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70
769화 중요한 건 왕
맨 처음.
베드록 바알루제가 허공으로 떠올랐을 때 검은 태양이 뜨는 거 같았다.
그의 존재감과 힘이 이루어 낸 영역은 그 자체로 불길하면서도 거대했으니.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가.
‘태양.’
오롯이 스스로를 불태워 일대를 불 싸지르는 태양이었다.
지금껏 해 온 어떤 폭발보다도 거대하고 힘찬 열기와 파동이 하늘을 뒤집었다.
-쿠오오오오오!
요란한 소음도, 거칠게 나부끼는 바람도 없었다.
영역과 지형,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을 침식하며 뻗어 나가는 파괴의 울림이었지.
하나의 깨달음.
‘폭발이라고 무조건 터져 나가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
목적지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
결국 폭발은 무언가를 터트리는 행위였고 내가 터트리고 싶은 건.
“너.”
끌어안은 베드록 바알루제다.
놈의 눈에 처음으로 분노가 서린다.
“…건방이 과하다!”
무작정 당할 수만은 없다 이걸까.
그 짧은 찰나에도 녀석의 힘이 움직였으니.
[개념, 앙갚음이 비수를 드러냅니다!]되갚기로부터 안전해야 할 나 역시 그 여파를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그래.
그럴 거 같았다.
‘이 정도는 예상했어.’
그렇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놈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할 뿐.
-쿠웅!
온몸을 때리는 충격파.
내부부터 분열되는 감각.
끔찍했으나 그만큼 확실한 일격이 나와 숭배자의 왕을 휩쓸었고.
-쿠아아아아앙!
그 아래, 새롭게 태어난 태양을 축하하듯 대지가 들썩였다.
투명한 거인이 세차게 땅을 밟으며 춤을 추듯 폭발의 여파를 이기지 못한 대지가 삐죽 솟아오르고 갈라지고 깨진다.
거리를 벌렸음에도 그렇다.
땅 위에 발 붙인 자, 그 누구도 서 있지 못했고.
[개념, 왕이 무릎 꿇은 자를 흡족히 내려다봅니다.] [개념, 왕이 당신을 바라봅니다.]조금은 뜬금없지만 놈이 가진 개념이 나를 바라봤다.
[S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쌍심지를 켭니다.] [개념, 반골이 왕을 노려봅니다.]뭐, 내 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죽었군.’
그 생각을 끝으로 의식이 잠깐 끊겼다 돌아왔다.
[구사일생(S) Lv.MAX] [망자귀환亡者歸還(SSS) Lv.7]급격히 수복되는 육신.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오며 발동시킨 망자귀환이 버프를 줬고.
[칭호, 악마 노역소의 대항자가 번뜩입니다!]강력한 적을 앞둔 칭호 역시 버프를 강화했다.
급격히 불어난 힘.
더 힘을 끌어모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파사사사사.
지독한 가뭄이 덮친 것처럼 온몸에 균열이 간 녀석이 움직였으니까.
말도 안 되는 생명력.
아니, 이건 개념의 힘인가.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한 방 먹여 줄 생각.
‘확인해 볼 것도 있고.’
[S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쩍입니다!] [검강] [절삭(SSS) Lv.MAX] [영혼 찢기(SSS) Lv.9] [도축(S) Lv.MAX] [인챈트(S) Lv.MAX] [오로라 빔(SSS) Lv.MAX]중첩된 스킬.
거기에 하나 더.
[홍예참(SS)]전력으로 내지른 찌르기.
푸욱.
무지개가 잔상을 남기며 놈의 심장을 꿰뚫었고.
-콰가가가각!
오색 빛깔 광선이 범위를 넓히며 뻗어 나갔다.
가슴부위가 뻥 뚫려 버린 베드록 바알루제가 목을 까딱인다.
흉하게 온몸을 뒤덮고 있던 각질이 떨어지며 놈의 모습이 보인다.
“아쉽겠군.”
심장이 뚫렸음에도 놈은 덤덤했다.
오히려 진중한 눈빛으로 날 바라볼 뿐.
“기대 이상이었으나 여전히 그대는 자격이 없다.”
중의적인 의미였다.
100층으로 올라가기에는 여전히 부끄러움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와.
[개념, 왕이 그대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왕을 죽일 자, 그에 걸맞은 자격이 필요한 법입니다.]왕을 죽이기에는 내가 그와 동격에 설 자격이 안 된다는 의미.
대충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99층의 NPC들이 놈을 잡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가.
그를 잡기 위해서는 대등한 입장이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봐 봐야지.”
내가 그걸 모를까.
어느새 내 머리에는 왕관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댄싱 마스터의 왕관(B)]등급도, 효과도 별 볼 일 없지만 딱 하나, 특수한 힘이 있었으니.
‘왕의 자격.’
내가 가진 왕관은 두 개.
마그나로크의 왕관은 냥펀이 가지고 있다.
남은 건 이거 하나.
자격 자체는 충족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이게 안 되네.”
통하지 않았다.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이럴 거 같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왕관이 준 자격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이야기.
반면 내가 상대해야 하는 왕은.
[개념, 왕이 왕의 자질을 지닌 자를 측은하게 바라봅니다.]시스템이 아닌 놈의 해석이 따른 개념상의 왕이다.
왕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 또한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이야기.
녀석의 손이 천천히 들린다.
가시 손날이 뻗어 자라며 칼날이 된다.
“왕이 아닌 자, 왕을 죽일 수 없으니.”
이어 정면으로 떨어지는 가시를 향해 검을 뻗었다.
그냥 당해 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대, 자격을 갖춰 돌아오라.”
[개념, 교체가 앙갚음을 확정으로 바꿉니다.]혼돈검에 맞닿았어야 할 가시가 흐릿해지더니 화끈한 통증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격통.
심장에 가시가 박혔다.
이 새끼 은근히 쪼잔하네.
내가 심장 날려 먹었다고 본인도 심장을 찌르다니.
“개념을 완성한 자, 이 너머로 갈 수 없을지니. 내 허락을 구하고자 노력하라.”
“꺼져.”
퍼억.
놈을 걷어찼다.
가슴에 박힌 가시가 뽑히며 피가 솟구치고.
-후우우웅!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괜찮았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다 확인했다.
대충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도 했고.
죽는 게 아쉽지도 않다.
어차피 내게는 무한 코인이 있었으니.
무엇보다.
“원하던 건 달성했거든.”
내가 뭐 하러 놈이랑 지지고 볶고 싸웠는가.
지원군.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놈을 묶어 두기 위해서.
지금까지 버틴 스마일캡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놈 또한 내게 정신이 팔려 실책한 것을 깨달았는지 짧게 신음했다.
의식이 멀어진다.
그럼.
“다시 보자고.”
다음을 향해 갈 차례다.
* * *
“흐압!”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침대.
96층 안전지대다.
“와, 씨. 오랜만에 죽으니까 적응이 안 되네.”
“그에에.”
옆에 늘어져 있는 덕춘이의 등을 긁어 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은 모두 회복되었지만 죽었을 때의 충격과 고통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약간이라도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편이 좋았으나.
[정신 보호(SSS) Lv.MAX]이미 그런 거에 흔들릴 수준은 넘어서.
침대에 걸터앉아 커뮤니티를 켰다.
죽은 뒤 부활할 때는 일정 시간이 흐른다.
사람을 소생시키는데 텀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어떻게 됐으려나.”
일단 놈을 붙잡아 두는 건 성공했는데.
죽기 직전, 지원군이 몰려오는 걸 봤다.
불확실성도 빼 두었으니 도망치지는 못했을 거고.
‘정면으로 붙으면 답이 없겠지만 지원군이 그걸 모르진 않겠지.’
나보다 놈과 싸워 온 경험이 많으니 안일하게 대응하지는 않았을 거다.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놈이 사라지지 않도록 관측할 뿐.
-띠링. 띠링.
연달아 알림이 울리고 있다.
뭔가 해서 봤더니만 멤버들 채팅방이 시끄럽다.
[니머리 탈모]: 공듀! 공듀우우우! [냥냥펀치]: 살아 있냥! 살아 있냐구! [정수리 핥짝]: 대답 안 하면 공듀인 건 까발린다?“핥짝이 이 녀석이?”
[쁘띠공듀]: 공듀는… 핥짝이가 미운 것이에오… [정수리 핥짝]: 봤지? 이러면 나온다니까? [냥냥펀치]: 와! 공듀 소환술! [니머리 탈모]: 역시 살아 있을 줄 알았지! 껄껄껄! [냥냥펀치]: 안 나오면 공듀가 엄청 이쁘고 핑크핑크한 소녀라고 소문내려 했는뎅 [정수리 핥짝]: 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인데?냥펀도 만만치 않게 나쁘다.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기는 했으나 채팅방 로그를 까 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야. 거의 한나절 동안 이러고 있었네.”
“궤에에.”
처음 내 생존 확인을 위해 올린 채팅이 14시간 전이었으니.
대충 죽은 지 그만큼 시간이 지난 건가.
전장을 정리했을 테니 실제로는 시간이 더 길었을지도 모르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멤버들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커뮤니티에서 내 생존을 확인하고 있었다.
뭐라 말하고 싶었으나 닉네임이 이 꼬라지라.
이블아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내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일단은 우기고 있지만.”
변명이 궁해서 그냥 시스템에 욕했다가 채팅 금지를 먹었다고 둘러댔다.
어찌 됐든 형태는 커뮤니티니 차단당할 수도 있는 거지.
아님 말고.
이거야 대충 넘어간다 치고.
[갓블레스]: 정리는 끝났어요. 피해는 크지만 숭배자의 왕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어요. [섹시가이]: 형님! 누님! 즉위식 때 다 됐는데 어디 계십니까! [스마일캡]: 이번엔 진짜 뒈질 뻔했네.“무사히 수습한 모양이군.”
다른 채팅을 확인해 보니 대략적인 상황이 보였다.
숭배자의 왕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그걸로 놈을 완전히 붙잡아 두는 건 아니다.
그저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게 확인하는 거지.
미친 척 놈이 달려들면 싸움은 피할 수 없다는 뜻이었으나.
‘타격이 없는 건 아니야.’
녀석은 숭배자들과 함께 돌아갔다.
왕의 자격이 안 돼서 죽이지 못했다 뿐이지 충격은 줬으니까.
다행히 스마일캡도 살아남은 모양이고.
툭툭. 손가락을 두드렸다.
결국 왕의 자격이 중요하다는 건데.
“왕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영토보다는 사람이 중요해.”
개념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을 뿐.
그런 의미에서 놈이 가지고 있던 개념, 왕은 말이 많은 편이었다.
한 줌의 세력이라도 있어야 왕.
영토의 비중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99층 전체도 탑에 속해 있는 곳인데 자기 땅이라 주장하기도 뭐하지.
“전투만 놓고 봤을 때는 어떻게 비벼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적어도 대미지가 들어가는 건 확인했다.
물론, 이게 놈의 전력은 아니겠지만.
놈은 나를 죽이기 위해 움직인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개념을 활용하는지.
놈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는지 확인하려는 게 더 컸다.
만약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싸웠다면?
‘쉽지 않겠군.’
가지고 있는 힘도 그렇지만 부상을 입어도 태연하게 움직인다.
개념을 수집하는 것으로 상처를 수복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까다로운 건 역시 다양한 권능을 사용한다는 건데.
‘텀이 있어.’
전투를 하며 살펴본바 녀석이라고 한들 개념을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불확실성에서 앙갚음. 다시 확정.
개념을 연속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아마 다른 개념으로 변경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
어디까지나 예상이다.
그렇다면 공략 방법은?
“괴물은 괴물이야. 부상을 입어도 별 반응이 없었고.”
놈은 되갚기를 맞았을 때도, 심장이 뚫렸을 때도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놈의 몸은 육신이 아닌 개념을 담는 그릇이나 다를 바 없다.
무너진 자들이 신체 일부로 만들어진 선물 상자를 툭툭 내민 거랑 비슷하겠지.
뭐, 약간이라도 충격이 있긴 하겠다만 그다지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고.
그런 녀석이 딱 한 번 움찔했던 적이 있다.
‘개념을 흡수했을 때.’
그게 놈이 보인 가장 큰 반응이었다.
과도하게 많은 개념을 흡수한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그 부분을 노려 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왕의 자격을 얻어야 하지만.
때마침 냥펀이 곧 즉위한다.
어떻게 할까.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고.
-콰앙!
“돌아왔다면성?”
문을 박차고 릴카가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