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prison guard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이자벨 (4)
시선을 돌려 숲을 바라봤다.
이자벨의 말처럼 강렬한 기운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둘이 아니었다.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는 환상종 하나와 그 뒤로 무리를 지은 환상종들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자벨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막을게. 네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가.”
이자벨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게임에서 이자벨은 이 상황을 혼자 겪었다. 그때도 교사와 아이들에게 도망가라고 하고 혼자 남았을 거다.
그러나 숲에서 오는 환상종들의 속도는 터무니없이 빨랐다. 교사와 아이들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은 내가 있으니 도망칠 수 있겠지만.
이자벨을 두고 가기엔 게임 속 대사들이 자꾸 걸렸다.
-패밀리어랑 계약? 줘도 안 해. 난 그 우월주의자들이랑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 않아.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강제 계약.
이자벨은 자신의 패밀리어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패밀리어만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올라 고통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누군가의 희생이 따랐을 거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교사와 아이들에게 향했다. 저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혼자만 살아남았다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
이자벨을 두고 교사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간다면, 그들의 목숨은 확실하게 살릴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불꽃 여우도 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자벨이 죽을 수도 있다.
내가 교사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간다는 선택지는 원작에 없던 흐름을 만들어 낸 거니까.
이자벨과 교사와 아이들.
전부를 살릴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이자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마신교를 막기 위해선 강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다.
이자벨은 용사 파티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해질 테니, 더더욱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선 안 된다.
“빨리 도망가라니까.”
“도망가기엔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최악의 상황은 그렸으니.
이젠 최선을 다해 움직일 때다.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이곳에 남아 환상종들을 전부 처리하는 것뿐.
일단은 될 때까지 해 봐야지.
“싹 다 죽겠네.”
이자벨의 푸념과 함께 정면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검 자루를 꽉 쥐며 전투를 준비했다.
풀을 밟는 소리와 함께 환상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털을 가진 여우.
여덟 개의 꼬리에 피어난 불꽃.
적미호.
이자벨이 계약을 했던 환상종이었다.
“인간.”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적미호가 이자벨에게 다가갔다.
“살고 싶으면 나와 계약해라.”
“뭐?”
“시간이 없다. 살고 싶으면 나와 계약을 진행해라.”
인상을 팍 찌푸린 이자벨.
“뭐라는 거야. 내가 너랑 계약을 왜 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환상종과의 계약을 꺼렸던 만큼, 적미호의 제안이 달갑게 다가오진 않았을 터.
여기서 시간이 끌린 거다.
무리를 지어오던 환상종 중 일부가 교사와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아우우우!”
늑대의 형상을 한 환상종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며 날아왔다.
질풍베기를 사용해 정면에 있는 환상종의 머리를 베고, 몸을 회전하면서 돌풍베기를 사용해 뒤에 있는 환상종을 쓸어버렸다.
콰가가가강!
쩌저적!
주위의 나무들이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앙!”
“선생님.”
놀란 아이들이 교사에게 바싹 붙은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애들아, 괜찮아. 저분들이 구해 주실 거야.”
그들을 뒤로하고 주변에 있는 환상종의 기척을 확인했다.
아주 강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그 녀석이 오고 있다. 인간, 살고 싶다면, 저들을 살리고 싶다면 나와 계약해야 한다.”
“꺼져. 난 계약 같은 거 안 해. 할 거면 쟤랑 하던가.”
이자벨이 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적미호가 고개를 저었다.
“저분은 나와 맞지 않는다.”
“뭐 나랑은 맞고?”
“그래.”
스스스스!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뒤에 있는 아이들과 교사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거다.
“얼마 안 남았다. 그 녀석이 오면 여기 있는 전부 죽…….”
“그 녀석이 누군데.”
“흑랑.”
적미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털을 가진 늑대.
“아우우우우!”
붉은 눈빛이 번쩍이는 늑대가 검은빛을 내뿜으며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늑대 가죽을 몸에 두르고.
양손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흑랑.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흑랑이 노리는 건, 이자벨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갈 수 없었다.
흑랑을 따르던 늑대들이 쓰러진 교사와 아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카강!
늑대의 발톱을 막아 내며 목을 베었다.
몰려드는 늑대들이 교사와 아이들을 건드릴 수 없게 먼저 움직였다.
정화의 힘을 담아 명령을 내렸다.
‘물러서라.’
움찔.
늑대들이 멈칫했지만, 딱 그뿐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좀 더 강한 놈들에겐 안 통하는 모양이다.
“아우우!”
사방에서 몰려드는 늑대들을 보며 마나를 가득 담아 돌풍베기를 사용했다.
연속 세 번.
콰아아앙!
콰가가가강!
교사와 아이들이 누워 있는 땅을 중심으로, 거대한 돌풍 세 개가 사방으로 퍼지며 늑대들을 집어삼켰다.
“후우.”
일단 늑대들은 전부 처리했다.
잠시 호흡을 고르며 옆을 쳐다봤다.
흑랑과 이자벨이 싸우고 있었다.
적미호와는 계약을 했는지, 이자벨의 머리가 타오를 듯한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적미호와 합체해서 싸울 때.
이자벨의 모습이 딱 저랬다.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가는 화염.
사방에서 몰아치는 폭발이 흑랑을 집요하게 노렸지만, 빠른 움직임으로 이자벨의 공격을 전부 피했다.
흑랑은 웃고 있었다.
“크흐흐흐.”
이자벨을 조롱하듯 가지고 놀고 있는 게 보였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차이. 이자벨이 슬슬 밀리기 시작했다.
선명했던 이자벨의 푸른 눈동자가 붉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적미호가 이자벨의 몸을 조종하려고 하는 거다.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이자벨은 적미호와 계약을 했지만, 흑랑의 압도적인 강함에 밀렸고. 적미호는 살기 위해 이자벨의 몸을 빼앗아 도망친 거다.
교사와 아이들은 죽었을 테고.
이자벨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친 적미호를 싫어했던 거다.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을 줄은.”
문제는 저 흑랑이라는 녀석이 왜 폭주했냐는 건데. 그건 직접 잡아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착!
질풍베기를 사용해 흑랑의 머리를 노렸다. 몸을 뒤로 꺾은 흑랑이 검을 피했다. 그림자의 손을 이용해 흑랑을 잡았다.
몸을 회전하며 검을 수직으로 그었다.
콰득!
흑랑이 이빨로 검을 물었다.
힘을 주어 그림자의 손을 찢어 버리고, 검을 뱉으면서 빠르게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세가 무너졌다.
요정의 날개를 사용했다.
날갯짓과 함께 몸을 뒤로 뺐다.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은 흑랑이 킁킁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냄새가 나는군.”
“…….”
“초월종의 냄새가.”
흑랑이 눈을 번뜩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근육이 불끈거리면서 녀석의 몸집이 커졌다.
늑대인간의 형태라고 해야 할까.
하얀 입김을 내뿜는 흑랑에게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 느껴졌다.
“맛있게 먹어 주마.”
스슥!
흑랑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순간.
아라키스의 눈이 발동하면서 세상이 붉게 변했다.
왼쪽.
흑랑의 움직임이 보이지만,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녀석의 발톱이 내 옆구리를 휩쓸었다.
촤악!
왼쪽 옆구리가 화끈거렸다.
“크윽…….”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았다.
세상은 여전히 붉었고, 흑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오른쪽.
요정의 날개를 사용해 흑랑의 공격을 피했지만, 녀석은 너무나도 빨랐다. 뒤이어 날아온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퍽!
몸이 허공을 날았다.
바닥에 등이 쓸려 나갔다.
까드득!
[타오르는 영혼(EX)이 발동합니다.]심장에서 피어오르는 파란 불.
불사조의 힘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상처를 회복시키고, 체력과 마나를 처음으로 돌려 주었다.
그러나 이전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특정한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불사조가 일시적으로 강림합니다.]심장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꺼지지 않고, 점점 불길을 키워 나가면서 불사조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후끈한 열기가 사방에 퍼졌다.
신전에서 보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불사조가 흑랑을 노려보았다.
-어리석은 놈, 그 힘이 너를 초월로 이끌 거라고 생각했다니.
“닥쳐.”
-죽어라.
불사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랑의 전신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푸른 불꽃.
“끄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워하는 흑랑이 바닥에 몸을 비비며 불을 꺼 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활활 타올랐다.
흑랑의 모든 게 녹아내렸다.
“아… 안 돼! 그만둬!”
화르륵!
푸른 불꽃이 흑랑을 집어삼켰다.
그와 함께 불사조 또한 모습을 감췄다.
그 순간 심장이 욱신거렸다.
“크윽!”
그리곤 정신을 잃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일어났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이자벨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목이 간질거렸다.
“무… 물.”
“잠깐만.”
이자벨이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교사랑 아이들은?”
“전부 살았어.”
“흑랑은?”
“그것과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는데. 너 기절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는 거 있어?”
기억난다.
특정한 조건을 맞췄다는 메시지와 함께 불사조가 나타나 흑랑을 죽였다.
불사조의 강림 조건.
초월종이 강림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의 마나가 풍부한 곳이어야 하며, 타오르는 영혼이 발동되어야 했다.
“레딘?”
“기억이 안 나.”
내게 불사조가 있다면 마탑에서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적미호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저렇게 물어보는 걸 보면.
별다른 말은 안 한 모양이다.
“그래? 흠.”
“근데 난 누가 데려온 거야?”
“청탑주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푸른 망토를 두른 백발의 노인.
그의 심장에는 마탑주를 상징하는 별 배지가 달려 있었다.
“청탑주님을 뵙습니다.”
이자벨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따라서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청탑주가 막아 세웠다.
“괜찮네. 몸은 어떤가?”
“청탑주님께서 구해 주신 덕분에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갔을 땐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네. 내가 한 거라곤 병실로 옮긴 것뿐이야.”
청탑주 또한 불사조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일단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 앞으로 레샤 왕국을 이끌어 나갈 새내기들을 구해 줘서 고맙네.”
“응당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가?”
청탑주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배지 하나를 건넸다.
“이건 마탑의 명예 회원증이라네. 마탑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걸 보여 주면 다들 도와줄 게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이번 일에 대해서는 들었나?”
“아직 못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자벨이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적미호가 얘기하길. 환상의 숲에 누군가가 찾아왔대. 그 녀석이 흑랑에게 초월종이 되는 법을 알려 준다면서 인간의 심장을 먹으면 된다고 했나 봐.”
누군가라.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범인은 특정됐고?”
“아니. 그래서 범인을 잡기 위한 특별 조직이 꾸려질 것 같아.”
청탑주의 눈빛을 보아하니, 날 그 조직에 끼워 넣고 싶은 모양이다.
왜지?
버닝헬 소속은 꺼려하기 마련일 텐데.
“최근에 자네에 대한 소문을 들었네. 마그네스 조직원의 간부를 잡았다지?”
“소문이 벌써 퍼졌습니까.”
청탑주가 웃음으로 답했다.
“자네를 정식으로 스카우트하고 싶네. 원한다면 레샤 왕국의 남작 자리 정돈 챙겨 줄 수 있네.”
귀족의 작위는 곧, 보장된 미래다.
그러나 내겐 해야 할 일이 있다.
“제의는 정말 감사하지만, 전 버닝헬이 좋습니다.”
“아쉽군.”
“죄송합니다.”
“푹 쉬다 돌아가게.”
청탑주가 미련이 남은 얼굴로 병실을 빠져나갔고, 옆에 있던 이자벨이 입을 쩍 벌린 채 내 멱살을 잡았다.
“미친 새끼야! 귀족 작위를 준다는 데 그걸 거절해? 누군 갖고 싶어도 못 갖는걸.”
“필요 없어.”
“땅을 치고 후회할 텐데?”
“후회 안 해.”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기절하고 얼마나 지났는지 좀 알려 줘.”
“3일.”
“그래?”
슬슬 보타만 자작을 잡으러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