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9
059화. 전초전 (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태어나 아이의 부모가 국가에 출생신고를 하는 것에서 시작해, 자라서 교육을 받고 적성을 따라 제 몫을 해내는 구성원으로 성장하기까지.
어린 나이에 어디 깊은 산에 들어가 혼자 농사도 짓고, 나무로 집도 지으며 자급자족할 게 아니라면.
결국에는 다른 누군가와 연결고리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인연의 고리라고 하는 것은 제법 신묘한 부분이 있어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는 정말 누구도 알 수가 없는 법이었다.
“…주 주임?”
“…시설팀장?”
단우의 뒤를 따라 세 사람이 실내로 들어서자, 해진 소파에 앉아 쉬던 정진호와 전병철이 돌연 벙찐 표정으로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헤헤.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는데, 자기들이 아저씨한테는 꼭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고 빡빡 우기길래…. 어쩔 수 없이 데려왔어.”
세 명은 모두 현재 자신의 몸에 맞지 않게 무척이나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사람들이 종말 전 어떤 체형을 가지고 있었을지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의상 과거에 뚱보, 뚱뚱보, 뚱뚱뚱보였던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
우선 넉살 좋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작은 뚱보였던 사람은 정진호와 안면이 있었다.
“인사들 해. 건호야 알겠지만, 우리 소방서 행정과에서 일하던 명남호 주임이야. 나랑 본관이 같아서 개인적으론 편하게 종질이라고 불렀었고.”
“안녕하십니까! 명남호라고 합니다!”
그리고 뿔테 안경을 쓴, 뚱뚱보였던 사람은 단우의 수학학원 선생님.
“반갑습니다. 만능수학학원이라고 종말 전에 작게 학원을 하나 했던 명진호라고 합니다. 편하게 ‘명 선생’으로 불러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키가 제일 큰, 뚱뚱뚱보였던 사람은 전병철과 연관이 있었다.
“가락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시설관리팀장을 맡았던 명정호라고 합니다.”
망한 세상에서 과거의 인연이 뭐 얼마나 중요하겠냐마는.
세 명 모두, 일행의 누군가와 인연이 있다는 점은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키만 도레미 순으로 다르다뿐이지, 셋이 키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무척이나 비슷했으니.
좀 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저, 궁금해서 그러는데… 세 분이 형제이신 건가요?”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소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절묘하게 엮이는 경우도 있는 건가 싶었기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에이 딸, 말이 돼? 어떻게 딱-”
“맞습니다, 삼 형제.”
“…응?”
“저희가 터울이 좀 있어서 형제로 안 보시는 분들이 좀 많더라구요. 그래도, 저희 좀 닮지 않았나요? 여기 키가 가장 크신 정호 형님이 첫째, 두 번째로 크신 진호 형님이 둘째, 그리고 제가 셋째입니다. 어렸을 때, 형님들이 다 영양분을 뺏어가서 키가 작은 거라고 막 울기도 했었죠. 하하.”
확실히… 그런 말을 듣고 자세히 다시 보고 있으니.
키만 다른 걸 빼면 세쌍둥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뭔가 눈매라든지, 코 같은 부분이 셋이 똑같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민준은 분신술을 보는 것처럼 고개를 휘저으며 이들의 관계를 차근차근 정리했다.
“아니, 아니, 잠시만 정리를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이 첫째 명 팀장님, 이분은 둘째 명 선생님, 마지막으로 막내 명 주임님… 이라는 거죠?”
“예!”
“그런데, 명 팀장님은 병철 씨와 명 선생님은 단우와, 명 주임님은 정진호 아저씨와 안면이 있으시다는 겁니까?”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같네요.”
머릿속에서 새로 등장한 사람들과 자신의 동료들과의 관계를 정리 후에야, 민준은 처음 인사를 나눈 이후 계속해서 품고 있던 의문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불쑥 찾아오셨는지, 저희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우선 민준 씨… 라고 불러도 될까요?”
“네, 편하게 불러주셔도 됩니다.”
“우선 시카리우스의 사육장에서 저희를 풀어주신 일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왔습니다.”
“아, 네…….”
여태껏 그런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일행에 합류를 요청하는 생존자들이 많았던지라, 민준의 대답은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표정을 읽었는지, 명 씨 삼 형제의 막내 명 주임이 둘째 명 선생의 말을 바로 이었다.
“잠실여고에서, 저희를 비롯한 다른 생존자들을 보시고는, 크게 실망하셨다는 거……. 당연히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다만, 조금이나마 변명을 해보자면, 그때의 저희는 저희가 아니었습니다. 뭔가에 취했다고 할까요. 여하튼 이상한 상태였습니다. 이건 저희 쪽 사람들도 모두 동감하는 부분이고요.”
아마.
시카리우스의 영향이었을 거다.
시카리우스의 말은 단순한 말 몇 마디가 아니라, 명백하게 스킬에 의한 상호작용이었으니까….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의 합류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인사는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희가 지금 바쁘니-”
이제 그만 돌아가라는 말을 돌려서 전하려던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민준 씨!”
삼 형제가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민준 씨께서 하시려는 일! 저희도 돕고 싶습니다.”
“…예?”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란, 곧 관문을 닫는 것.
가락시장에서 사도 몇을 사냥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저희가 뭘 하려는지는 알고 얘기하시는 겁니까?”
“프라우스의 관문을 보고 왔습니다. 거미들의 숫자가 엄청나더군요. 그래서… 사람이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무리의 인원이 서른 명 정도 됩니다. 같이 싸우시죠.”
“…왜죠? 왜 굳이 위험할 일에 동참하려 하십니까.”
“대장.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명 주임은 그렇게 나쁜 녀석이 아닌-”
민준이 새로 나타난 사내들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하자, 정진호가 이를 중재하려 나섰지만.
민준은 손짓으로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하지만, 제가 이러는 이유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고.
괴물들은 영악했다.
민준은, 이들이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 얘기를 꺼냈으리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삼 형제가 마인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생존을 보장받는 대신에 잠깐 협력하는 것 정도는 마인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설령 그렇진 않더라도, 일행의 생존시간과 장비에 눈이 멀었을 수도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심쩍거나 일행에게 위협이 될 행동을 한다면, 민준은 이 자리에서 셋 모두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두서없이 말을 꺼냈군요.”
“….”
이런 민준의 표정을 읽었는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명씨 형제의 첫째, 명 팀장이 조금 더 비장한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입을 뗐다.
“물론, 저희를 구해주셨던 민준 씨를 돕고 싶은 마음에 이런 얘기를 드렸던 것도 맞습니다만……. 아무래도 무리의 덩치가 커지다 보면, 대표자는 그 무리의 이익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지요. 저희 쪽 사람들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만큼, 한 가지 조건을 걸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민준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이편이 좋다.
정당하게 주고받는 게 있다면, 뒤통수를 치는 것도 어려워질 테니까.
“도움의 대가로, 무엇을 바라십니까?”
이제 관건은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였다.
합당한 요구라면, 많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니만큼 그들과의 거래를 마다할 필요가 없을 테고.
그게 아니면,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각자 갈 길을 가면 된다.
“저희에게 프라우스의 틈에서 수확되는 마석의 30%를 약속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역시… 그건가?’
민준 일행이 프라우스를 처치하고, 또 하나의 관문을 닫게 된다면.
거점 캠프를 하나 더 얻게 되는 건 확정 사안이었다.
민준 일행에게 필요한 거점은 하나였으니, 이를 모두 독점하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일 게 분명했고.
무엇보다 캠프의 마석 건으로 원체 근방 시끄러웠던 탓에. 만약 괜찮은 사람들이 나타난다면 이후에 얻게 되는 거점 캠프의 권리는 공유하는 것으로 얼마 전 일행의 의견을 모은 참이기도 했다.
제법 좋은 타이밍에, 민준 일행이 필요로 하는 조건.
몇 가지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그들의 제안을 받아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좋습니다. 대신 저희도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나중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혹시 레기나를 말씀하시는 거면, 말씀 안 하셔도 저희는 충분히 도울 의향이-”
“아니요. 그거 말고. 지금은 아직 완벽히 구상되지 않아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그쪽 팀에게도 나쁜 제안을 아닐 겁니다. 어떠십니까?”
“…그러시다면야. 네, 좋습니다.”
명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전병철에게 생존시간을 주고 계약서를 부탁했다.
“계약서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스킬이니만큼 계약 내용은 꼭 지키셔야 할 겁니다.”
민준은 그렇게 말하고 뭔가 악덕 고용주가 된 느낌을 받았지만……. 사실 주고받을 걸, 잘 주고받으면 서로에게는 윈윈 아니겠는가.
“세상에는 별의별 스킬이 다 있군요. 저희야 30%만 확실히 약속된다면 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계약서의 서명란에 내 서명과 삼 형제의 서명이 적혔고.
인원수만큼 늘어난 계약서가 이내 각자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작전을 짜겠습니다. 명 팀장님의 팀원분들은 등급이 어떻게 됩니까?”
* * *
팀원들도 휴식할 겸 하루 쉬면서 짜낸 작전의 골자는 단순했다.
‘들이박고. 버틴다.’
정확히는 거미 떼를 헤쳐나가 관문 근처로 진입 후.
나 혼자 관문으로 들어가 프라우스를 죽이고 나올 때까지, 팀원들은 거미들과 싸우며 관문 앞을 지키는 전략이었다.
결국, 또 나 혼자 레이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왜 또 시카리우스 때처럼 솔로 레이드가 됐냐면…. 바로.
“프라우스의 관문 안은 전부 환술로 이뤄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녀의 허락이 아니면 계속 그 속에 갇혀있어야 하죠. 아마, 능력치가 대단히 높으면 이를 무시할 수도 있을 테지만…. 지금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키클롭스의 눈]을 지닌 민준 씨뿐입니다.”
그 안에 들어갔다 온 사람의 증언이 이러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관문의 주인을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자신뿐이었으니까. 열은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일당백 칭호를 받은 순간부터 이런 운명이 예정되어 있던 거라면. 아마 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게 분명한 듯싶은데….’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불운을 설명할 길이 없다.
“민준 씨, 어서 준비하셔야죠.”
“…네?! 후, 해야죠.”
소희가 상념에 빠진 나를 일깨웠고, 나는 한숨을 쉬고 주섬주섬 전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템과 스킬 쿨타임도 확인하고, 위급 시 사용할 [중급 레드포션]도 구매하고.
사지(死地)에 제 발로 기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조금 뒤 명 씨 삼 형제의 팀원들이 오면 곧바로 작전 시작이다.
나는 우리 팀원들을 모아놓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그간 몇 번이고 얘기했던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했다.
“하나도 안전, 둘째도 안전. 무조건 안전해야 합니다. 저는 제 사람이 죽는 꼴 못 봅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안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 아니야?”
하여튼 이 눈치 없는 놈은 꼭 초를 친다. 나는 단우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하여튼! 저도 꼭 프라우스 죽이고 살아나올 테니까, 그때까지 여러분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대장, 저기 명 주임 왔습니다.”
“자, 그럼 이제 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따라 해보세요. 생존! 생존!! 생존!!!”
“““생존! 생존!! 생존!!!”””
“갑시다!!”
어느새 우리 팀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생존 구호를 연창하며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명 팀장님 전투 진형은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민준 씨야말로 홀로 프라우스랑 싸워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방법이 그것뿐이니 어쩔 수 없죠.”
긴장을 풀기 위해 가볍게 말을 건네는 동안. 인원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 진형을 갖췄다.
거미가 득실거리는 관문을 향하는 쐐기 진형, 그리고 그 꼭짓점에 서 있는 나.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나라고 긴장이 안 되겠는가. 죽고 사는 문제인데….
그런데, 해야 하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것이다.
나는, 또다시 살아남아 내일 뜨는 해를 바라볼 거다.
“돌격!”
거미의 군세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해 보이는 불나방 수십이 거미줄로 뛰어들었다.