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
020화. PvP (3)
자신을 저격하려던 놈들이 갑자기 발목을 붙잡은 탓에, 민준은 총성을 듣고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학교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너무 늦었나….’
뒤늦게 도착한 비품실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후였다.
사격부 학생으로 보이는 시체 한 구와 유혈이 낭자한 바닥, 난장판이 된 비품에 곳곳에 떨어진 탄피들.
여러 정황들이 격렬했던 직전의 전투상황을 예상케 했다.
‘젠장, 소희 씨건, 동길 아저씨건,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세요.’
현재 가장 우려가 되는 점은 학교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말은 좋은 상황이든 아니든, 어떠한 식으로라도 결과가 났다는 소리.
불현듯 좋지 않은 가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시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이상, 둘이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움직여야 했다.
‘아직 확실한 건 없어.’
불길한 생각은 집어넣고, 또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둘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민준은 방안을 둘러보며 전투의 흔적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찍혀있는 발자국, 혈흔이 튄 방향.
흔적을 살피는 것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이러한 증거들이라도 짜깁듯이 맞춰, 당시의 전투상황을 읽어내려고 했다.
“한번은 막아냈지만, 이후에 밀려온 놈들의 숫자를 이기지 못하고 끌려간 건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끌고 갔다는 건, 살려둬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고. 그렇다면 아직도 살아있을 확률이 높을 테니까.
왜 두 사람을 죽이지 않고, 끌고 갔는지는 명확했다.
“나를 잡기 위한 인질이겠지.”
상대측에도 내가 받은 것과 거의 같은 퀘스트가 주어졌을 테니.
저들이 이기기 위해선 둘의 목숨과 더불어, 파티의 리더인 내 목숨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들의 흔적을 쫓아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월광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조금 더 어두웠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그림자는 충분했기에, 민준은 대검을 등에 메고 [무음의 페어번-사익스]를 꺼내 들었다.
‘….’
민준의 모습이 복도 그림자에 녹아들어 점점 그 형체를 잃어갔다.
* * *
학교 옥상에서 밖을 살피는 이진원의 옆으로 스포츠머리의 남자 후배, 최우영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진원 선배, 저희가 그 괴물 X끼를 잡을 수 있을까요? 부주장도 놈한테 당했잖아요.”
가로등 하나 들어오지 않는 주차장을 달빛 하나에 의지해 살펴봐야 했던 이진원은, 최우영의 말을 대강 듣고 있다가 이내 후배가 어떤 의미로 얘기를 꺼냈는지를 깨닫고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윽….”
“그 말은 내가 윤아린, 그년보다 밑이라는 거냐? 뒤지기 싫으면 입조심 해, 인마. 내가 왜 저놈들을 죽이지 않고 잡아 왔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이진원은 한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곳에는 미라처럼 온몸을 꽁꽁 묶인 소희와 동길이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윤아린이 실패한 건, 막내, 그 박쥐 X끼가 통수친 것도 있었겠지만. 결국, 그 괴물한테 정면으로 들이받아서 그랬던 거야. 대가리를 달고 있으면 뭐하냐, 머리를 써야지.”
이진원이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살짝 놓자, 소희와 동길의 몸이 밖으로 슬쩍슬쩍 기울었다.
“읍읍!”
“으으….”
재갈을 물고 있는 둘이 신음을 질렀지만, 이진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무표정을 고수했다.
“그런 그렇고, 막내는 보냈어?”
“오자마자 바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배신자 새끼는 그냥 죽이시지, 왜 주장한테 보낸 겁니까?”
“놈의 처우는 주장이 결정할 거야….”
‘아마 잡아 먹힐 테지만.’
이진원은 뒷말을 속으로 삼키고 주차장을 응시했다.
집채만 한 벌을 만나고도 살아남았던 그날부터였을까.
주장에게서 풍기는 느낌이 달라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장과 가깝게 지내오던 자신은 그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추측하는 정도였지만, 점차 확신으로 바뀌다가 오늘 두 눈으로 확인했다.
윤두식 그놈이 계속 골골대다가 주장에게 ‘먹히는’ 모습을.
‘어우, 생각하니까. 또 X같네.’
물론, 살인으로 시간을 강탈하는 자신들도 사람을 먹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문자 그대로 ‘사람을 먹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자신에게 숨기지도 않았다. 겁을 주는 것 같았다. 도망치면 이 꼴이 될 수도 있노라고.
“…젠장. 우선 이 일부터 마무리 짓고 생각하자.”
이진원이 상념을 떨쳐내고 다시금 전방을 주시했다.
그렇게 몇 분쯤 더 후배 놈의 말을 받아줬을 때, 이진원은 주차장 한가운데 실루엣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등에 커다란 무언가를 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민준이라는 놈이 분명했다.
“어? 저거 놈 아닙니까?”
“…호들갑 떨지 말고, 조용히 사격 준비해.”
“네.”
이진원의 말에 그의 직속 후배 최우영이 1학년들에게 사격을 준비시켰고.
그 와중에도 이진원은 놈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녀석은 귀신처럼 별안간 주차장 한가운데에 나타났으나, 뭘 하는 건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이진원은 후배들이 준비가 다 된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크게 소리쳤다.
“괴물 새끼야, 뭘 두리번거리고 있냐. 니가 찾는 인간들은 여깄는데.”
“읍읍!”
“으으읍-”
놈의 동료들도 그의 모습을 확인했는지 무슨 말을 전하기 위해 소리쳤지만, 재갈에 물린 채 외쳐본들 그 소리가 놈에게 전달될 리 만무했다.
들으나 마나 자신들은 신경 쓰지 말고 싸우라는 말이겠지.
“어, 어어? 이러다 네 동료들, 떨어지겠는데?”
“….”
“야, 이 인간들 살리고 싶으면, 무기는 바닥에 내려놓고 조용히 엎드려!”
“….”
“X발, 내가 개X으로 보이나,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무시하네.”
민준의 침묵을, 자신에 대한 무시로 느낀 이진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갈겨!”
쾅! 쾅! 철컥-
쾅! 쾅! 철컥-
이진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방에서 뿜어내는 불꽃과 우렛소리가 컴컴한 밤을 밝혔다.
그렇게 장전된 탄을 다 소비하자, 붉게 달아오른 총신 끝에서 연기가 피워 올랐고.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보이는 주차장 한가운데에는 앞으로 고꾸라져있는 놈이 보였다.
“으으읍!!”
“흐흑- 읍읍!”
그 모습 가장 먼저 발견한 놈의 동료들이 오열하며 발악했지만, 이진원은 줄을 끌어당겨 그들을 난간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이제 이놈들만 주장한테 보내면 끝나겠네.’
잔인하고, 이상하게 변해버린 주장이었지만. 학교에 다닐 때부터 자기 사람만은 끔찍이 챙기던 성격만큼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이 둘을 넘겨주면, 밑에도 시간을 넉넉히 챙겨줄 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쉽게 끝나긴 했으나, 좋은 게 좋은 것이리라.
이진원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윤아린. 이렇게 죽을 거면, 왜 주장한테 깝친 거냐.’
윤아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실력만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녀는 물론이고 그 밑에 놈들까지 모두 죽어버렸고, 그걸 혼자서 해낸 게 저딴 놈이라니.
내심 믿고 있었던 윤아린이 저런 어리숙한 놈에게 죽었다는 게 뭔가 꺼림칙했지만, 다른 생각을 하기엔 놈의 죽음을 알리는 증거가 눈앞에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번에 시간 좀 받으면, 나도 능력치나 올려볼까?’
동아리 부원이 조금 죽었다고 안타까워하기에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해왔다.
아이템을 달라 할지, 시간을 받아서 능력치를 올릴지에 대한 고민을 마지막으로 이진원은 마지막으로 남은 의심의 싹을 모두 거둬냈다.
“진원 선배! 여기 누가 있습니다! 벌써 애들 둘이 당했어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주장에게 바칠 먹이를 챙겨 돌아가려는 찰나, 총성과 함께 그의 직속 후배 최우영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진원이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자, 녀석의 말대로 가장 멀리 있던 후배 둘이 쓰러져 있었다.
“젠장, 다 이쪽으로 모여!”
이진원의 외침에 후배들이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푹. 푹.
“크륵….”
그 와중에도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실루엣과 함께, 두 명이 더 고꾸라졌고.
1학년 둘을 죽여버린 검은 형체는 눈 깜빡하는 사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등을 맞대고 서!”
자신을 중심으로 겨우 부원들이 한데 모였을 때, 살아남은 부원은 자신을 포함해 셋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주변을 살피면서도,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젠장, 이민준 그놈 말고 한 놈이 더 있었나? 아닌데, 퀘스트 창에는 놈을 포함해 셋이 전부였는데….’
그가 진행 상황 확인을 위해 황급히 퀘스트 창을 열었다.
「[서브 퀘스트 – PvP]
난이도: C-
클리어 조건: ‘망산고 사격부’가 ‘민준과 아이들’을 습격합니다.
다음 조건을 완료해 파티를 승리로 이끄세요.
① ‘민준과 아이들’ 파티원 제거 (0/2)
② ‘민준과 아이들’의 파티장 ‘이민준’ 제거 (0/1)
제한시간: 없음
보상: 업보(業報) +1.5, 800시간
실패 시: 사망
Tip) 퀘스트 중 발생하는 살인은 업보(業報)에 상대적으로 더 적은 영향을 미칩니다.
‘뭐야…. 이민준이 안 죽었다고? 아니, 분명-’
푹. 푹.
“크르륵….”
프스스스슷-
이진원이 퀘스트 창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등 뒤에 서 있던 후배 둘이 목에서 솟구치는 피 분수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쾅! 쾅!
이진원이 뒤늦게 실루엣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번에도 놈은 귀신처럼 사라져버렸을 뿐.
옥상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X발,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새끼다.’
이진원은 빠르게 그의 동료를 인질로 잡기 위해 달려갔으나.
스윽-
목에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느껴지면서, 누군가 속삭이는 귓속말이 들려왔다.
“너희 주장 어딨어. 말해주면 편하게 죽여줄게.”
* * *
민준은 미세하게 떨리는 놈의 목울대에 단검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분, 분명 총알 세례에 벌집이 되는걸, 똑똑히 봤는데?”
“그건 네가 알 필요 없고.”
민준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검은색 민무늬 반지를 슬쩍 바라봤다.
얼마 전, 경찰서에서 재정비 할 때 샀던 아이템. 언제고 유용하게 사용할 거 같았지만, 이렇게 바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더미 반지]
가격: 2,000시간
등급: 고급(Uncommon)
정보: 착용자와 동일한 모습과 기운을 지닌 더미(Dummy)를 5분간 소환한다
재사용 대기시간 : 24시간」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흔적이 너무 노골적이길래, [그림자 걸음] 스킬을 사용해 따라가다 함정을 파 두고 기다리는 놈들을 발견했고.
더미 반지를 이용해 함정을 역으로 이용했다.
녀석들이 조금만 더 치밀했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론 동길과 소희도 인질로 잡혀 있었을 뿐 심하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고.
“빨리 말해 백기혁? 그놈 어딨-”
콰앙-!!
그랬기에…. 놈을 협박하는 도중.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의 기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일순간 들어온 타격에 날아간 민준이 옥상 한편에 쌓여있는 책걸상 무더기에 처박혔다.
“으윽…”
민준이 책걸상 무더기로부터 빠져나왔을 때는 체격이 건장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학생이, 이진원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린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꼰대 아니랄까 봐, 상도덕도 없네.”
“…?”
“아무리 퀘스트라지만, 애지중지 키운 놈들의 배를 주인 허락도 없이 막 갈라? 한두 명이면 모르겠는데, 16명은 너무 했잖아. 뭐, 그래도 막내는 남겨줘서 그건 땡큐였지만.”
“선, 선배…, 저는. 선배 말 잘 들었잖아요. 앞으로도 잘 들을 테니까. 제발-”
퍽! 퍽! 콰득!
백기혁은 이진원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들고 있던 샷건을 마구 휘둘러 놈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리고 총신에 묻은 피를 혓바닥으로 핥고는 민준에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내걸 다 뺏었으니까, 나도 뺏어도 되겠지?”
그렇게 말한 녀석이 아직 묶인 채로 누워있는 동길과 소희를 향해 샷건을 겨눴으나, 어느새 그들의 앞에 나타난 민준이 대검으로 탄을 막아냈다.
“어차피 서로 죽여야 끝날 텐데, 나랑 먼저 싸우지?”
“흠, 급하게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운동장으로 따라와.”
그렇게 놈이 사라지자, 민준은 단검을 이용해 소희와 동길을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둘은 아직도 놀란 얼굴로 민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지만, 그는 이를 무시하며 할 말을 뱉었다.
“나중에 다 설명할 테니, 제가 놈을 상대할 동안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세요.”
“조, 조장 맞지? 살아있는 거지?”
“네.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계세요. 금방 돌아가겠습니다.”
민준은 그렇게 둘을 안심시키고, 놈이 날아간 방향으로 훌쩍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