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 chapter (57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74화
베르무드와 판타서스의 대결.
마치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을 보는 것만 같았다.
퍼렇고 뻘건 것들이 마구잡이로 부딪히고 뒤엉키고, 하늘에서는 번개가 내리치고 우박이 쏟아지는데 전투의 전개를 따라가기도 바빴다.
시간이 갈수록 전투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전장의 범위도 확장되어 갔다. 어느새 시간의 탑 폐허는 물론 도시까지 물이 범람했다.
가까운 1층 건물은 침수되었으며 건물 잔해나 공원 벤치, 박살 난 가로등 등이 둥둥 떠다녔다.
베르무드의 용암은 물에 식어 바닥에 깔리거나 언덕을 이루었고, 혹은 섬처럼 변해 버리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판타서스가 대단한 점은, 이 정신 나간 전투를 펼치는 중에도.
‘사람들을 다 구해내고 있어?’
시간의 탑에 있던 경비들, 학자들, 초대객 등등.
본래는 물이 차오르면서 전부 익사했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판타서스는 상아탑주를 상대하면서 가히 천 명이 넘는 인원을 수류계 마법을 써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식을 잃은 채 파도에 올라탄 사람들이 보인다.
“명색이 상아탑주인 내가 생명을 불사르면서 싸우고 있거늘, 사람들을 구할 여유가 있나!”
베르무드가 손짓하자 마법진에서 용광로처럼 용암이 쏟아졌다.
“그것이 내 의지요.”
판타서스도 팔을 휘두르는 것으로 해일을 일으켜서 막아냈다.
“나는 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사람들을 구하러 온 거요.”
“그것이 네크로맨서로서 자네의 에고라면 존중할 수밖에. 그 또한 자네의 강함을 이루는 근본일 테니까. 물론-”
베르무드가 손바닥을 끌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 점을 내가 이용해도 용서하길 바라네.”
쿠르르릉!
콰릉!
물바다가 된 폐허 곳곳에서 번개가 쏟아졌다. 뒤이어 무차별로 화산 쇄설물들이 쏟아지고, 판타서스는 더더욱 파도에 태운 사람들의 컨트롤에 신경 써야 했다.
상아탑의 우두머리가 상아탑 사람들을 죽이려 하고, 키젠 출신이 이들을 살리려 애쓰는 아이러니한 상황.
두 강자의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흡!”
판타서스가 거리를 좁혔다.
시속 500㎞의 파도를 타고 순식간에 베르무드의 뒤로 돌아온 판타서스가 그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에 휙 지나친 것 같지만, 그 순간에 판타서스는 베르무드를 세 번이나 건드리며 무려 3스택을 쌓았다.
‘이겼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전력을 다한 판타서스 선배님의 3스택. 인간이라면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러나.
베르무드는 태연한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훌륭하군. 작년 키젠 졸업생 중 ‘1순위 영입자 후보’였던 자네의 특기는 나도 세밀하게 보고받았네.”
꾸르르르륵!
베르무드의 몸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다시 한번 전신을 뒤덮었다.
“네크로맨서들의 싸움에도 상성은 엄연히 존재하지. 자네의 슬립은, 나와는 상성이 나빠.”
“…….”
물 위에 서 있던 판타서스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설마.”
“만 개의 마법을 통달한 내가, 굳이 용암마법을 주력으로 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부글부글부글!
수천 도의 용암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베르무드의 전신에 끼얹어졌다.
“내 몸은 내뿜어지는 용암으로부터 보호받지만, 통각만큼은 유지되네. 나는 지금 수천 도의 용암에서 세포 하나하나가 불타는 통증을 받고 있지.”
그가 손짓하자, 뒤에서 어느 때보다 거대한 화산들이 융기했다.
“내 에고는 통각. 나는 고통받을수록 강해진다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하늘이 짙은 구름으로 뒤덮이며 그것을 뚫고 거대한 화산 쇄설물 덩어리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히 고대마법 ‘메테오’를 방불케 하는 위력. 판타서스는 급히 해일을 일으켜 막아냈다.
“자네의 슬립은 엄밀히 말해 비저주에 가깝네. 상대를 강제로 수면상태로 만드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졸리게 만들어 재우는 매커니즘이지. 그러니 무한의 통증을 느끼고 있는 나는-”
베르무드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저 멀리 하늘에서 흐릿한 마법진들이 무수히 펼쳐지는 게 보인다.
“졸음 따위를 느낄 여지가 없다네.”
콰르르르르르릉!
콰르르르르릉!
이번에는 칠흑 전격계 마법이다.
판타서스가 방어마법진을 연달아 펼치고 이동했지만 떨어지는 화산 쇄설물들을 피하려다가 추적해 온 번개에 연달아 얻어맞으며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판타서스 선배님!”
시몬이 외쳤다. 하지만 시몬이 있던 자리에도 번개가 떨어졌고 시몬은 얼른 칠흑을 밟고 뛰어올랐다.
“흐흠, 저 선배도 참 한심하네요.”
반대편 나무에 걸터앉아 있던 세르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 죽어가는 아버지 하나 제대로 못 처리하다니.”
“상대는 상아탑주야! 그리고 상성도 나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슬립에 특화된 저주술사가 슬립을 봉인한 채로 싸워야 하는 상황.
거기에.
‘미래의 내가 냈다는 상처.’
베르무드는 여전히 복부가 뻥 뚫려 있었다.
하지만 회복하지 않은 채 마법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저기서 나오는 고통을 강함으로 승화하기 위함이었다.
저주저항도 뚫어내고, 캔슬레이션으로도 풀지 못하는 판타서스의 슬립이지만, 고통으로 무장한 베르무드를 상대로는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하하하하! 염려치 말게! 후임! 그리고 세르네 후배!”
첨버엉!
판타서스가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 근처의 수면으로 올라왔다.
“확실히 저런 매커니즘을 가진 네크로맨서는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내겐 아직 비장의 무기가 있네! 음!”
“비장의 무기요?”
“그렇다네!”
판타서스가 뒤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바로 자네들이지!”
그렇게 말한 판타서스가 무릎을 쭉 굽히더니, 산더미만 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에휴, 힘들어 죽겠는데.”
세르네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능한 선배를 만나서 피차 고생하겠네요.”
“무슨 소리.”
시몬이 빙긋 웃으며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들었다. 덕분에 검 몇 번 휘두를 정도의 기력은 회복했다.
“곧 기회가 올 거야. 놓치지 마.”
* * *
쏴아아아아아!
베르무드와 판타서스의 전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전개되었다.
판타서스는 파도를 타고 고속으로 이동하며 저주를 쏘아 보냈지만, 베르무드는 체인화한 ‘캔슬레이션’으로 막아내고는, 광범위 4원소 마법으로 판타서스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끌어봐야 나는 자멸하지 않네.”
베르무드가 태연하게 말했다.
“자네가 걸어둔 애꿎은 슬립의 지속시간만 지날…….”
퍼어어어어어어엉!
파도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판타서스를 중심으로 두 개의 파도가 솟구치더니 무려 아까의 ‘다섯 배’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했다.
‘놓쳤다!’
처음부터 이 정도의 가속이 가능하면서도, 베르무드의 눈에 속도를 익게 해서 허점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끌었던 거였다.
두 개의 파도가 좌우에서 밀려들고 있다.
베르무드는 둘 중 하나에는 판타서스가 있다고 판단했다. 슬립이든 마투든 판타서스는 거리를 좁혀야 했으니까.
베르무드는 태연하게 대처했다.
‘왼쪽부터.’
오른팔을 쭉 뻗으며 미리 준비해 둔 마법진을 발동했다. 용암의 파장이 파도를 박살 내려는 순간.
스릉!
파도가 먼저 반으로 갈라졌다.
쩌어어어어어어엉!
갑자기 세상 또한 반으로 갈라지며 베르무드가 눈을 부릅떴다.
그의 오른팔이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참격?!’
저 멀리서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휘두른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보였다. 파도는 시선 끌기일 뿐이었다.
쏴아아아아아!
그리고 하나 남은 파도가, 팔이 날아간 베르무드의 오른쪽으로 돌아와 전진했다. 바로 그 파도 안에 판타서스가 있었다.
‘소용없는 짓을.’
이번에야말로 베르무드가 왼손 검지를 끄적거렸다.
꽈드득!
베르무드의 복부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빙하의 창이 쏘아져 나가 판타서스의 몸을 관통했다.
샤르르르르르륵!
그러나.
빙하에 직격당하는 순간, 판타서스의 몸이 새하얀 깃털들로 분해되었다.
“……!”
[몇 번을 속이는지 모르겠네요~]흩날리는 깃털에서 세르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100층에서 내가 죽었다고 착각한 건 우연이 아니에요.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매일같이 아버지의 인지 패턴과 감지 습관을 분석했으니까.]쿠르르르르르!
진짜 공격은 아래.
베르무드가 떠 있는 수면으로, 잠수한 판타서스가 올라오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맨날 아버지 앞에서 웃던 것도, 사실 환상이었어요. 나 그때 찡그리고 있었거든요.]베르무드가 눈을 부릅떴다.
“세르……!”
터어어어어어어어엉!
산더미만 한 물보라가 솟구쳤고, 베르무드의 몸이 공중으로 쳐 올라갔다. 그리고 그 위에는.
쏴아아아아-!
대뜸 눈코입이 달린 지팡이 한 자루가 모래를 일으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베르무드의 시야가 순식간에 모래에 뒤덮이며 가려졌다.
“다들, 시작하겠습니다.”
어느새 황금의 옷을 입고 있는 시몬이 손을 움직였다.
* * *
휘이이이이잉-!
베르무드가 눈을 떴다.
푸른 하늘에 아무것도 없는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다.
“기이한 힘이군.”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나를 던전에 가둔 건가.”
이내 모래바람이 세 방향에서 더 일어나며, 시몬과 세르네. 마지막으로 판타서스까지 모래의 세계에 들어왔다.
“음! 아주 훌륭한 연계였다! 시몬 후임과 세르네 후배!”
판타서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임이 마련한 장소도 마음에 드는군. 이제 주위의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
“그렇다면 다행…….”
[잠깐! 어떻게 된 거야 꼬마야!]사념으로 헤르세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쥐꼬리만큼 칠흑을 줘놓곤 나보고 어쩌라고! 미라도 제대로 못 뽑겠네!]‘미안, 이게 지금 내 한계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어?’
[5분이 최대야!]시몬이 난감한 듯 판타서스를 보았다.
“얼마나 유지할 수 있나.”
판타서스도 상황을 직감한 것 같았다. 시몬은 조용히 말했다.
“5분이요.”
“하하하하! 충분하네!”
판타서스가 큰 소리로 웃으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럼 난 이만 자겠네!”
“선배님?”
그러고는 쿨- 하고 순식간에 고개를 기울였다.
“잠깐! 너무 대책 없…….”
촤아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베르무드의 몸이 판타서스의 코앞까지 전진했다.
“절대 자게 둘 수는 없지!”
한 짝만 남은 그의 왼팔이 각종 마법진으로 뒤덮였다.
대기를 가르며 판타서스의 안면으로 향하려는 순간.
카각!
하얀 칼날이 앞을 가로막았다.
깡!
시몬이 파멸의 대검으로 베르무드의 팔을 힘주어 튕겨냈다. 베르무드는 자신의 왼팔이 튕겨 나오는 동시에, 칼날에 닿은 마법진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했다.
‘시간의 폭주까지 겪고 다 죽어가던 놈이 어떻게……!’
뒤로 물러난 베르무드가 거칠게 소리쳤다.
“방해하지 마라, 군단장!”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그의 후면으로 무수한 초대형 마법진이 설치되었다. 마그마와 얼음과 전격 등이 이글거렸다.
시몬이 굳은 얼굴로 대검을 앞세웠다.
“죽어라.”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그런데 이번에는 시몬의 뒤로 마법진이 펼쳐졌다.
“어머나~”
세르네가 손에 쥔 깃털을 부채처럼 살랑거리며 시몬의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 되죠.”
베르무드와 세르네가 동시에 팔을 펼쳤다. 수십 개의 마법진에서 거대한 원소마법들이 뿜어져 나와 사방을 뒤덮었다.
그야말로 원소의 향연.
상아탑 네크로맨서들의 특기인 칠흑원소 마법의 대폭발이었다.
‘와……!’
시몬이 감탄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방금 상아탑주의 공격을 정면으로 상쇄한 거야?’
“감히!”
베르무드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그의 몸이 더 많은 용암으로 뒤덮으며 아까 펼친 양의 세 배에 달하는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죽……!”
그가 팔을 움직이려는 순간.
변화를 감지했다.
팔이 무거웠다.
그리고.
‘공기가?’
팔을 휘저었을 뿐인데 팔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판타서스의 흑마법은 벌써 완성되어 있었다.
[시작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