채 움직이는 기분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살덩이를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지경.
거기에 무너진 자가 다시 꼬리를 휘두르려 했으나.
-슈르르륵.
깜빡이는 하루에서 날아간 정령이 놈을 붙잡았다.
잠깐의 여유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절대 영역(SSS) Lv.2] [개념, 반골이 질척임을 거부합니다!]-파앙!
나만의 영역을 확보해 속도를 확보했다.
놈과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고.
-사악.
펠라인 세트 틈새로 칼을 집어넣어 피를 묻혔다.
“흐읍!”
호흡과 함께 힘껏 내지른 일격.
훤히 드러난 놈의 몸통에 검을 찔러 넣었다.
평범한 공격은 아니다.
방금 사용했던 검강과 절삭, 영혼 찢기.
거기에 다른 스킬을 더했으니.
[인챈트(S) Lv.MAX] [파이어 밤(SSS) Lv.MAX]놈의 내부까지 침투한 검에서는 거대한 폭발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콰아아앙!
틈새로 불길이 쏟아져 나올 정도의 위력!
내부를 진탕으로 만든 곳에는 불길만 있지 않았다.
검에 묻혀 둔 내 피도 함께 사방으로 놈의 근육과 뼈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내 피는.
[혈문개방血門開放(SSS) Lv.10] [혈술, 혈각장血角場(SSS) Lv.8]-콰자자자자작!
-촤아아아악!
그 자체로 무기다.
피로 만들어진 창날이 놈의 몸을 뚫고 밖으로 삐져나온다.
고슴도치처럼 솟아오른 붉은 창날.
마찬가지로 붉게 물든 놈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너를-찾았는-데!”
분노가 가득한 눈길은 살벌했으나 그런 것에 움츠러들 사람은 이곳에 없었고.
“멜러디, 날려.”
“이때를 기다렸지! 나의 침착함의 승리다!”
냉큼 앞으로 달려간 멜러디가 튀어나온 혈각장을 붙잡고 돌기 시작했다.
동산만큼 커다란 덩치?
개념의 힘을 쓰는 멜러디에게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쿠르릉!
회전이 계속될수록.
폭풍이 강해질수록 원심력은 강해졌고.
-뚜둑.
-우지지직!
강력한 무기였던 거대한 덩치는 이제 놈의 몸을 찢는 무기가 되었다.
“으으-아아! 네놈을 반드시–!”
퍼어억!
마지막으로 뭐라 외치던 녀석이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걸 끝으로 상황 종료.
가볍게 손을 털었다.
얼핏 가볍게 승리한 거 같았으나.
‘확실히 혼자 싸우면 쉽지 않겠어.’
이쪽은 3명이었다.
내가 열심히 공격을 욱여넣은 것도 있지만 멜러디의 능력이 없었다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겠지.
무엇보다 저 녀석, 깜빡이는 하루의 서포트가 좋았다.
녀석이 무너진 자의 공격을 몇 번이나 무력화해 줬으니까.
대체 무슨 능력일까.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반짝입니다.]-츠즈즈즈.
권능을 사용해 녀석을 살폈다.
[깜빡이는 하루]-상급 괴이체입니다!
-이상하죠?
-하루가 엄청 긴 거 같은데 막상 되돌아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경험!
-여러분의 신년 계획 잘 지켜지고 있나요?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대충 알 거 같다.
하루하루 바쁘게 산 거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것.
그 와중에 의욕에 차 세웠던 계획은 지키지 않은 것.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얼핏 보면 시간과 계획을 잊는 것 같았으나 싸우면서 느낀 바에 따르면 건망증이랑은 다르다.
오히려 귀찮음과 피곤함, 자기 합리화에 가깝지.
오늘은 열심히 일했으니 피곤해서 안 해야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해야지 하면서 미루는 거에 가깝다.
무너진 자 역시 공격을 하다 말았으니까.
“너, 이름이 뭐지?”
“세피림인데요.”
“그래. 은혜 갚기 클럽에 온 걸 환영한다.”
“예?”
“예는 무슨 예. 구명지은에 보답하는 것은 강호의 도리거늘!”
“구, 구명. 강호가 무슨 뜻……?”
녀석이 어버버 했지만 어쩌겠나.
결국 녀석도 동의해서 같이 싸운 건데.
억울한 표정인 녀석과 달리 멜러디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친구가 없다고 했었는데 새로 생겨서 그런 걸까.
“하하하! 나만 당할 수 없지. 너도 당해 봐라!”
그냥 심보가 뒤틀려서 좋았던 모양이다.
쯧쯧 혀를 차며 세피림을 바라봤다.
어떻게 나오려나.
순순히 받아들이고 따라오면 좋을 텐데.
녀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상당히 탐나서.
“으으음.”
그새를 못 참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녀석이 팔만 들어 대충 휘적였다.
“대충 해요. 난 피곤해서.”
“훌륭한 선택이군.”
다행히 녀석은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깜빡이는 하루]-상급 괴이체!
-건너뛰기와 귀찮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개념의 영향이었다.
정말이지 인생 대충 살기 좋아 보이는 개념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새로운 동료를 영입했으니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여전히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녀석의 베개에 밧줄을 묶어 멜러디에게 건넸다.
“뭐?”
“끌고 다녀.”
“내가 왜!”
“네가 이 녀석보다 선배니까. 끌어 줘야지.”
“아하!”
좋다고 밧줄을 받아 드는 녀석.
새삼 느끼는 건데 괴이체라는 놈들은 단순한 면이 있다.
해맑다고 해야 하나.
일단 당장 할 건 했고.
난 잠시 주변을 정리하며 전투를 복기했다.
이기기는 했으나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스킬을 몇 개 중첩해야 하는 거야.”
단순히 공격이 통하는 정도야 어렵지 않았지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려면 스킬 한두 개로는 안 된다.
이번에 놈을 잡는 데만 8개의 스킬을 중첩시키고 연계해야 했으니까.
만약 이런 녀석이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몰려온다면?
‘보통 일은 아니겠군.’
단순히 계산하더라도 쉽지 않다.
싸우기보다 자리를 피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현명할지도.
그래도 아예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인가.
다른 멤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탈모맨이야 개념이 있으니 그나마 나을 텐데. 둘이 문제군.’
나나 오필리아처럼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도 없다.
탈모맨처럼 상대의 개념과 정면으로 맞붙일 개념도 없으니 쉽지는 않을 거다.
혹시나 싶어서 커뮤니티를 확인해 보니 더 그렇다.
[갓블레스]: 무너진 자를 추적하는 데 실패했어요. 산맥 너머로 도주했습니다. [섹시가이]: 형님과 제가 잡았습니다! 하하하!개념이 있는 탈모맨과 섹시가이는 어떻게 잡는 데 성공한 거 같지만 둘은 아니다.
역시 놈들을 잡아 개념을 흡수하는 게 좋겠는데.
“이걸로 2개.”
놈을 잡고 나온 후회의 돌을 챙겼다.
아무래도 이놈들을 더 잡아야겠다.
개념 흡수에 실패할 수도 있어 예비로 몇 개 더 가지고 있는 편이 좋았으니.
일단 하나는 개인 거래로 보내 놔야겠다.
탈모맨이 잡은 것도 있으니 둘 다 한 번씩은 시도할 수 있겠지.
냥펀에게 개인 거래로 후회의 돌 하나를 보낸 후 작업에 들어갔다.
갈 때는 가더라도 챙길 건 챙겨야지.
“여기 어디 있을 거 같은데.”
“그에에.”
무너진 자가 남긴 잔해를 뒤적였다.
놈 또한 숭배자의 왕이 주입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어깨에 박혀 있는 선물 상자를 찾아냈다.
처음에 찾은 게 폭발이었지.
이번에는 어떤 걸까.
살짝 기대된다.
숭배자의 왕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선물은 기가 막힌단 말이지.
손으로 상자를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챙긴 개념은 2개.
후회의 돌도 하나 있으니.
“나도 한번 해 보자.”
주변을 지켜 줄 녀석도 늘었으니 이제 시도해도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