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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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섞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술을 섞을 테니 한 번 맞춰보라는 말에 주공은 목덜미까지 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오늘 여러모로 주공의 생명에 위협을 많이 가하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없으십니까? 술은 누구보다 잘 아신다더니, 그것도 아닌가 봅니다.”
“술을 섞으면 섞을수록 맹탕이 되는 게 그 본질이다. 섞이면 맛이 흐려져 판단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인 모양인데, 어림도 없는 소리! 술을 빚은 이의 혀는 속이질 못해!”
“하면 주공께 더 유리한 내기니 거절하실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이놈이, 끝까지!”
딱히 주공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황주만을 섞고 또 섞는 양이 많았을 때는 저 말이 사실이니까.
이때 술을 썩는다는 건 내가 있던 곳에서처럼 한잔 분량 술을 정성스레 섞는 걸 말하지 않았다.
중원에서 술을 섞는다는 건 저렴한 술을 여러 포대 뭉쳐 양을 불리기만 하던 편법의 일종을 말했다.
발효주인 황주가 대부분이던 이때에는 대용량으로 술을 섞으면 아직 발효가 끝나지 않은 술도 섞이곤 했다.
그렇다면 맹탕이나 식초가 되기도 하기에 마냥 틀린 건 아닌 말이다.
하지만 마치 모든 술을 섞었을 때 늘 나오는 결과인 것처럼 말한 건 분명 주공의 실수다.
내 손에서는 다를 테니까.
“오냐. 해보자. 대신, 지고 나서 떼스지나 말거라!”
“예. 주공. 저는 그러진 않을 겁니다.”
“이···!”
가볍게 마지막 기 싸움을 던졌다. 이글거리는 주공의 눈빛을 맞으며 허리춤에 찼던 가방을 앞으로 꺼냈다.
주공의 시선이 특이하게 생긴 가죽 가방에 꽂혔다. 가방에는 그가 처음 보는 신기한 도구들이 가득했다.
“그건 무엇이냐?”
“술을 섞을 도구입니다.”
“술을 섞는데, 도구까지?”
“조주사들이 쓰는 도구지요. 전문적으로 술을 섞어 새로운 맛을 창조하게 돕는 게 바로 이 도구들입니다.”
주공은 연신 신기하다는 눈빛을 가방에서 떼지 못했다. 대립하는 중이라지만 술과 관련된 것이라면 관심을 주지 않고는 못 참는 성격이 주공이다.
“시작하겠습니다.”
“해 보거라.”
“아. 그전에. 술 말고도 이 녀석을 더할 생각입니다. 미리 알아두시지요.”
내기의 공정성을 위해 들어갈 재료 중 술이 아닌 걸 주공에게 보여줬다.
나무로 만든 통에 담긴 녹아가는 얼음을 주공이 빤히 바라봤다.
“얼음을?”
얼음이란 걸 구하기 쉬운 시절은 아니지만, 겨울이라 아직은 날씨가 선선한 덕분에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점소이에게 부탁해 가져둔 큼지막한 얼음이 계속해서 녹아가고 있었다.
“허. 재미난 짓이구나. 아주 판을 짜고 날 불러들인 것이고.”
“모르고 오신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흥. 쓰거라. 어차피 결과는 변치 않을 것이니.”
휙. 주공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리에 퍼질러 앉았다. 등을 돌리고 앉은 그.
만드는 과정을 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가 내기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만 같아 감사의 표시로 포권하고는 메이킹을 시작했다.
이미 준비는 전부 끝나 있었다. 주공이 올 걸 예상했고 그에 맞춰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손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술들을 향해 쭉쭉 뻣어 나갔다. 만들어 가는 맛은 그가 오기 전 이미 계산해둔 맛이다.
탓.탓.탓.
몇 개의 술이 셰이커라 불리는 도구에 담겼다. 연이어 손에 들린 건 커다란 얼음이다.
얼음의 크기가 조금 커, 단단한 바스푼으로 이를 가볍게 내리쳤다.
탕. 탕. 탕.
얼음은 곧 내가 원하는 크기로 깨지며 쓰임에 맞게 도구로 향했다.
얼음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선 주공도 이를 들었을 것이다. 크게 상관은 없다.
오히려 이게 주공을 괴롭힐 테니까.
얼음을 마저 넣고 셰이커의 뚜껑을 닫았다.
이제 준비는 끝.
난 모든 재료가 들어간 셰이커를 딱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살각! 살각! 살가가가각!
하는 청아한 소리.
마치 악공이 악기를 연주하듯, 무희가 검무를 추며 선을 그려가듯, 셰이커는 청아한 소리를 울리며 세차게 흔들렸다.
정확히 눈과 턱 사이를 오가는 셰이커의 움직임은 일정했다.
칵테일을 만드는 기법 중 셰이커에 재료와 얼음을 넣고 흔드는 걸 셰이킹이라 부른다.
재료로 넣은 술들이 섞이게 하고 또 얼음과 마주하며 냉각 효과까지 주는 기법.
거기에 공기까지 더해 부드러움까지 줄 수 있는 기법이 셰이킹이다.
바텐더란 단어를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모습이 있지 않나. 그중 하나가 술을 담은 셰이커를 높이 든 바텐더의 모습일 거다.
그만큼, 셰이커와 셰이킹은 바텐더의 상징이자 기본이다.
‘오랜만이네.’
못해도 마지막으로 셰이커를 잡았던 게 석 달은 넘었다. 중원에서는 첫 선을 보이는 게 지금.
하지만 어색함은 없다. 난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바텐더로 지냈던 사람이다.
몇 끼를 굶었다고 밥 먹는 법을 까먹는 이는 없다.
살각. 살각. 살가가가각!
촤아아아아아!
청아한 소리를 뿜던 셰이커가 뚜껑을 열고는 잔으로 음료를 토해냈다.
마치 폭포처럼 높은 곳에서 잔으로 떨어지는 갈색 음료.
술을 모두 부은 후 셰이커를 딸깍거리며 털어주니 잔 위에는 하이얀 거품까지 자리하며 완성을 알린다.
잔은 투명한 유리잔이 아닌 자기로 된 사발.
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시대에 맞춰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사발 위로는 잔잔한 거품이 오히려 돋보여 포근함이 한층 더해 보였다.
나는 이를 조심히 들고는 주공에게 다가갔다.
“됐습니다. 주공. 드셔보시지요.”
“흠. 생각보다 요란하더구나.”
다가서니 주공이 돌아앉는다. 셰이커가 소리를 낼 때면 어깨를 움찔하던 그는 웬지 잔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술 주변에서 50년을 살면서도 이런 건 처음 볼 것이다.
“잔이 조금 그렇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흥. 명필이 붓을 가린다더냐?”
“가릴 수만 있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정식으로 한 번 더 대접하겠습니다.”
“됐고! 잔을 놓거라.”
가로채듯 잔을 빼앗은 주공이 이를 유심히 살폈다. 잔에 낀 거품은 무엇인지, 또 색은 어떻고 향은 어떤지.
마치 바를 찾은 손님처럼 유심히 살피는 그였다.
위로 올라오는 향을 손으로 집향한다. 그리고 이를 코로 마시는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내가 있던 곳에서도 향은 그렇게 맡아가곤 했다.
“향은 진득한 것이 속에 누룩 향이 배어 있구나. 이는 쌀로 만든 황주를, 그것도 묵히지 않은 아주(兒酒)로 썼다는 뜻일 터. 소흥주나 석황주를 썼구나. 흠. 아니지. 이건, 석황주, 아주에 더 가까운 맛이로다.”
주공(酒公)이란 이름을 노름에서 딴 건 아닌 모양이다.
향만을 맡고는 술에 들어간 재료를 맞춰가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다.
그의 말처럼, 재료에 쓰인 술 중에는 석황주가 분명 있었다. 그것도 아주였고.
자신의 만든 술은 모두 알아본다는 말이 마냥 허풍은 아닐지도 모른다.
‘역시. 장인이란 말은 아무나 얻는 게 아니지.’
그와 부딪히고는 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현대에서도 ‘노즈’라 불리는 향만을 맡고 속에 든 기주를 찾아내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아직 어린, 그리고 원숙하지 못한 바텐더라면, 바텐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공이라도 쉽게 이기진 못하리라.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호르르륵.
향을 맡았다면 다음은 맛이다. 혀에 닿는 술의 직관적인 맛을 표현하는 말은 팔레트다.
주공은 우물거리며 입안에 술을 머금고는 팔레트를 느껴갔다.
혀에 모든 부분이 술에 닿도록 굴려가는 주공. 결국 술이 돌고 돌아 그의 혀를 모두 자극하자.
!!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고 만다.
맹탕이 되었을 거란 예상과는 전혀 달리 부드럽고 은근히 담백한 맛이 깔린 술맛이 혀를 감쌌을 것이다.
이건 완전 새로운 맛의 술이었을 거다.
술을 섞어 또 다른 술을 만들어 낸다는 개념이 없는 이 시대에서 주공은 처음으로 그 맛을 본 사람이 되었다.
적잖은 충격이 그의 눈동자에 아려있었다. 계산한 대로였다.
꿀꺽.
“후우우우.”
놀랐어도 할 건 한다. 존경심마저 드는 부분. 주공은 표정을 갈무리하며 잔을 겨우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내뱉는 기다란 날숨. 이는 현대에서도 쓰는 방법으로 술의 잔향(殘香)이라 부르는 피니쉬를 느끼기 위함이다.
술은 첫 향, 중간 맛, 그리고 잔향으로 설계된다. 그중 잔향은 술을 다루는 바텐더보다 빚는 이들이 더 중시하는 부분 중 하나다.
“허.”
주공의 입에서 한줄기 짧은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웃음일지, 헛웃음일지 아직 알 수는 없다.
주공은 진지하게 고개를 갸웃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설계한 맛에 따른다면 느껴졌을 잔향은 단맛일 것이다. 쩝쩝 소리를 내며 입가를 핥는 모습이 그를 증명하고 있다.
제대로 의도한 맛을 느꼈다면 머리는 더 복잡할 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기이니 이는 노린 것이다.
한참을 더 입맛을 다신 주공의 눈썹이 빠르게 교차되었다.
“술의 세기가 석황주만을 썼다기에는 강하구나. 이건 본디 백주를 썼을 때 나올 수 있는 맛일 터. 헌데도 백주라기엔 너무 약하기는 하고. 아. 이는 다른 술이 더 들어가서 렷다? 헌데···”
“달지요?”
!
“수 쓰지 말거라! 아직 답을 내기 전이니!”
“그저 맛을 묻는 것뿐입니다. 달지 않습니까?”
“다, 달다. 허나···!”
“과실주인 홍주 특유의 시큼함은 또 느껴지지 않았을 테고요.”
“···마지막은 분명···.”
맑았는데. 정말이지 한없이 맑고 투명했는데. 주공은 그런 말을 되뇌듯 속삭이고는 침전에 빠졌다.
난 그에게 많은 시간을 줄 생각이 없다. 혼란에 빠진 상대는 몰아쳐야 제맛이다.
이건, 내기니까.
“답을 아시겠습니까?”
“기다려 보거라. 잠시면···!”
“장고(長考)는 반칙이지요.”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기선은 이미 넘어왔다. 해서 쉬지 않고 옆에서 말을 붙였다. 덕에 집중하지 못했을 터.
이제는 결정타를 넣어야지. 그런 생각을 머금고 있을 무렵.
“···!”
주공이 갑작스레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재빠르게 끄덕였다. 무언가 그의 머리를 스친 모양이다.
그는 이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는 내 눈을 똑바로 쏘아봤다.
잠시 떠났던 아집이 다시금 찾아온 눈빛이다.
“옳다. 내 잠시 함몰될 뻔했구나. 이제 답을 알겠다.”
“답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끝까지 자신감 넘치는 태도구나, 애송이. 오냐. 들려주마. 네놈은 분명 황주인 석황주를 기본으로 더했을 것이다. 가장 많이 깔린 술은 석황주일 터. 그런 석황주에 술의 세기를 더하려 백주를 넣지 않았더냐? 백주는 양조장에서 나오는 가장 기본 백주를 썼을 거고. 그리고 마지막은···, 연미주! 쌀을 두 번 덧대어 만든 연미주를 썼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단맛이 이리 나올 수는 없는 법. 황주를 써, 맛 속에 같은 재료인 쌀 맛을 숨기고 또, 색 역시 더 나올 수 있게 했겠지. 암. 그리고 맑은 맛은 분명 얼음 때문이었을 터. 내 깜빡하면 속을 뻔했구나.”
말은 점점 빨라졌고 표정 역시 함께 변해갔다. 뱉으면 뱉을수록 그의 얼굴에는 확신이 짙어졌다.
어느새 입꼬리마저 넓게 찢어 웃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승리를 예견하는 자의 표정이 그대로 묻은 얼굴이다.
“계속하시지요.”
“응?”
“계속하시라 했습니다.”
“뭘?”
“예?”
“응?”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답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의식적으로 전했던 말에 주공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제야 내 실수를 깨닫고는.
“아. 끝입니까?”
주공의 답이 끝났음을 알아챘다. 주공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놀리냐며 강한 눈빛을 쏘아댈 뿐.
난 따가운 그의 눈빛을 받아내며 옅은 미소와 함께 승리를 확신했다.
“아무래도 내기는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