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 Chapter (1020)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20화
학생회장의 말에 모든 동급생의 시선이 일제히 치엘라에게 향했다.
하나같이 ‘네가?’ 하는 표정이었다.
당황한 치엘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니! 당신이 1학년 강의실에는 왜……!”
“업무에 관해 할 이야기가 있어서.”
시몬이 웃는 얼굴로 손짓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저 수업 준비해야 하거든요!”
“잠깐이면 돼.”
결국 시몬과 치엘라는 복도 밖으로 나가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1학년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치엘라가 현역 군단장이랑 독대하고 있어! 대단한데?”
“……그건 그렇고 배신의 군단장, 신문 기사에서 나온 사진은 진짜 무섭고 흉악하게 보였는데. 생각보다 허우대 멀쩡하네.”
“잘생겼어!”
대화가 끝났다. 치엘라가 꾸벅 시몬에게 인사한 뒤 강의실로 돌아왔고, 바로 주위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치엘라! 학생회장님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
“무슨 관계야?”
“1학년 강의실은 왜 찾아오셨대?”
치엘라는 무시로 일관하며 동기들을 지나 자리에 앉았다. 그때 날카로운 질문 하나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둘이 사귀어?”
“내가 남작가랑 왜!”
발끈한 그녀가 꽥 소리 질렀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세상에 여섯뿐인 군단장인데 출신 가문이 무슨 상관이니?”
“하여간 별나다니까.”
가문을 중시하는 1학년 고위귀족들 사이에서도, 치엘라는 별종 취급을 받고 있었다.
“교수님 오신다!”
그 외침에 학생들이 우르르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의 미렌나가 다시 슬쩍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치엘라.”
“별건 아니고.”
치엘라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수업 끝나고 같이 로체스트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 말을 들은 미렌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어쩜!”
“순찰이라고! 순찰! 학생회의 일원으로서!”
그러나 소문이란 게 늘 그렇듯, 본인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파다하게 퍼져 나갈 예정이었다.
* * *
수업이 모두 끝난 뒤, 시몬과 치엘라는 학생도시 로체스트에서 사복 차림으로 만났다.
“안녕, 치엘라.”
평범한 셔츠와 바지 차림의 시몬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꾸벅.
눈에 띄지 않는 차림으로 오라고 했는데, 밤색 상의에 멜빵 바지가 귀여운 코디였다.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한 그녀가, 고개는 숙인 채 눈만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이 굴욕은-”
“잊지 않겠습니다. 맞지?”
“접시에 코 박고 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몬이 작게 웃음을 터뜨린 뒤 팔짱을 꼈다.
“그럼, 맡겨둔 조사는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보고받을 수 있을까?”
“네, 그러시죠.”
그녀가 샥 하고 수첩을 꺼내 들었다.
“키젠 입학 후 일주일간 병동행 사태 25회 발생. 작년이나 재작년 통계를 봐도 ‘학생 보호 기간’ 동안 이렇게 부상자가 많은 건 이례적. 통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경우 평민과 남작 같은 신분이 낮은 학생들이 주 피해자. 반별로 분석했을 경우 B반에 가장 많은 부상자 집중.”
시몬의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만큼은 제대로 해놓은 모양이었다.
차악.
치엘라가 다음 장으로 수첩을 넘겼다.
“그리고 B반의 핵심 권력자, 특례 3번 베로트론. B반의 분위기는 극도로 무거워서 제대로 학생들에게 정보를 따내기 힘들었지만 일주일 만에 반을 장악하고 주위 다른 반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로트론이 누구야?”
치엘라의 표정이 해괴망측하게 구겨졌다.
“학생회장이나 되는 분이 베로트론이 누군지도 모르는 겁니까.”
“조사를 맡은 건 너니까 난 몰라도 괜찮잖아.”
치엘라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하여간 궤적도 짧은 남작가의 자제다운 발상, 언젠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내가 회장이 되고 말 거야.’
“……뭔가 표정이 무섭네.”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베로트론 그림웨인. 과거 왕국을 세운 개국공신 중 하나인 그림웨인 공작가의 장남입니다.”
“고위 가문이네.”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시몬의 태도에, 치엘라의 이마에 빠득 혈관이 뭉쳤지만 애써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참고로 그림웨인은 모계성, 그는 어머님의 외가 쪽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를 낳은 아버지 쪽은 다름 아닌 그 유명한-”
그녀의 고개가 젖혀졌다.
“제독 라즌 맥밀런. 제3군단장입니다.”
“아.”
‘아. 하고 넘어갈 문제냐고!’
치엘라의 눈매가 좁혀졌다.
‘아무리 가문과 궤적을 무시하는 당신이라고 해도! 당신과는 격이 다른 전설적인 군단장의 아들을 어떻게 할 수는……!’
“그래서 그 녀석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란 거지?”
시몬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앞을 가리켰다.
“사진에 찍힌 장소도 로체스트였으니까 잘 찾아보자. 추궁해도 베로트론이 시치미 떼면 그만이니까, 현장을 덮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치엘라는 걸으면서도 힐긋 힐긋 그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은 건가? 아니면 괜찮은 척하는 건가? 상대는 제독, 라즌의 아들인데? 굴지의 권력자라고.’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저 인간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치엘라가 꾸욱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학생회장이라 본인 신분을 망각한건가? 그래, 키젠에 너무 오래 있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틀림없어. 키젠 학생이 가진 권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뒤의 살아갈 수십 년은 생각하지도 않나? 선배들이 다 문제야. 내가 언젠가 키젠의 문화를 바꾸겠어!’
“치엘라.”
그때 시몬이 입을 열었다.
“조사 수고했어. 잘했네.”
“……아, 네. 감사합니다.”
시몬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질책하지도 않는 건가? 조사는 다 했으면서, 로체스트에 있는 거 알면서, 왜 베로트론은 잡지 못했냐고 질책할 차례 아냐? 심지어 내 입으로 해결할 거라고 말했는데!’
하지만 시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서 나란히 거리를 걷고 있으니 몇몇 학생들이 시몬에게 인사를 해왔다.
“시몬 선배님!”
“학생회장님!”
사복 차림인데도 다들 시몬을 알아본다.
특히 2학년들 사이에서 시몬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곳곳에서 고마워요! 힘내세요! 하는 감사와 격려의 말들이 날아온다. 벨하이츠에 친척이 있었는데 고맙다며 선물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왜?’
그 대단한 고위 가문의 자제들이 시몬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안달이 난 모습. 그 광경이 치엘라의 멘탈을 흔들어놓았다.
누구나 태어난 대로 살아가고, 태어난 대로 흘러간다.
인간은 과거의 궤적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된다고 생각하던 그녀는 이런 키젠의 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네. 가자, 치엘라.”
그렇게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온 시몬과 치엘라가 조금 더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렇지?”
“……네.”
“학생회장님!”
이번에는 정복 차림의 어른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학생회 직속 하수인이었다.
시몬에 이어 치엘라에게도 깍듯이 인사한 그녀가 주변을 정찰 중이라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시몬은 잠시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금 바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요.”
“네, 말씀해 주십시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이 헤어졌다. 여전히 살짝 얼이 빠진 표정의 치엘라에게, 시몬이 다가와 말했다.
“사람이 많은 곳 위주로 돌아다녀 봤지만 성과가 없었네. 이번엔 으슥한 곳 위주로 돌자.”
시몬이 로체스트의 지도를 펼쳤다.
“나는 여기서부터 오른쪽으로 이렇게 쭉 돌아볼게. 치엘라는 반대편을 맡아줘.”
그러고는 통신 수정구 하나를 건넸다.
“먼저 베로트론을 발견하는 쪽이 연락하는 거야. 여기 버튼을 누르면 빨간색 불이 들어오고 통신이 연결돼. 혹시 문제가 생기면 꼭 이 버튼을 눌러. 알았지?”
“네, 선배님.”
“그럼 흩어져서 순찰하다가, 별 일 없으면 다시 여기로 모이자.”
“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치엘라는 반대편으로 저벅 저벅 걸었다.
“후우우우우우.”
아직 신입생이라 여기 지리를 잘 모를지도 모른다며 지도까지 쥐여준 모습.
그녀는 지도를 구깃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먼저 베로트론을 발견하는 쪽이 연락하는 거야.
모를 리가 있나.
그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고, 뭘 하는지도 알고 있다.
짝! 짝!
그녀는 정신 차려야 한다는 듯 제 뺨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후우우. 후우우욱.”
이어서 길게 숨을 내뱉은 그녀가 반대쪽 주머니에서 학생회 완장을 꺼내 팔에 착용했다.
그러고는 익숙한 듯 어떤 장소로 걷기 시작했다.
* * *
로체스트에서도 거리가 먼 외곽 지역.
낡은 저택 앞.
그곳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덜덜 떨면서 서 있었다.
퍼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학생이 한 학생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흑!”
쓰러진 학생이 흙바닥을 뒹굴며 피를 줄줄 흘렸다. 그가 애원하듯 말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베로트론! 나는…….”
“너희 가문의 죄를-”
베로트론이 천천히 다리를 들었다.
“네가 알렷다.”
쩌어어억!
복부를 걷어차인 학생의 몸이 크게 꺾이며 또다시 바닥을 뒹굴었다.
“감히 내 아버지 제독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겠다고 해? 너희 허름한 영지 따위가?”
베로트론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니들은 뭐 하냐?”
그리고 뒤에서 서로의 멱살을 어설프게 잡고 있던 두 학생이 흠칫했다.
“바하스 가문과 지티노 가문. 곡창지대를 두고 영지전까지 벌일 필요가 뭐 있어? 괜히 분쟁 일으키지 말고 둘이서 주먹으로 결정하라니까.”
덜덜덜.
바하스 가문 쪽의 학생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우, 우리는 권한도 없고…….”
“가문의 높은 분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닐까? ……하하.”
베로트론이 길게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끄적였다.
“지논 가문. 앞으로.”
“으, 응!”
한 소년이 앞으로 튀어나오자마자.
짜아아아악!
베로트론이 그의 안면을 힘껏 후려쳤다. 그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크, 크윽!”
“니네 휘하의 X밥 가문들이잖아. 왜 관리를 안 해. 일어나.”
스윽.
베로트론이 다시 손짓하자, 방금 맞은 지논 가문의 소년이 뺨이 빨갛게 물든 채로 다가왔다.
“바하스 가문과 지티노 가문, 니들 계속 안 싸우면 자작 가문인 이 새끼가 죽는다.”
짜아악!
짜아아악!
지논 가문의 소년이 베로트론에게 얻어맞자, 바하스와 지티노 가문 둘이 서로를 정신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베로트론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바위에 걸터앉아 싸움을 구경했다.
“그럼 다음으로…….”
“이제 그만해.”
우뚝.
모두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치엘라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오, 왔구나? 1번.”
베로트론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베오트론이 동급생들을 괴롭히고 있는 현장.
제대로 그 현장을 덮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학생회 완장까지 차고 온 치엘라의 등장에 베오트론은 물론, 일반 학생들의 표정에도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자신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이 모든 게 마음이 아팠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베오트론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표정이 안 좋네. 너도 여기서 스트레스 좀 풀려고?”
“……그만해.”
그녀가 주먹에 힘을 꽉 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베오트론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제 얼굴을 가리켰다.
“그만해? 뭘 그만하라고? 설마 너 지금 나보고 하는 소리……!”
“이제 그만하라고 이 개새끼야!”
그녀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베오트론은 웃는 얼굴 그대로 손만 내렸다.
“학생회 완장까지 차고 왔는데 눈치란 걸 볼 생각도 안 하지? 니가 사람이야? 이건 못살게 구는 정도가 아니잖아!”
그녀가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학생들을 가리켰다. 그 옆으로 배를 걷어차여 여전히 웅크리고 학생도 가리켰다.
“내 생각보다 훨씬 심했어! 학생회의 일원으로서 더 이상 넘어갈 수 없어! 넌 지금……!”
“그만.”
차갑게 말을 끊은 베오트론이 귀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
“치엘라, 네가 늘 말하는 소리 아냐? 궤적이 긴 사람이 짧은 사람 위에 오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궤적이 긴 사람이 위에 오르는 건 더 유능한 힘으로 모두를 지키기 위함이야!”
그녀가 팔을 휙 휘둘렀다.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그런 말도 해주시고, 좋은 아버지를 뒀네. 근데 너.”
베오트론의 웃는 얼굴에 일순 웃음기가 빠졌다.
“목소리가 크다?”
치엘라가 흠칫했다.
“우리 사이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네 논리에 따르든, 내 논리에 따르든.”
자리에서 일어난 베오트론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 치듯 물러섰다.
학습된 두려움이 몸을 타고 흐른다.
“아무리 선제후 가문이었던 10대 가문 중 하나라고 해도 이건 경우가 아니지. 너희 가문에서 나는 생산물을 사들이는 게 어디였더라? 너희 영지의 경제권은 우리 영지의 경제권에 종속되어 있다고. 심지어 그쪽 해안은 내 아버지 제독의 영역이기도 하지.”
그러고는 치엘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키젠 생활은 정치의 연장이야. 우리 사이에 금이 가서 네 영지에 식량 공급이 끊기고 너희 아버지와 영지민들이 굶어 죽는다면 이게 다 무슨 비극이겠어? 어? 그게 니가 말하는 위에 오르는 사람의 ‘책임감’이야?”
“…….”
그가 괴롭히던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억울하네. 야, 내가 니들 괴롭혔어?”
그들이 일제히 아니라고 합창하며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치엘라의 표정이 더더욱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여기가 학교라지만 지킬 건 지켜야지, 얄팍한 학교의 권력을 등에 업고 날 괴롭히려는 행위는 참 가슴 아파.”
베오트론이 팔짱을 꼈다.
“사과를 들어야겠어, 치엘라. 공손하게 고개도 숙여서.”
꾸욱!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주먹에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파들파들 떨렸다.
하지만 신분과 권력의 차이는 명확하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영지에 피해를 주는 꼴을 볼 수는 없다. 만약 교수들에게 알린다고 해도, 여기 있는 피해 학생들은 베오트론이 두려워서 하나같이 피해 사실을 부정할 것이다.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더 이상.”
그녀가 베오트론을 올려다 보았다.
“애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나도 사과할게.”
“어.”
베오트론이 코를 후비는 시늉을 하며 휙 대꾸했다.
“그럴게.”
당연히 거짓말일 것이다.
내뱉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인간이다.
하지만 치엘라가 이제 도망가지 못하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했다. 사과만 들은 뒤, 피해 학생들은 더 음습한 곳으로 불러내서 계속 괴롭힐 것이다.
“거래했으니, 받을 건 받아야지?”
베오트론이 허리를 쭉 펴고 이를 드러냈다.
“키젠 ‘특례 1번’의 사과.”
치엘라의 다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이렇게 될 건 알고 있었다.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배경의 차이.
하지만 더 짧은 궤적의 가문에게는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면서, 긴 궤적의 가문 앞에서는 자신의 사상을 부정하는 짓은 할 수 없다.
그녀의 정수리가 베오트론의 앞에서 천천히 내려가려는 순간.
“숙이지 마, 치엘라.”
갑자기 들린 서늘한 음성에, 모두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펄럭!
검은 코트를 휘날리며 현장으로 걸어오고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
그 모습을 본 모두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치엘라가 등장했을 때와는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넌 내가 뽑은 학생회 멤버야. 내 지시 없이 벌을 주러 온 학생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다급히 주위로 물러나는 학생들 사이로 성큼성큼 들어온 시몬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가 용납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